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a 7

그런데 그 시기가, 자신의 나이가 50이 넘어가는 머나먼 미래고 싶지는 않았다.
한시라도 빠르게.
마법사로서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위치에 오르려면, 평범한 방법으로 성장을 바라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시련의 탑을 경험하길 바랐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것이고, 자신이라 할지라도 통과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강민혁은 성장을 간절하게 바란다. 그리고 대마법사의 자질을 가진 사람들은 통과해내는 시련을 자신이 버텨내지 못한다면, 어차피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는 현실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시련의 탑 효과는 정신의 성장. 이쪽 세상에서 성취를 이루면, 현실에서의 나도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충분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강민혁의 요구에, 아비드의 미소가 짙어졌다.
“영국에 있는 시련의 탑에는 이제껏 182명의 마법사가 도전했다. 그중 102명의 마법사는 폐인이 되어서 평생 정신병자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고, 나머지 80명의 마법사는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라 마법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리스크가 크지만, 버텨만 낸다면 그 효과는 확실한 방법인 것에는 분명하지.”
최근에는 시련의 탑 출입이 금지되었다.
게이트가 발발한 이후로 시련의 탑의 힘이 강해졌고, 지원자가 있어도 출입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예외였다.
아비드의 특권은, 예외의 허용이 가능하다.
“네가 정신의 시련을 견뎌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뒤에 시련의 탑 출입을 허용하도록 하겠다. 그러니 충분히 고민하고 다시 찾아오도록. 시련의 탑은 예전보다 그 힘이 강해졌고, 천재라고 불리던 사람들도 차원의 균열에 정신을 놓았다는 것을 명심해라.”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강민혁.
아비드는 강민혁의 태도에 확신했다.
‘일주일 뒤에도 클리스만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겠지.’
강민혁.
강해지기 위해 평생을 생사(生死)의 경계선에서 살았던 그에게, 시련의 탑의 리스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감내할 뿐.
강민혁은 일주일 뒤에, 아비드를 찾아갈 것이다.
56화. <15. 마법사들의 생존 방식(6) >
총장실을 나오자 강민혁은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붉은 머리의 마법사.
바로 엘리샤였다.
“따라와. 할 얘기가 있어.”
그녀는 상당히 직설적인 인물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한적한 장소에 도착하자,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겨우 검 한 자루로 어떻게 웨어 울프들을 상대할 수 있었냐고. 살면서 그런 기술은 처음 봤어. 네 검에서 일어나는 이질적인 파동. 그게 웨어 울프들을 자극한 거지? 넌 겁도 없냐? 그 많은 웨어 울프들이 득달같이 달려드는데, 혼자만의 힘으로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엘리샤.
사실 그녀는 세상일에 그리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은 예외였다.
강민혁의 활약은 CCTV 영상으로는 그 진면목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건 해리 윌슨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해리 윌슨은 3서클 마법사고, 그녀보다 아는 것이 적기 때문에 강민혁이 얼마나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클리스만은 괴물이야.’
전투 당시.
엘리샤는 강민혁의 모습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몬스터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마나의 파동도 색달랐지만,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버텨내는 강민혁의 모습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골렘 슈트’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육체 능력. 분명히 마나를 이용해서 만들어낸 효과인 것 같은데, 엘리샤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라서 그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강민혁을 찾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엘리샤로서는, 강민혁에게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그걸 설명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으흠. 내가 너무 무례했나. 하긴, 그게 네 비기라고 한다면 굳이 설명할 의무는 없지.”
생각보다 수긍이 빨랐다.
그러자, 그녀는 방법을 달리 제시했다.
“네 기술의 전부를 설명해달라고 말하지는 않을게. 그러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대강이라도 설명할 수는 없어? 난 궁금한 건 정말 못 참는단 말이야. 대신 너도 내게 궁금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 설명해 줄게.”
“그래요?”
강민혁이 엘리샤의 표정을 살폈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전투에서 보여준 모습은 정말 대단했는데, 생각보다는 단순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가성 거래라.’
마침 궁금한 게 있었다.
“3서클 마법으로 웨어 울프를 제압하던 방법. 그걸 알려주겠다고 한다면, 저도 제가 사용하는 기술의 원리를 조금은 알려드릴게요. 싫으시다면 거래는 없던걸로 하고. 어떻게 할래요?”
엘리샤가 강민혁을 보고 감탄했듯.
강민혁도 엘리샤를 보며 감탄했다.
특히 3서클 마법으로 웨어 울프를 제압할 때는, 강민혁도 그 원리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파이어 버스트.”
화르르륵!
그건 분명히 3서클 마법이었다.
B급의 웨어 울프의 외피도 뚫지 못할 마법일 텐데, 폭발에 휩쓸린 웨어 울프는 속에서부터 불길을 토해내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건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엘리샤의 존재가 더 뇌리에 강하게 남았었던 것인데, 마침 그녀가 찾아와서 강민혁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아씨.”
엘리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강민혁의 요구에 고민하던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잘 모릅니다. 당신에게 중요한 기술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저 또한 상황이 다르지 않으니까요.”
".........."
엘리샤가 고민에 빠졌다.
홍염(紅德)의 비기.
일인전승(一人傳承)으로 내려오는 기술의 일부를 알려주는 것은 못마땅한 일이었지만, 새로운 세상의 지식은 엘리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였다. 그만큼 강민혁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지식에 대한 욕심이 곧 발전으로 이루어지는 마법사로서, 이런 상황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알겠어. 네 거래를 승낙하지.”
자리를 옮겼다.
마법 훈련장에서 실험용 몬스터를 소환한 엘리샤는, 묶여있는 몬스터를 앞에 두고 설명했다.
“일단 내가 사용한 기술에는 전제조건이 필요해. 마나 명상을 통해 서클에 마나를 쌓을 때, 화(火) 속성으로만 형성된 서클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해. 이건 서클의 구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화염 마법을 사용할 때 필요한 화속성 마나의 저장고라고 생각하면 돼. 일단 그 방법을 설명해줄게.”
상당히 특이한 이론이었다.
마나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화 속성만을 분리하는 것인데, 사실 이건 매우 위험천만한 방법이었다.
화염의 속성은 파멸(破減)을 상징한다. 원소 중에서 가장 강력한 기운을 품고 있고, 그걸 잘못 분리했다가는 마법사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엘리샤의 설명대로라면 위험 부담성 없이 화 속성 마나의 분리가 가능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지식에 귀가 열렸다
“화 속성의 서클을 형성하면 이제는 네가 원했던 기술의 응용이 가능해. 화 속성의 마나를 가루처럼 퍼트려서 상대가 흡입하게 만들고, 그 대상에게 화염 마법을 사용하면 체내에 흡입된 화 속성의 마나가 불길로 변하게 되는 거지. 상당히 변칙적인 기술이라서 외피의 강도와는 상관없이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지만, 상대가 조금이라도 마나를 다루는데 능하다면 사실 방어가 간단한 방법이기도 해. 내부에 마나를 일으키면, 화 속성의 마나는 금방 사그라지고 말거든.”
직접 시험을 보여주었다.
묶여있는 몬스터에게 화 속성의 마나를 흡입시키고 마법을 사용하자, 이전에 보았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간단하지?”
화 속성의 서클을 형성하는 것은 비기라고 할 수 있지만, 엘리샤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홍염의 마법.
그게 일인전승으로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이유는, 화 속성의 서클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기술 덕분이었다. 화 속성의 서클을 형성한 정도로는 큰 효과가 없기에, 엘리샤는 거래에 응할 수 있었다.
‘화 속성의 서클이라.’
재밌는 방법이었다.
강민혁의 세상에서도 도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실험자들이 모두 죽어나가며 결국 사장되었다.
괜찮은 거래였다.
화 속성의 서클을 활용하면 화염 마법의 위력이 상승하는 데다, 변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얻었다. 처음 엘리샤의 태도는 무례했지만, 그녀는 상당히 합리적인 거래 태도를 보여주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수호 검법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고, 제가 어떻게 초인의 육체 능력을 보여주었는지 설명해드릴게요. 인간의 몸에는 단전이라는 곳이 있어요. 마나 명상과 같은 방법으로 마나를 몸에 축적할 때, 서클이 아니라 단전에 마나를 보내면서 인간의 육체를 강화시키는 거죠. 그 방법은.......................... 이러한 방식으로, 저는 보통의 인간보다는 조금 우월한 능력을 얻을 수 있었어요.”
설명을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강민혁이 말한 지식.
그건 정말 강화 문명의 기본중에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 정보만으로는 강민혁과 같은 성과를 이룰 수 없다.
매우 기본적인 이론을 설명했을 뿐, 심법의 체계와 같은 ‘진짜 중요한 정보’들을 생략해서 말했다.
양심에 찔리진 않았다.
엘리샤도 자신과 다르지 않을 터.
서로 말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정보를 내놓았을 뿐, 진짜 중요한 정보를 털어놓을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오마이 갓.”
엘리샤.
그녀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그런 게 정말 가능하단 말이야? 와,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어? 너 진짜 천재구나?”
강민혁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마법 문명 세상의 지식이 강화 문명에서 고차원의 지식이었던 것처럼, 이쪽 세상도 다르지 않다.
강화 문명.
그것의 일부는, 엘리샤에게 있어 신세계였다.
일상이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게이트의 여파는 모두 정리되었고, 학생들은 제 자리로 돌아서 본인의 역할대로 수업을 받았다.
‘기분이 이상하네.’
수업을 받는 학생들.
강민혁의 세상에서는 아직 ‘헌터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도 없는 어린 아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그린 드래곤 상황이 발생하자마자 노련한 마법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상당한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겪어왔던 세월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일까. 실전 수업만 겪어도 벌벌 떨었던 강화 문명의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삶과 죽음에 조금은 익숙한 것 같았다.
특히.
‘다들 근접전에 능숙했어.’
강민혁은 다른 구역의 CCTV 영상을 보았다.
이 구역과 마찬가지로 성벽을 넘어온 웨어 울프들이 있었는데, 고학년의 마법사들이 그들을 단번에 제압하였다. 웨어 울프가 코앞에서 달려드는데도 당황하지 않았고, 무빙 캐스팅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런 과정에서 강민혁도 모르는 여러 기술들이 사용되었다.
워 메이지.
강민혁의 세상에서는 아직 상상 속의 일이, 이쪽 세상에서는 이미 실현되어있는 것 같았다.
“오늘의 수업은.........."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게 들을 이유가 없는 수업이라, 강민혁은 시선을 내려 책상 위에 있는 ‘기간트의 역사’라는 책을 보았다.
[기간트의 제작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러시아의 피를 물려받은 알렉세이 레미조프(Aleksei Remizov)라는 인물이다. 몬스터의 출현으로 국가를 잃은 그는, 오로지 몬스터의 척살을 위해 기간트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렇게 제작된 기간트는 현재 힘을 비교하는 척도가 되었다. 얼마나 강력한 기간트와 대마법사를 보유했느냐에 따라 힘을 인정받는 사회가 형성된 것이다..................... 기간트를 제작하는 방법은 특급 기밀로 취급한다. 마나석의 배치와 광물의 종류, 표면에 새겨넣는 마법진에 따라 기간트의 위력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에, 더 고급 제작 기술일수록 그 가치를 인정 받는다.]
기간트.
강민혁을 충격에 빠트린 마법 문명의 정수.
기간트의 경우에는, 상당한 발전을 이룬 이 세상에서도 고급 기술로 취급하고 있었다.
일반 단체에서는 제작할 기술이 없어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왕실 마법 아카데미 정도되는 세력이 2~3기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것도 표면적으로 알려진 사실일 뿐이지, 진짜로는 어느 정도의 기간트를 보유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기간트의 힘은 진짜다.
강민혁이 목격한 정도의 힘이라면, 강화 문명에서도 그 힘은 분명히 먹힌다.
‘내 힘으로 기간트의 제작 방법을 알아낼 방도는 없어. 각 단체에서도 기밀로 취급하는 기술을, 1학년 학과생에 불과한 내게 알려줄리는 없을 테니까. 일단 기간트에 대해서는 그만 생각하자. 클리스만이 내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내게는 너무 과분한 기술 이기도 해.’
생각을 정리했다.
이후부터는 다시 반복되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카데미에 나가서 클리스만의 지식을 습득하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클리스만에게 가르칠 지식을 기록했다.
그런데 그러한 일정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내가 겪었던 일을 글로 남기자.’
이번 빙의.
강민혁을 중심으로 많은 사건사고가 벌어졌다.
클리스만의 영혼이 어떠한 상태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겪었던 일을 글로 남길 필요성이 있었다. 혹시라도 클리스만의 영혼이 다른 곳에 있거나, 아니면 의식의 저편에 잠들어 있는 상태라면.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최소한의 정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때부터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식을 습득하기만 할 때는 그 중요성을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 진즉에 필요한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업 도중에 그린 드래곤 상황이 발생..........]
글을 써 내려가는 강민혁.
그렇게 정신없는 나날이 지나갔다. 그리고 며칠 뒤.
마침내 아비드와 약속한 날이 되었다.
57화. < 16. 시련의 탑 >
시련의 탑.
가장 최근에 탑에 도전한 사람은 1년 6개월 전, 브래드 하그리브스(Brad Hargreaves)라는 사람이었다.
당시 영국 최고의 재능이라고 불리던 그는, 8서클의 벽을 앞두고 시련의 탑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때만 하더라도 시련의 탑은 폐쇄되지 않았다. 게이트 사건 발발 이후 시련의 탑 통과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시련의 강도가 강해졌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제기되었지만, 안의 상황을 증명해줄 사람이 모두 폐인이 되어 돌아오다 보니 확신할 수가 없었다.
시련의 과실은 달콤하다.
폐쇄라는 선택은 도무지 택할 수 없었고, 사람들은 그간 도전자들이 실패 한 이유가 그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브래드 하그리브스만큼은 시련을 통과할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고, 브래드 하그리브스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련의 탑에 진입했다.
그리고 시련의 1시간.
보통 시련은 1시간 안에 끝난다.
그건 그만큼 시련이 짧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균열 안과 밖의 시간이 다름을 말한다.
"시련의 탑. 그 안에 형성된 공간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그 안에서 보낸 10시간이 현실에서는 1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10초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인간의 육체로 버틸 수 있는 것은 현실에서의 1시간이 한계고, 그 이상 시련의 탑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높은 확률로 차원의 미아가 되었거나 아니면 폐인이 되는 것이다.”
생존자의 증언.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겁에 질려 말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탑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겨우 5분.
브래드 하그리브스가 탑에 도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정신을 놓아버린 상태로 세상에 나타났다.
“히, 히히.”
넋을 잃은 얼굴.
표정과는 따로 노는 웃음.
겨우 20살의 나이에 7서클을 형성하면서 영국 최고의 재능이라 불렸던 그가, 탑의 시련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것은 당시 마법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브래드 하그리브스의 정신력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고, 마나 룸 훈련도 5단계로 진행할 만큼 단단한 의지도 갖추고 있었다. 그런 브래드 하그리브스가 겨우 5분 만에 폐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발을 동동 구르며 그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때 확신했다.
“브래드 하그리브스는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천재였다. 그의 모든 행보는 세상의 상식을 벗어났으며, 그의 성장에 사람들은 그보다 뛰어난 사람은 존재할 수 없음을 확신했다. 그런데 그런 브래드 하그리브스조차도 시련의 탑에 무너졌다면, 더 이상 시련의 탑은 마법사를 성장시키는 기연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고로 현 시간부로 전 세계 시련의 탑은 폐쇄 조치를 내리도록 하겠다.”
타당한 판단이었다.
시련의 탑은 그렇게 폐쇄되었다.
이후에도 도전하겠다는 사람들은 있었다.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고, 결국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한다. 브래드 하그리브스라는 선례가 있음에도 몰래 시련의 탑에 도전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들의 도전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고?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래드 하그리브스의 도전이 마지막으로 남은 공식적인 기록이었다.
그리고 이번 도전 또한,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아비드의 권한으로 진행되는 비공식적인 도전이었다.
“충분히 고민했나?”
아비드.
그가 강민혁을 바라보았다.
아비드는 이게 얼마나 미친 결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강민혁은 겨우 1서클 마법사다. 육체적으로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었다고는 하나, 정신의 세계에서 1서클 밖에 이루지 못한 사람이 시련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아비드는 강민혁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건 강민혁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배경’의 특별함을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택한 사람.
선택이라는 단어가 맞는지도 모르겠으나, 평범하지 않음을 알기에 시련의 재앙을 허락했다.
휘이이이잉.
바람이 불었다.
풀숲이 우거진 금지(禁地).
그 중심에 시련의 탑이라 불리는 거대한 건축물이 보였다. 사실 ‘건축물’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은 차원의 균열이 바깥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봉인하고 있는 것일 뿐, 그 안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 발을 들이면, 멋대로 나갈 수 없는 그런 세계.
강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준비됐습니다.”
“알겠다.”
아비드가 길을 열었다.
다시 의사를 묻지는 않았으나, 시련의 탑으로 걸음을 옮기는 강민혁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 차원에 휩쓸리는 순간, 네 정신은 길을 잃게 될 테니까.”
마지막 말.
그 말을 끝으로, 강민혁은 시련의 어둠에 잠식되었다.
화악-
의식이 확장되었다.
시련의 탑에 발을 들인 순간, 자신이 서있는 땅을 제외하고는 온 세상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쿠구구구구구궁-
굉음이 들렸다
그러다, 마치 빅뱅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거대한 어둠이 강민혁을 덮쳤다.
팟!
세상이 변했다.
분명 방금까지는 상식적인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상식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마치 우주 한가운데서 부유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문득, 생존자의 말이 떠올랐다.
“탑의 시련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도전자에게 강력한 압력을 선사한다. 육체를 짓누르고, 정신을 압박하는 극한의 고통. 인간이 참을 수 없는 종류의 압력에 결국 인간의 정신은 붕괴하고 만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세상의 변화가, 강민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파바바박.
하늘로 추정되는 곳이 파랗게 물들었다. 빠르게 떨어지는 마나의 추락이 유성우의 형상으로 변했고, 땅이 들썩이더니 마나의 파도가 밀려들었다. 눈이 팽팽 돌았다.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아니 경험할 수 없는 종류의 세상이었다. 환영 마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하는 세상.
이곳은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시련의 탑에서 버티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인간의 정신력은 강해진다고 했어. 그리고 정신력에 따라 더 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달콤함 과실에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고.’
바로 뒤.
조금만 걸어가면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다.
정말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폐인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있다.
성과를 얻으려고 버티다가 정신이 먼저 붕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차원의 흐름에 휩쓸려서 차원의 미아가 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압력을 버텨내는 힘과 본인을 절제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만이, 이 세상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안에서는 겨우 티끌만 한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깥세상에서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종류의 기연이 되었다.
강민혁은 욕심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이와 같은 상식이 무너진 세상에서 보여주는 용기는, 용기가 아니라 객기라 표현하는 것이니 말이다.
쿠쿠쿠쿠쿠쿵.
공간이 일그러졌다.
땅바닥이 일어나며 불쑥 초록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건 순식간에 강민혁을 작은 점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로 거대한 산을 형성하였다. 그처럼 공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였다. 강민혁이 서 있는 그 자리만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을 뿐, 다른 공간은 그러지 않았다.
공간의 중심.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강한 압력이 되어 강민혁에게 밀려들었다.
드드드드.
‘이상해.’
의문이 들었다.
시련의 탑 경험자들이 쓴 글에 의하면, 그들은 시련 초반부터 강한 압력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건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종류의 압력일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시련의 공간은 도전자에게 강력한 압력을 선사하며, 그 압력에 정신이 붕괴하기 전에 도망쳐 나와야만 한다.”
압력.
누누이 강조되는 부분이다.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발을 들은 대가로, 그 안에서는 계속 압력에 시달린다고 했다. 예외는 없었다. 시련을 통과한 사람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압력의 고통에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주장했고, 그러한 사람들의 의견이 모여 ‘상식’이라는 것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강민혁 또한 압력을 예상했다.
그런데.
‘...나는 왜 압력이 느껴지지 않지?’
뒤늦게 알았다.
자신의 몸은 압력을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말하는 현상이, 강민혁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시련의 탑은 게임의 퀘스트 같은 것이 아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마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사람들이 ‘하나의 체계’를 만들었을 뿐이다.
탑의 공간이 어떻고, 탑의 압력이 어떤 수준이며, 어느 정도의 시간을 버텨야 하는지. 그것은 신이 정답을 제시해준 것이 아니라, 수많은 도전자들이 시행착오를 겪어서 알아낸 정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진실이라고 볼 수 없었고, 변수가 일어날 때면 어김없이 사람이 죽어 나가고 말았다.그럼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실은 있었다.
시련의 압력은 대단히 강한 것이고, 그 압력에 도전자들은 시작부터 고통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압력이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평온해.’
이상했다.
사람들이 강조하던 압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강민혁의 육체는 평온하게 주변의 흐름을 받아들였다. 안정적이었다. 숱하게 읽었던 경험과는 다른 현상에, 강민혁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지?’
자신의 정신력이 강해서?
아니다.
그것 때문일 리는 없다.
시련의 탑에 도전한 사람 중에는 고서클 마법사들이 많다. 그 정도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인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텐데,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의 정신력이 더 강해서 버틴다는 말은 신빙성이 없다. 아니면 단순히 이 세상과 체질이 맞아서? 정말 그런 황당할 정도로 단순한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강민혁은 의도와 우연이 맞아들어가는 순간을 믿지 않는다.
이건 필연(必然)이다.
우연히 상황이 들어맞은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근거가 있을 터.
강민혁은 주변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련의 압력은 강해지고, 그 압력을 버텨낼수록 인간의 정신력 또한 강해진다.
“후우.”
숨을 골랐다.
일단은 천천히.
압력이라는 것이 느껴질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섣불리 움직이다가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는, 지금은 천천히 주변을 파악할 필요성이 있었다.
강민혁은 처음 그 자리에서 가만히 주변을 보았고, 주변은 수많은 변화로 강민혁의 눈을 어지럽혔다.
얼마나 지켜보았을까.
순간 강민혁의 눈빛이 변했다.
“...어?"
마나의 흐름.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니, 일정하게 움직이는 체계가 보였다.
정말 황당한 주장일 수도 있겠지만 강민혁은 그게 수호문의 심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세상이 인간의 육체라고 비유한다면, 저런 방식의 흐름은 마나를 유도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생각이라는 것은 그 처음이 어렵다. 이전에 는 세상의 변화를 단순하게 바라보았다면, 그때부터는 세상을 움직이는 마나의 흐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쿠쿠쿠쿵.
변화하는 세상.
강민혁은 가만히, 그 세상의 흐름을 따라갔다.
58화. < 16. 시련의 탑(2) >
심법(心法).
그것은 인위적으로 마나를 다루는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나 그 자체의 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도하며, 마나가 인간의 육체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말한다.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정신의 힘. 그래서 처음에 심법을 공부하는 사람의 경우, 추상적으로 풀어낸 심법의 운용 방법에 상당히 애를 먹는다.
정신을 집중하고.
마나와 동화하며.
그들의 길을 인도한다.
마나의 재능이라는 것은 어쩌면, 타고난 육체를 떠나서 그것을 이해하는 정신의 능력일지도 모른다.
‘보여.’
마나의 흐름.
별처럼 반짝이는 마나들이 일정한 체계로 움직였다. 강민혁은 수도 없이 심법을 연마했던 사람이고, 그렇기에 추상적인 것에서 ‘체계’를 찾아내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이를 악물고 심법에 매달렸던 시간이, 강민혁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사고를 부여 했다.
마나가 움직였다.
공간 가득 차오른 마나가 일정의 체계를 보일 때마다, 마나가 일정한 형태로 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의 체계는 유성우다.’
예상과 같았다.
마나가 맞물리자 그것은 마나의 알갱이들을 수도 없이 뿌려댔다. 정말 유성우라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마나의 알갱이가 추락하는 모습이 유성우와도 같았다. 그처럼 강민혁은 마나의 흐름만으로 어떤 형태가 형성될지 보였다. 마나의 파도가 일어났고, 마나의 산이 솟아났다.
반복되는 체계.
강민혁은 그것을 눈으로 익혔다.
‘형태는 각기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어. 그러나, 마나의 힘을 일점(一點)에 모으는 방법은 같아.’
형태가 변하기 직전.
자연의 마나들이 모여드는 특별한 체계가 있었다.
그건 마치 심법과 같았다.
심법도 자연의 마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체계로 자신의 몸을 비운다.
“후우으.”
숨을 내뱉었다.
머리가 활짝 열리면서, 자신의 지식과 새로운 정보들을 조합시켰다.
수호문의 마나 심법.
처음에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수호문의 선조가 그것을 강화 문명에 어울리도록 개발시켰다는 정도. 확실한 건 강화 문명 초기만 하더라도 ‘정신의 힘’을 다루는 마나 심법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마나의 체계가 증명되지 않았던 시점이고, 추상적인 이론은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결국 진실은 밝혀졌다.
자유분방한 마나라 할지라도 체계는 존재하고, 그것을 알아만 낸다면 그 힘을 활용할 수 있다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강민혁은 수호문의 심법에 능통하기 때문에 마나의 흐름과 체계가 보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새로운 형태의 심법’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떠올렸다.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마나의 흐름밖에 없었고, 강민혁은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다. 균열에서 일어나는 흐름에 따라 마나를 천천히 운용하였고, 아주 조심스럽게 마나를 ‘일 점’에 모으는 방법을 심법의 형태에 적용시켜서 사용했다.
그러자.
“....후으읍!”
화아아악-
감당할 수 없는 마나가 밀려 들어왔다.
눈을 감고 있었던 강민혁의 모든 구멍이 확장되며, 강민혁은 감당할 수 없는 힘에 숨이 막혔다.
‘위험하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그럼에도 강민혁은 눈에 보이는 마나의 흐름을 심법에 적용시켰다. 그들을 진정시키며 단전으로 인도하려는 순간, 단전에서 격한 반발이 일었다. 강한 통증.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얼굴에, 강민혁은 단전은 지금의 방법으로 마나를 축적하는 것에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황급히 노선을 틀었다.
단전으로 향하던 마나가 자연스럽게 위로 솟아올랐고, 그 끝에는 심장에 형성된 서클이 있었다.
서클.
자연의 마나로 만든 고리.
그리고 생명력이 가장 활기차게 일어나는 심장에 있는 그것에, 해일처럼 밀려오는 마나가 들이닥쳤다.
콰콰콰콱.
“끄으으으윽."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새어 나왔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 강민혁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이것도 아니야.’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니다.
마나 심법으로 유도하는 마나는 그 양이 적다. 마나 룸을 사용하더라도 그 수준은 인간의 육체로 버틸 수 있는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마나는 겨우 1개의 서클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더구나 클리스만의 서클은, 그 강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현저하게 약했다.
결국.
“후욱, 후욱.”
푸스스스스.
마나가 흩어졌다.
모든 구멍을 활짝 열며, 받아들였던 마나를 배출해버렸다.
그러자 벌벌벌 떨리던 몸이 진정되었다. 몸에서 힘이 쭉 빠졌고, 당장 땅바닥에 드러눕고 싶었다.
‘그래서는 안돼.’
중심을 잃는다면.
차원의 미아가 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떠올랐다.
강민혁은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충격을 받은 것과는 다르게 희열이 보였다.
‘마나의 흐름으로 이용한 심법은 분명히 가능했어.’
확실했다.
방금 사용한 심법으로 단전에 마나를 축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서클은 분명히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수호문의 마나 심법이 단전에 특화된 방법이라면, 이것은 서클에 특화된 방법인 것이다.
고로.
‘현실에서 내 몸으로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건 가설일 뿐이다.
하지만 만약 이번 가설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강민혁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강민혁은 몸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마나의 흐름을 지켜보았다.
그것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그리고 보다 완성된 형태의 심법을 제작하도록.
단순히 시련의 공간에서 버텨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강민혁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세계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아비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벌써 2시간이 지났습니다.”
말문이 막혔다.
이미 포기한 듯한 휘하 마법사의 목소리만 보더라도,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안에서는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루?
이틀?
아니, 최소 한 달 이상이다.
어쩌면 자신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은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경우 차원의 미아가 되었다고 간주하고 포기한다. 하지만 클리스만이라는 존재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에, 아비드는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죽었겠지.’
아비드.
그 또한 시련의 탑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덕분에 그는 7서클의 경지에 올랐으나, 당시의 기억은 아비드에게도 매우 끔찍하였다. 강력한 압력이 전신을 짓이겨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고, 호흡을 압박하는 마나에 아비드의 머리는 당장에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끝끝내 버텨냈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정신의 끈을 붙잡아낸 아비드는 균열 밖으로 나왔고, 그는 1년 뒤에 7서클의 경지에 올라섰다.
그래서 확신했다.
클리스만은 이미 죽었으며, 그가 살아 돌아올 방법은 절대 없다고.
‘내가 미쳤지.’
후회되었다.
시련의 탑에 도전하는 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를 알고 있음에도, 그는 탑의 출입을 허락하고 말았다.
총장으로서 실격이다.
결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하는 아비드가, 클리스만이라는 어린아이를 죽음에 몰아넣고 말았다. 그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총장의 위치에서 항상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어야만 하는데, 그는 잠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미안하다.”
표정이 참담하게 변했다.
이만 자리를 떠나려는 그때, 균열 안에서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파파팟.
“초, 총장님?!”
“설마.”
아비드의 눈이 커졌다.
분명했다.
균열에서 일어나는 스파크는 아직 안에서 사람이 ‘생존’하고 있음을 뜻한다. 차원의 미아가 된 것과는 다른 의미다. 온전한 정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은 일정 구역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살아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온전한 정신으로.’
가설일 뿐이다.
균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바깥에서 절대 확신할 수 없지만, 아비드는 스파크가 일어난 순간부터 클리스만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생겨났다. 무려 2시간이 지났다. 그 안에 폐인이 돼서 돌아온 사람들은 많았지만, 2시간이 지나도 차원의 미아가 되지 않은 케이스는 한 번도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사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정신이 버틴다 할지라도 육체부터 갈기갈기 찢겨나가야 정상이었다.
“클리스만, 너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냐?”
아비드.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총장이며 영국 최상위 계층인 그조차도, 클리스만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아는 것이라고는 배경 하나.
딱, 그것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마나의 흐름에 푹 빠져서 오랜 시간을 보낸 강민혁은, 결국 마나의 흐름을 이용한 심법을 완성시켰다.
‘성공했어.’
마나 심법.
수호문의 심법과는 달랐다.
수호문의 심법은 단전이 중심이고, 어떤 상황에서든 사용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강민혁이 만들어낸 심법은 폐쇄적인 성향이 있었다. 서클이라는 순수한 마나의 집합체와 심장이 뿜어내는 생명력이 없으면, 마나는 절대 일 점에 모이지 않았다. 고로 서클을 사용하는 마법사에게는 효과적인 심법이나, 강화 전사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완성된 심법.
아직 현실에서의 몸으로 직접 실험해본 것은 아니었으나, 강민혁은 먼저 심법에 이름을 붙였다.
‘월하(月下) 심법으로 하자.’
마나의 유성우.
눈앞에서 쏟아져 내리는 마나의 빛깔이 마치 달빛을 보는 것만 같았다.
심법의 완성에 과도한 심력을 쏟았기 때문일까.
월하 심법을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민혁은 슬슬 몸에서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이게 생존자들이 말한 압력인가?’
세상의 변화.
그로부터 밀려드는 압력이 강민혁을 덮쳤다. 육체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클리스만의 육체는 여전히 생기(生氣)를 보여주었으나,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은 초기 증상이다.’
증상의 단계.
생존자들은 말했다.
현기증을 느끼고.
시야가 흐릿해지며.
속에서 역한 기운이 올라오고.
어느 순간부터는 뇌가 일그러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그리고 머릿속에 일어나는 압력이 절정에 달하고 귀에서 머리가 찢어질 것 같은 소음이 일어날 때, 그때는 무조건 탈출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게 생존자들이 생각하는 마지노선이었다.
조금만 버티고 나온 사람들은 증상의 끝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생존자 중에 압력이 절정에 달하는 그 이상의 증상을 경험해본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이후의 기준에 도달한 사람들이 폐인이 되었다고 예상했다. 완전히 미쳐버린 폐인들은 본인들의 경험을 말해줄 수 없으니 말이다.
“후욱, 후욱.”
숨을 골랐다.
일단 버텼다.
적어도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는 버텨내고, 마지막 마지노선에 도달할 즈음에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시련의 탑은 머물고 있는 시간에 따라 정신의 힘이 강해진다. 그리고 차원의 균열이 이전에 들어왔던 사람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기에, 강민혁으로서는 최대한 버텨야만 했다.
현기증이 일어나는 머리.
흐릿해지는 시야.
이어서 뇌가 일그러지는 느낌을 받는 순간, 생존자의 증언에는 없었던 새로운 현상도 동시에 일어났다.
".........?"
소름이 돋았다.
머리가 열렸고, 뇌의 주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정신의 확장.
누군가가 뇌를 주무르는 듯한 매우 생소한 느낌이 살아나더니, 강민혁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세상이 둘로 나뉘었다.
퍽!
의식이 쪼개졌다.
뇌의 과부하?
아니 다.
강민혁은 아직 멀쩡했다.
외관이나, 내부 모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다만.
“...이게 대체.”
분뇌(分腦).
강민혁의 머리가, 동시에 두 개의 사고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59화. < 16. 시련의 탑(3) >
분뇌.
단어의 의미처럼 실제로 뇌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체는 강민혁 하나인데, 동시에 두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의식이 둘로 나누어지다니. 생존자들의 기록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어. 아니, 애초에 나처럼 오랜 시간 시련의 공간에 머문 사람도 없었어. 혹시 그로 인해 발생한 현상인가? 인간에게 정해진 압력의 수준이 있는데, 그것을 넘어서면서 초월한 정신력이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몰라.’
‘주변의 세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어. 마나의 흐름도 그대로지만, 내 내부에서만 변화가 생겼어. 그리고 육체도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내게 해를 가하는 능력은 아니라는 뜻인가.’
각기 다른 생각.
하나의 생각은 분뇌 자체를 분석하고 있다면, 또 다른 생각은 주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토대로 혹시라도 몸에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했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머릿속이 뒤죽박죽 얽혔을 상황이다. 그런데 강민혁의 몸은, 지금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생소했다.
몸은 괜찮을지 몰라도, 강민혁의 정신은 크나큰 혼란에 빠졌다.
‘평생 나누어진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건가?’
그건 아니었다.
둘로 나누어진 의식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순간, 강민혁의 생각이 하나로 합쳐졌다. 분뇌는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다. 강민혁의 뇌가 발달하면서 초월(起越)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고, 원하는 상황에서만 의식을 둘로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한 사실을 반복 행위로 확인한 강민혁은, 걱정할 만한 변수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림과 동시에 분뇌로 인한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
‘두 개의 생각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것. 이건 상당한 메리트야. 더블 캐스팅의 경우 보통은 마나의 기억을 활용해서 사용하는데, 분뇌의 능력만 있으면 그러한 과정 없이 직접 캐스팅을 할 수 있어. 두 개의 생각으로 각기 다른 마법을 캐스팅하는 거지. 그것 또한 더블 캐스팅과 능력은 같지만, 마법이 완성되는 속도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어.’
더블 캐스팅.
마법사가 동시에 다른 마법을 준비하는 것은 강력한 이점만큼이나 단점이 있다. 바로 마나의 기억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인해 캐스팅 속도가 느리다는 것. 그냥 사용할 경우 1분의 시간이 걸리는 마법이라면, 더블 캐스팅일 때는 1분 30초 정도가 걸린다. 물론 각각 사용했을 때 2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득이겠지만, 최초의 마법이 늦게 발현된다는 것은 엄연히 단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의지의 힘으로 마법을 발현하는 마법사에게, 두 개의 의식이라는 것은 엄청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것 또한 필연인가.’
시련의 탑.
힘이 필요한 상황에서 강민혁은 그것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막상 들어오니 시련의 탑에 적합한 몸이었다.
생소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마나의 흐름은 월하 심법을 낳았고.
남들이 시련이라고 부르는 압박은, 강민혁에게 분뇌라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였다.
필연.
강민혁은 절대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근거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걸 알아내야 해.’
강민혁은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다.
클리스만이 지식을 준다고 해서 받아만 먹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생각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판단에 따라 행동에 옮긴다. 그렇기에 적어도 자신의 성장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지는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니다.
점점 뇌에 가해지는 압박이 강해지는 상황에, 강민혁은 이제는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나가자.’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주변의 마나가 강민혁을 떠나보내기 싫다는 듯이 강하게 옭아맸지만,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강민혁은 마나의 힘에 휩쓸리지 않았다. 겨우 몇 걸음 떨어진 곳. 처음 들어갔던 통로로 향해 발을 내딛자, 처음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어둠이 강민혁을 덮쳤다.
화악-
핑-
현기증이 일었다.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정말 살아서 돌아왔구나.”
아비드.
그가 경악한 표정으로 강민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스파크가 생존의 신호라고는 하나, 살아있다고 하기엔 강민혁이 안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다.
균열을 뚫고 나타난 강민혁의 모습에, 아비드의 표정이 경악으로 얼룩졌다.
“대체 어떻게 살아서 나온 거지?”
입이 바짝 말랐다.
몸이 떨렸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시련의 고통을 경험해본 아비드기에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충격적인지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놀랍게도 강민혁의 외형에는 아무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마나의 압력으로 인해 피부가 타들어 가거나 변형되는 현상이 있어야 하건만, 강민혁은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클리스만, 시련의 공간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재차 물었다.
그러나 강민혁은 그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아직 분뇌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이 아니라 머리가 어지러웠고, 동시에 육체가 비명을 질렀다.
푸스스스스.
“크윽.'
몸에서 마나가 빠져나갔다.
시련의 공간에 오래 머물면서 자신도 모르게 강민혁의 전신에 마나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생기가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마나 덕택이었다. 그것이 일순간 모두 빠져나가자, 강민혁은 강한 무력감을 느꼈다. 전신에 차오르던 충만한 힘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았고, 오랜 시간으로 인한 무력감 때문에 지금은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만약 평소의 아비드였다면.
강민혁의 상태를 눈치채고 기다려주었겠지만, 지금의 아비드는 충격을 받아서 그러지 못했다.
다시 물으려는 모습에, 휘하의 마법사가 말했다.
“잠시 휴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군. 이곳에서의 시간과 클리스만이 겪은 시간의 흐름은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비드는 기다렸다.
강민혁은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정신을 되찾았고, 아비드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이틀이 지났다. 보통은 2시간만 지나도 생사를 확신할 수 없는 공간에서, 너는 무려 이틀이나 있었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그리고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동안 시련의 고통을 버틸 수 있었지?”
밀려드는 물음들.
그러나 강민혁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비드의 표정.
이해는 한다.
그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고, 자신이 얻어낸 결과물이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대답해줄 의무는 없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시련의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압력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지금이었습니다.”
거짓을 더한 대답.
아비드는 믿는 기색이 아니었지만, 강민혁이 말해줄 수 있는 대답은 그것이 끝이었다.
“그게, 제가 기억하는 전부입니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이틀 동안 자리를 비웠지만, 아비드의 입김이 있었던 모양인지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분뇌의 능력이 현실에서도 적용되는가야.’
분뇌.
의식의 양분은 마법사를 위한 능력이다. 강화 전사로서도 활용성이 많겠지만, 마법사로서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한 클리스만의 육체보다는 강민혁에게 더욱 필요하다. 그래서 강민혁은 빨리 현실로 돌아가고 싶었고, 그래서 클리스만이 준비해둔 마법 지식을 익히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쉬웠었나?’
뜻밖의 성과였다.
지식의 습득.
그것이 경악스러울 정도로 빨라졌다.
강민혁은 원래부터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다. 머리가 좋기 때문에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공부한 것을 기억하고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인데, 지금은 그때와는 두뇌의 능력이 완전히 달라졌다.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지식들. 예전에는 10의 지식을 배우기 위해 5의 시간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겨우 2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히 지식을 습득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설마 정신력이 향상하면서 두뇌 능력도 같이 향상된 건가.’
이에 대해서는 앞선 사례가 있었다.
정신력의 향상으로 다들 긍정적인 효과를 보았지만, 이 정도로 극적인 결과물을 얻은 사람은 없었다.
겪었던 시간이 다르기 때문일까.
순식간에 4서클 마법을 거의 익힌 강민혁은, 일부러 마지막 남은 하나의 마법을 익히지 않았다.
‘조금 더 확인해보자.’
마법 도서관.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두뇌 능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상급 5서클 마법]
[상급 6서클 마법]
상위 등급의 마법서.
그것들을 꺼냈다.
마법은 서클이 향상될수록 그 체계와 방식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강민혁이 빙의에 오랜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었는데, 4서클 마법보다 상위 마법에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사락.
책장을 넘겼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복잡한 체계가 눈에 보였지만, 책장을 넘김에 있어 망설이는 기색은 없었다.
만약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최상급 마법이 아닐지라도, 5서클과 6서클 마법을 익히는 데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점점 빙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보다 길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도서관 폐관 시간이 되었을 즈음, 강민혁은 책장을 덮었다.
“...확실해. 내 두뇌 능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었어.”
머릿속에 둥둥 떠 있는 지식들.
상급 5서클 마법과 6서클 마법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었다.
어느 정도는 두뇌 능력이 향상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 정도로 확연한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사실 강민혁은 이보다도 빠르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양쪽에 책을 펴놓고 동시에 읽더라도, 분뇌를 사용한 뇌는 머릿속으로 빨려드는 지식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뇌를 두 개로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의 양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기 다른 뇌로 오른쪽 손과 왼쪽 손을 다르게 움직일 수 있었고, 그건 눈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기괴한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분뇌의 능력은 생각보다 많은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마법사로서는 엄청난 축복이야.’
확인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몸으로는 아니다.
아무리 대단한 능력일지라도, 그게 클리스만의 몸에 귀속된다면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분뇌가 간절한 건 현실에서의 나니까.’
더 이상 이곳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현실.
이제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차례다.
창밖에서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침의 소란스러움과 창밖에서 내리쬐는 햇볕.
살짝 차가움이 감도는 공기에, 강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후우.”
긴장되었다.
분뇌의 능력.
이곳에서는 영향이 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영혼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클리스만의 뇌 자체가 발달하였던 것이라면, 시련의 탑에서 얻은 고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강민혁은 클리스만을 위해서 희생한 것이 아니다. 클리스만을 강해지게 하겠다는 목적은 그대로이나, 그래도 가장 최우선은 자신이 강해지는 것이다.
넓은 마당.
높은 담벼락으로 외부와 차단되어있는 공간에서, 강민혁은 분뇌의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아.’
쪼개지는 의식.
그리고 곧이어, 강민혁의 양손에서 마법이 피어올랐다.
“파이어 볼.”
"라이트닝."
화르르륵.
찌지직.
의도는 성공했다.
분뇌.
차원 너머에서 얻은 능력이, 현실에서도 적용되었다.
60화. < 17. 차원 너머의 보상 >
분뇌를 얻었다는 기쁨도 잠시.
강민혁은 일단 이번 빙의에서 생긴 의문점들을 정리했다.
[1. 아비드에게 청탁한 클리스만의 배경은 무엇인가?]
아비드.
7서클 대마법사이자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총장.
사실 현재 영국에서 그보다 높은 권력자는 존재할 수 없다. 영국 마법 아카데미는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상징성이 대단한 집단이고, 그곳의 책임자인 아비드는 영국 왕실의 태생이다. 그 말인즉, 아비드에게 청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아비드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겨. 그런 그가,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1서클 마법사에 불과한 클리스만의 입학을 받아들였고 시련의 탑 출입도 허락해주었어. 그건 단순한 배경이라는 의미가 아니야. 아비드 정도 되는 인물이, 클리스만의 배경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뜻이겠지.’
아비드보다 동등하거나 위.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의문이 생겨났다.
일반 평민 출신에 불과한 클리스만과 그런 대단한 배경의 연관성은 찾을 수가 없었다.
[2. 클리스만의 육체는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가?]
처음에는 단순히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순식간에 성장하는 육체는 분명히 상식적이지 않았다.
‘강화 전사로서 재능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거야. A급 웨어 울프를 상대할 때 클리스만의 육체가 보여준 능력. 그리고 시련의 탑에서 아무런 이상도 없었던 육체. 클리스만은 단순히 재앙을 겪은 어린아이가 아니야. 나이를 넘어서는 특별함이 있고, 재앙 이후에 있었던 그 짧은 시간만으로는 클리스만의 특별함을 설명할 수 없어.’
강민혁을 미궁에 빠트린 문제였다.
단순히 재능.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강민혁도 천재라고 불렸던 사람이기에, 클리스만의 상황이 천재라는 만능의 단어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클리스만의 나이는 어리다. 사실 예전부터 의문이기는 했었다. 아무리 가족이 몰살당하는 시련을 겪었다고는 하나, 클리스만의 계획은 그의 배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차원을 넘나드는 계획.
대단한 배경을 가졌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평민 출신의 어린아이가 계획했다?
매우 이상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3. 시련의 탑에서 내가, 그리고 클리스만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분뇌의 능력.
그것이 현실에서도 적용됨으로써, 시련의 탑에서 버틴 것은 자신의 정신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시련의 탑.
그곳은 대마법사라고 불리던 사람들도 고통에 무릎을 꿇었던 장소다. 그런데 자신의 정신은 무려 현실에서 이틀이나 지나고서야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클리스만의 육체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미스터리였다.
다른 의문들이야 붙잡고 늘어질 정보라도 있지만, 시련의 탑은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았다.
“하아.”
탁.
펜을 내려놓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클리스만의 능력을 얻어 현실에서 발전하고자 했다면, 지금은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클리스만과 자신이 보여주는 행보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만일의 상황.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하기 위해서, 강민혁은 진실에 접근할 필요성이 있음을 느꼈다.
‘내 궁금증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리는 게 아닐까.’
판도라의 상자.
그 안에는 죽음과 병, 질투와 증오와 같은 수많은 해악(害惡)이 있었다.
하지만 열기 전까지는 그러한 사실을 몰랐고, 진실을 알았을 때는 상황을 되돌이킬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도 의문을 멈출 수 없었다.
상자 안에 어떤 것이 들어있든, 앞으로의 대의를 위해서는 ‘진실’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니 말이다.
책을 덮었다.
정리는 끝났다
이제는 클리스만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현실에 집중할 때다.
‘앞으로 확인할 게 많아.’
차원 너머의 보상.
지금부터는 시련의 과실을 수확할 차례다.
집에 마련된 훈련 공간.
강민혁은 바닥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에, 6개의 마나석을 추가로 설치하였다.
총 12개.
이 정도의 동력(動刀)이라면, 그것으로 발휘되는 힘은 최대 출력인 5단계에 달할 것이다.
‘마나 룸 5단계.’
미지의 영역.
과감한 선택으로 3단계를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간 5단계는 감히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5단계는 동력의 수준부터가 다르다. 4단계까지는 6개의 마나석으로 마법진을 운용한다면, 5단계의 마나 룸은 12개의 마나석으로 마나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클리스 만의 세상에서도 대마법사 정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성공하지 못할 그런 단계였다.
‘지금은 감당할 수 있어.’시련의 탑.
그곳에서의 경험은 강민혁에게 확신을 부여했다.
시련의 탑에서도 살아남은 자신의 정신력이라면, 5단계의 출력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한 확신.
강민혁은 곧바로 마법진을 운용했다.
우우우우웅.
화악-
마나가 퍼져나갔다.
동시에 엄청난 마나의 압력이 강민혁의 숨통을 옥죄었다.
만약 시련의 탑을 경험해보지 못한 강민혁이였다면, 그 압력을 몇 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강민혁은 안정적인 호흡으로 마나의 압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월하심법.’
새로운 심법.
시련의 탑에서 보았던 마나의 흐름에 따라, 주변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마나를 서클로 인도하였다. 순간 마나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전에 수호문의 심법을 사용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마나였지만, 그 엄청난 양에도 강민혁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분뇌.’
의식을 쪼겠다.
하나의 두뇌로는 마나의 길을 인도하였으며, 또 다른 두뇌로는 마나로 인한 충격을 완화시켰다.
“후우, 후우.”
숨이 안정되었다.
분뇌의 효과는 탁월했다.
하나의 정신으로는 월하 심법으로 받아들이는 마나를 감당하지 못했을 텐데, 두 개의 정신으로 대응하자 크게 어렵지 않았다. 빠르게 흡수되는 마나들. 서클이 요동쳤다. 마치 곤충이 탈피(脫皮)하는 것처럼 서클의 껍질이 벗겨졌고, 파랗게 일어나는 마나의 원천이 드러났다.
서클의 재구성.
강민혁이 처음에 심법을 사용할 때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월하 심법으로 흡수한 마나가 서클을 강화시켰고, 더 단단하고 강력한 새로운 서클이 형성되었다.
‘아아-.’
의식이 확장되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경지.
보통은 정신을 잃고 주화입마에 빠질 단계에서도, 강민혁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의도는 통했다.
정신력의 강화가 현실에서도 득이 될 것이라는 가설은, 실제로 강민혁의 몸에서 발휘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안정적인 단계.
강민혁의 몸이 마나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민혁은 그중에서 화 속성의 마나를 분리해서, 서클의 주변에 새로운 서클을 하나 더 형성했다.
‘화 속성의 서클.’
엘리샤가 말해주었던 정보.
그것을 곧바로 시도했다.
서클의 형성은 어렵지 않았다.
3개의 서클과는 독립된 형태의 서클이, 얇고 가늘게 심장의 주위에 형성되었다.
내부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처음과는 다르게 서클은 더 단단하고 많은 양의 마나를 받아들였으며, 그 밖에는 화 속성의 서클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실 화 속성 서클의 생성은 생각만큼 쉬운 기술이 아니다. 그런데 강민혁은 분뇌의 효과로 마나를 인도하는 것과 화 속성의 분리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었고, 덕분에 어려움 없이 화 속성 서클의 형성이 가능했다. 이제부터 강민혁이 화염 마법을 사용할 경우, 화 속성 서클에 축적되어 있는 마나가 자연스레 딸려 나와 그 위력을 더할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마나의 흐름에 몸을 맡겨, 강민혁은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편했다.
시련의 탑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었기 때문일까.
강민혁은 마나로 충만한 공간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고, 그것은 강민혁을 새로운 단계로 유도했다.
그렇게.
‘...끝났나.’
훈련이 종료되었다.
빠르게 사라지는 마나에, 강민혁은 심장을 어루만졌다.
“4서클 마법사라.”
4서클.
네 개의 서클과 하나의 화 속성 서클.
마나 룸 5단계와 월하 심법으로 인해, 강민혁은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다.
수업은 결석했다.
그에 관한 문제야 최병호 학과장이 알아서 처리해줄 테니, 강민혁은 곧바로 아카데미 내부에 마련된 훈련장으로 향했다.
[실내 훈련장]
한건물.
그곳은 바로 몬스터 웨이브(Monster wave) 상황에서 얼마나 빠르게 적들을 처리하는지 실험하는 훈련장이다. 몬스터 웨이브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게이트에서 많은 수의 몬스터가 출몰하였을 때, 안정적인 위치에서 최대한 빠르게 몬스터들을 몰살시키는 것이 바로 훈련의 목적이다.
수성전과는 다르다.
수성전은 시가지에서 직접 방어 라인을 형성된다면, 애초에 이 훈련은 안전이 보장되어 있다.
높은 철책 위.
강민혁은 안전한 장소에서 마법만 사용하면 된다. 철책 아래로는 넓게 펼쳐진 땅이 있었는데, 그 끝에 위치한 통로를 통해서 몬스터들이 출몰한다. 그리고 이번 몬스터 웨이브 훈련의 경우에는, 몬스터의 종류와 숫자를 모두 설정할 수 있었다.
삑-
[D급 오크]
[50마리]
원하는 숫자를 입력했다.
사실 일반 학생에게는 개인적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설정할 권한이 없다. 그러나 학과장 최병호의 총애를 받고 있는 강민혁에게는 마스터키가 있었다. 어떤 훈련이든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강민혁은 원하는 대로 설정을 조작할 수가 있었다.
입력 완료.
기계에서 딱딱한 음성이 들렸다.
[D급 오크 50마리를 소환하겠습니다.]
[안전을 위해 철책 아래로는 절대 내려가지 마십시오.]
푸슈욱.
츠츠츠츠츠.
강철 문이 열렸다.
그러자 그 안에서, 오크의 모습이 보였다.
취익!
크르르르륵.
사나운 기세를 드러내는 오크들.
그들이 일제히 강민혁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높은 철책으로 인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과연 가능할까?’
분뇌를 얻고서.
강민혁은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강화 문명에서도 더블 캐스팅은 존재해. 마나의 기억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천재적인 두뇌를 이용해서 동시에 두 가지의 마법을 준비하는 방법이지. 만약 정신력이 향상된 내 두뇌가 두 가지의 마법을 동시에 준비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걸 각각 나누어진 의식으로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지?’
성공을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의문으로 돌출되는 답은, 강민혁을 흥분케 만들었다.
화악-
마나를 퍼트렸다.
그리고 의식을 나누겠다고 생각하자, 두뇌가 분리되며 두 개의 사고가 동시에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왼쪽은 파이어 웨이브.’
‘오른쪽은 파이어 버스트.’
마나의 체계를 변화시켰다.
강민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각각 하나의 마법을 수행하고 있는 두뇌에, 하나의 임무를 추가로 부여했다.
‘왼쪽은 더블 캐스팅으로 쇼크 웨이브를.’
‘오른쪽은 더블 캐스팅으로 윈드 피스트를.’
일부러 다른 속성의 마법을 사용했다.
더욱 복잡해지는 체계.
그런 상황에서도 마법을 끝맺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최선의 상황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철책을 오르겠다고 발악하는 오크들을 내려다보며, 강민혁의 마법은 어느새 절정에 달했다.
이윽고.
“파이어 웨이브.”
“파이어 버스트.”
“쇼크 웨이브.”
“원드 피스트.”
화르르르르륵!
찌지지지직!
동시다발적으로 발현되는 마법들.
그것이 50마리의 오크들을 휩쓸어버리는 모습에, 강민혁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정말 가능한 이론이었어.”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두 개의 마법이 더블 캐스팅이라면, 이것의 이름은 쿼드 캐스팅(quad casting)이 적절할 것이다.
네 개의 마법.
마법 문명에서는 동시에 마법을 발현시키는 여러 방법이 있다.
마나의 기억을 활용하는 오토 캐스팅을 비롯해, 각인(刻印)을 이용한 멀티 캐스팅까지.
그러나 강민혁이 사용한 쿼드 캐스팅은 근본이 다르다.
강화 문명에서.
아니, 마법 문명에서도 쿼드 캐스팅은 그 선례가 없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경지였다.
61화. < 17. 차원 너머의 보상(2) >
마법 문명.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곳에서도, 캐스팅은 평생을 연구해도 모자랄 만큼 중요한 분야다.
마법사의 위력을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마법 자체의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캐스팅을 얼마나 빠르게 하느냐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가짓수는 강조될 수밖에 없는 포인트다. 그러한 노력으로 인해 많은 기술이 개발되었다. 마법의 상관관계, 최상급 마법 등등 여러 기술이 탄생하는 동안, 마법 문명의 마법사들은 확고한 결론을 내렸다.
"인간의 뇌로는 동시에 2개를 초과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과거 8서클 대마법사라고 불리던 인물이 트리플 캐스팅(triple casting)을 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라고 볼 수 없는 경지. 현실적으로 더블 캐스팅이 인간에게 허락된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한계.
상한선이 정해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의 두뇌로 불가능한 영역이라면, 그와 연계할 수 있는 다른 분야를 공략하면 되는 법이다.
그렇게 두 가지의 캐스팅 방법이 완성되었다.
첫 번째로 오토 캐스팅.
현재 강화 문명에서는 ‘더블 캐스팅’이라고 불리는 마나의 기억력을 활용한 방법이다. 이로 인해 마법 문명은 더블 캐스팅의 대중화에 성공했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마법 문명 또한 더블 캐스팅은 재능이 허락하는 영역이었는데, 오토 캐스팅의 개발로 인해 그러한 장벽을 무너트린 것이다.
두 번째로 멀티 캐스팅.
이게 핵심이다.
멀티 캐스팅은 단어 그대로 여러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인데, 각인(刻印) 마법이라고도 불린다.
마법진의 기술력이 발달하면서 마법사들은 인체에 마법진을 ‘각인’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리고 필요한 상황에 따라 마나를 마법진에 불어넣으면, 복잡한 체계를 마법진이 대신 처리해서 마법을 발현시켜준다. 이로 인하여 마법사들은 더블 캐스팅과 각인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멀티 캐스팅’이라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방법에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체의 각인.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각인 마법이 발현됨에 따라 생겨나는 ‘정신적인 충격’을 감당해야만 한다. 원래 마법진이란 인간의 몸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을 변형에서 적용한 것이기 때문에, 보통의 마법사들은 각인 마법의 충격을 버텨내지 못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조건이 붙었다.
5서클 이상의 마법사만 각인 마법을 사용할 것.
그 정도의 경지는 돼야 정신적인 충격을 감당한다.
그러한 조건이 생겨나자, 어느 순간부터는 마법사가 감당할 수 있는 각인 마법의 횟수가 마법사의 정신력을 증명하는 척도가 되었다.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총장 아비드.
그의 경우에는 7서클 마법의 더블 캐스팅과 동시에 각인 마법을 4개나 발동시킨 경험이 있다. 보통은 1개의 각인은 범인, 2개의 각인은 천재, 3개부터는 괴물이라 불리는 것을 보면 아비드의 정신력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고로.
‘쿼드 캐스팅은 마법 문명에서도 허락되지 않았던 단계다.’
4개의 마법.
각인과 같은 편법이 아니라, 순수하게 두뇌의 능력으로 쿼드 캐스팅을 한 경우는 단언컨대 없었다.
그래서 마법 문명에는 쿼드 캐스팅이라는 단어가 없다.
5서클 이상의 마법사.
그들이 더블 캐스팅과 2개의 각인을 사용하면 그것도 엄연히 쿼드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마법 문명의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각인 마법은 일회성이다. 반영구적으로 몸에 각인되는 것은 맞으나, 한 번 마법을 사용하고 나면 재사용 대기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각인도 인체에 부담이 되는 방법이기 때문에, 많은 숫자의 각인을 몸에 새길 수도 없다.
그러한 이유로 쿼드 캐스팅이라는 단어는 허락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야 한번 반짝하는 기술에 쿼드의 단어를 붙이기엔, 마법 문명의 자존심은 높았다.
‘내가 만약 각인을 새겨넣게 된다면.......'
그때는 판이 바뀐다.
강화 전사?
근접전에서 그들이 강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적어도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강민혁은 홀로 일인군단(一人軍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후우.”
심장이 떨렸다.
기대감으로 차오르는 감정에, 강민혁은 일단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직은 기뻐할 때가 아니다.
쿼드 캐스팅을 얻은 것은 대단한 일이나, 지금은 4서클 마법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일단 내 능력을 시험해보자. 4서클 마법과 쿼드 캐스팅을 갖춘 내가, 얼만큼의 화력을 낼 수 있는지를.’
몬스터 웨이브.
마침, 딱 적합한 훈련장에 있었다.
훈련장에 도착하고.
강민혁은 곧바로 시크릿 모드를 가동시켰다.
마법사들은 자신의 전력이 공개되지 않기를 바라고, 그러한 이유로 시크릿 모드가 탄생하였다.
시크릿 모드에서 훈련하면 어떤 키를 사용하는지, 그리고 훈련장에서의 영상이 저장되지 않는다. 대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인명 사고는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몬스터들이 철책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암묵적인 동의였다.
삑-
[C급 오크 전사]
[100마리]
설정을 입력했다.
그러자 ‘error’가 떠올랐다.
[시크릿 모드에서는 세 자릿수의 몬스터를 소환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
비밀이 보장되는 대신에 혹시라도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를 소환하는 것을 방지시켰다. 등급마다 소환할 수 있는 몬스터의 숫자는 정해져 있으며, 그 정도의 등급은 철책을 절대 넘어서지 못한다.
[C급 오크 전사]
[90마리]
입력 완료.
시스템이 강민혁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C급 오크 전사 90마리를 소환하겠습니다.]
[안전을 위해 철책 아래로는 절대 내려가지 마십시오.]
푸슈욱.
강철 문이 열렸다.
그러자 익숙한 자태의 오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취이이이익!
바글거리는 오크들.
그들을 바라보며 강민혁은 캐스팅에 들어갔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말이다.
‘분뇌.’
뇌가 나누어졌다.
두 개의 사고로, 강민혁은 각기 다른 마법을 사용하였다.
‘왼쪽에는 화염 마법.’
‘오른쪽에는 화염의 효과를 증폭시킬 바람 마법.’
캐스팅 속도는 빨랐다.
머리가 팽팽 돌며,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는 마법의 체계를 순식간에 완성시켰다.
확실히 두뇌 능력의 향상은 캐스팅 속도와 직결했다. 마법의 상관관계, 최상급 마법과 같은 것의 효과가 아니라, 그냥 계산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덩달아 캐스팅 속도도 이전보다 빨랐다.
화악-
파랗게 일어나는 마나.
그들의 형태가 변하자, 강민혁이 마법을 사용했다.
“인페르노 (Inferno).”
“인페르노.”
화르르르륵.
시작은 화염 마법.
일직선상에 있는 오크 전사들을 향해, 마치 화염 방사기처럼 화염들이 뿌려졌다. 그 강력한 열기가 오크 전사들을 덮치자 뒤이어 바람의 마법도 사용되었다. 강민혁을 중심으로 강풍이 휘몰아쳤다.
“윈드 토네이도(Wind Tornado)."
“윈드 토네이도.”
휘이이이잉.
화륵, 화르르르르륵.
마나가 쑥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화염으로 쑥대밭이 되어버린 상황에 바람이 몰아치자, 그것은 마치 ‘파이어 스톰’의 모습으로 변했다. 화염을 동반한 토네이도.
C급의 오크 전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꾸이이이이익!
취이익!
오크 전사들이 발버둥을 쳤다. 그들은 어떻게든 강민혁을 처리하고자 철책으로 달려들었지만, 특수한 광물로 제작된 철책은 무너지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수많은 오크가 픽픽 쓰러졌다. 새카맣게 타버린 피부에서, 매캐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겨우 몇 분.
네 개의 마법을 사용하자, 무려 절반이 넘어가는 오크 전사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게 마법의 위력인 건가.”
사실 지금의 상황은 강민혁의 특별함이라 할 수 있다.
강민혁은 최상급 4서클 마법을 사용한다. 서클의 강화로 마법의 위력이 상승했으며, 화염 마법을 사용했을 때 화 속성의 서클이 그 위력을 더했다. 말이 4서클이지, 강민혁의 마법은 5서클의 위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C급 오크 전사.
정상적인 공략대로라면, 그들을 쓰러트리는 데 필요한 화력은 4서클이다.
그런데 제한된 공간에서 그걸 뛰어넘는 화력을 퍼부어버리니, 오크 전사들로는 견뎌낼 방법이 없었다.
이어서.
“룬 플레어(Rune flare).”
“룬 플레어.”
또 다른 4서클 마법을 연달아 사용하면서 남아있는 오크 전사들을 마무리했다. 그 시간은 정말 짧아서 감탄이 나올 정도였지만, 순식간에 3분의 2 이상의 마나를 사용한 상황에 숨이 차올랐다.
“후욱, 후욱.”
4서클 마법 여덟 번.
보통의 4서클 마법사면 이미 현기증을 느끼고 쓰러질 상황이다. 그러나 강민혁은 그 정도의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마나가 동이 나지 않았다. 이 또한 강민혁의 특별함이었다. 강민혁은 마나 룸 훈련과 서클 강화로 동일한 경지의 마법사보다 상당히 많은 양의 마나를 축적하였고, 덕분에 마나 동화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남들보다 많은 횟수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현재 내가 보유한 마나로는 마나 동화를 사용한다는 전제하에 약 20번 정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
많다.
충분히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20번. 4번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5번의 마법을 사용하면 마나가 끝난다.’
5번.
장기전에서 그리 달갑지 않은 숫자다.
마나의 회복은 그리 빠르지 않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는 강민혁은 전력 외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사실 마나를 한계까지 사용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일이다. 마나가 바닥을 드러낼 경우, 일시적으로 탈진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쿼드 캐스팅.
강력한 화력을 뿜어낼 수 있으나 그만큼 지속성이 낮다.
그것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확실한 건, 강민혁은 현재 강화 문명에서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화력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욕심이 생겼다.
‘이 정도의 화력이라면 A급 몬스터를 처리할 수도 있지 않을까?’
A급 몬스터.
그 단어에, 강민혁의 눈빛이 변했다.
A급 몬스터.
마법사를 비주류로 전락시킨 존재.
확인된 사실은 아니나, 마법사가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6서클의 마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C급 몬스터에게는 4서클, B급 몬스터에는 5서클 마법이 통하는 것을 보면, 인류가 6서클의 경지에 올랐을 때 마법사의 가치가 새로이 정립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 마법사의 말.
옳은 주장이다.
강민혁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고, 그렇기에 욕심이 생겼다.
‘내 마법의 위력은 5서클 이상이야. 6서클 정도의 위력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5서클이라는 기준에서는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화력을 갖추고 있어. 이 정도의 힘이라면 A급 몬스터에게도 먹히지 않을까?’
하나의 가설.
확인해볼 필요성이 있다.
적어도 안전이 보장된 이 철책 위에서라면, 그런 실험을 한다고 해도 위험 부담이 크지 않았다.
일단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마나를 모두 채우자, 강민혁은 시스템을 조작했다.
[A급 웨어 울프]
[1마리]
익숙한 상대.
그러자 모니터에서 경고 문구가 나타났다.
[A급 몬스터 웨어 울프를 소환하시겠습니까? A급 몬스터는 2마리 이상 소환할 수 없으며, 30분 이내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자동으로 경비대가 출동합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A급 몬스터 웨어 울프를 소환하시겠습니까?]
‘Yes.’
버튼을 눌렀다.
철문 안.
그쪽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르르르륵.
거친 갈기.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붉게 충혈된 눈빛은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보았던 A급 웨어 울프와 동일했다. 철문 너머 ‘몬스터 농장’을 통해서 전달된 웨어 울프가, 철문이 열리자마자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철책 앞에 도달한 A급 웨어 울프.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성벽을 넘었던 것처럼, 엄청난 점프력으로 날아오른 A급 웨어 울프가 날카로운 발톱을 철책에 박았다.
그러자.
[ 방어 시스템 발동]
[공격]
퍽퍽퍽!!
철책 위에 설치된 거대한 철창(鐵植)이 A급 웨어 울프에게 작렬했다. 그것은 특수한 광물로 만들어낸 무기. A급 웨어 울프를 죽일 능력은 없지만, 철책을 타고 올라올지도 모르는 A급 웨어 울프를 견제하는 용도로는 충분했다. A급 몬스터. 사실 마스터키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면, 일반적인 권한으로는 A급은커녕 B급 이상의 몬스터도 소환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아악-
강민혁이 마나를 일으켰다.
그리고 사용되는 마법.
오크 전사를 상대했을 때와 동일한, 쿼드 캐스팅을 이용한 화염 마법과 바람 마법의 조합이었다.
“인페르노.”
“윈드 토네이도.”
화르르르륵.
휘이이익!
크아아아아아아악!
A급 웨어 울프가 비명을 질러댔다. 4개의 마법이 동시에 작렬하자 그도 고통스러운 모양이었지만, C급 오크 전사를 처리했을 때와는 다르게 극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정도의 위력으로도 단번에 쓰러트리지 못할 정도라면, 마법사가 왜 A급 몬스터에게 약하다고 평가받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어서.
“룬 플레어.”
쾅!
화르르르르륵!
강민혁은 연달아 마법을 적중시켰다. 이번에는 마나 동화를 사용했기 때문에 마나의 소모가 적었는데, 웨어 울프는 마법에 적중당하고도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리고 철책을 넘어서 강민혁을 공격해보려고 했지만, 어김없이 발사되는 철창으로 인해서 의도는 이룰 수가 없었다.
‘데미지가 부족해.’
웨어 울프의 상태가 좋은 것은 아니 었다.
연달아 얻어맞은 마법에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렇다고 쓰러질 기미가 보이지는 않았다.
A급 몬스터.
결국 그들을 쓰러트리려면 확실한 방법이 필요하다.
엘리샤가 사용했던, 내부를 불태우는 것과 같은 방법이.
‘하지만 그걸 사용하려면 철책 위에서는 불가능해. 적어도 10M 거리 안으로 접근을 해야 해.’
사실 지금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철책과 철창의 보호를 받는 상황에서, 웨어 울프를 쓰러트린다 할지라도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목숨을 거는 것은 정말 무모한 선택이다.
문득 아버지가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야속하더냐.”
철창(鐵窓) 안.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 강민혁과 몬스터를 가두며, 강덕철은 싸늘한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견뎌내거라. 강해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위험을 동반하지 않은 발전은 언제고 너를 위험에 빠트릴 것이고, 그렇기에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기억해라. 이 세상에서 강함이란 제일로 인정받는 가치다. 그러니 강해지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을 망설이지 마라.”
원망스러웠다.
아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아버지가 정말로 싫었지만, 그때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강민혁.
그는 그렇게 강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강해지기 위해 목숨을 건다.’
확!
철책 아래로 뛰어내리는 강민혁.
[경고! 경고!]
[안전 시스템으로 인해 경비대를 호출 하겠습니다!]
시스템의 경고음이 울렸지만, 강민혁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내렸다.
62화. < 17. 차원 너머의 보상(3) >
그린 드래곤 상황을 겪고서.
강민혁은 계속해서 똑같은 고민에 시달렸다.
‘내가 마법사의 능력만으로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릴 수 있을까?’
답은 절대 불가능하다였다.
3서클의 마법으로는 데미지를 조금도 입힐 수 없는 데다, 안전거리가 확보되지 않으면 제대로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물어뜯길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민혁은 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자신이 강화 전사로서 겪었던 경험들, 그리고 엘리샤를 비롯한 뛰어난 마법사들이 보여준 능력을 떠올리며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다.
그 결과.
‘4서클의 경지. 그것이 최소한의 조건이다.’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서클의 상관관계로 1서클 마법의 캐스팅을 생략하는 4서클의 경지면, 강민혁은 대항할 방법은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지금처럼.
캬악!
웨어 울프가 강민혁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누적된 데미지로 인해서 웨어 울프의 스피드는 처음처럼 빠르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마법사가 반응할 수 있는 속도는 아니었다. 강민혁은 목숨이 걸린 위태로운 상황임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표정으로 허공에 마나를 퍼트렸다.
화악-
“아쿠아 애로우.”
화살 다발.
물로 형성된 화살들이 생겨나더니, 그대로 웨어 울프에게 작렬했다.
펑펑!
데미지는 없었다.
겨우 1서클 마법에 충격을 받을 웨어 울프는 아니었지만, 눈에 집중된 공격에 웨어 울프의 시야가 방해를 받았다. 눈을 뜰 수 없는 상황. 그렇다고 웨어 울프가 상대를 놓칠 리는 없다. 오감이 발달되어 있는 웨어 울프에게, 시야가 없다 할지라도 후각이라는 다른 대체 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강민혁도 알고 있었다.
“포이즌(poison), 윈드.”
휘이익!
독.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맹독(猛毒)은 아니나, 마비를 일으키는 종류의 독기가 바람을 타고 퍼졌다. 효과는 극적이지 않았다.
웨어 울프의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지만, 강민혁은 애초에 독의 냄새가 웨어 울프의 후각을 방해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상대가 방향을 잃을 테니까.
“록!”
퍽!
강민혁이 뛰었다.
바위를 소환하며 웨어 울프의 전진을 방해했고, 동시에 더블 캐스팅으로 2서클 마법을 사용하였다.
“다크 포그(Dark fog).”
쿠르르릉.
안개를 소환하는 마법.
강화 문명에서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마법인데, 다크 포그는 일반적인 안개와는 다르게 블라인드(blind)의 효과가 있다. 완전한 시야의 차단. 1서클 마법 몇 가지로 시간을 끄는 사이에, 강민혁은 웨어 울프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아직 안개가 완전히 퍼지지 않은 시점. 웨어 울프가 날아오르더니, 그대로 강민혁이 있는 곳을 덮쳤다.
‘청각.’
시각과 후각 외에도 강민혁을 포착한 감각.
강민혁의 양손에서 화염의 기운이 일어났다.
“파이어 버스트.”
“파이어 랜스.”
펑!
크아아악!
웨어 울프의 가슴팍에 불꽃이 작렬했다. 애초에 강민혁은 분뇌를 사용한 상태에서, 한쪽의 두뇌로는 웨어 울프의 전진을 견제하며 다른 두뇌로는 3서클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험악하게 일그러지는 웨어 울프의 얼굴. 열이 받은 모양인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땅을 박찼으나, 그때는 이미 안개가 어느 정도 시야를 가리고 있는 상태였다.
“노이즈(noise).”
찌지지직.
시끄러운 소리가 퍼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확신을 가지고 있던 웨어 울프가, 혼란에 빠져 당황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강민혁은 고민했었다.
A급 몬스터와 갑작스럽게 맞닥트리면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일단은 안전을 확보한다.’
그건 당연한 전제 조건이었다.
그래서 캐스팅이 빠른 1서클로 상대의 전진을 방해하며 시각, 후각, 청각을 차례로 차단해버렸다. A급 몬스터라 할지라도 그 또한 생물체다. 감각을 넘어서는 능력은 없기 때문에, 자잘한 마법일지라도 그 효과는 클 터. 강민혁은 무빙 캐스팅을 활용해서 급박한 상황에서도 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숨을 죽였다.
짧은 시간.
그동안 뇌의 능력이 활발하게 살아나며, 빠르게 4서클 마법을 동시에 준비했다.
크아아아악!
웨어 울프가 울부짖었다.
시야를 가리는 안개, 코를 자극하는 독한 냄새, 그리고 귀에서 울려대는 소음까지.
강민혁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을 수 없자, 웨어 울프가 날뛰면서 주변의 모든 것을 공격했다.
콰쾅!
땅이 부서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오크의 시체가 난도질당하며, 주변으로 녹색의 피가 튀었다.
예민하게 돋아오르는 감각.
웨어 울프가 조금의 움직임이라도 포착하기 위해서, 모든 감각을 청각에 집중해 주변을 살폈다.
그 순간.
“룬 프레어.”
“룬 프레어.”
2연발 마법.
그것은 웨어 울프로서도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펑!
화르르르르르르륵!
웨어 울프가 강한 화염에 휩싸였다. 그런데 웨어 울프의 눈빛은 오히려 매섭게 빛났다. 5서클의 위력을 넘어서는 마법을 벌써 수차례 맞았음에도, 웨어 울프는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마법이 시작되는 그 위치를 포착하였다. 그리고 달려들려는 순간, 바로 옆에서 마법이 하나 꽂혔다.
“파이어 버스트.”
펑!
옆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
처음 마법이 발현된 거리와는 다른 위치였지만, 상식적으로 마지막에 마법이 사용된 위치에 상대가 있을 터. 웨어 울프의 모습이 사라졌다. 빠르게 땅을 박차더니, 마법의 시작점을 덮쳤다.
마침 다크 포그의 효과도 옅어졌다.
연기가 걷히며, 웨어 울프의 시야에 강민혁의 모습이 보였다.
콰득!
그대로 물어버리는 웨어 울프.
그런데 강민혁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강민혁의 모습이 마치 연기처럼 사라지더니, 그 자리에 남은 화 속성의 마나가 웨어 울프의 체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루전.’
그보다 먼 위치.
강민혁은 네 개의 마법을 준비하면서 3개는 공격 마법,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일루전을 사용했다.
일루전의 목적은 공격적인 것이 아니다.
일루전이 마법을 사용함으로써 상대를 유도.
웨어 울프가 일루전을 덮치는 순간, 미리 준비한 화 속성의 마나를 웨어 울프에게 뒤집어씌웠다.
판은 완성되었다.
이제는 마지막 마무리.
“룬 프레어.”
펑!
화르르르르륵!
화르르르륵!
강민혁이 준비한 마지막 마법이 웨어 울프에게 작렬하자, 웨어 울프 내부에서부터 강한 화염이 일었다.
크에에에에엑!
웨어 울프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단단한 외피로 웬만한 공격은 막아낸다지만, 내부에서 일어나는 충격까지 감당할 수는 없었다.
의도는 먹혔다.
그런데.
크르르르륵.
속에서 열기를 뿜어내며 강민혁을 노려보는 웨어 울프.
엘리샤의 방법.
그것은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완벽한 방법’이 아니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수차례 반복했던 시뮬레이션 훈련에서도, 웨어 울프는 분명히 쓰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A급 몬스터가 쉽게 공략당할 대상이었다면, 이미 그들은 마법사들에게 정복을 당했을 것이다.
캬악!
그때부터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분노한 웨어 울프는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강민혁은 1서클 마법을 활용해서 최대한 웨어 울프의 접근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게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는 않았다. 웨어 울프를 쓰러트리지 않는 한 마법사로서는 체력과 마나의 한계가 있을 테고, 결국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진퇴양난(進退兩難).
철책 아래로 내려온 것은 악수가 되었다.
위에서 안전하게 4서클 마법을 반복해서 사용했으면 웨어 울프를 쓰러트렸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당장 목숨이 위험해졌다.
화악!
훅!
“흐읍!”
강민혁이 다급하게 뒤로 빠졌다.
웨어 울프의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시야, 후각, 청각을 차단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다.
결국 같은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강민혁은 웨어 울프의 공격에 조금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점점 면역이 생기고 있어.’
저서클 마법들.
그것들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의 효과는 A급 몬스터와 같은 상대에게는 한계가 있다. 면역이 생김에 따라 웨어 울프가 점점 강민혁의 위치를 빠르게 찾아냈다. 무빙 캐스팅으로 웨어 울프에게 강력한 공격 마법을 작렬시켰지만, 웨어 울프는 아직도 쓰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절벽 끝.
강민혁이 궁지에 몰렸다.
높디높은 철책을 올라갈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강민혁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라, 생각해.’
머리가 팽팽 돌았다.
상대를 쓰러트릴 방법.
저 단단한 외피를 뚫고, 웨어 울프를 쓰러트릴 그런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였다.
강민혁은 번뜩 하나의 생각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것을 마법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시련의 공간.
강민혁은 그곳에서 마나의 흐름을 보고 월하 심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일점에 마나를 모아서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낸 흐름을 마법에 적용시키면 어떻게 될까?
그건 단순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할 지금의 상황에서는, 시도할 수밖에 없는 도박이기도 했다.
‘해보자.’
“다크 포그.”
쿠르르릉.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그 정도로는 면역된 웨어 울프를 막을 수 없기에, 일루전을 소환해서 웨어 울프를 멀리 떨어트렸다.
찰나의 시간.
뇌의 능력이 활성화되었다.
양쪽으로 쪼개진 뇌가 각기 다른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힘을 집중했다.
그러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캐스팅이 완성되었다.
둘로 나누어진 사고는 멀티 캐스팅의 이점뿐만 아니라, 하나에 집중하는 것에도 효과가 있었다.
이윽고 완성된 마법.
강민혁은 시련의 공간에서 보았던 현상 중에 ‘폭발’의 현상을 일으켰다.
그러자.
퍼엉!
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웨어 울프가 그 폭발에 휩쓸리며, 애처롭게 비명을 질렀다.
크에에엑!
‘이게 먹히지 않으면 난 죽는다.’
입이 바짝 말랐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마나를 긁어모으며 마나를 일으키는 순간, 연기 안에서 웨어 울프의 모습이 튀어나왔다.
툭.
풀썩.
쓰러지는 웨어 울프.
새카맣게 타버린 웨어 울프의 모습에서, 더 이상 생명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지막 일격은 도박이었다.
일점에 힘을 모을 경우 심법의 힘이 강해진 것처럼, 마법의 위력도 강하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
그런데 그게 먹혔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웨어 울프의 모습에, 강민혁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털썩.
“후욱, 후욱."
숨을 헐떡였다.
몸이 떨렸다.
아무리 강심장인 강민혁이라지만, 긴장이 풀리면서 찾아오는 떨림까지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방금의 마법은 대체 뭐지?’
폭발의 현상.
그것의 위력은 4서클의 것이 아니었다.
엘리샤가 사용했던 마법처럼, 폭발의 위력이 6서클에 달했다.
‘이건 등급 외 마법이 분명해.’
등급 외.
서클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서클에 따라서 위력이 달라지는 마법.
마법 문명에서도 보물로 취급하는 등급인데, 대표적으로 강민혁이 터득한 일루전이 그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다.
폭발을 사용할 때 강민혁은 엄청난 양의 마나가 소모되었다. 네 개의 서클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강한 폭발력을 일으켰고, 그때 사용한 마나는 4서클의 소모량보다 3배 이상이나 높았다.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강민혁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하, 하하하.”
성공했다.
A급 웨어 울프.
그를 상대하는 것은 도박이었지만, 죽임의 위기에서 강민혁은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비기를 얻었다.
물론 아직도 부족한 점은 많다.
웨어 울프가 아니라 마나를 사용하는 몬스터였다면 발을 묶는 방법이 대부분 먹히지 않았을 테고, 2마리 이상의 A급 몬스터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제한적인 조건에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린 것이지만,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던 일을 성공시켰기에 강민혁으로서는 기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강하다.
강화 문명에서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들에 비해 마법의 경지는 낮을지 몰라도, 자신은 그들을 뛰어넘는 힘을 갖추었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자.’
곧 경비대가 도착할 터.
강민혁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전력이 밝혀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비상 사다리를 내려서 철책 밖으로 빠져 나왔고, 다른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훈련장을 나갔다.
그리고 몇 초 뒤.
정말 간발의 차이로 경비대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훈련장에 펼쳐진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대체.”
수백 구의 오크 사체.
그것까지는 이해한다.
몬스터 웨이브 훈련장에서는 익히 있었던 일이다.
문제는 그중에 하나.
바로 A급 웨어 울프가 새카맣게 탄 채로 쓰러져 있다는 것이다.
“설마 마법으로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린 건가?”
하나의 의문.
그것이, 마법 아카데미를 발칵 뒤집었다.
63화. < 18. 희망을 찾아 모이는 사람들 >
사건 발발 30분 뒤.
학과장 최병호가 헐레벌떡 훈련장을 찾았다.
“정말이야? 정말로 A급 웨어 울프가 마법에 당해서 죽어있었다고?”
“예."
“어떻게 그런 일이!”
최병호의 표정이 경악으로 얼룩졌다.
방금 전.
훈련장의 소식을 전달받은 최병호는 머릿속에서 벼락이 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A급 몬스터가 소환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당혹스러운 소식인데, 그걸 처리한 상대가 마법사로 추정된다니. 도무지 보고받은 정보만으로는 믿을 수가 없어서, 그는 한달음에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경비대의 대장.
강화 전사 윤경호가 말했다.
“비상 신호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이후였습니다. 140구의 오크 사체와 1구의 A급 웨어 울프 사체. 그들 모두 공통적으로 화염 마법에 당한 것처럼 새카맣게 불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도 A급 웨어 울프는 강화 전사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감식반을 불러서 사체를 확인한 결과 오라에 당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예. 마법사에게 당한 것이 확실합니다.”
“어허허.”
최병호의 손이 덜덜 떨렸다.
A급 몬스터.
그 괴물이 마법사에게 당했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6서클, 6서클 마법사가 나타난 거야!’
확실했다.
A급 몬스터는 5서클 마법사가 떼로 몰려들어도 쓰러트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웨어 울프의 외피를 새카맣게 불태웠다면, 이 세상의 마법사들이 그리도 간절하게 바라던 6서클 마법이 발현되었다는 뜻일 터. 최병호의 표정에 욕심이 떠올랐다. 윤경호의 가설이 정녕 사실이라면, 이건 마법 학계를 발칵 뒤집을 만한 사건이다.
“6서클 마법사는 어디에 있지?”
“사실 마법사의 정체를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뭐?”
이에 대해서는 윤경호도 미스터리였다.
현장에 도착한 윤경호는, 상황을 파악한 이후 가장 먼저 한 것이 시스템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시스템 정보에 따르면 사용자는 1시간 30분 동안 D급 오크 50마리, C급 오크 전사 90마리, A급 웨어 울프 1마리를 소환했습니다. 실제로 처리한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만,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는 중간에 마나 회복의 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사용자가 ‘시크릿 모드’를 사용했다는 겁니다. 얼만큼의 몬스터를 소환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었지만, 어떤 사용자가 몬스터를 소환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윤경호의 시선이 사체를 향했다.
A급 웨어 울프는, 그 자체만으로도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A급 웨어 울프가 소환된 것으로 보아, 사용자는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스터키.
훈련장에서 난이도 제한을 해제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
사실 A급 몬스터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절대 소환할 수 없다. 특수한 상황을 위해서 겨우 몇 마리만 배치한 상황이었고, A급 몬스터를 소환할 때는 충분한 경비 병력과 마스터키를 보유한 사람이 필요하다. 보통은 강화 전사가 ‘마스터(master)’의 자격을 증명할 때 A급 몬스터를 소환하고는 한다.
“혹시 우리에 문제가 생긴 거 아니야?”
우리.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을 뜻한다.
서울숲 아래.
A급의 샐러맨더가 서울숲의 모든 나무를 불태우면서, 그 아래 잠들어 있던 수많은 던전들의 입구가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던전의 몬스터를 모두 소탕하였고, 그 위에 헌터 아카데미를 건설하면서 소멸하지 않은 던전을 훈련의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훈련용 몬스터의 육성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게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1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강화 전사에만 매달렸던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도 끊임없는 연구를 진행하였고 몬스터들의 2세대를 활용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몬스터 또한 동물(動物)이다. 먹이를 먹어 에너지를 충족하고, 교미를 하며, 새끼를 낳는다. 그 새끼를 한데 모아 우리를 만들었고, 그곳에 인공적인 던전을 형성해서 필요한 상황에 따라 훈련에 공급하는 것이 바로 훈련 시스템의 기반이라 할 수 있다.
수성전 훈련 때.
김무진은 ‘오크 우리’를 개방했다고 말했다.
그 말인즉, 오크 우리와 연결된 게이트의 통로를 열어서 그들이 끊임없이 소환되도록 만든 것이다.
고로 우리에 이상이 생겼다면.
독방에 가두어진 A급 웨어 울프가 홀로 탈출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닙니다. 우리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결론이 간단해진다.
마스터키를 보유한 사람.
그중 한 명이 이 사건의 주인공일 터.
최병호가 흥분으로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너에게 이번 수사의 전권을 일임하겠다. 반드시, 반드시 이번 사건의 주인공을 찾아내도록.”
“예."
문책을 위함이 아니다.
마법사의 희망.
최병호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마스터키.
마법사 중에서 그 키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총 5명이다.
3명은 학과장 최병호를 포함한 현재 아카데미 종사자인데, 나머지 2명의 신분이 조금 애매했다.
‘강민혁.’
처음에 그를 명단에 올렸다.
아카데미에서 상당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인데, 하필이면 사건 당시 강민혁의 알리바이가 불분명했다. 수업을 결석한 상황. 그래서 처음에는 강민혁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알리바이를 떠나서 강민혁의 힘으로는 A급 웨어 울프를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강민혁은 3서클 마법사야.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발전 속도인데, 설령 4서클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A급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야. 웨어 울프 사체에 남은 흔적은 분명히 우리가 상상으로만 생각하던 6서클 마법의 위력이었어. 알리바이에 상관없이, 강민혁은 A급 몬스터를 처리할 능력이 없어.’
그렇다면 딱 한명.
공교롭게도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 아카데미를 방문한 상태였다.
윤경호가 말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 아무리 아니라고 하셔도, 상황이 유재명 대마법사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유재명.
마법 학과가 배출해낸 최고의 재능.
아카데미를 다닐 당시에도 천재라고 불리던 유재명은, 졸업 이후 서른 초반의 나이에 5서클의 경지에 오르는 경악스러운 성장 속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마법 학과의 명예 교수로 선정됨과 동시에 마스터키와 같은 상당한 권한을 부여 받았고, 아직도 아카데미와 교류하고 있었다.
그의 나이는 벌써 마흔 초반.
10년 동안 5서클의 경지에 머무른 유재명이라면, 현재 가장 유력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쾅!
“내가 아니라니까! 나도 A급 웨어 울프를 처리했다는 그 녀석의 낯짝 좀 확인하고 싶다. 너도 잘 알잖아. 내가 얼마나 6서클 마법에 목을 매는지, 그것이 내게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를.”
유재명이 책상을 내리쳤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빛이, 격정적인 감정을 내비쳤다.
안다.
윤경호도 유재명이 6서클 마법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정황상 범인은 그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마스터키를 보유한 사람 중에 A급 웨어 울프를 처리할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유재명 대마법사님 밖에 없는데, 만약 대마법사님이 하셨다면 굳이 이번 일을 감출 이유가 없겠지요. 마법사가 A급 몬스터를 처리했다는 것. 그것은 마법사에게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일이니까요.”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그래서 나 말고 의심되는 사람이 있나?”
“죄송합니다만, 없습니다. 있었다면 유재명 대마법사님을 이렇게 붙잡고 늘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유재명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는 진심으로 답답한 모양인지, 무엇이든지 도와줄 테니 얼른 그 범인을 찾으라고 닦달했다.
‘유재명은 아니야.’
처음에는 유재명을 의심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진실을 감출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렸지만, 유재명의 반응에서 6서클 마법에 대한 간절함이 보였다. 사건이 발발하자마자 한달음에 뛰어온 사람이다. 정말 6서클 마법으로 A급 웨어 울프를 처리했냐고 재차 되묻던 유재명의 모습은, 이번 사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만약 본인이 범인이고 이번 일을 감추고자 했다면, 대단한 연기자가 아닌 이상에야 6서클 마법에 대한 간절함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알겠습니다. 일단 결과가 나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유일하게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
유재명조차도 이번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라면, 사실상 의심될 만한 인물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이런 대단한 업적을 이루고도 왜 자취를 감춘 거야?’
답답했다.
마스터키.
결정적인 단서 덕에 금방 찾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건은 생각보다 쉽게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재명.
조사를 받고 나온 그는 분통을 터트렸다.
“대체 누구지? 누가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린 거지?”
그 소식은 그에게 엄청난 희망이었다.
6서클 마법.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유재명은 전 세계를 떠돌아다녔다. 아카데미의 명예 교수라는 직책은 다른 단체들과 활발한 교류를 할 수 있는 다리를 놓아주었고, 그는 6서클 마법의 단서를 찾고자 수년의 시간을 투자하였다. 그러나 알아낸 것은 전혀 없었다. 그 과정에서 유재명의 도움을 받아 5서클 마법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그건 유재명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분명히 6서클 마법이었어. 그 정도의 마법이 아니고서야, A급 웨어 울프를 새카맣게 불태우는 것은 불가능해.’
꽈악.
그가 심장을 움켜잡았다.
그의 심장.
그 주변에는 현재 6개의 고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말처럼 그는 정말 천재였고, 지금으로부터 무려 5년 전에 6서클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심장에는 6개의 서클이 있었으나, 알고 있는 마법이라고는 5서클이 한계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서 마법 학과를 방문했던 이유가, 현재 마법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강민혁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강민혁.
대학자(大學者)라고 불리는 그의 능력이라면, 6서클 마법의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실마리보다는, 6서클 마법을 알고 있는 이번 사건의 주인공이 필요했다.
‘내가 직접 알아보자.’
몸이 달아올랐다.
윤경호는 능력이 없는 인물이 아니지만, 그의 수사를 기다리고 있을 만큼 여유가 남아있질 않았다.
단서는 똑같다.
마스터키.
그는 가장 먼저 강민혁을 찾았다.
그리고, 그로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대답을 들었다.
“제가 했습니다.”
“뭐라고?”
“마스터키를 분실했거나, 누구를 빌려준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A급 웨어 울프를 처리했습니다.”
".........?!"
눈을 부릅떴다.
순간 사고가 정지되는 기분이었다.
강민혁을 찾은 이유.
혹시 그의 마스터키를 다른 사람이 이용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 또한 겨우 17살에 불과한 강민혁이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렸을 거라는 가능성은 애초에 배제했는데, 대답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강민혁이 말했다.
“이해합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기는 하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화악-
히공에 흩뿌려지는 마나.
강민혁이 캐스팅을 진행하는 모습에, 유재명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폭발(爆發).’
등급 외 마법.
시동어를 외치진 않았다.
마법의 힘이 강민혁 앞에 한데 모이는 상황에, 유재명이 눈을 부릅떴다.
“서, 설마.”
강하게 응축된 마나.
그것은 5서클을 넘어서는 힘이었다.
유재명은 안목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마나의 양과 넘실거리는 힘만 보더라도, 그것이 5서클을 넘어서는 마법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버, 벌써 6서클의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아닙니다. 아직 6서클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위력을 낼 수 있는 마법을 개발했을 뿐입니다. 물론 6서클 마법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바라는, 6서클의 세계를 말이죠.”
처음이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강민혁이 일으킨 ‘폭발’의 힘을 확인한 이상, 강민혁의 말을 거짓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이제 제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64화. < 18. 희망을 찾아 모이는 사람들(2) >
사건 직후.
몸을 잠시 피한 강민혁은 생각을 정리했다.
‘등급 외 마법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기연이었다.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리기 전만 하더라도 강민혁은 자신의 ‘검’이 마법보다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6서클의 위력을 뿜어내는 등급 외 마법이라면 강화 전사들도 무시할 수 없을 터. 강민혁은 대세를 거스를 수 있는 힘을 손에 쥐었다.
시련의 공간.
그곳에서 확인한 마나의 흐름은 총 다섯 가지였다.
[폭발]
[유성우]
[태산]
[지진]
[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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