magia 8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등급 외 마법들의 능력은 시련의 공간에서 보았던 현상과 비슷할 터. 강민혁은 그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머릿속에 정리해두었다. 마나 소모량이 많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것은 마법사로서 평생 안고 가야 할 문제다. 지금 당장은 월하 심법과 마나 룸을 최대한 활용해서, 네 개의 서클에 많은 양의 마나를 축적하는 방법밖에 없다.
정리가 끝났다.
이제는 상황을 해결할 차례였다.
‘A급 웨어 울프를 소환한 것은 우발적인 선택이었어.’
A급.
그것의 상징성은 크다.
강민혁은 A급 몬스터에게 동료가 다쳐서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았고, 검을 버리고 전향한 마법의 세계는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없다는 한계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항상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순간을 바라왔다. 그러한 감정은 클리스만의 육체로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리면서 더욱 강해졌고, 그것을 실제로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기자 행할 수밖에 없었다.
무모했다.
누가 목숨을 걸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강민혁은 일말의 가능성에 목숨을 바쳤다.
강민혁의 삶이 그러했다.
철창에 갇혀서 몬스터와 싸울 때, 그러한 상황을 의도한 아버지에게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단지 강해지기 위해서.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강민혁을 낭떠러지에 떨어트렸다.
강민혁에게 훈련이란 온실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사를 걸어왔던 순간들의 기억에, 강민혁은 ‘훈련’에 불과한 상황에서 목숨을 거는 결단을 내렸다.
죽으면 죽는 것이다.
하지만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순간, 강민혁의 앞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난 강해.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강해질 수 있어.”
확신.
힘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강민혁은 그 차오르는 희열에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다는 사실은, 강민혁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을 선사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마스터키.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흔적이 남았다.
언제고 자신이라는 사실을 밝혀질 터.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마법사로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린 것은 엄청난 영광이다. 그러한 업적은 후일 마탑을 건설할 때 분명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테지만, 흥분을 가라앉힌 강민혁은 다르게 생각했다.
‘최상의 타이밍은 아니야.’
4서클 마법사.
아직 6서클의 근처도 가보지 못한 마법사가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다면, 많은 질문이 따라붙는다.
등급 외 마법.
서클 강화 등등.
주절주절 떠들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의 상식을 과도하게 넘어설 경우, 강민혁은 최초의 업적을 이루었다는 영광과 동시에 많은 의문으로 인해 구석에 몰릴 확률이 높다. 강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같다. 강민혁이 6서클의 마법사라면 단번에 납득할 것을, 4서클이기 때문에 날파리들이 붙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걸 전부 무시하고 공개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힘을 드러내되, 내가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는 것은 곤란해.’
최초.
강민혁의 시작은 마법이 아니다.
강화 전사였고, 수호문의 후계자였던 강민혁이 최초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다고 한다면, 분명히 일부의 사람들은 강민혁에게 강한 악의를 느낄 것이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꾸준하게 마법을 익혀서 모두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최초의 업적을 이룬다면 인정하고 받아 들이겠지만, 강민혁이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사람들의 반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강민혁은 연구 발표에 항상 이학범을 대동했다.
이학범이라는 모두가 인정하는 존재가 연구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강민혁에 대한 반발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이번 달에 나는 내 힘을 드러낼 자리가 마련돼. 그러니 지금은 최초의 타이틀을 내주고 최대한 많은 것을 얻자.’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유재명에게 힘을 공개한 이유였다.
“왜지? 왜 사람들에게 너의 업적을 공개하지 않고, 내게만 사실을 밝히는 거지?”
유재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처음엔 당황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강민혁은 소문대로 괴물 같은 녀석이었으나, 상황을 되돌아보니 강한 의문이 생겨났다.
‘대체 왜.’
강민혁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냥 본인이 했다고 공개해서 명예를 독식하면 될 일을, 굳이 둘만 있는 자리에서 사실을 밝혔다.
강민혁이 말했다.
“저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간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마나 동화와 같은 기술들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많은 지식들이 제 머릿속에 있습니다. 방금 사용한 마법과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그토록 바라는 6서클 마법 같은 것들이요.”
꿀꺽.
유재명이 침을 삼켰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마탑을 건설할 생각이고, 마탑의 목적은 마법의 발전과 이 세상에서 몬스터를 완전히 멸하는 것입니다. 만약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마탑의 일원으로 소속돼서 저에게 충성을 바치겠다는 ‘마나의 서약’을 하신다면, 저 또한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바라는 6서클 마법의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나아가, 때가 되면 그 이상의 정보도 드릴 생각입니다."
유재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상황이 머릿속에 정리되질 않았다.
겨우 17살.
1학년 학과생의 입에서 나왔다기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마나의 서약이라니.’
마나의 서약(管約).
그건 이름 붙이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명칭이지, 실제로는 마나의 족쇄라고 불리는 기술이다.
그 발견은 우연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어떤 마법사가 동료 마법사의 탈진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서클에 자신의 마나를 부여했는데, 그것은 동료 마법사의 몸을 회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악재(惡災)로 작용했다. 몸과 맞지 않은 마나. 그게 강제로 주입되면서 동료 마법사의 심장을 터트려버리는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마나 링크는 매우 복잡하고 예민한 기술인데, 그걸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사용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당시의 사건은 마나의 족쇄라는 기술을 낳았다.
문제가 생기지 않을 만큼의 마나를 상대의 서클에 심어놓고, 원할 때 터트릴 수 있는 강한 족쇄.
그 양이 적어서 심장을 터트릴 정도는 아니지만, 마나로 인한 폭발은 서클을 완전히 소멸시켜버린다. 그래서 한때 마법사들은 마나의 족쇄로 거래하는 방법이 남발되었지만, 그게 마법사들의 세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판단에 현재에 이르러서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상태다.
강민혁은 그런 위험한 기술을 거론한 것이다.
“저는 지금 유재명 대마법사님에게 ‘힘’을 주려고 합니다. 사실 제게 굳이 필요한 거래는 아닙니다. 아까도 보았듯이, 제가 사용한 마법은 이미 유재명 대마법사님의 경지를 넘어섰습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제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신다면 저는 앞으로 유재명 대마법사님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사람들 앞에 나서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린 사람이 저라고 밝히겠습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의 힘과 명성이 제게 도움이 된다고는 하나,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거든요.”
이학범.
정상훈.
그들은 금제를 가하지 않았다.
왜냐고?
이학범은 학자다.
학문을 추구하는 그들은, 실질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지식의 원천이 자신이라는 사실만 심어줘도 충분하다. 어차피 자신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밖에 없기에, 그는 배신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정상훈.
그는 제자다.
후일 정상훈을 앞에 내세웠을 때, 금제를 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유재명은 다르다.
6서클 마법사.
그에게 6서클의 마법을 알려주는 것은, 실질적으로 힘을 부여하는 것과 동일하다.
금제를 걸만한 타당한 명분이 있고, 그 정도 조건이 아니라면 정보를 줄 이유가 없기도 했다.
‘유재명의 명성은 내게 많은 도움이 된다.’
그가 제안을 허락한다면.
강민혁은 유재명을 전면에 내세울 것이다.
유재명은 A급 몬스터를 본인이 쓰러트렸다고 밝히고, 그가 최초의 6서클 마법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강민혁이 우려했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유재명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마법을 수련한, 모두가 인정할 만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6서클의 경지에 오른다면 사람들은 희망이 생겨난다. 유재명처럼 6서클에 오를 수 있다. 강민혁이라는 뜬금없는 존재는 반발을 일으키겠지만, 유재명은 그와 다른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학범은 학자들을.
정상훈은 자라나는 새싹들을.
유재명은 힘을 원하는 기존의 마법사들을.
강민혁은 세 명의 인물을 내세워서 그들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강민혁이 세 인물 위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새로운 마탑은 강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유재명이 고민에 빠졌다.
그는 진정한 마법사다.
6서클.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을 대가로 강민혁에게 마법사의 생명을 맡기는 것은, 섣불리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었다.
100년의 역사.
마법 문명이 발전하면서, 6서클은 꿈의 경지라고 불렸다.
그런데 최초로 그것에 닿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유재명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거절할 수도.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제안.
문제는 강민혁은 본인의 말대로 아쉬울 게 없었다.
일단, 유재명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겠나?”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래 기다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딱 하루, 하루가 지나면 저는 제가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렸다고 밝힐 생각이니까요.”
그리고 그날 저녁.
유재명은 날이 밝기도 전에, 강민혁에게 굴복했다.
유재명과의 거래를 끝내고.
강민혁은 고영철을 만났다.
“상황은 어때?”
“나쁘지 않아. 자금이 넉넉한 것도 있지만, 강민혁이 마음을 달리 먹었다고 말하니까 따르는 친구들이 많더라고.”
고영철.
그는 강민혁의 부탁을 받아 정보부대를 창설했다.
이전에는 특별함 움직임이 없었다.
일단 믿을만한 사람들을 모아서 기본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강민혁이 최우선으로 강조한 붉은 마나석을 사들이는 데 전념했다. 그로 인해 현재 시장에 나온 붉은 마나석은 대부분 고영철이 가지고 있었고, 새로운 붉은 마나석이 나오더라도 고영철에게 연결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 과정에서 잡음은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뛰어난 능력자였다.
수호문이라는 거대한 단체에서, 고영철을 차기 정보부대 대장으로 선임하려던 것은 혈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왜 필요한 거야?”
탁.
고영철이 서류 뭉치를 건넸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프로필이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마법사라는 것.
그것도 상당한 실력을 갖춘 마법사들의 상세 정보였다.
“희망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지. 나는 지금부터 명분이 있는 인물을 내세워, 그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누어줄 생각이야.”
“재밌는 일을 벌이는 모양이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고영철이 피식, 웃었다.
강민혁이 예전과는 다르게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고영철에게 강한 원동력을 부여했다.
“그나저나 며칠 뒤에 있을 어머니 기일에 참석할 거야?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던데.”
어머니의 기일.
그때, 수호문은 대대적으로 토벌을 진행한다.
미제(未濟)로 남은 난이도 높은 던전을 공략함으로써, 수호문의 위상을 다시 한번 세상에 알린다.
안다.
그것이 바로 강민혁의 뒤로 물러난 이유였다.
강민혁은 최초의 상징을 포기하고.
“당연히 가야지. 내 어머니의 기일이잖아.”
강화 전사.
그리고 마법사.
양 세계가 주목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힘을 증명 받을 것이다.
그것이 강화 전사 출신이라서 생기는 편견, 그리고 강화 전사들이 마법사를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65화. < 18. 희망을 찾아 모이는 사람들(3) >
마법 학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강타했다.
“헌터 아카데미 마법 학과의 출신인 유재명이 6서클의 경지에 올랐다.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린 것이 바로 그 증거이며, 유재명은 그간 미지의 영역이라 불리던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다.”
난리가 날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A급.
그 단어에는 마법사들의 한(恨)이 담겼다.
마법사들 또한 헌터의 한 갈래이며 이 세상의 수호를 맡는 사람들이지만, A급을 쓰러트리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간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 그런데 유재명의 행보는 그러한 판을 뒤집었다. 당연히 잔뜩 흥분한 세계 마법 연합의 마법사들이, 비행기를 타고 곧바로 한국으로 향했다.
목적은 두 가지였다.
6서클 마법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유재명이 정말 미지의 영역을 개척했다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입을 추진할 것이다.
헌터 아카데미의 야외 훈련장.
마법 시연회를 앞두고, 수많은 단체의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웅성웅성.
“정말 6서클 마법을 개발했을까요?”
"솔직히 믿기지는 않지만 유재명 정도의 인물이라면 사실일 가능성이 커요. 유재명은 서른 초반에 5서클에 오른 천재 마법사예요. 그때로부터 10년이나 흘렀으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죠.”
“제발, 제발 사실이기를.”
마법사들의 눈빛에는 ‘희망’이 보였다.
6서클 마법.
만약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유재명을 영입할 수 있는 단체는 제한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100년의 마법 역사가 흐르는 동안, 6서클 마법은 미지의 영역이라 불렸다. 처음에는 마법 문명이 발달되지 않아서 개발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지식의 답보 상태가 이어지면서 마법사들은 6서클 마법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한 의문이 마법사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그런데 이번 발표는 모두에게 6서클 마법이 공개되진 않을지라도, 미지의 영역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 세계 마법사들에게 증명하는 자리가 될 터.
다들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유재명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입장하십니다.”
짝짝짝-
짝짝짝-
열화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재명은 그러한 상황에 마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그는 6서클 마법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막막한 현실의 벽에 절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얼굴을 보면 알만한 마법사들 앞에서, 6서클 마법의 탄생을 증명하는 시연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어.’
그날 저녁.
유재명이 결단을 내린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학범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 유재명은, 강민혁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 이학범에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도 아직은 강민혁이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합니다. 워낙 특별한 배경을 타고 나기도 했고, 대단한 지식을 공개하는 그의 행보는 정상적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강민혁은 ‘마법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겁니다. 만약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강민혁이 내민 손을 잡는다면, 유재명 대마법사님은 물론이고 마법 학계 전체가 발전할 겁니다.”
솔직한 평가였다.
굳이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학범은 본인의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그에 유재명은 결단을 내렸다.
사실 처음부터 마음이 기울었는지도 모른다.
6서클 마법이라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유재명은 리스크를 안아도 된다는 조금의 확신이 필요했다.
이학범의 말.
그것이 ‘아주 조금의 확신’을 주었고, 유재명은 강민혁의 마음이 달라질까 봐 저녁에 바로 연락했다.
그리고 지금.
유재명이 사람들 앞에 섰다.
“지금부터 6서클 마법 시연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크르르륵.
바로 앞.
A급 웨어 울프가 포박되어 있는 채로 마법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A급 웨어 울프를 향했다. 만약 A급 웨어 울프에게 마법이 통한다면, 그것은 6서클의 마법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게 되는 일일 터. 기대감에 차오르는 사람들의 시선에, 유재명은 천천히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윽고.
“익스플로전 (Explosion).”
펑!
콰콰쾅!
강력한 폭발!
그 엄청난 화력에 A급 웨어 울프가 비명을 질렀다. 한 방에 죽지는 않았으나, 타닥타닥 타오르는 피부와 축 처진 머리는 충격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5서클 마법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위력.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수를 쳤다.
짝짝짝-
짝짝짝-
“정말이었어!”
“이게 바로 6서클 마법의 위력이구나!”
“유재명 대마법사님, 당신이 성공했습니다.”
격렬한 찬사.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유재명은 파르르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강민혁.’
6서클.
강민혁이 알려준 마법은 평범한 6서클이 아니다. 무려 상급 6서클 마법이었고, 그로 인한 파괴력은 유재명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토록 대단한 지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줄 수 있는 사람. 자신이 진정한 마법사라면, 강민혁의 곁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 또한 나쁘지 않겠지.’
마나의 서약.
제약이 걸렸다는 사실을 떠나, 유재명은 강민혁의 지식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양질의 지식을 제공해준다면, 유재명은 기꺼이 충성을 바칠 의향이 있었다.
걸음을 옮기는 유재명.
그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를 원하는 수많은 명사들이 서로 앞다투어 유재명의 앞으로 달려왔다.
유재명의 발표.
그로 인해 각 마법 연합이 발칵 뒤집혔다.
6서클의 탄생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만, 동시에 마법 학계의 판을 바꾸었다.
영국 마법 협회의 협회장.
웨인 번즈가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정말로 6서클 마법을 개발했다니. 한국의 마법 학과 출신들이 제대로 사고를 치고 있어.”
“그것도 보통의 6서클 마법이 아니었습니다.”
맞은편.
존 웨슬리가 답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강력한 폭발!
사람들이 6서클의 위력을 10이라고 예상했다면, 유재명이 보여준 마법의 위력은 무려 15에 달했다. 상급 마법의 위력! 마법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유재명의 회유 가능성은?”
“사실 가능성이 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유재명은 발표 이후에, 수많은 단체에서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지만 정치적인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유재명은 방랑벽(放浪病)이 있는 인물입니다. 어디에 소속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에, 어쩌면 중립적인 포지션을 계속 유지할지도 모릅니다.”
“6서클 마법이 탄생했는데 그걸 알아낼 방법이 없다니.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유재명을 회유하지 못한 것은 희소식이 아니나, 그래도 다른 세력으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낫다.
“그래도 유재명의 영입에 만전을 기하도록.”
“알겠습니다.”
다른 세력도 마찬가지다.
유재명이 중립적인 포지션을 취한다 할지라도, 그의 영입전에서 물러나려는 세력은 없을 것이다.
6서클의 마법.
그것의 가치는 목숨을 걸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우려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뭐지?”
“유재명은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마법사들과의 만남은 극도로 꺼리고 있으나, 개인적으로 가르침을 청하는 마법사들은 거절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표로부터 며칠이 지난 지금, 유재명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유재명이 적극적으로 세력 형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6서클에 매료된 마법사들이 자발적으로 유재명을 따르고 있습니다.”
“...흐음.”
세력 형성.
위험한 일이다.
6서클 마법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로 A급 몬스터라는 마법사의 한계를 무너트렸다는 것.
유재명이 보여준 행보는 단순히 개인의 강함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마법의 힘 그 자체를 증명했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세력을 형성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유재명을 중심으로 마법 학계의 판도를 바꿀, 새로운 세력이 탄생할지도 모르겠군.”
표정이 굳었다.
영국 마법 연합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최초의 6서클 마법사라는 상징성은, 이미 마법 학계의 성역(聖域)이 되어버렸다.
한참 유재명으로 시끄러울 그 시각.
강민혁을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유재명 대마법사님에게 6서클 마법을 가르쳐준 사람이 정녕 스승님이신 겁니까?”
바로 정상훈이었다.
마법 시연회.
그것이 끝나고, 마법 학과의 학생들에게 이런 소문이 퍼졌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은 후학(後學) 양성에 적극적이신 분이라, 개인적인 가르침을 청해도 마다하지 않으신다. 벌써 소문을 들은 마법사들이, 유재명 대마법사님을 매일 같이 찾아가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재명.
무려 6서클 대마법사가 개인적인 가르침을 준다는데, 강해지길 바라는 정상훈으로서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유재명에게 6서클의 실마리라도 조금 얻어보고자 찾아갔는데, 유재명의 대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네가 정상훈이구나. 넌 내게 가르침을 받을 게 없어. 내가 발표한 6서클 마법도 사실, 강민혁에게 배운 것이거든.”
강민혁은 유재명에게 딱 한 명에게만 진실을 말할 것을 허락했다.
그 사람이 바로 정상훈이었고, 유재명의 대답을 듣고서 정상훈은 충격에 한동안 넋을 잃었다.
‘스승님이 6서클 마법을 개발했다고?’
강민혁.
대단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동급생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곁에 있으면서 강민혁의 천재성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강민혁은 나이를 떠나 ‘스승의 자질’도 있는 사람이다. 강민혁의 카리스마는 정상훈의 고개를 절로 숙이게 만들었고, 정상훈은 강민혁의 곁에서 차근차근 성장의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6서클 마법이라니.
아무리 강민혁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정상훈이라지만, 이건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대체 스승님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양파와도 같은 사람이다.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마나 동화를 개발한 것으로도 모자라, 벌써 3서클의 경지에 올랐다.
그 외에도 강민혁의 곁에 있다 보면 충격적인 일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6서클 마법을 개발했단다. 이건 전에 보여주었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결과물이었다. 마법 학계의 명사들이 찬양하는 새로운 시대를 연 사람은, 대마법사 유재명이 아니라 강민혁인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강민혁을 찾았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물어보는 모습에, 강민혁이 피식 웃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에게 들었나 보군.”
“..정말 사실이었군요.”
“내가 예전에 너에게 말했었지. 네 가문의 부흥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강해지고 싶다면, 그에 대한 해답은 바로 나에게 있을 거라고. 앞으로도 내가 직접 제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너 하나뿐일 것이다. 그러니 너라는 사람이, 정상훈이라는 마법사는 반드시 훌륭한 마법사여야만 한다.”
서로의 목적.
둘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강민혁은 정상훈의 재능을 받아들였고, 정상훈은 지금 이 순간 신뢰가 다시 한번 확고해졌다.
스승.
그 단어가 점차 심장에 각인되었다.
시작은 거래였으나, 정상훈은 시간이 갈수록 강민혁이라는 존재를 진짜 스승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 말밖에 할 것이 없었다.
강민혁 정도의 지식이라면, 사실 자신이 아니라 할지라도 제자로 받아들일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그럼에도 자신을 선택해주었다.
강민혁은 유재명 대마법사에게도 ‘힘’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
정상훈은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는 강민혁이 무엇을 시키든 간에, 강민혁의 말이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것이다.
정상훈에게 있어 강민혁은 이제 하늘이었고, 강민혁이야말로 가문을 부흥시켜줄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제 된 건가.’
믿음.
서로 간의 믿음이 생겼다.
이전까지는 ‘거래’라는 시작점에 소극적으로 가르쳤다면, 이제는 준비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훈.
이제 그라는 원석을 깎아낼 차례다.
밝게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되었을 그때, 정상훈의 이름은 유재명과 같이 강민혁을 밝혀줄 것이다.
“따라와.”
“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도착한 공간.
그곳에는 정상훈으로서는 난생처음 접하는 세상이 있었다.
“이곳을 나는 마나 룸이라고 부른다. 앞으로 네가 훈련하게 될 공간이기도 하지.”
신세계.
정상훈의 상식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
66화. < 18. 희망을 찾아 모이는 사람들(4) >
마나 룸.
정상훈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공간이었다.
세상에 이런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상훈은 살면서 그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일단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주도록 하지. 밖으로 나가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도록.”
“예."
일단 강민혁의 말을 따랐다.
강화 유리로 만들어진 창문이 따로 있어서, 밖에서 안을 확인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강민혁은 마법진 중앙에 앉아 가부좌를 틀더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정상훈을 향해 말했다.
“마나 룸을 가동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서클에 있는 마나를 마법진에 흘려보내면, 마법진은 그에 반응해서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인다. 그때부터 마나 룸 훈련이 시작된다. 마나의 압력을 버텨내고, 얼마나 많은 양의 마나를 안정적으로 서클에 축적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번 훈련에 성공적으로 적응한다면, 넌 앞으로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설명은 짧게 끝냈다.
강민혁은 곧바로 마나를 마법진으로 흘려보냈고, 12개의 마나석이 반응하며 마나의 밀도가 높아졌다.
우우우우웅.
강한 압력!
예전 같았으면 감히 버틸 엄두도 내지 못했을 압력이 강민혁을 덮쳤다. 그러나 강민혁의 표정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시련의 공간에서 있었던 경험은 강민혁을 다른 세계로 인도하였고, 마나 룸 5단계 정도는 이제 1시간이 아니라 그 이상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마나가 가라앉자, 강민혁이 눈을 떴다.
“방금 내가 했던 방법대로 똑같이 하면 된다. 참고로 마나 룸은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훈련이니만큼, 잘못될 경우 서클이 손상되는 위험성이 있다. 그걸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해도 좋다.”
“하겠습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강해질 지름길.
정상훈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아니던가.
의욕을 표출하는 정상훈의 눈빛에, 강민혁은 마나를 모두 소모한 마나석을 새것으로 교체하였다. 자신은 12개의 마나석을 사용했지만, 정상훈은 1단계를 할 것이기에 6개만 배치했다.
그리고 시작된 훈련.
안에 혼자만 남자, 정상훈은 강민혁의 설명대로 마나를 바닥으로 흘려보냈다.
‘이제 마나의 압력이...............'
우우웅!
“흐읍?!”
순간 숨을 들이켰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압력이었다.
몸 전체가 쪼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모든 구멍으로 빨려 들어오는 신선한 마나에 과호흡이 생길 것만 같았다.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 머리가 팽팽 돌았다.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은 당장에라도 피를 토해낼 것 같았지만, 강민혁은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정상훈이 포기한다면.
안전을 위해 당장에 훈련을 중단하고, 강민혁은 그와 맺었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할 것이다.
마나 룸.
그건 강해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버티기 힘들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정상훈은 아직 2서클 마법사고, 그의 서클은 강화액으로 만들어진 약하디약한 서클이며, 강민혁과 같이 수호문의 심법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1단계는 버틸 수 있어야 한다. 나중에 더 높은 차원에서 요구되는 정신력을 생각하면, 이것은 겨우 몸풀기에 불과하다.
그러한 기대를 아는 것일까.
“후욱, 후욱.”
정상훈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는가 싶더니, 과연 천재라는 단어에 어울리게 마나의 압력을 버티는 본인만의 방법을 알아냈다. 순식간에 마나와 동화되는 육체. 정상훈은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마치 굶주린 아귀(飯鬼)처럼 주변의 마나를 모두 빨아들였다.
서클 강화.
그것이 처음부터 이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훈련이 모두 끝났을 때, 정상훈은 마나가 눈에 띄게 상승하는 유의미한 성장을 이루었다.
“...이런 효과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성장이라는 것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수련하는 입장에서는 정신을 갉아 먹히는 힘든 과정이다.
그런데 마나 룸의 훈련은 극적이었다.
이런 훈련을 개발해낸 강민혁에 대한 존경심이 생김과 동시에, 문득 직전에 있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스승님은 12개의 마나석으로 5단계의 출력을 버터내셨어. 1단계가 이 정도라면, 5단계의 압력은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거지? 과연 괴물이셔. 스승님은 남들보다 출발이 늦어서 이제 3서클 마법사일 뿐이지, 만약 나와 비슷한 시기에 마법을 익혔다면 이미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랐을지도 몰라.’
강민혁에 대한 존경심이 듬뿍 차올랐다.
밖으로 나가자, 강민혁이 말했다.
“앞으로는 매일 내 집에 찾아와 마나 룸 훈련을 진행하면 된다.”
“...그런데 마나석의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을까요? 적어도 상급의 마나석으로 보이던데.”
불그스름한 마나석.
그게 붉은 마나석이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마나의 양에 의문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확실한 건 상급의 마나석이라는 것. 시중에 그것이 얼마나 고가에 팔리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정상훈으로서는 그에 대한 미안함이 먼저 앞설 수밖에 없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라. 난 너를 강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니까.”
"..........!"
남들은 유재명을 찾아가던 그 시기.
정상훈은 진짜 기연을 얻었다.
학교는 소란스러웠다.
6서클 마법사의 등장.
그로 인해, 마법 학과의 학생들도 덩달아 밝아진 분위기였다.
수업 도중.
마법 학과의 한 교수는, 밝은 표정으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의 재능은 학창 시절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같이 수업을 받았었는데, 매번 빛나는 그의 모습에 언제고 제대로 사고를 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6서클 마법의 개발이었다니. 몇 년 전부터 6서클 마법 개발을 위해 전 세계를 떠돌아다닌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이렇게 보란 듯이 성공하니 친구로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 유재명 대마법사님은 마법 학과의 자랑입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으로 인해, 앞으로 마법사들은 A급 몬스터에게 대항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잔뜩 흥분한 얼굴이었다.
실제로 유재명과 그리 친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는 유재명을 정말 잘 아는 것처럼 떠들었다.
‘좋은 현상이네.’
강민혁의 판단은 옳았다.
유재명.
그는 근본을 갖춘 사람이다.
엘리트 코스인 마법 학과에 입학해서, 모두의 인정을 받으며 정석적인 테크트리로 성장한 사람.
그 과정에서 유재명은 상위 계층들과의 연을 맺었다. 방랑벽이 있어서 어디에 소속되지는 않았으나, 마법 학과 명예 교수라는 명함을 내세우며 전 세계를 떠돌았다. 그게 유재명이라는 사람의 명성을 쌓았다. 그라면 성공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한 인식이 퍼져 있었고, 유재명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의심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의 인연을 가지고 마치 친한 것처럼 떠들었다.
유재명이기에 가능한 일.
만약 강민혁이 전면에 나섰다면, 마법사들의 질투는 강민혁에게 어떤 식으로든 해를 끼쳤을 것이다.
지금은 일단.
강민혁은 천천히 명성을 쌓는다.그리고 나중에 이학범, 유재명, 정상훈과 같은 인물이 자신의 마탑에 소속된다면?
그때는 판이 바뀐다.
강민혁의 근본이 ‘수호문’에 있다고 한들, 사람들은 강민혁의 존재를 절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수호문의 토벌도 중요해.’
수호문.
그들이 진행하는 토벌은 많은 매스컴이 따라붙는다.
강화 전사들뿐만 아니라, 마법 학계에서도 이를 주목한다.
강민혁은 학술 대회를 통해서 인정을 받았다고는 하나, 수호문 출신이라는 인식은 아직 여전하다.
편견을 가지고 강민혁을 바라보는 마법사들.
강민혁을 수호문의 낙오자라고 깎아내리는 강화 전사들.
애매한 포지션에 위치한 강민혁이, 모두가 보는 이번 기회를 통해 인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특히 마법사들.
강화 전사들에게 항상 무시를 받던 그들은, 강민혁이 인정받는 모습에 대리 만족을 느낄 것이다.
그것을 위한 판.
마법사들의 신뢰를 얻는 것.
강민혁은 단계별로 계획을 진행했다.
며칠 뒤.
마침내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오후 6시까지 수호문으로 오도록.]
수호문의 연락.
강민혁은 수업을 마치고, 곧바로 수호문으로 향했다.
토벌 전.
수호문에서 앞으로의 일정을 논의했다.
흑표범 고무진.
정보부대의 대장이자 고영철의 아버지인 그가,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계획을 말했다.
“이번에 토벌할 던전은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S급 던전 암흑 도시’입니다. 던전 공략을 시도한 12개의 팀이 모두 전멸을 당하며 현재는 입구를 폐쇄 조치한 상태입니다만, 던전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마나로 인해서 최근 랜덤 게이트 현상이 잦아진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언데드와 흑마법사 같은.................... 일정은 지금으로부터 1주일 뒤. 수호문의 정예 병력을 선별하여 암흑 도시의 토벌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번 토벌의 방송은 K 방송사에서 맡았으며, 실시간으로 토벌 과정이 사람들에게 공개될 것입니다.”
강덕철의 아내.
강민혁의 어머니가 죽은 이후, 수호문은 매년 그녀의 죽음을 기리는 축제를 벌였다.
몬스터의 피로 땅을 물들이고, 미제의 던전을 해결함으로써 수호문의 명성을 떨치는 연례행사.
이미 어느 정도 들었던 내용이기 때문에, 수호문의 가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인물이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소식 들었습니까? 마법 학과의 유재명이라는 마법사가, 6서클 마법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6서클이라고요? 그럼 A급 몬스터에게도 마법이 통한다는 뜻입니까?”
“예. 이미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법 시연회도 마쳤다고 합니다.”
이미 널리 퍼진 사실.
그러나 소문에 밝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은 상당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뿐.
정판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6서클 마법을 개발하겠다고 꼴값을 떨더니 드디어 개발한 모양이네. 여러분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A급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려는 암흑 도시만 하더라도, 수많은 A급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곳이 아닙니까? 마법사들은 이제 스타트 라인에 선 것일 뿐이지, 아직 강화 전사들을 따라잡으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혹시 압니까? 한 2000년 정도 지나면, 그때는 우리와 위상이 비슷해질지. 크하하하.”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강력한 기득권인 정판호의 입장에서는, 마법사의 발전이 가소로울 뿐이었다.
몇몇은 그에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6서클 마법의 개발은 대단한 업적이기는 하나, 그것은 엄연히 마법 학계의 기준으로 했을 때다.
강화 전사들 입장에서는 좋은 ‘무기’ 하나가 생긴 정도. 마법사의 활용 가치가 앞으로 높아지겠지만, 6서클 마법 정도로는 대세가 바뀔 거라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장에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 A급 몬스터를 상대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혼자의 몸으로 수많은 A급 몬스터를 도륙한 전적이 있는 사람들에게,6서클의 발견은 특별한 위기감을 선사하지 못했다.
마법사의 평판.
강민혁은 그걸 가만히 들었다.
마법 학계는 매일 유재명을 띄우며 축제가 벌어졌지만, 이 세상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게 마법의 현실이야.’
6서클로는 부족하다.
7서클 정도의 마법이 개발된다면, 그때는 강화 전사들도 마법사의 힘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강민혁.”
“예."
강덕철의 시선이 강민혁을 향했다.
음성은 딱딱했다.
마치 아들이 아니라 남을 부르는 것 같은 음성에, 강민혁도 차가움이 맴도는 목소리로 답했다.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부자의 대화에 집중했다.
“이번 토벌에서 너를 도와줄 수호문의 사람은 없다. 네가 ‘마법사’로서 토벌에 참가할 생각이라면, 너 스스로 지켜야 한다.”
강민혁은 천륜(天倫)을 끊었다.
강민혁이 집을 나가던 그날, 강덕철 또한 강민혁을 수호문의 사람으로 대하지 말라는 엄포를 내렸다.
토벌의 참가는 최소한의 의무.
강민혁의 어머니기도 하기에, 토벌의 참가만큼은 허락했다.
“애초에 도움을 받을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 말씀하지 않으셔도, 스스로 지킬 생각입니다.”
“크흠.”
“허어.”
주변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살벌해지는 분위기.
다행히도 회의는 더 길어지지 않았고, 마지막 일정을 조율하는 것을 끝으로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수호문을 나서는 강민혁.
그때, 옆으로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도움 필요하면 말해. 아버지가 뭐라고 하든 간에, 내가 널 지켜줄 테니까.”
하민성.
납골당에서 보았던 친구였다.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는 뛰어난 전사이기도 한 그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 강민혁이 웃었다.
"말은 고맙지만 괜찮아. 내가 이번 토벌전에 참여하는 이유는 내 자신의 길을 증명하기 위함이야. 수호문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수호문의 후계자라는 위치가 아니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올바른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수호문의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어. 그러니 방금 한 말을 넣어둬. 네 도움을 받는다면, 내가 무엇을 하든 그 의미는 퇴색될 테니까.”
“너.........."
하민성이 감탄한 기색을 보였다.
고영철을 통해 들었다.
강민혁이 진짜 마음을 다잡았고,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고.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던 그 날의 기억이 있어서 완전히 믿지는 못했는데, 지금 보니 사실이었다.
‘정말 사실이었구나.’
강민혁.
그가 돌아왔다.
이준호, 하민성, 고영철 등등.
황금세대라고 불리던 수호문의 천재들이, 마나의 재능을 갖추지 못한 강민혁에게 충성을 맹세했었다.
강민혁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는 사실에, 하민성은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토벌이라.’
강민혁은 폰을 꺼내들었다.
지금으로부터 1시간 전.
강민혁은 한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클리스만님. 아니, 강민혁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마법 학술 대회에서 강민혁님의 영상을 보았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클리스만님이 수호문의 그 강민혁이었다니. 혹시 예전에 같이 사냥을 하자는 제안이 유효하다면 이번에 시간 어떠세요? 마법사로서의 강민혁님이 필요합니다.]
김성호.
전에 파티 사냥을 했었던 사람이 보낸 문자다.
그는 강민혁에게 크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김성호가 문자를 보낸 타이밍이 좋았다.
강민혁이 답장을 보냈다.
[시간은 되는데, 혹시 'S급 던전 토벌’에 참여하실 의향 있으십니까?]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최소한의 병력.
강민혁은 김성호 일행으로 만들 수 있는 재밌는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강민혁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하민성은 흐뭇하게 피어오르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67화. < 19. S급 던전 암흑 도시 >
김성호는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강민혁.
그를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긴장이 되었다.
‘우리를 나쁘게 생각하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지금으로부터 몇 주 전.
우연히 강민혁의 학술 대회 영상을 확인하게 된 김성호 일행은 충격을 받았다. 클리스만의 재능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수호문의 강민혁’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강민혁이 발표한 내용이었다. 강화 전사라고는 하나 김성호는 마법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강민혁의 발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았다.
‘강민혁은 천재야.’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것도 있지만, 세상에 알려진 강민혁의 행보를 따라가 보면 그가 뒤늦은 나이에 마법에 입문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겨우 몇 개월. 남들은 기초를 쌓기도 버거운 시기에, 강민혁은 마법 학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대단한 발견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았던 강민혁의 실력이, 그 짧은 시간에 만들어졌다는 뜻이겠지.’
그때부터 고민에 빠졌다.
연락할까.
그와의 인연을 어떻게든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강민혁이 수호문의 출신이라서가 아니다.
김성호가 직접 경험한 강민혁은, 수호문이라는 배경을 떠나 마법사로서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성공할 사람.’
그게 중요했다.
김성호, 임윤호, 정민철.
일반인이었던 그들은 한날한시에 헌터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기반도 없는 일반인이 성장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나름대로 재능이 있는 편이라 성장 속도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문제는 배경이었다.
아무런 배경이 없는 그들로서는, 결국 확 치고 나갈 수 있을 만한 원동력이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 강민혁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의 ‘인맥’도 없던 그들에게, 처음으로 성공이 보장된 특별한 사람과의 접점이 생긴 것이다.
‘이걸 계산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어. 하지만 강민혁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면, 마법사로서 성공할 그의 곁에서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그와의 사냥이든,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든. 그러니 강민혁과의 접점을 최대한 살려야 해. 그가 우리를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니라, 앞으로도 관계를 맺을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들 필요성이 있어.’
간절했다.
그들은 강해지고 싶다.
수호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마법사로서의 강민혁과의 관계를 이어나는 것만으로도, 일반인 출신 헌터들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너무 떨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더 잘해줄걸.”
불안해하는 임윤호와 정민철이 보였다.
결국 그들을 리드하는 것은 김성호 자신이기 때문에, 김성호는 심호흡하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잘하자.’
강민혁에게 연락한 것.
그것은 고민의 결과다.
강해지고 싶고, 그래서 염치를 무릅썼다.
그러니 잘해야만 한다.
강민혁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그가 자신을 좋게 기억할 수 있도록.
그때였다.
“온다!”
강민혁.
그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에, 김성호 일행은 마른침을 삼켰다.
김성호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강민혁과의 만남에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강민혁의 제안은 예상 범주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과 거래를 하려고 왔습니다.”
“.....거래요?”
“예. 문자로도 말씀드렸지만, 수호문에서 곧 S급 던전인 암흑 도시의 토벌을 진행합니다. 그때 저와 호흡을 맞출 ‘새로운 형태’의 강화 전사가 필요합니다. 이는 이제껏 여러분들이 훈련했던 체계를 완전히 무너트리는 방법이라, 동의가 없이는 진행할 수 없는 계획입니다.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부분은 제안에 응하신다면, 앞으로 여러분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김성호 일행.
그들의 생각을 강민혁도 안다.
자신의 능력.
그 일부를 알게 되었을 때, 간절히 강해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해한다.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순수한 욕망이고, 만약 반대의 입장이었다 할지라도 강민혁도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만약 지난 사냥의 기억이 좋지 않았다면 김성호 일행의 문자에 답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강민혁은 김성호 일행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고, 김성호 일행이 자신을 통해서 이루려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강민혁 또한 ‘목적’을 가지고 나왔다.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
이건 거래다.
상대의 눈치를 살필 이유도, 말을 머뭇거릴 이유도 없다.
솔직하게 말해서 받아들이면 거래가 체결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좋게 자리를 마무리하면 된다.
“잠시 생각할 시간 좀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김성호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들은 잠시 한편으로 걸음을 옮기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떻게 할까?”
“새로운 형태의 전사라는 게 대체 뭘까요? 우리가 훈련했던 체계를 무너트리는 방법이라니. 지금의 경지에 오르는 데도 정말 엄청 고생했는데, 새로운 방법으로 성장하면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그래도 상대가 강민혁이면 믿을 만할 것 같기는 한데. 지금이야 수호문의 낙오자라고 불리지만, 후계자로 건재하던 시절에는
정말 대단했던 인물이잖아요.”
대화가 길어졌다.
그들의 심정은 이해한다.
자신과는 다르게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성장했다.
최근에 B급 몬스터 사냥에 성공했을 정도로, 그들은 나름 ‘본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문제지.’
설득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의 상식과는 맞지 않는 길을 제시하는 상황에서는, 설득이 아니라 상대의 의지가 필요하다.
김성호 일행.
강민혁이 그들을 택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강해지겠다는 욕망이 강하고, 짧은 시간에 성장했을 만큼 나름의 재능도 갖추고 있으며, 몬스터들을 상대로도 물러섬이 없는 불굴(不屈)의 의지가 있다. 특히 김성호라는 단단한 버팀목 아래서, 임윤호와 정민철은 아직 어리지만 대단한 포텐을 보여주었다. 만약 그들이 수호문의 문도로서 시작했다면, 단언컨대 두각을 나타낼 만한 수준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
‘아무런 배경이 없기 때문에, 내 방식에 더욱 간절히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
단순히 뛰어난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강민혁의 생각에 따라주지 않으면 필요가 없다.
강민혁이 바라는 대로.
강민혁이 생각하는 ‘방향’처럼.
어느 정도는 수동적인 사람이 지금은 필요하다.
“고민은 끝내셨습니까?”
“예."
김성호 일행.
그들이 자리로 돌아왔다.
단단한 의지를 보이는 그들의 표정에서, 어떤 대답을 할지 보였다.
“강민혁님을 따르겠습니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저희는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강민혁이 웃었다.
그들이 자신이 내린 동아줄을 움켜쥐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차례다.
“약속대로 저는 앞으로 여러분들이 강해지기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지원 아래, 마법사를 지키는 디펜더(defender)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디펜더.
이 세상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낯선 단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클리스만의 세상.
그곳에서 수성전을 진행하며, 강민혁은 경비병들이 방패를 들고 상대를 막아서는 모습을 목격했다.
강화 전사.
마법사.
그들처럼, 방패병도 하나의 직종인 것이다.
책에서는 방패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디펜더의 시작은 아직 ‘대응의 체계’가 잡히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는 마법사들을 보호할 장벽도 건설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마법사들은 본인들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민해야만 했다. 그렇게 무빙 캐스팅과 같은 다양한 마법이 탄생했는데, 그 과정에서 마법에 재능이 없는 일반인들은 방패를 들고 마법사들을 지키는 디펜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일반인들이 방패로 마법사를 지키는 방식이 일상화가 되었고, 그중에서 특출난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이 디펜더의 칭호를 부여받았다. 마법 아티팩트의 힘을 빌리는 일반 방패병들과는 다르게, 디펜더는 그 이상의 방어 능력을 보인다. 하지만 디펜더의 숫자는 많지 않으며, 골렘이 개발된 이후로는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디펜더.
새로운 직종이 탄생했다.
사실 당연한 현상이다. 강화 문명에서 마법사는 강화 전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한 관계가 뒤바뀐 마법 문명이라면, 당연히 마법사를 보조하는 직책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반 방패병이 아니라 디펜더는 육체의 능력을 타고난 소수만이 가능한 직책이며, 그들의 기술에 관해서도 설명이 되어 있었다.
탁.
“시작하시죠.”
강민혁.
그를 앞에 두고 김성호 일행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제안을 수락하자, 디펜더라는 알 수 없는 단어를 말하더니 한적한 장소에서 3대 1 대련을 제안했다.
강민혁이 들고 있는 것이라고는 방패 하나.
어떻게 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김성호가 먼저 총대를 멨다.
“갑니다.”
타닥.
김성호가 달려들었다.
마나를 다리에 밀어 넣어서 스피드를 증폭시켰고, 순식간에 지척에 다가와서 강민혁에게 검을 휘둘렀다.
카앙!
“방패 강화. 마나 전도율이 높은 방패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방패는 상상 이상의 방어력을 자랑합니다. 강화 전사가 오라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웬만해서는 방패가 부서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죠.”
김성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가 허무하게 튕겨져버리는 모습에, 뒤늦게 임윤호와 정민철이 따라붙어서 합동 공격을 시도했다.
화르륵.
타오르는 오라.
오라의 사용은 사전에 얘기가 되었고, 그들은 강민혁의 사각지대를 노렸다.
캉!
캉캉!
“...?!"
공격이 모두 막혔다.
강민혁은 적절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했다. 수호 보법으로 상대가 힘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도록 먼저 몸을 밀어 넣었고, 단단한 방패에 공격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방패는 ‘단전의 마나’로만 강화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사인 강민혁도 충분히 방패를 강화시킬 수 있었고, 강화 전사로서의 경험을 활용해서 3명이 합공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냈다.
그리고.
퍽!
“차징. 순간적으로 힘을 집중시켜서, 방패로 상대를 타격하는 기술.”
콰당!
임윤효가 뒤로 넘어졌다.
그렇게 강민혁의 기술 시연은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성호 일행의 표정은 경악으로 얼룩졌다. 상대는 마법사다. 그런데 강민혁의 육체적인 능력은 마법사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당장 검을 들고 싸운다 할지라도, 강민혁 혼자만의 능력으로 세 명을 모두 도륙시켜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강민혁이 말했다.
“이 기술의 이름을 저는 수호의 방패라고 명명했습니다. 특수한 마나의 파동으로 특정 상대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기술이죠.”
디펜더의 기술들.
사실 그것들은 강민혁이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보았던 지식을 ‘강화 전사’에 맞게 변형시킨 것이다. 수호의 방패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그것은 클리스만의 세상에는 없는 기술이지만, 강민혁이 수호 검법의 구결을 방패에 접목시켜서 새로운 형태의 기술을 만들었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강민혁은 해냈다.
강민혁이라는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선구자의 자질을 갖추었다.
퍽!
콰당!
나가떨어지는 김성호.
그를 내려다보며, 강민혁이 방패를 거두었다.
“이것으로 끝입니다. 지금 제가 보여준 기술들이 앞으로 여러분들이 ‘디펜더’로서 터득해야 할 것들이고, S급 던전에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지도가 끝났다.
김성호 일행은 참담할 정도로 당했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절망감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선택은 옳았어.’
디펜더.
그것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강민혁과 같이한다면, 강화 전사가 아니라 디펜더라는 새로운 직책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일주일.
짧은 시간이지만, 김성호 일행은 영혼을 불사를 준비가 되었다.
68화. < 19. S급 던전 암흑 도시(2) >
드디어 토벌 당일이 되었다.
S급 던전 암흑 도시가 위치한 왕방산(王方山) 일대에 진입하자, 인근 주민들이 다급하게 도망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던전이 형성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던전을 중심으로 랜덤 게이트 현상이 자주 일어나면서, 그곳은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폐허가 되었다.
노란 경계선 안.
1차 안전지대에 도착하자, 수호문의 후계자인 이준호가 브리핑을 맡았다.
“지금부터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S급 던전 암흑 도시가 생성된 이후, 에픽 몬스터인 다크 리치(Dark lich)가 발견되기 이전에 던전의 공략을 시도하던 12개의 파티가 모두 궤멸당했습니다. 이후 정부에서 던전의 이름을 암흑 도시로 명명, S급 던전으로 격상시키면서 주변을 완전히 폐쇄했습니다. 처음에는 생존자가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 며칠 전에 던전 안에서 무전 신고가 잡혔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수호문은 토벌을 최우선으로 하되, 혹시 모를 생존자의 구조를 동시에 진행할 생각입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잘생긴 외모와 어울리는 목소리에, 찬찬히 사람들을 둘러보는 그의 시선은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토벌대는 10명씩 총 3개 조로 나누겠습니다. 제가 선발대의 리더로서 최전방에 서며, 본대는 강덕철 문주님이 맡아 중간에, 마지막으로 후발대는 정판호 장로님이 맡으실 예정입니다. S급 던전 암흑 도시는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설명은 계속되었다.
수호문의 제자들이 이준호의 설명에 집중하는 모습에, 강민혁은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후계 계승을 위한 과정이구나.’
이번 토벌.
K 방송사에서 리포터가 붙었을 정도로 대대적으로 알려진 수호문의 공식 일정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자리에서, 강덕철은 본인이 아니라 이준호를 전면에 내세웠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확고한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준호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각인시키겠다는 의도가 보였다.
당연한 일이다.
본래는 더 일찍 진행했어야 할 일을, 강덕철은 이제야 결단을 내렸다.
‘이준호.’
과거의 기억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친구.
설명을 하는 도중에 순간 이준호와 눈을 마주쳤지만, 이준호는 그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명백한 무시.
이준호가 강민혁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강민혁은 안중에도 없다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설명이 끝날 때까지도, 이준호와 강민혁 사이에는 그 어떠한 교류도 없었다. 예전에는 항상 이준호가 강민혁의 얘기를 경청하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둘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렸다.
세간에 알려진 둘의 관계.
좋을 수가 없다.
강민혁은 후계자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그 자리를 대신한 사람이 바로 이준호니 말이다.
“...이것으로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30분 뒤에 토벌을 진행할 예정이니, 조별로 정비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괜한 상념을 털어냈다.
그리고는 김성호 일행과 같이, 이번에 배정받은 ‘3조’로 걸음을 옮겼다.
정판수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버지인 정판호의 조에 소속된 그는, 강민혁 일행의 모습에 짜증 어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랑 지금 장난치자는 거지?”
수호문.
그들은 이번 토벌을 위해 A급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강화 전사를 무려 30명이나 동원했다. 그리고 한국 마법 협회에도 도움을 청하는 공문을 보냈고, 그렇게 1조와 2조는 4서클 마법사가 2명이 배치되었다. 그들이 있다고 해서 전력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나, 문제는 3조의 멤버랍시고 찾아온 강민혁과 그 일행의 모습이 정판수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것에 있었다.
“문제 있어?”
강민혁의 반응은 담담했다.
정판수의 반응이 어떻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문제? 당연히 있지. 너는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잊었어? 무려 S급 던전을 토벌하는 자리야. 막말로 후계자의 자리에서 내려온 너를 토벌대에 포함시켜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대체 네 일행의 꼬락서니가 저게 뭐야? 강화 전사들이 무기는커녕 겨우 방패 하나 들고 있는 데다, 그간의 업적을 보니깐 B급 몬스터를 사냥한 게 전부인 녀석들이잖아.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그래도 네 어머니를 추모하는 자리인데, 사리 분별도 하지 못하는 걸 보니까.”
김준호 일행.
그들이 문제였다.
수호문에서도 정예 병력만 골라서 토벌대에 합류시켰는데, 김성호 일행은 아무리 봐도 지금의 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강민혁과 김성호 일행의 조합. 심기가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판수의 성질상 가만히 넘어갈 수 없었다.
“정판수. 그렇게 따지자면 넌 예전에 나와 같이 토벌에 나서지 못했어. 그 정도 기억은 하지 않나?”
“이 새끼가.”
정판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과거.
정판수는 명백히 강민혁보다 밑에 있었던 사람이다.
흔히들 황금세대라고 불리던 강민혁의 라인에 정판수는 포함되지 않았고, 또래 천재들보다는 늦은 시기에 A급 몬스터 사냥에 성공했다. 그것이 정판수의 역린(逆織)이었다. 잔뜩 달아오른 얼굴은 한바탕 할 기세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강민혁에게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때의 정판수는, 강민혁이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더라면 확실히 파티에 낄 레벨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 어디 두고 보자. 문주님은 절대 너를 도와주지 말라고 명하셨어. 그따위 일행을 데려온 것은 네 업보고, 그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보자고. 혹시라도 과거의 연으로 우리가 너를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는 절대 하지 마. 3조에 배정되었다는 것은, 이곳에 네 친구가 없다는 뜻이거든.”
그의 말이 맞다.
3조.
정판호가 리더로 있는 그곳에는, 정판호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말인즉, 하민성과 같이 강민혁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 3조의 사람들은 문주의 명령에 잔인할 정도로 충성할 것이고, 강민혁은 본인의 몸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
강민혁이 피식 웃었다.
“꼴린 대로 하세요.”
애초에 도움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스스로 지키겠다는 말.
그 말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면, 강민혁은 토벌대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통을 터트리며 시야에서 멀어지는 정판수의 모습에, 강민혁은 이만 시선을 거두고 토벌을 준비했다.
마침내 토벌대가 던전에 진입했다.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확 변했다.
분명히 방금까지만 해도 수풀이 우거진 산이었는데, 지금은 반쯤 허물어진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폐허 도시.
그러한 표현이 적절했다.
예전에는 어떤 문명이 형성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이곳은 이제 생명의 흔적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확장형 던전.’
던전.
그곳은 항상 동굴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S급 던전 암흑 도시처럼 확장형 던전이라고 불리는 곳들은, 안에 들어가는 순간 주변의 풍경이 개연성이 없을 정도로 단번에 변해버린다. 암흑 도시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동굴의 형태와 폐허 도시는 그래도 이질감이 크게 없지만, 초원이나 눈밭이 펼쳐질 경우에는 그 당혹스러움은 대단하다.
그때였다.
선두에서 리포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S급 던전 암흑 도시에 진입했습니다.”
K 방송사.
그들은 대담하게도 토벌 과정을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있었다. 수호문에서는 그들을 데리고도 토벌에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하는 것이고, 동시에 이준호를 알리기 위한 완벽한 판을 깔았다. 카메라맨은 선발대, 본대, 후발대에 모두 한 명씩 배치되어 있었지만, 끊임없이 조잘거리는 리포터가 배치되어있는 곳은 선발대뿐이었다. 그래도 리포터는 최소한의 개념은 있는 모양인지, 이준호에게 말을 거는 등의 토벌에 방해가 되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일단 토벌에 집중하자.’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냈다.
주변을 둘러보자, 고영철이 참고하라고 건네준 자료와 똑같은 형태의 풍경이 보였다.
'S급 던전 암흑 도시.’
위험한 곳이다.
에픽 몬스터인 다크 리치가 발견된 순간부터, 이곳을 공략하려는 파티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에픽 몬스터.
그것의 위력은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목격하였다. 수백, 수천 마리의 웨어 울프들을 진두지휘하던 로드의 위용. 그들의 힘은 일국(一 國)을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수호문의 토벌대가 공략하려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에픽 몬스터였고, 다크 리치는 웨어 울프 로드만큼 강력하지는 않으나 대신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다룬다. 수십 마리의 단위가 아니라, 최소 수백 단위로 말이다.
그때였다.
선발대에서 신호를 보냈다.
삐이익-
“준비해.”
“몬스터다!”
착!
바로 정면.
무너진 건물 사이로, 검은 그림자들이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김성호가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듀라한(Dullahan)과 구울(Ghoul)이에요. 그런데 대체. 몇 마리나 나타난 거지?”
B급 몬스터 듀라한.
D급 몬스터 구울.
하나의 개체가 그리 강한 몬스터는 아니나, 그들의 숫자는 언뜻 보아도 백 마리는 훌쩍 넘었다.
김성호 일행이 방패를 몸에 바짝 붙였다. 곧 일어날 전투. 처음으로 디펜더로서 나서야 할 상황에 긴장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굳은 의지가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강민혁이 마나를 전혀 끌어 올리지 않은 상태로 말했다.
“벌써부터 준비할 필요 없어요. 저 정도의 몬스터라면, 선발대선에서 금방 정리될 테니까요.”
“예?”
아직 이해하지 못한 김성호 일행.
그때, 선발대와 몬스터가 충돌했다.
듀라한과 구울.
고통을 모르는 망자(亡者)들의 무리는 분명히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그들이 일제히 달려들 때만 하더라도 리포터의 안색이 창백해졌는데, 이후의 광경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수호 검법.’
확-
마나의 파동이 일었다.
이준호가 사용한 수호 검법의 힘에, 망자들의 시선이 이준호에게 집중되었다. 일제히 이준호를 덮치는 망자들. 분명히 위험하다고 할만한 장면이었지만, 이준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는 듯이.
그가 검을 휘두르는 순간,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타오르는 오라가 주변을 휩쓸었다.
화르르르르르륵!
서걱!
듀라한 무리의 몸통이 동시에 날아갔다. 강한 열기에 타오른 육체는 재생되지 않았고, 이준호는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으로도 모자란 모양인지 망자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학살이 시작되었다. 이준호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여러 마리의 망자들이 우수수 바닥에 널브러졌고, 이준호는 수호 보법을 밟으며 단 한 번의 공격도 허락하지 않았다. 분명히 밀려드는 몬스터의 숫자는 백 마리가 넘어가는데, 오히려 이준호의 기세가 몬스터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아아, 정말 대단합니다! 역시 수호문의 후계자는 다릅니다!”
리포터가 호들갑을 떨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겁에 질렸던 그녀가, 이준호의 무력이라면 본인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뒤이어 선발대도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본대는 나서지 않았다.
강민혁이 마나를 끌어 올리지 않은 것처럼, 그들은 선발대의 선에서 정리되는 상황임을 알았다. 머릿수 비율로만 따지자면 10대1 이 넘어가는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수호문의 정예들은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뒤로 흘려보내는 몬스터도 없었다. B급 몬스터 한 마리는 마법 학과생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나, 이준호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퍽!
머리가 터져나가는 듀라한.
시야를 가득 메우던 그들이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홀로 30마리 이상을 처리한 이준호가, 기어코 마지막 듀라한의 몸통을 가르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서걱.
툭, 데구르르르.듀라한의 몸이 쓰러졌다.
검을 거두는 이준호는, 호흡조차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역시.”
“이준호 후계자님은 달라.”
“문주님의 안목은 정확하시다니까.”
사람들이 떠들어댔다.
그게, 현재 이준호의 위치였다.
이준호.
강민혁을 대신해 후계자로 선정된 인물.
그는 정치적 공작 따위가 아니라, 오로지 실력이라는 명확한 평가 기준에서 강덕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다.
수호문 제일(第一)의 검.
사람들은 이준호를 그렇게 불렀다.
69화. < 19. S급 던전 암흑 도시(3) >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수호문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수호문이 신(神)의 은총을 받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수호문의 후계 체계는 흔들림이 없었다.
강민혁은 엄청난 재능을 선보이며 무투 대회를 휩쓸고 다녔고, 그 곁에는 항상 이준호가 있었다. 강민혁이 1위라면, 이준호는 2위. 간발의 차이로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강민혁이었지만, 이준호는 가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이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당대 최고의 재능.
그들이 모두 수호문에서 태어났다.
수호문의 미래는 밝았고, 강덕철의 시대가 끝나더라도 수호문은 건재할 것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감은 단번에 무너져 내렸다.
강민혁은 어렸을 때부터 마나의 재능이 떨어졌다. 아직은 나이가 어려서 시간이 해결해주리라고 믿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민혁과 친구들의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뛰어난 검술? 명석한 머리? 그런 것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이 세상을 지배하는 진짜 힘인 마나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다른 재능으로는 메울 수 없는 엄청난 힘의 차이를 만들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가문의 가신들이 강민혁의 자질을 의심하고 있는 그때, 이준호는 마나에서조차도 재능을 보였다.
“마나의 영역에서 이준호의 재능은 세계 최고다.”
완벽한 조건이었다.
강화 전사로 성장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고, 마나라는 날개를 등에 업은 이준호는 훨훨 날아올랐다. 검술로는 항상 강민혁이 이준호를 앞섰다. 그러나 ‘마나’를 사용하는 실전 대련에서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고, 허무하게 밀려나는 검에 강민혁은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래서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았다.
토벌 과정에서 있었던 사고의 충격도 컸지만, 그 이면에는 이준호라는 존재가 있었다.
서걱!
이준호의 검이 듀라한의 가슴을 베었다.
깔끔했다.
파랗게 일어나는 오라는 듀라한의 단단한 외피를 두부처럼 갈라버렸고, 이준호는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몬스터들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았다. 수십,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 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이준호의 목숨을 노렸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준호의 발밑에는 사체가 쌓여갔다.
“적에게 딸려 들어가지 마라! 우리는 소모전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던전 끝에 위치한 다크 리치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하위 몬스터들을 상대로 과도하게 체력을 소모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지킬 수 있는 포지션에서 자리를 지키고, 들어오는 적들을 우선으로 상대하라!”
이준호가 소리쳤다.
이준호의 명령에 선발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파도처럼 밀려드는 적들을 문제없이 막아냈다.
계속되는 전투.
처음에 언데드 무리를 만나고 난 이후에, 벌써 4번째 치러지는 전투였다. 그런데도 이준호를 중심으로 선발대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준호라는 단단한 버팀목이 대부분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주는 덕분에, 선발대에 소속된 제자들은 생각보다 쉽게 적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이준호는 완벽한 리더였다.
뛰어난 무력과 지도력.
가신의 아들이라는 배경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강민혁과 후계자의 자리를 두고 경쟁했을지도 모른다.
‘여전하네.’
최후방.
강민혁은 이준호의 활약을 지켜보았다.
아직 후발대가 할 일은 없었다.
대부분 선발대와 본대선에서 처리되었고, 그 중심에는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이준호가 있었다. 수호문의 제자들은 선망의 눈빛으로 이준호를 바라보았으며, 리포터는 토벌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준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그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네가 있어서 난 수호문을 떠날 수 있었어.’
그게 현실이다.
강민혁은 자신이 후계자의 자리를 포기해도, 그 자리가 충분히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준호라면 가능하다.
마나의 재능마저도 갖춘 그는, 강민혁에게 확신을 주었다.
강민혁이라는 사람이 없는 수호문의 미래는, 이준호를 중심으로 여전히 밝을 것이라는 확신을.
서걱!
듀라한을 쓰러트리는 이준호.
밝게 빛나는 그의 모습에서, 강민혁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선발대, 본대, 후발대.
병력을 세 부대로 나눈 데는 이유가 있었다.
토벌 전에 먼저 탐사를 나왔던 정보부대장 고무진은, 일주일간에 걸쳐 확인한 정보를 보고했다.
[암흑 도시의 몬스터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부활합니다. 어둠의 마나로 가득한 필드(field)의 효과로 보이며, 부활한 몬스터는 본인들을 공격한 인간들을 끝까지 추격합니다. 그래서 암흑 도시에서는 오랜 시간 휴식을 취할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늦장을 부렸다간 몬스터들에게 발목을 붙잡힐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다크 리치를 처리하는 것이 토벌의 관건입니다.]
S급 던전.
과연 그 명성에 걸맞은 특성이었다.
그래서 다소 무리하더라도 이준호는 빠르게 전진하고 있었고, 본대와 후발대는 절대 본인의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언제 부활한 몬스터들이 따라붙을지 모르는 일이다. 만약 사방에서 몬스터가 달려들 경우 체계가 없는 포지션은 금방 무너져버릴 수도 있기에, 3개로 나눈 부대는 정확하게 본인들이 담당할 위치를 정했다. 선발대는 전방, 본대는 상황에 따른 지원, 후발대는 후방. 그래서 초반에는 어쩔 수 없이 이준호의 선발대가 고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발대도 나서야만 했다.
“나타났다!”
“전투 준비!”
정판호가 바락 소리쳤다.
후방.
전에 처리했던 몬스터들이 턱 밑까지 쫓아왔다. 그 숫자는 정말 많았다. 약 이삼백 마리의 몬스터가 일제히 몰려드는 모습은 오금이 저릴 만큼 대단한 위압감을 풍겼지만, 수호문의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대부분이 D급 몬스터인 구울이라는 사실이었다.
“마법사!”
“예!”
4서클 마법사들.
그들의 역할은 공격적인 포지션이 아니다.
“라이트(light)!”
“파이어 소드(Fire Sword).”
팟.
화르르륵.
일단 불빛을 밝혔다.
빛의 속성은 언데드 몬스터들의 외피를 약하게 만든다. 그리고 파이어 소드라는 인챈트 형식의 마법으로 검의 위력을 더했다. 화염은 어둠을 멸(減)하는 힘이 있다. 파이어 소드는 매우 고가의 마법이고, 타오르는 불길의 축복을 받은 강화 전사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적을 맞받아쳤다.
크아아아악!
“죽어!”
푸확!
전투가 벌어졌다.
서로 한데 뒤엉켜서 싸우는 상황에서, 3조의 사람들은 발군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상대는 A급도 아니고 대부분 D급이다. 일당백의 위력을 자랑하는 수호문의 제자들을 쓰러트리기에는 역부족.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본대도 후발대를 도와주기 위해 움직였다. 선발대와 후발대는 각각 고정된 포지션에 위치해 있지만, 강덕철의 본대는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밸런스를 맞추어주었다.
수백 대 수십.
그 엄청난 광경에, 김성호 일행은 넋을 잃었다.
“...와."
수호문.
그들이 왜 한국 제일의 무력 단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겨우 수십의 인원으로 보여주는 무력이 수백을 압도하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왔다.
그때였다.
강민혁이 마나를 끌어 올리며 소리쳤다.
“지금부터는 여러분들에게 제 안전을 맡기겠습니다.”
이번 토벌.
강민혁은 사람들에게 ‘마법사의 힘’을 증명할 생각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수호문의 힘을 잘 알기에, 적당히 나서는 것으로는 부각될 수 없음을 알았다.
고로.
‘4서클 마법사임을 밝힌다.’
화르르르륵.
강력하게 타오르는 화염.
강민혁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가담했다.
얼추 300마리.
머릿수는 정말 많았다
하지만 겨우 B급이 한계인 몬스터들로는, 수호문의 병력에게 상처조차 입힐 수 없다.
‘토벌에 나선 사람들은 수호문의 정예야.’
정예 병력.
그들은 A급 몬스터 무리도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다. 그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실제로 위협을 느끼는 기색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었다. 오라 웨이브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면 금방 처리할 수 있겠지만, 결국 부활하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과도한 마나 소모는 나중에 마나의 고갈로 직결될 수도 있는 일.
다크 리치와의 싸움을 대비해 마나를 최대한 아꼈다.
4서클 마법사들을 대동한 이유도, 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효율적으로 사냥하기 위함이었다.
그 말인즉.
‘지금이야말로 마법사가 가장 크게 활약할 수 있는 판이다.’
수백 마리?
그따위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바글바글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모습은, 마치 마법에 당해주기 좋게 알아서 모이고 있는 것 같았다.
‘더블 캐스팅.’
머리가 팽팽 돌았다.
쿼드 캐스팅은 아니다.
지금은 양쪽 두뇌를 각자 하나의 마법에 집중시켜서, 더욱 빠른 속도로 마법의 캐스팅을 끝마쳤다.
몬스터 웨이브 훈련장에서의 경험.
그때의 경험이 살아났다.
“룬 플레어.”
“룬 플레어.”
화르르르르륵!
콰앙!
강민혁의 마법이 작렬했다. 그 강력한 위력에 D급 구울은 물론이고 B급의 듀라한도 큰 충격을 발휘한다. 강민혁의 마법은 무려 5서클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다. 듀라한을 태우는 불길에, 수호문의 사람들이 당황해서 마법의 주인을 찾았다. 이번 탐사를 위해 수차례 계획을 전달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5서클 이상’의 대마법사가 화력 지원을 해준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발동이 걸린 강민혁은, 쉬지 않고 마법을 캐스팅했다.
“룬 플레어.”
“룬 플레어.”
콰콰쾅!
화르르르르르륵.
불길이 화끈하게 타올랐다.
한국 마법 협회의 마법사들.
그들이 4서클 공격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일단 4서클 마법은 B급의 듀라한에게 통하지 않고, 마법을 몇번 사용하고 나면 마나는 바닥을 드러낸다. 강민혁이 공개한 마나 동화와 같은 방법이 있지만, 그들은 아직 새로운 기술에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공격적인 능력을 거세했다.
강화 전사들의 뒤편에서, 보조적인 마법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본인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강민혁은 달랐다.
강민혁은 적극적으로 서클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마나를 모두 마법으로 변화시켰다. 캐스팅은 정말 빨랐다. 시련의 공간에서 단련된 두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속도의 캐스팅을 보였고, 강민혁의 마법이 발휘될 때마다 몬스터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었다. 강화 전사들을 무시하고 강민혁을 공격하는 몬스터들이 생겨났지만, 그들은 김성호 일행에 의해 완벽하게 막혔다.
퍽!
“어딜!”
김성호 일행.
그들이 이를 악물고 막아섰다.
그들에게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난전은 익숙한 것이 아니나, 지난 일주일 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강민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세뇌되었다. 강민혁은 그러한 보호 덕택에 온전히 마법에만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고, 폭발적으로 뿜어지는 마나가 결국 상황을 모두 정리했다.
“룬 플레어.”
쾅!
화르르르르르르륵.
마지막 마법.
타오르는 불길 너머로 쓰러지는 듀라한의 모습이 보였다.
애초에 위기라고 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도 수백 마리의 몬스터는, 토벌대로서는 발목이 제법 오래 잡힐 만한 그런 상황임에는 분명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수호문의 제자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들이 당황한 이유?
당연히 마법의 위력 때문이었다.
강민혁의 활약은 상식을 벗어났다.
4서클 마법임에도 위력은 5서클 이상이고, 캐스팅 속도는 말도 안 되게 빨랐으며, 강민혁은 짧은 시간에 무려 10번에 달하는 마법을 사용하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미 마나가 다 떨어져서 쓰러졌어야 할 강민혁이, 아직도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과 달랐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장 큰문제.
마법을 사용한 사람이 바로 ‘강민혁’이라는 것이다.
새카맣게 타버린 듀라한의 몸을 떨구어낸 정판수가, 경악한 눈빛으로 강민혁을 바라보았다.
“...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강민혁.
수호문의 사람들은 그가 살아온 삶을 알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전.
후계자의 자리를 버리고 수호문을 떠난 강민혁은, 마법의 마자도 모르는 천상 무인이었다.
그런데 몇 개월 뒤.
그들의 앞에 나타난 ‘마법사로서의 강민혁’은, 수호문의 사람들에게 기억의 괴리감을 선사했다.
70화. < 19. S급 던전 암흑 도시(4) >
수호문의 교육 과정에는 ‘마법사의 이해’가 있다.
그들을 동급으로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수호문의 방침이다.
그래서 기억의 괴리감이 생겼다.
비주류로 취급받는 마법사라 할지라도 서클을 상승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정판수는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마법사들도 강민혁의 나이에는 2서클 마법사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게 말이 돼?’
룬 플레어.
4서클 화염 마법.
강민혁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려 4서클 마법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시동어까지 친절하게 룬 플레어라고 부르는 상황에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의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민혁의 마법은 4클을 뛰어넘는 힘이 있었다.
‘분명히 4서클 마법은 맞는데, 위력은 5서클에 버금갔어. 그렇지 않고서야 B급의 듀라한이 마법을 맞고 쓰러질 리가 없잖아. 그리고 마법의 캐스팅 시간도 비정상적으로 짧은 데다, 혼자서 마법을 무려 10번이나 사용했어. 마법사들은 본인의 서클 최대치의 마법을 몇 번 사용하면 탈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아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기에, 당혹스러움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정판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3조의 제자들도 강민혁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떠들었다.
“강민혁 도련님이 4서클 마법사셨어?”
“언제 벌써 그런 경지에 오르신 거지? 마법을 배우겠다고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도련님이 어렸을 때부터 마법을 익혔어도 17살의 나이에 4서클의 경지에 오른 것은 역사에 남을 정도의 일인데, 우리가 기억하는 도련님은 분명히 강화 전사였잖아. 그것도 매우 뛰어난. 그런 사람이 어떻게 몇 개월 만에 4서클의 경지에 올랐지?”
“그나저나 대단하네. 난 마법사의 화력이 이 정도로 강한 줄은 몰랐어.”
“원래 이 정도로 강하지는 않아. 4서클 마법사와 사냥을 몇 번 다녀봐서 아는데, 그 사람이 사용한 화염 마법보다 도련님의 마법이 훨씬 강했어. 그냥 이상해. 어디 가서 마법사가 10번에 달하는 마법을 사용한다는 소리 들은 적 있어? 보통은 4~5번 사용하면 쓰러지는 게 마법사잖아.”
강민혁을 향하는 말들.
인식이 바뀌었다.
수호문의 낙오자.
검을 버리고 ‘도피처’로 마법 학과를 택했다고 생각했는데, 강민혁은 예상치도 못한 성과를 이루었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낙오자라 불리던 강민혁이, 나름의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빠득.
‘이런 개 같은.’
정판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강민혁.
그가 다시 부각되는 것을 그는 바라지 않는다.
싫다.
싫어도 너무 싫었다.
이번 전투는 강민혁의 공이 명백히 보였지만, 정판수는 그에 대해서는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다들 얼른 정비해. 시간이 없다.”
신경질적인 음성.
정판수가 도끼눈을 뜨고 주변을 흘겨보자, 수호문의 제자들도 아차 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정판호 라인의 사람들이다. 괜히 정판수에게 안 좋은 이미지로 보였다가는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은 강민혁에 대한 생각은 이만 정리하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제야 화가 조금 가라앉았다.
정판수가 강민혁을 보았다.
‘네가 어떻게 그 경지에 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한계는 딱 그 정도야. A급 몬스터가 나타나는 순간부터는 네가 5서클 마법사라 할지라도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그러니 똑똑히 보라고. 네가 수호문의 후계자 자리를 포기한 순간부터, 너와 나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생겼는지.’
시선을 돌렸다
강민혁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일단 전투에 집중할 차례였다.
토벌은 바람을 탄 배처럼 순항했다.
후방에서 부활한 몬스터들이 공격하는 상황이 몇 번 있었지만, 큰 문제가 발생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부터는 탐사 외 지역이다.’
고무진.
수호문의 정보부대는 S급 던전 암흑 도시의 많은 것을 알아보았다. 직접 탐사를 나서기도 했지만, 그들도 안전상의 문제로 일정 구역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수호문으로서는 더 이상 정보의 힘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미지의 구역에 발을 들이자 이준호의 감각이 예민하게 변했다.
탁.
“정지.”
그때였다.
미지의 지역에 진입한 지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앞에 낯선 형태의 광경이 보였다.
“대장님, 시체가 있습니다.”
시체.
외벽이 무너진 건물 주변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가 보였다. 이준호를 비롯한 선발대는 조심스럽게 시체에 다가갔다. 피가 완전히 빠져나간 시체는 죽은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이준호가 시체의 복장을 살폈다.
‘팔목에 착용하고 다니는 검은 팔찌. 드레이크(Drake) 용병단의 일원이야. 암흑 도시 공략을 도전한 12개의 파티 중 가장 마지막에 도전한 파티. 그들이 왜 이런 곳에서 죽임을 당했지?’
드레이크.
그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던전을 전문적으로 공략하고 다니는 용병단이다. 앞선 11개의 파티가 전멸당하고 난 이후, 드레이크 용병단은 A급 몬스터도 상대할 수 있는 정예 병력으로 암흑 도시에 진입했다. 그런데 그들이 모조리 죽었다. 수호문은 아직 A급 몬스터를 맞닥트리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지금 위치한 구역부터 ‘A급 몬스터’ 출몰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생존 무전을 보낸 사람도 드레이크 용병단의 일원이었어.’
주변을 살폈다.
정보가 필요했다.
시체의 주변을 확인하자, 손에 쥐어진 피로 얼룩진 손수건이 하나 보였다.
그런데 그것에 피로 적힌 글이 있었다.
[고가 부리]
“...고가 부리?”
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죽기 직전에 쓴 모양인지, 받침들이 피에 범벅이 되어 분간할 수 없었다. 인상을 찌푸리는 이준호. 고가 부리에 적용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았다. 그러다 문득, 이준호는 S급 던전 암흑 도시가 에픽 몬스터이자 ‘마법사형 몬스터’인 다크 리치의 구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십니까?”
옆에 있던 수호문의 제자가 물었지만, 이준호는 그에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본대에게 소리쳤다.
“당장 한곳으로 모여요! 공간 분리, 다크 리치가 공간 분리를 사용할.."
쿠르르르르르르릉.
판단은 정확했다.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공간 분리’를 말하는 것이었지만, 이미 우려했던 상황은 벌어지고 말했다.
“제길!”
“공간 분리라니!”
흔들리는 땅.
일그러지는 공간.
검은 마나가 화산이라도 폭발하는 것처럼 주변의 공간을 단번에 장악하더니 오감을 차단해버렸다.
폭발이 끝난 직후.
수호문의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후발대’의 모습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공간 분리.
그건 아주 고난이도의 마법이다.
예전에 영국의 한 파티가 던전에서 공간 분리를 경험했는데, 그로 인해서 일행이 뿔뿔이 흩어지며 전멸을 당한 사례가 있었다. 그들이 죽기 직전에 공간 분리에 대해서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공간 분리라는 마법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영원히 몰랐을지도 모른다.
백 년의 역사 동안 세 차례.
그래서 알고는 있었으나, 그에 대비하기에는 너무 희박한 확률이었다.
“크윽."
강민혁이 표정을 찌푸렸다.
공간 분리의 충격으로 속에서 역한 기운이 맴돌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확인하자, 3조의 사람들이 차례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옆.
김성호도 정신을 차렸다.
“괜찮으세요?”
“...아무래도 안 괜찮은 것 같은데요?”
김성호가 창백한 얼굴로 웃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공간 분리는 변수가 많은 마법이다.
만약 공간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재수가 없으면 곧바로 몸이 찢겨나갈 수도 있다. 차원의 균열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고, 인류가 아직도 직접 공간을 넘나드는 마법에 소극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마법 문명은 이미 ‘공간’을 넘나드는 마법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강화 문명의 사람들은 아직도 마력 버스와 비행기 같은 과학과 마법을 접목한 기술을 애용하고 있다.
3조.
그들은 모두 같은 곳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어디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바로 주변이었다.
강민혁이 주변을 확인하자, 건물의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은 곳에 사람의 형체 같은 것이 보였다.
“...여, 여기 사람 있어요.”
메마른 음성.
강민혁이 황급히 그곳으로 갔다.
그러자 20대 초반의 남성으로 보이는 이가 있었다.
남성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전투의 흔적인지 양다리가 모두 잘려나가 있었고, 영양실조로 인해 볼은 핼쑥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그래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추정되는 물통과 육포 쪼가리가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마저도 거의 다 먹어버린 상태라서, 남성의 얼굴에는 죽음의 기운이 만연했다.
“구, 구조대이십니까?”
탁한 목소리.
강민혁은 일단 그의 상태를 확인하며, 김성호로 하여금 정판호를 부르라고 말했다.
“예. 구조대입니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고, 공간 분리에 당했습니다. 다, 다크 리치는 정말 무서운.. 웩!”
후두둑.
그가 속에 있는 것을 모두 내뱉었다.
검은 피.
그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제길.”
강민혁이 황급히 조치했다.
일단 물을 챙겨서 조심스럽게 그의 입에 흘려보냈지만, 얼마 먹지 못하고 다시 토해내고 말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정판호였다.
정신을 차린 그가, 정판수와 같이 도착했다.
굳이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죽어가고 있는 남자가 생존 무전의 주인공이며, 그를 살릴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눈에 보였다. 수호문의 사람들은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살릴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은 충분히 할 수 있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성의 모습에 정판수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이 사람은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구조는 포기하고 본대와 합류하는 것을 우선으로.........."
짜악!
정판수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뺨을 날려버린 정판호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판수야.”
“...아, 아버지.”
정판수가 울먹였다.
당황스러웠다.
A급 몬스터를 상대로도 용맹하게 싸우는 정판수이나, 살면서 아버지에게 맞아본 경험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뺨을 날리다니. 울컥하는 감정에, 정판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정판호의 표정은 단호했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상당히 엄한 모습이었다.
“내가 누누이 말했었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람’은 포기하지 말라고. 난 널 그리 가르치지 않았다.”
“하, 하지만.”
“하지만 뭐? 넌 만약 내가 저 상태였어도 버리고 갈 생각이냐? 저 사람은 우리의 구조 하나만을 바라보고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온 사람이다. 그런데 아직 죽지도 않은 사람을 구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버리고 간다면, 저 사람이 겪을 절망감을 너는 왜 생각하지 못하느냐.”
낯선 광경이었다.
정판호.
그는 유명한 아들 바보다.
그런 그가 정판수를 훈계하는 모습에, 3조의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예전에도 이런 경우가 한 번 있었지.’
강민혁의 기억에 있었다 딱 한 번.
훈련에 나갔던 정판수가 겁을 먹고 자리를 이탈했을 때, 정판호는 호랑이로 변했다.
그때는 강덕철도 말릴 수 없었다.
정판수는 동료를 버린 죄로 정말 먼지 나듯이 맞았고, 그때부터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상황이 재연되었다.
정판호에게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음을 알기에, 정판수가 누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알면 됐다.”
정판호가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강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생존자의 구출은 가장 우선시되는 임무다. 생존자를 치료하고, 곧바로 우리는 본대와 합류한다.”
아주 잠깐의 휴식.
일행이 한숨을 돌렸다.
생존자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고, 본인을 한국계 미국인인 알렉스라고 밝혔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죽고 말았을 겁니다.”
정판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를 버리자고 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인지, 알렉스가 있는 쪽으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알렉스.
그를 챙기는 것은 K 방송사의 카메라맨이 맡았다. 그는 전력 외 자원이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힘을 쓰는 일에 자원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지금은 촬영도 힘든 상황. 카메라맨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기던 알렉스가, 두려움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 주변에 A급 몬스터인 데스 나이트가 있습니다. 그들로 인해 우리가 전멸을.........."
삐익-
앞에서 신호가 들렸다.
순간 알렉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이 주변.
몬스터가 나타났다면 분명히 데스 나이트일 것이다.
그의 일행도 그들로 인해 죽어 나가지 않았던가.
알렉스의 몸이 덜덜 떨렸다.
“아아.”
죽는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미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진 알렉스의 정신이 무너지려는 순간, 강민혁이 그의 등으로 따뜻한 마나를 보내었다.
화악-
“걱정하지 마세요.”
알렉스가 강민혁을 보았다.
두려움이 가득한 그의 눈을 내려다보며, 강민혁이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호문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정판호와 정판수.
그렇게 좋아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들도 강민혁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강민혁은 적어도 정판호의 실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정판호.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수호문의 호랑이.’
강덕철의 최측근.
수호문에서 순수하게 무력으로만 따지자면, 정판호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괴물이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전투에 가담했다.
71화. < 19. S급 던전 암흑 도시(5) >
A급 몬스터.
이 세상에서 강함을 증명하는 경계선.
대다수 사람에게 ‘절대적인 공포’를 선사하는 그들이지만, 정판호 앞에서는 얘기가 달랐다.
카앙!
강력한 스파크.
데스 나이트가 휘두른 암흑의 검격이 정판호의 검에 막혔다. 데스 나이트는 강화 전사와 마찬가지로 ‘오라의 검’을 사용할 줄 안다. 오라의 힘이 약한 강화 전사의 경우에는 검과 몸이 그대로 잘려나갈 정도로 강력한 힘인데, 정판호의 오라는 그런 공격을 받아내고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충격으로 인해 데스 나이트가 뒤로 밀려났고, 정판호는 어둠으로 득실거리는 공간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라, 인간!]
[...공격하라!]
붉은 안광.
수십 마리의 데스 나이트가 눈을 번뜩였다.
그들의 검에서 오라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더니, 사방에서 정판호를 덮쳤다.
캉!
카캉!
난전(亂戰)이었다.
조금만 실수해도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 정판호는 단 한 번의 공격도 허락하지 않았다. 수호 보법은 활로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였고, 정판호의 검은 간발의 차이로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 반격 .
“크아아아!”
콰득!
[그그그그그극]
쩍 갈라지는 몸뚱이에 데스 나이트가 몸을 떨었다. 정판호는 추가로 목을 베었고, 안에 있는 ‘마나의 심장’을 파괴해버렸다. 순식간에 소멸해버리는 데스 나이트. 마법사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인 데스 나이트라기에는 그 최후가 상당히 허무했지만, 지금은 그것에 감탄할 시간이 없었다.
수십 마리의 데스 나이트.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듀라한.
지금은 상대해야 할 적이 너무 많았다.
“제길! 아버지를 얼른 도와드려야 해.”
전투가 벌어진 직후.
정판호는 3조의 안전을 위해 데스 나이트 무리에게 몸을 던졌다. 덕분에 정판수를 비롯한 3조의 제자들은 수월하게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었다. 그들이 착실하게 몬스터들을 처리하면서 전진하는 사이에, 최전방에서는 정판호와 데스 나이트의 수십 대 일의 전투가 벌어졌다.
캉! 카카카카카캉!
엄청난 격돌이었다.
정판호는 사나운 기세를 보였다.
데스 나이트들을 상대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맹수처럼 호시탐탐 역으로 공격할 기회를 노렸다.
수호문의 호랑이.
수호검이라 불리는 강덕철이 ‘수비’에 특화된 검사라면, 정판호는 수호 검법을 공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사실 강덕철과 정판호는 이번 토벌에서 힘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적당히 나선다 할지라도 토벌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다.
그래서 나섰다.
지금은 관망할 때가 아니라, 힘을 드러낼 때임을 알았다.
콰득!
[그그그그극!]
또 다른 데스 나이트가 소멸되었다.
그야말로 정판호의 무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수십 마리의 데스 나이트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인데도, 그는 밀려나기는커녕 착실하게 상대의 숫자를 줄였다. 수호문의 호랑이라는 칭호는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시작부터 매우 힘든 상황에서 싸울 뻔했다.
“...이게 수호문의 위력이구나.”
알렉스.
그가 입을 떡 벌렸다.
대단했다.
수십 마리의 데스 나이트와 그보다 많은 듀라한.
드레이크 용병단을 사지에 몰아넣은 그들이, 수호문을 상대로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수호문이 대단하다고는 들었으나, 문주도 아닌 장로의 무력이 이토록 강력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마법사는 대체 뭐야?”
알렉스의 바로 앞.
정판호와 마찬가지로, 강민혁의 존재감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도시의 그림자.
그 안에서 지옥의 악마들이 나타났을 때, 강민혁은 살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번이라도 밀려나면 죽는다.’
이곳 암흑 도시.
끝없이 재생하는 망자들에게 매우 유리한 환경이다. 인간은 언제고 지칠 수밖에 없기에, 이번 전투에서 생존한다 할지라도 다음 전투에서는 이전에 쌓인 피로와 부상으로 궁지에 몰릴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밀려서는 안 된다.
확실한 승리만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화악-
마나를 흩뿌렸다.
동시에 주변의 상황을 파악했다.
이전 전투에서는 단순히 공격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파티의 일원’으로서의 적절한 역할이 필요하다.
[...죽어!]
데스 나이트.
듀라한과 같이 그들이 수호문 제자를 공격했다. 수호문 제자 또한 A급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지만, 문제는 상대가 너무 많았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막으며 어지러워지는 손. 순간의 실수로 데스 나이트의 공격을 놓치는 순간, 수호문 제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때.
“라이트닝 스피어(Lightning Spear)!”
빠지지지직!
강민혁의 마법이 데스 나이트에게 작렬했다.
그 강력한 충격에 데스 나이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4서클 마법으로 데스 나이트를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해도, 일시적으로 시간을 버는 정도로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틈에.
빠각!
수호문 제자의 검이 그대로 데스 나이트의 목뼈를 박살 냈다. 이어서 데스 나이트를 마무리하려는 수호문 제자의 모습이 보였지만, 강민혁의 시선은 이미 다른 상황을 포착하고 있었다.
“룬 플레어.”
쾅!
화르르르르륵.
똑같이 위기를 맞이했던 수호문 제자가 강민혁의 도움에 숨을 돌렸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강민혁은 전장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면서, 보조적인 포지션을 통해 전장의 밸런스를 지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확실한 화력이 필요할 때.
강민혁은 그러한 기대에 부응했다.
“폭발."
등급 외 마법.
상당한 양의 마나가 쑥 빠져나가더니,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앙!
쿠르르르르르르릉.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이번에는 데스 나이트조차도 예외가 없었다. 4서클 마법에는 아랑곳하지 않던 데스 나이트들이, ‘폭발’의 위력에는 몸을 휘청거렸다. 하지만 아직 상대해야 할적이 많았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모습에, 분뇌로 나누어진 머리가 하나의 마법을 캐스팅하기 위해 전력을 쏟았다.
“지진.”
쿠구구구궁.
또 다른 등급 외 마법.
땅이 뒤흔들렸다.
마치 7서클 마법인 어스 퀘이트(Earth Quake)를 사용한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 효과는 조금 달랐다.
쩍쩍.
땅이 갈라졌다.
득달같이 달려들던 몬스터 무리가 그대로 어둠의 구렁텅이로 추락하였고, 그들은 다시는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강한 떨림. 마치 땅을 양손으로 잡고 뒤흔들어버리는 것 같은 상황에, 몬스터들은 수적 우위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건 재앙이었다. 수십 마리의 몬스터를 집어삼킨 무저갱(無底坑)은, 마나의 효과가 떨어지자 그 아가리를 닫으며 다시 원래의 형태로 돌아왔다.
빠직!
콰드드드득.
땅 아래서 몬스터들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부활의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땅속에 있는 몬스터들은 영영 지상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서클은 쉴 새 없이 회전했다.
‘충분히 살아나갈 수 있어.’
문득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수호문의 후계자.
그 시절에 강민혁은 수호문 제자들을 진두지휘하는 입장이었다. 가장 최전방에서 이준호와 마찬가지로 적들을 상대하며 명령을 내리는 것이 후계자의 역할이었다면, 지금은 최후방에서 전장을 조율하는 것이 가능했다. 강민혁이 사용하는 마법에 따라 전장의 흐름이 변했다. 적절한 지원에 수호문 제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몬스터가 과도하게 몰리는 곳은 등급 외 마법으로 상황을 해결했다.
전장의 마에스트로(maestro).
최전방에 위치한 정판호가 시간을 버는 사이에, 강민혁은 그렇게 전장을 조율하며 적들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수호문 제자들은 알았다.
알 수밖에 없었다.
강민혁의 도움.
그걸 직접적으로 받는 사람이 그들이니 말이다.
처음에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쾅!
화르르르륵.
데스 나이트에게 당하기 직전, 화끈하게 타오르는 광경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여유조차 없었다.
지금은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비슷한 위기에서 또다시 마법이 사용되자, 수호문 제자는 생각했다.
‘강민혁 도련님이 우리를 지켜주고 계셔.’
아직도 의문은 많다.
강민혁이 왜 후계자의 자리에서 내려왔는지, 그리고 짧은 시간에 어떻게 4서클의 경지에 올랐는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필요 없었다.
강민혁은 강민혁이다.
자신들이 기억하는 후계자로서의 강민혁이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에, 수호문 제자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 그만큼 강민혁의 보조는 대단했다. 시기적절하게 마법이 터졌고, 특히 등급 외 마법은 세상에 이런 위력의 마법이 있는지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뛰어난 강화 전사.
뛰어난 마법사.
두 문명의 조합은 폭발적이었다.
강화 전사들은 A급 몬스터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았고, 마법사는 지켜준 만큼 그 값어치를 했다.
마침내 상황이 반전되었다.
수호문의 제자들이 우위를 점했다.
결국 후방의 몬스터들을 대부분 처리하였고, 뒤늦게 최전방에 위치한 정판호를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데.
콰득!
데스 나이트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정판호.
그는 이미, 혼자만의 힘으로 10마리가 넘어가는 데스 나이트를 처리한 상태였다.
전투가 끝났다.
알렉스는 살아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수호문의 저력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전투 직후.
수호문 제자들이 강민혁에게 다가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강민혁 도련님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 언제 마법을 그 정도로 익히신 거예요? 보통 실력이 아니시던데요?”
상황이 변했다.
강민혁은 이번 전투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수호문의 후계자 자리를 내려놓으면서 강민혁에 대한 불만이 생겨났지만, 목숨을 구제받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불만을 고수할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강민혁은 마법으로 무려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기에, 강민혁을 바라보는 수호문 제자들의 눈빛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강민혁.
수호문의 후계자는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있었다.
그 광경.
수호문 제자들이 돌아서는 모습에, 정판수는 짜증이 일었다.
‘씨발.’
그는 예전부터 강민혁이 싫었다.
이유?
특별한 건 없었다.
정판수는 항상 대우를 받고 싶어 했지만, 강민혁이라는 사람은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그와 비교당할 때면 정판수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재능은 강민혁에 비해서 아무것도 아니었고, 정판호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강민혁이 자신의 아들이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쌓여온 감정이다.
그래서 강민혁이 후계자의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정판수는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자신이 강민혁보다 앞섰다.
어린 시절의 강민혁은 대단했을지 몰라도, 대기만성(大器攻成)형인 자신이 결국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강민혁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그의 모습에, 잊고 있었던 질투가 치솟았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남들처럼 강민혁에게 한마디 말이라도 건넬 수 있었지만, 정판수의 자존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사람이 나섰다.
“이번 전투에서 너의 도움이 매우 컸다.”
".........."
정판호.
바로 그였다.
평소에는 마법을 신랄하게 깎아내리던 그가, 확인된 사실 앞에서는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정판호의 시선이 김성호 일행을 향했다.
“그리고 너희.”
“예?”
“방패로 몬스터들을 막기만 하던데, 너희의 역할이 강민혁을 지키는 건가.”
“...맞습니다. 강민혁님이 마법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면, 전투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살짝 눈치를 보았다.
강화 전사.
이 세상의 갑(甲)이 마법사의 밑으로 들어갔다.
비난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좋은 성과를 보여주었기에, 정판호의 앞에서도 김성호는 최대한 당당해지려고 노력했다.
“좋은 판단이었다. 너희들은 앞으로도 맡은 본분에 충실하고, 3조의 조원들도 상황에 따라서 강민혁이 위험에 빠질 경우 최우선으로 보호하라. 이번 전투에서 강민혁은 그만한 가치를 보여주었다. 마법사가 활약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우리는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다.”
정판호의 변화.
사람들이 얼떨떨해할 정도였다.
강함의 기준.
오로지 그것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정판호에게 있어, 강민혁은 활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단순히 그뿐이었다.
그래서 마법사를 받아들였다.
기존의 생각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정판호는 알고 있었다.
정판수는 그릇이 작아 현실을 인정하지 못할 테니, 자신이 나서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모자란 녀석.’
정판수를 달래지 않았다.
애지중지 키우는 자식이지만, 지금 그를 챙기는 것은 수호문 제자 전체를 잃을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이 난관을 해결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 정판호를 믿어라. 너희가 그간 따라왔던 이 정판호가, 너희를 바깥으로 무사히 보내줄 것이다. 그러니 힘들어도 참아라. 본대와 합류할때까지, 지금부터는 전력을 다해 이 난관을 돌파한다.”
그는 리더였다.
강덕철의 밑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정판호는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희망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데스 나이트 무리’를 만났을 때, 3조의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저건 설마.”
무리의 중심.
그의 형태가 일반적인 데스 나이트와는 달랐다.
주변에 일렁이는 암흑의 오라와 날카로운 기운.
그것은 분명히 에픽 몬스터 직전에 해당되는 초월(起越)급의 몬스터였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S급 던전.
이곳에 도전했던 자들은 전부 실력자였다.
그런데도 그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한 이유는, 공간 분리와 예상치 못한 초월급 몬스터라는 변수 때문이었다.
S급을 넘어서는 난이도.
‘...이곳에서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사지(死地).
정판호는 물론이고, 이번에는 강민혁조차도 희망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72화. < 20. 정판수와 정판호 >
초월.
에픽의 권능(權能)을 타고나지 못한 A급 몬스터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을 때 도달하는 최종 단계.
그들은 강하다.
에픽 몬스터처럼 대군을 진두지휘하는 강력한 권능이 있는 것은 아니나, 단일 개체로서 초월급 몬스터는 상식을 벗어난 무력을 갖추었다. 보통 몬스터들의 힘은 등급의 기준치 안에서 한계가 정해지지만, 에픽과 초월급의 몬스터는 그 한계가 명확하지 않다. 성장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A급을 넘어서는 몬스터들이야말로 ‘진짜 공포’라고 불리는 이유다.
[...하찮은 인간들.]
초월급 데스 나이트.
그가 어둠을 뚫고 나섰다.
그러자 마치 고도로 단련된 무사가 발검(拔劍)하듯이, 암흑의 검기가 번뜩이며 공간을 갈랐다.
“위험해!”
타닥.
정판호가 땅을 박찼다.
초월급 데스 나이트의 공격은 정확히 수호문의 제자들을 노렸다. 그건 그들로서는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공격이 아니다. 수호문의 정예 병력이 아무리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는 실력자들이라지만, 초월급은 그보다 두세 단계 위. 정판호의 내부에서 강력한 마나가 휘몰아쳤다.
확-
콰앙!
“크윽."
검과 검의 격돌이 아니었다.
거대한 폭발음이 일어나더니, 정판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엄청난 충격. 속에서 일어나는 역한 기운에 정판호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지금은 내부를 다스릴 여유 따위가 없었다. 정판호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 전방을 확인하는 순간, 초월급 데스 나이트가 이미 지척에 도달한 상태였다.
[...인간을 처단한다.]
서걱!
어둠이 밀려 들어왔다.
정판호는 마나로 내부를 보호하며, 수호문의 비기를 사용했다.
‘철벽(鐵壁).’
마나로 인한 신체 강화.
정판호의 몸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콰앙-
몸이 흔들렸다.
하지만 방금처럼 충격이 대단하지 않았다.
정판호는 끝까지 초월급 데스 나이트의 공격을 지켜보았고, 막아냄과 동시에 상대의 검을 흘려보내면서 그대로 목을 노렸다. 그러자 초월급 데스 나이트의 검이 빠르게 회수되었다. 보통은 방어를 도외시하는 언데드 몬스터들의 특성과는 달리, 그의 검술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캉-
검이 막혔다.
팔이 튀어 오르자, 정판호는 그대로 몸을 부딪쳤다.
퍽!
약간 벌어진 틈.
정판호의 검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활활 타오르는 오라가 공간을 갈랐지만, 초월급 데스 나이트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순식간에 수십 합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캉캉- 울리는 쇳소리와 함께 엄청난 마나의 파동이 주변에 휘몰아쳤고, 지켜보는 제자들은 그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짧은 시간.
하지만 그로 인한 충격은 대단했다.
제자들은 감히 둘의 싸움에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 데스 나이트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죽인다!]
[....몰살하라!]
“제길.”
캉!
카카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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