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a 6
그가, 강민혁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보통의 결투 양상은 스피드가 느렸다.
검술 학과생들은 자신만만했다.
캐스팅을 끝까지 보고 피하더라도, 마법을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
설마 마법에 적중되어도 2서클의 데미지는 크지 않다 보니, 그들은 여유를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광일은 달랐다.
그는 시작부터 전력을 다했다.
‘넌 단 한번도 마법을 성공시키지 못할 거야.’
타닥.
빠른 움직임.
처음부터 좌표 계산이 힘들도록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최광일 정도라면 강민혁을 가볍게 발라버릴 수 있는 실력자인데, 그가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 의외라고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강민혁이 항상 1위를 차지하던 그때, 2위의 자리에는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진 최광일이 있었다.
사삭.
빨랐다.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마법 학과생들의 동체 시력으로는, 최광일의 움직임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였다.
강민혁의 시선이 정확히 최광일을 포착했다.
그러자 마나가 일순간 붉게 타올랐다.
“파이어 볼.”
화르르륵!
불길이 일었다.
강민혁의 마법은 그대로 최광일을 덮쳤다. 그것도 최광일이 움직이는 방향까지 예상한 공격. 순간 최광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예 좌표가 엇나갈 줄 알았는데, 강민혁의 마법은 정확했다.
‘그래도 강화 전사 출신이라 이건가.’
하지만.
“겨우 이걸로는 안 돼.”
홱!
퍼엉!
간발의 차이로 최광일이 마법을 피했다. 좌표 계산은 정확하였으나, 그렇다고 최광일이 마법에 적중당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리에서 일어나는 마나. 최광일의 몸이 인간의 속도를 넘어서더니 마법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다시 달려들려는 순간, 그의 앞에 강력한 전기 다발이 일어났다.
“라이트닝 쇼크.”
찌지직.
“크윽!”
전기 다발이 그대로 최광일을 덮쳤다.
절묘한 연계 공격.
파이어 볼을 피하는 데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최광일로서는, 라이트닝 쇼크는 피할 수가 없었다.
‘더블 캐스팅이구나!’
잠시 간과했다.
선공은 하나의 마법으로 제한한다는 규칙이 없다.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은 룰에 어긋나지 않는 방법이었고, 최광일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예상했다고 해도 이번 공격은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파이어 볼로 방향을 유도하고 라이트닝 쇼크로 공격. 파이어 볼이 허초라고 생각되었을 정도로, 둘의 연계 공격은 절묘하게 최광일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허나.
빠득.
최광일은 라이트닝 쇼크에 쓰러지지 않았다.
체내의 마나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체내로 파고드는 전기로부터 몸을 보호하였다.
강화 전사.
그들이 마법사의 천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마법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끝이다.’
확!
최광일이 땅을 박찼다.
강민혁은 더블 캐스팅으로 2번의 마법을 사용하였다. 이제는 다음 마법까지 딜레이가 있을 터. 크게 부풀어 오른 다리가 순식간에 강민혁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건 인간의 스피드가 아니었다. 강화액으로 단련된 초인. 최광일은 강민혁에게 5초 이상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끝났다.
상식적으로는 그래야 맞다.
그런데 앞으로 달려나가던 최광일의 몸이 순간 휘청거렸다.
“록.”
퍽!
"..........?!"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정확히 시야의 사각지대.
발밑이 보이지 않을 그 타이밍에, 바닥에서 툭 튀어나온 바위가 최광일의 발에 걸렸다.
만약 평소였다면 바위를 가볍게 피했을 것이다. 초인의 반응 속도는 그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지만, 이번에는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찌릿하게 올라오는 통증. 그것이 자신의 반응 속도를 느리게 만든다는 생각에, 최광일은 순간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설마.’
라이트닝 쇼크.
그건 함정이었다.
몸을 마비시켜서, 반응 속도를 느리게 하려는 속셈.
의도는 통했고 최광일의 전진은 저지되었다.
균형을 잡지 못해서 잠시 휘청거리는 그때, 최광일이 고개를 듦과 동시에 강력한 빛이 터졌다.
“플래시(flash)!”
번쩍!
"악!"
머리가 팽 돌았다.
강렬한 빛.
플래시는 공격력이 없는 마법이었지만,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으면 시야가 잠시 멀어버린다.
그리고.
퍽!
머리를 때리는 둔탁한 충격.
그게 1서클 마법 ‘록’을 활용한 공격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최광일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이 개새끼가.’
농락.
지금은, 그렇게 밖에 느낄 수가 없었다.
강민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파이어 볼.
라이트닝 쇼크.
록.
플래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연계 공격은, 모두 강민혁의 철저한 계획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첫 공격은 먹히지 않는다.’
강화 전사.
그들의 육체적인 능력은 대단하다. 특히 최광일 정도 되는 실력자가 방심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파이어 볼의 적중을 바라는 것은 과한 기대다. 그래서 강민혁은 의도적으로 파이어 볼을 허초로 사용하였다. 상대를 한쪽으로 몰아넣으려는 의도. 최광일은 선공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서 두 번째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고, 그렇게 라이트닝 쇼크에 맞았다.
최광일의 생각은 맞았다.
굳이 라이트닝 쇼크를 택한 것은, 데미지가 크지 않더라도 ‘마비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강화 전사는 2서클 마법 정도로는 쓰러지지 않아.’
마법의 위력이 3서클에 버금가도 그것은 똑같다.
최광일은 표정을 잠시 일그러트릴 뿐, 금방 회복하고서 강민혁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차례로 이어진 마법.
록.
플래시.
록.
그건 대단한 마법들이 아니다.
겨우 1서클 마법에 불과하고, 서클의 상관관계와 기본 원소 마법임을 생각하면 오래 걸려도 3초 이상 걸리지 않는 마법들. 순식간에 완성된 마법은 최광일의 발을 묶는데 매우 적절하였다. 하나하나를 따지자면 대단한 수는 아니지만, 그게 한데 모여 최광일의 발을 묶었다.
‘내게는 3서클 마법을 캐스팅할 시간이 필요하다.’
단 하나의 목표.
선공에서부터 1서클 마법으로 상대의 발을 묶은 이유는, 충분한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화악-
마나가 흩뿌려졌다.
강민혁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마나의 체계를 갖추며 3서클 마법을 형성하였다.
“파이어 랜스(Fire Lance).”
화르르륵.
3서클 마법 중 가장 강력한 마법.
창의 형태를 한 불길이 타올랐다.
이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강민혁은 더블 캐스팅을 통해서 한쪽에서는 1서클 자잘한 마법으로 최광일을 견제하면서, 나머지 한쪽으로는 파이어 랜스를 캐스팅 하였다. 강민혁도 아직 3서클 마법사다 보니 서클의 상관관계를 파이어 랜스에 적용할 수 없었지만, 짤짤이로 벌어들인 시간이면 캐스팅을 마칠 시간으로는 충분했다.
완벽한 판.
파이어 랜스가 그대로 최광일에게 작렬했다.
콰앙!
화륵 화르르르르륵!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최광일이 착용한 마법 면역 보호구로도 보호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4서클에 버금가는 위력.
제아무리 강화 전사라 할지라도, 아직 1학년에 불과한 수준의 강화 전사가 버텨낼 공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확!
“이 개새끼가!”
최광일이 화염을 뚫고 나타났다.
수석은 역시 수석이었다.
마법에 적중당하기 직전.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시야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빠르게 마나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였고, 스텝을 밟아 위험 지역에서 벗어났다. 그럼에도 충격은 대단했다. 겉옷이 까맣게 타버렸고, 속이 매스꺼울 정도의 충격이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상대는 회심의 일격을 사용했다.
그것이 먹히지 않았다면, 승산은 자신에게 있는 것일 터.
마나를 최대한으로 활성화시키자, 최광일이 어느새 강민혁의 앞에 도달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이젠 진짜 끝이다.’
승리를 확신한 최광일이 강민혁을 베어버리려는 순간, 최광일이 눈을 부릅떴다.
".........?!"
찰나의 시간.
최광일의 시야에 두 가지의 사실이 보였다.
첫 번째는 강민혁이 이제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민혁은 처음에 위치한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마치 내 대응을 예상했다는 눈빛이야.’
소름 돋을 정도로 침착한 눈빛.
강화 전사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마법사에게 접근하기만 한다면, 무조건 승부가 끝났다는 생각.
그건 착각이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고, 강민혁은 옆으로 몸을 비트는 간단한 동작으로 최광일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자 최광일의 가슴이 열렸다.
그 넓은 가슴팍을 향해, 강민혁은 마나를 일으켰다.
“파이어 볼트.”
화르륵!
1서클 화염 마법.
그러나 그건 모두가 아는 파이어 볼트의 형태를 하지 않았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화염.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이 요동치는 그 화염은, 강민혁이 발표했던 ‘마법의 형태 변화’를 사용한 것이었다.
‘제길.’
최광일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번 공격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파이어 볼트가 최광일에게 작렬하는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퍼엉!
화르르르르르르륵!
연기가 매캐하게 올라왔다.
밖에서 지켜보던 학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
당황한 눈동자가 상황을 파악하려고 열심히 움직이던 그때, 연기가 가라앉으며 주변의 상황이 보였다.
“아."
탄식을 터트리는 검술 학과생.
연기의 사이로, 바닥에 쓰러진 최광일과 그를 내려다보는 강민혁의 모습이 보였다.
48화. < 13. 천적을 상대하는 방법(3) >
“설마...최광일이 진 거야?”
불신으로 얼룩진 음성.
결투를 지켜보던 검술 학과생들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잃었다.
최광일.
검술 학과 1학년생들 중에서는 모두가 인정하는 엘리트가, 지금 바닥에 쓰러져서 일어나질 못했다.
사고가 멈추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아직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의료팀!”
정적을 깬 것은 바로 김무진이었다.
김무진의 다급한 음성에 옆에서 대기하던 의료팀이 뛰어왔다. 마법 면역 보호구 덕분에 최광일의 피부가 직접적으로 화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새카맣게 타버린 옷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그의 충격이 대단했음을 보여주었다. 숨을 간신히 헐떡이고 있는 최광일. 초점이 흐릿한 그의 눈동자에, 의료팀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검술 학과생의 부상.
참 낯선 광경이었다.
불과 어제만 하더라도, 생사 결투에서 최광일이 다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이런 경우가 있었던가?’
단언컨대 없었다.
간혹 부상을 당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절대 최광일의 수준은 아니었다. 최광일은 라이트닝 쇼크를 맞았고, 파이어 랜스에 휩쓸렸으며, 마지막 파이어 볼트의 마나 폭발로 큰 데미지를 입었다. 단단한 강화 전사의 외피로도 버틸 수 없는 데미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광일이 폭발에 휩쓸리는 와중에도 마나로 본인의 몸을 보호했다는 것이다.
“일시적인 쇼크입니다. 충격이 심해서 잠시 요양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큰 부상은 아닙니다.”
“하아.”
“다행이다.”
의료팀의 말에 학생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들은 문득, 예전에 건의되었던 안건이 떠올랐다.
“생사 결투에 사용되는 강화 전사들의 마법 보호구가 너무 부실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마법에 제대로 적중당할 경우,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 마법 보호구 투자에 관련된 안건은 무산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화 전사들이 마법 학과생들에게 호락호락 당할 일이 없다는 것. 실제로 100년의 역사 동안 그런 일은 많지 않았기에, 지금의 마법 보호구로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2서클 정도의 위력으로는 데미지가 크지 않은 데다, 강화 전사의 외피는 그 자체로도 단단하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마법 보호구의 부실함이 왜 거론되었는지, 바닥에서 숨을 헐떡이는 최광일의 모습이 그걸 증명했다.
최광일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충분한 치료를 위한 조치였는데, 학생들은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강민혁은 최광일과 근접한 상황에서 파이어 볼트를 터트렸어. 그런데 어떻게 강민혁만 무사할 수 있지? 실드(shield)와 같은 방어 마법을 사용하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미스터리였다.
강민혁이 어떻게 이겼는지.
그리고 마지막 폭발에서 강민혁은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는지.
이 대결은 시작부터 끝까지 미스터리투성이었다.
확실한 사실은.
“결투 끝. 승자는 마법 학과의 강민혁.”
강민혁이 승리했다는 것.
훈련장에서 내려가는 강민혁의 뒷모습을, 검술 학과생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이 결과를 납득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충분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다.
훈련이 종료되었다.
이전에도 그랬듯, 김무진은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학생의 영상을 설명해줄 의무가 있었다.
“지금부터 최광일과 강민혁의 영상을 보여주겠다.”
팟.
영상이 재생되었다.
이번 생사 결투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강민혁의 영상. 검술 학과생은 물론이고, 마법 학과생들도 이번 영상만큼은 집중해서 보았다. 강민혁의 특별함이 무엇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라이트닝 쇼크.”]
[찌지지직!]
“강민혁의 선택은 상당히 영리했다.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최광일을 일격에 적중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파이어 볼로 일부러 최광일의 방향을 유도했다. 왼쪽에서 날아오는 공격. 최광일로서는 당연히 반대 방향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고, 라이트닝 쇼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강민혁의 함정이 시작되었다. 최광일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지.”
학생들이 넋을 잃었다.
실제로 볼 때는 그냥 마법을 빠르게 사용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설명을 들으니 상황이 달리 보였다.
강민혁의 모든 선택은 철저한 계산 하에 이루어졌다.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상대가 자신의 공격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대와 주변의 상황을 예상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하였다. 급박하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최광일은 최선의 선택을 내렸으나, 그것은 오히려 예상하기 쉬운 선택이기도 했다.
상대의 최선을 공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싸움의 기본’ 중 하나이니 말이다.
“와."
“캐스팅 속도가 왜 이렇게 빨라?”
“1서클 마법을 캐스팅하는 데 3초도 걸리지 않는 것 같은데?”
충격적이었다.
학생들은 최상급 마법의 존재도, 서클의 상관관계라는 이론도 모른다.
강민혁이 빛의 속도로 캐스팅을 끝내는 모습이, 그들로서는 다른 세상의 기술을 보는 것 같았다.
마지막 클라이막스.
파이어 랜스가 작렬한 이후, 최광일이 강민혁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때가 가장 의문스러운 부분이었다. 근접전에서 마법사가 약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강민혁은 어떻게 최광일의 일격을 피했으며, 파이어 볼트의 마나 폭발에서 혼자만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윽고 그 진실이 드러났다.
[홱!]
간발의 차이.
공격을 피한 것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었다.
강민혁의 차분한 시선.
그것이 끝까지 최광일의 공격을 주시하였고, 약간의 움직임만으로 공격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파이어 볼트를 형성하였다. 과도한 형태 변화로 마나 폭발의 기미가 보이는 그것은, 최광일에게 닿자마자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거의 3서클에 달하는 위력.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로 강민혁의 모습이 사라지기 직전,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가 정확히 보였다.
“어?”
[확!]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강민혁이 최광일의 옷을 잡아채서 끌어당김과 동시에, 바로 그의 뒤로 몸을 피했다.
찰나의 순간.
강민혁은 마나 폭발과 자신의 사이에, 최광일이라는 고기 방패를 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최광일은 본능적으로 마나 폭발에서 버티기 위해 마나를 끌어 올렸고, 그러한 노력이 조금의 열기도 강민혁에게 흘려보내지 않았다. 덕분에 강민혁은 특별한 방법을 사용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그을림만으로 마나 폭발을 버틸 수 있었다.
김무진이 말했다.
“사실 나도 이 상황을 보고 매우 놀랐다. 강민혁은 당연히 실드 마법과 같은 방어 수단으로 본인의 몸을 지켜야 한다는 상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최광일의 허를 찌르는 움직임으로 본인의 몸을 보호하였다. 나는 강민혁이 우리에게 ‘실전 마법의 정수’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감탄했다.
김무진은 폭발 당시 어떤 상황인지 단번에 알아챘으나, 강민혁의 방법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대담한 선택이었다.
바로 앞에서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당황한 최광일을 고기 방패로 사용하다니.
그건 마법사라는 편견에 얽매이지 않은 강민혁이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마법사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상대가 근접했을 경우, 근접전에 약한 마법사로서는 더 이상 대항할 수 없을 거라는 나약한 생각. 그건 언제고 마법사를 죽음에 몰아넣을 매우 치명적인 실수다. 마법 학과생들은 오늘 강민혁이 보여준 모습을 기억해라. 마법사는 멀리서 마법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직접 움직여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이 있다. 편견에 얽매이지 않은 사고가, 마법사로서 불가능했던 일들을 해결해줄 것이다.”
늘 해주고 싶었던 말이다.
항상 생사 결투를 진행하다 보면, 마법이 실패하자마자 결투를 포기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안타까웠었다.
그리고 오늘.
강민혁이 마법사의 이상을 보여주었다.
김무진의 시선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강민혁을 향했다.
“강민혁. 내가 보았던 수많은 마법 학과생들 중에, 단언컨대 오늘 네가 보여준 모습이 가장 최고였다.”
진심 어린 말.
합동 수업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강민혁은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주인공으로 남았다.
이번 결투.
김무진은 강민혁을 보고 마법사의 이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강민혁은 최광일이라는 쉽지 않은 상대를 두고, 본인의 전력을 모두 드러내지 않았다.
‘이겼어.’
생사 결투.
강화 전사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지만, 강민혁은 마법사의 특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를 지목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했다. 보통은 본인의 성향에 맞는, 그래도 조금은 만만한 상대를 고르라는 의미에서 있는 것인데, 강민혁은 최광일을 선택함으로써 특혜를 날렸다.
그리고 선공권.
선공권의 특혜는 활용하되, 강민혁은 대신 무빙 캐스팅을 사용하지 않는 제약을 걸었다.
‘이번 결투의 의미는 커.’
결투는 격렬했다.
최광일은 끝까지 반격을 해왔으나, 강민혁은 자체 리미트를 해제하지 않은 채로 최광일을 제압하였다. 움직인 것이라고는 마지막 공격을 피한 정도. 가만히 서서 최광일 정도 되는 강자를 쓰러트렸다는 것은 의미가 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수호문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아직도 강민혁은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번 결투를 통해 강민혁은 마법사의 가능성을 보았다.
할 수 있다.
지금은 겨우 3서클이다.
앞으로 4서클, 5서클, 그리고 미지의 6서클까지.
강화 전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마법을 익히고 무빙 캐스팅까지 사용한다면, 1대1 대결이라 할지라도 강화 전사들은 감히 강민혁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마법 학계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1대1에서 강한 마법사란, 현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하아.”
얼굴이 상기되었다.심장이 쿵쿵 뛰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서 멈추어졌던 시간이, 이제는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도 모자라.’
갈증이 일었다.
발전했다고 해서, 강민혁은 만족하지 못했다.
강민혁이 살아왔던 세상은 넓다.
대해(大海)와도 같은 그 세상에서, 강민혁의 성취는 절대 대단하지 않았다.
현재 수호문의 후계자.
이준호.
그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강민혁의 능력은 아직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더, 더 노력하자.’
본인을 채찍질했다.
성취감이 가득 차오르는 지금, 강민혁은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을 더욱 담금질했다.
언제고.
자신의 기준에서조차도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리라.
강민혁은 훈련이 끝나고 피곤할 법도 하건만, 쉬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마나 룸 훈련을 진행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성장의 원동력은, 단순히 클리스만의 지식 덕분만은 아니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클리스만과 약속한 날이 되었다.
그런데.
[너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
허름한 방 안.
그곳에는 클리스만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49화. < 14. 뒤바뀐 재능 >
책상 위.
덩그러니 놓여있는 한 권의 책에, 강민혁은 의자에 앉아 책장을 펼쳤다.
[수호문의 심법. 그걸 앞에 두고 한참 동안 고민했다. 이 수호문의 심법이라는 것이, 마법에 재능이 없는 내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줄까. 만약 이번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나는 자괴감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에 대한 가능성은 이미 체념한 사실. 괜한 기대감에 내 감정이 휘둘리기는 싫지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이상 나는 수호문의 심법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익숙한 필체.
클리스만의 글이었다.
강민혁이 본래의 세상에 돌아가 있는 동안, 그는 본인의 행적을 일기의 형태로 기록해두었다.
[1일 차. 수호문의 심법을 사용했다. 심법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는 알겠으나, 아직은 마나가 내 의지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심법의 기본.
마나를 움직이고, 마나로 육체를 단련하며, 마지막에는 일부의 마나를 단전(丹田)에 축적한다.
보통 이러한 과정에 적응하는 데 사람들은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마나라는 무형의 힘을 느끼고 움직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원하는 위치에 축적하려면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민혁은 클리스만에게 방향을 제시하되, 바로 성과를 얻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3일 차. 마나가 내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호문의 심법은 마나 명상과 비슷하면서도 모든 것이 다르다. 마나 명상은 마나를 심장 주변에 형성해서, 마법의 기반이 되는 서클을 단련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수호문의 심법은 ‘인간의 육체’ 그 자체를 단련시키고 있었다.]
‘벌써 심법을 운용한다고?’
놀랐다.
수호문 제일의 천재라고 불리는 이준호조차도, 심법에 완전히 적응하는 데 1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에 반해 강민혁은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었는데, 클리스만은 겨우 3일 만에 심법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나 명상과 출발점이 비슷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클리스만의 재능이 범상치 않기 때문인 걸까.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가라앉히며, 강민혁은 다음 책장을 넘겼다.
[10일 차. 내 육체가 변하고 있다. 피부가 예전과는 다르게 단단해지고, 전신에서 힘이 넘친다. 스피드는 빨라졌으며, 시력이 떨어졌던 내 눈도 점차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수호문의 심법은 내가 사는 세상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잠깐.’
육체 강화.
클리스만이 겪고 있는 현상은 강민혁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다.
굳이 심법이 아니라 할지라도, 강화액을 주입한 강화 전사들이 모두 경험하는 현상. 이를 인간에서 초인의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라 말한다. 그런데 강민혁이 당황한 이유는 클리스만이 강화액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은 인체에 주입한 강화액을 통해서 육체를 강화시키는데, 클리스만은 어떠한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육체를 강화시키고 있었다.
문득,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말이 떠올랐다.
“수호문의 심법은 강화 문명 이전, 아주 오랜 역사로부터 비롯된 가문의 비기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강화액이라는 특수한 방법을 통해서 모두가 수호문의 심법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으나, 과거만 하더라도 수호문의 심법은 소수의 선택 받은 자들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이었다.”
특권.
그것은 재능을 말한다.
강화액이 아니라 할지라도, 심법으로 마나를 느끼는 축적하는 부류.
클리스만의 현상은 정확히 그에 부합했다.
‘설마.’
[20일 차. 이제는 확신이 생겼다. 수호문의 심법을 통해서 나는 강해지고 있다. 아직은 걸음마도 떼지 못한 수준이지만, 이것이 내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예전에만 하더라도 나는 이 세상의 힘은 마법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검을 들고 몬스터와 싸우던 그 시절, 로브를 펄럭이며 마법을 사용하는 선택받은 자들의 모습은 내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게도 새로운 길이 생겼다. 나는 수호문의 심법을 통해 강해질 것이고, 심연(深滿)의 악마들을 모조리 몰살할 것이다.]
클리스만이 변하고 있었다.
강민혁에게 온전히 기대던 그가, 본인이 변화하길 바랐다.
그리고 마지막 장.
클리스만은 ‘강민혁’에게 말을 걸었다.
[너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
부탁.
조언자였던 클리스만이 태도를 바꾸었다.
[나는 내가 강해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보지 못했다. 태생의 한계란 그러했고,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네가 가진 힘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강해질 수만 있다면 나의 육체를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 부탁한다. 진심으로 너에게 간청한다. 내가 너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었던 것처럼, 너도 나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기를.]
일기가 끝났다.
탁.
책장을 덮은 강민혁의 표정은, 처음과는 다르게 복잡한 감정으로 얼룩져 있었다.
클리스만.
그와의 관계는 참 복잡하다.
강민혁은 그를 은인이라 생각하지만,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일방적인 링크(link)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선뜻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었다.
수호문의 심법.
그건 그간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러나 직접 나서서 클리스만의 몸을 단련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신은 한때 수호문의 후계자였던 사람이고, 자신의 단련법은 모두 수호문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말인즉, 이 결정으로 인해 수호문의 비기가 모두 클리스만에게 흘러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클리스만의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클리스만을 도와줄 생각이라면, 머릿속에 있는 수호문의 비기를 모두 토해낼 결단이 필요하다.
고민했다.
수호문의 비기.
그건 강민혁의 것이 아니다.
수호문의 조상들이 피땀 흘려 일구어낸 것이고, 강민혁이 멋대로 사용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수호문의 가르침은 항상 대의를 위한다고 했어.’
대의.
수호문의 이름이 그리 명명된 이유는, 수호(守護) 그 자체의 단어적인 의미가 반영된 것이 컸다.
게이트라는 재앙이 처음 나타났던 그 시절.
수호문의 조상들은 수호문의 힘으로 세상을 지켜내길 바랐다. 그래서 수호문의 비기는 모두 지키는 것에 특화되었고, 사람들은 수호문을 어느 순간부터 한국의 희망이라고도 불렀다. 만약 수호문의 조상들이었다면, 몬스터에게 가족을 모두 잃어버린 클리스만을 외면했을까.
아니다.
애초에 수호문의 비기는 비밀이 아니다.
거대한 세력으로 변하며 폐쇄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 시작은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었다.
힘을 원한다면.
이 세상을 지키고 싶다면.
수호문의 조상들은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지금도 같다.
강민혁은 힘을 간절하게 바라는 클리스만을 외면할 이유가, 아니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클리스만.”
일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어떤 삶은 살았을까.
평범한 시민에 불과했던 그가, 어떤 세월을 겪었기에 지금 이렇게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일까.
강민혁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절망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인생이 변했듯이, 그의 인생에도 한 줄기의 빛이 비추어지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옳을 일을 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아니, 정확히는 네가 몬스터들을 상대로 표출하는 적의(敵意)를 믿는다. 내가 너에게 수호문의 힘을 주면, 너의 힘은 온전히 몬스터들에게 표출될 테니까 말이야. 그래, 도와주지. 내가 너를 강해지도록 도와주겠다.”
책을 펼쳤다.
그리고 클리스만의 글이 끝난 그 지점에, 강민혁이 이어서 글을 썼다.
[너의 부탁을 받아들이겠다. 그러니, 앞으로 너에게 생길 변화에 적응해야 할 거야.]
강민혁과 클리스만.
둘의 관계가, 완벽하게 서로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강민혁은 일단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앞으로 클리스만의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서는, 현재의 몸 상태가 어떤지 직접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
“후우."
숨을 깊게 내쉬었다.
혈관에 흐르는 피와 마나가 강민혁의 의지에 반응하며, 내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 달 전과는 많이 달랐다.
클리스만은 그간 심법을 열심히 운용한 모양인지, 신체 구석구석에 마나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물론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직 심법이 능숙하지 못해서 마나로 인한 육체의 불균형이 일어난 상태였지만, 그 정도는 강민혁의 심법 한 번에 모두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일단 내부를 안정시키고.’
마나를 움직였다.
단전으로부터 비롯되는 마나를 혈관으로 유도하며, 신체 구석구석의 상태를 모두 재정비하였다.
단전의 마나.
그 힘은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그리고 전신에 퍼져 있는 마나는 신체의 강화 상태를 유지 시켜주며, 일순간적으로 단전의 힘을 끌어올렸을 때 해당 부위에 있는 마나가 물리적인 위력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모든 마나를 단전에 축적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적절하게 전신에 마나를 퍼트려야만, 단전의 힘을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다. 강민혁은 그러한 기초적인 단계를 다시 다잡고 있는 것이다.
정비가 끝나고.
강민혁은 심법을 본격적으로 운용했다.
정말 강화액이 없어도 마나를 축적할 수 있는지, 그 사실을 확인해야만 했다.
화악.
마나가 일었다.
자연의 마나가 피부에 예민한 자극을 주었고, 활짝 열린 모공을 통해서 일말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마나야.’
마나.
분명했다.
자연의 마나가 심법의 의도에 따라 흡수되고 있었다.
그 양은 많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인간의 힘으로 마나를 흡수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정말이었어. 클리스만은 수호문의 심법이 말한 재능을 타고 났어.’
경악스러웠다.
자신이 수호문의 후계자 자리를 포기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심법의 재능을 조금도 타고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등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마나가 반응하지 않았고, 때문에 수호문의 비기를 대부분 사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법을 익힐 당시에 기쁘면서도 복잡한 감정이 들었었다. 강민혁의 단전은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강민혁의 서클은 황당할 정도로 마나를 힘껏 빨아들였으니 말이다.
심법을 끝냈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티끌만 한 양의 마나가 늘었다는 사실에 강민혁은 허탈하게 웃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구나.”
강민혁.
클리스만.
강민혁은 강화 문명에서 살며, 평생 검을 위해 살았다.
그리고 클리스만은 마법 문명에서 살며, 2000년의 마법역사를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다.
서로 필요한 재능이 있다.
그런데 강민혁은 마법에, 클리스만은 검술에 재능을 타고 났다.
뒤바뀐 재능이라니.
정말 황당한 사실이었고, 강민혁은 이것이 신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서로 연결된 것은 결국 운명이었던 걸까.”
그렇게밖에 생각되질 않았다.
다른 차원.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이, 서로에게 필요한 보완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건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극적인 미스터리는, 운명이라는 단어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어쩌면 클리스만의 몸으로는 수호문이 말하는 궁극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때였다.
문득, 강민혁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마나 룸에서 수호문의 심법을 사용하면 어떻게 되지?”
마나가 척박한 세상.
이 세상에서도, 클리스만의 몸은 스스로 자연의 마나를 끌어들였다.
그런데 자연의 마나가 충만한 마나 룸에서 심법을 사용하면, 과연 클리스만의 몸은 어떻게 반응할까.
‘내가 살던 세상에서 10년은 걸려야 이루어낼 성취를, 겨우 1년 안에 이룰 수 있을지도 몰라.’
하나의 가능성.
그 가능성이 만들어낼 미래에, 강민혁은 순간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50화. < 14. 뒤바뀐 재능(2) >
다음 날.
가능성을 확인할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지금부터 각자 개별 훈련실로 들어가서 마나 룸 훈련을 시작한다. 최소 출력은 3단계고, 누누이 말하는데 천금 같은 기회를 헛되이 날리지 말도록. 평민들은 평생 마나 룸에 발을 들일 기회조차 누리지 못하는데, 너희들에게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었다. 그러니 마나 룸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너희가 마법적인 성취를 얻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삑-
훈련실의 문이 열렸다.
익숙한 상황에, 강민혁은 그중 하나를 택해 들어갔다.
‘마나룸.’
익숙했다.
처음에 이 공간에 발을 들였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최근에는 매일 반복하는 훈련이다 보니 정겨울 정도였다. 강민혁은 곧바로 마법진 중앙에 앉았다. 순도 높은 마나가 집중되는 자리. 강민혁은 가부좌를 틀었고, 본격적으로 심법을 운용해서 마나를 마법진으로 흘려보냈다.
화악.
우우우웅.
밝은 불빛이 일었다.
예민하게 돋아오른 감각에, 마나의 충만함이 느껴졌다.
“흐읍.”
산소가 과하게 공급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압력에 강민혁의 얼굴이 붉어졌고, 앉아있는 자세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전에는 마나 룸의 압력을 버티지 못했다. 약하디약한 클리스만의 서클은 빨아들였던 마나를 전부 토해내 버렸고, 강민혁은 더 이상 훈련을 진행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강민혁은 서클이 아니라 단전에 마나의 힘을 집중시켰다. 심법을 운용하여 마나가 단전으로 향하도록 길을 열자, 놀랍게도 숨을 압박하던 마나의 힘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숨을 고르게 내뱉었다.
마나가 조금은 안정을 되찾았으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단전은 힘의 중심. 단전이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넘쳐흐른 마나로 인해 내부가 붕괴한다.’
이건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확인해야만 했다.
클리스만의 육체가 정말 ‘수호문의 심법’이 말하는 재능이라면, 반드시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천천히.’
단전으로 향하는 마나들.
그 마나들을 이용해서 혈관의 불순물을 제거하였다. 동시에 받아들이지 못할 탁한 마나는, 불순물과 같이 피부 바깥으로 표출하였다. 단전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나는 제한적이다. 기존의 마나와 조화롭게 융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순수한 마나만을 걸러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스으으으.
강민혁의 몸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불순물 섞인 마나가 기체로 변하며, 탁한 공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동시에 피부에서도 검은 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집중력을 흩트리는 외부적인 요인이 많았으나, 강민혁은 무아지경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졌다.
‘마나가 들어오도록, 단전을 개방한다.’
개방.
단전이 열렸다.
혈관을 타고 이동하면서 걸러진 마나가,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처럼 단전을 빠르게 채우기 시작했다.
콸콸콸.
“크윽."
이를 악물었다.
격하게 일어나는 통증에, 강민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사실 외부의 마나를 받아들이는 시도는 강민혁의 세상에서도 있었다. 심법에 내제되어 있는 동화(同化)의 능력은 가끔 그러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을 시도한 사람들은 모두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외부의 마나. 그건 정제된 강화액의 마나와는 다르다. 어떨 때는 거칠고, 어떨 때는 부드럽고, 어떨 때는 차가우며, 어떨 때는 뜨겁다. 일반적인 단전으로는 절대 외부의 마나를 감당할 수 없으며, 그래서 외부의 마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상 금지가 되었다.
그래서 강화 전사들은 규칙을 내세웠다.
1. 강화는 정제된 강화액을 통해 진행한다.
2. 강화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정량을, 일정한 주기로 주입한다.
강화 전사들.
그들이 괜히 시간을 두고 강화를 시도하는 게 아니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통제되지 않은 마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강민혁도 사정은 같았다.
너덜너덜 걸레짝 같은 강민혁의 단전으로 마나를 유도했다면, 강민혁의 내부는 찢겨나갔을 것이다.
사실상 불가능의 영역.
불규칙한 외부의 마나를 직접 받아들였다는 선례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클리스만의 육체는 달랐다.
화악.
꿀럭꿀럭.
몸이 요동쳤다.
밝게 빛나는 빛이, 강민혁의 몸으로 빨려 들어왔다.
클리스만의 재능은 진짜였다.
강하게 몰아치는 마나의 파도에도, 클리스만의 단전은 절대 부서지지 않는 단단함을 자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나가 모두 가라앉자, 강민혁의 안광이 번뜩였다.
‘아.’
그 순간 확신했다.
단전에서 찰랑이는 마나.
강화액을 수십 번을 주입해야 얻을 수 있는 양에, 강민혁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말했다.
“클리스만, 너도 너와 맞지 않은 세상에서 태어났구나.”
자신과 같다.
강민혁과 클리스만.
둘은, 서로의 세상에서 필요한 재능을 타고 났다.
며칠간.
강민혁은 클리스만으로서 훈련에 전념했다.
수호문의 심법을 운용해서 체내의 마나를 안정시키고, 육체적인 훈련을 통해 강화된 신체를 단련시켰다.
그런 과정에서 강민혁이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클리스만은 검사(劍士)였어. 그것도 작은 검이 아니라, 두 손으로 쓰는 큰 검을 사용하는 검사.’
몸의 근육.
그리고 손의 굳은살.
클리스만의 몸을 직접 움직이면서 알게 되었다.
클리스만은 약하디약한 서클을 가지고 있지만, 놀랍게도 몸을 움직이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사실 이는 클리스만의 메시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예전에만 하더라도 나는 이 세상의 힘은 마법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검을 들고 몬스터와 싸우던 그 시절, 로브를 펄럭이며 마법을 사용하는 선택받은 자들의 모습은 내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클리스만이 했던 말.
그는 검을 들고 몬스터와 싸웠다고 말했다.
그게 강민혁과 같은 강화 전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에야 수호문의 심법을 통해 단전에 마나를 채워 넣었지만, 처음에만 하더라도 클리스만의 몸은 매우 깨끗했다. 검술을 익혔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초췌한 얼굴에 나약한 신체 상태. 사실 금세 육체 강화에 적응하는 클리스만의 몸에, 어쩌면 지금의 상태가 ‘과거’에 비해 약해진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복잡했다.
클리스만의 과거는, 알면 알수록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확실한 건 클리스만은 자신의 재능을 모르고 있었고, 자신으로 인해 진짜 재능을 마주하게 되었다.
‘수호문의 기술들. 너라면 충분히 터득할 수 있을 거야.’
숙소에 도착하고.
강민혁은 클리스만에게 남길 글을 작성했다.
[지금부터 너에게 가르칠 것은 총 세 가지다. 수호문의 심법으로 육체를 효율적으로 단련하는 방법, 살육이 아니라 지키는 것을 위해 존재하는 수호 검법, 그리고 모든 움직임에 활용시킬 수 있는 수호 보법. 일단 이 세 가지를 꾸준히 익힌다면 분명히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수호문의 기본.
강민혁은 그것을 써 내려갔다.
후계자만이 알고 있는 수호문의 비기도 있지만,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과유불급.
이제 막 강화 전사로서 걸음마를 땐 클리스만에게는, 그 눈높이에 맞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자 문득 웃겼다.
마치 자신의 모습에서, 클리스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너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클리스만.
그는 강민혁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마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었다. 만약 그러한 도움이 아니었다면, 강민혁은 절대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성장은 클리스만의 도움이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강민혁 또한 클리스만에게 똑같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
어느 정도 하루 목표치를 전부 작성했을 때.
강민혁은 펜을 내려놓고, 책상 한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차례인가.”
클리스만의 지식.
이번 빙의도 어김없이, 클리스만은 강민혁에게 필요한 지식을 미리 준비해두었다.
클리스만이 준비한 지식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최상급 4서클 마법]
강민혁은 3서클을 형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클리스만은 벌써부터 4서클 마법을 배울 날을 준비할 것을 닦달했다. 확실히 4서클 마법은 지금 배울 필요성이 있었다. 언제 4서클을 형성할지 모르는 데다, 4서클의 마법 체계는 3서클보다도 더욱 복잡했다. 미리 시간을 투자해서 터득한다면, 절대 나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사실 이 마법을 확인하고 강민혁은 경악했다.
[일루전 (illusion)]
일반적으로 알려진 원소 마법의 한 갈래가 아니다.
환상, 환각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의 의미 그대로, 일루전은 본인의 환상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일루전은 서클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1서클 마법사도 본인의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환상이 본격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은 3서클부터다. 3서클 마법사의 일루전은 개별적으로 마법을 캐스팅할 수 있다. 그것은 본래 마법의 25퍼센트 정도의 위력이며, 서클이 상승할수록 25퍼센트 단위로 위력이 상승한다. 4서클부터는 일루전의 형태 변화, 5서클부터는 일루전의 더블 캐스팅, 6서클부터는 온전한 위력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7서클 이상은 단계별로 일루전의 숫자를 늘리는 게 가능하다.]
처음 일루전에 대해 읽었을 때.
강민혁은 두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이런 마법이 있다니.
2000년의 마법 문명이라고는 하나, 설마 이런 대단한 효과를 가진 마법까지 만들어냈을 줄은 몰랐다.
일루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환상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마법사의 장단점을 동시에 해결하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함을 선사하는 능력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강민혁은 아카데미 마법 도서관에서 일루전에 관한 정보를 확인했다. 혹시라도 마법을 터득함에 있어 도움이 되는 부연 설명을 찾아 보기 위함이었는데, 놀랍게도 일루전에 관련된 지식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최상급 마법이라는 분류가 있지만 희귀해서 찾아볼 수 없는 게 아니라, 2000년의 마법 문명을 이룬 이 세상에서도 일루전이라는 마법 자체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다. 동명의 환상 마법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일루전의 효과와는 완전히 달랐다.
‘클리스만, 넌 대체..........'
의문이 피어올랐다.
클리스만.
그의 행동은 많은 의문이 따라붙는다.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의문점들이 있었지만, 강민혁으로서는 의문을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현실에 충실할뿐.
강민혁은 클리스만으로서 훈련에 전념했고, 아카데미가 끝나면 마법 지식을 익히는 삶을 반복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났다.
이번에도 빙의 시간은 제법 길었다.
반복되는 하루.
그러던 어느 날, 클리스만으로서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
삐이이이이이익-
[비상! 비상!]
[코드 레드 발동! 코드 레드 발동!]
[왕실 마법 아카데미 인근에서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학생 여러분은 무장을 갖추고, 신속하게 작전명 ‘그린 드래곤(Green Dragon)’의 대응 체계를 갖추길 바랍니다.]
비상 사태.
그건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51화. < 15. 마법사들의 생존 방식 >
강민혁은 수업 도중에 비상 대응 체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비상 대응 체계란 무엇인가. 왕실 마법 아카데미 인근에 ‘게이트’가 생성될 경우, 학생들 전원을 동원해서 그에 대응하는 상황을 말한다.”
클리스만의 세상.
러시아와 유럽의 경계선에 장벽을 세우며 몬스터와의 공존을 택했던 세상은, 게이트의 등장으로 평화로운 분위기가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는 사실상 공존이 불가능했다. 게이트를 통해서 장벽을 넘어 나타나는 몬스터들 때문에, 각 지역은 그 지역만의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왕실 마법 아카데미도 다르지 않다.
거대한 땅덩어리에 자리잡고 있는 왕실 마법 아카데미는, 자체적으로 보호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중 첫 번째.
“그린 드래곤은 게이트에서 나타난 몬스터가 왕실 마법 아카데미를 공격할 경우, 학생들은 지정된 위치로 가서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 성벽 위로 올라오는 몬스터를 최우선으로 처리하며, 적을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 왕실 마법 아카데미를 수호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진정한 의미의 수성전이었다.
왕실 마법 아카데미는 하나의 요새다. 거대한 외벽으로 빙 둘러놓았기 때문에, 외벽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아카데미 안은 안전하다. 그린 드래곤은 바로 이 외벽을 지키는 대응 체계.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가장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상황이 그린 드래곤이기도 했다.
“두 번째 골드 드래곤은 비행형 몬스터의 출현을 알린다. 비행형 몬스터가 나타날 경우 외벽의 존재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그때는 대공(對空) 경계를 실시한다. 세 번째 블랙 드래곤은 왕실 마법 아카데미가 아니라 인근 지역들이 공격을 당할 경우, 최소한의 수성 병력을 남기고 지원 병력을 편성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도와서 게이트가 없어질 때까지 몬스터를 완전히 소탕한다.”
그리고 마지막.
아직 한 번도 발동되지 않은 최후의 보루.
“네 번째 레드 드래곤은 최후의 항전을 뜻한다. 외벽이 무너지고 몬스터들이 아카데미 안으로 진입했을 때,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목숨을 걸고 적들과 싸운다. 후퇴란 용납되지 않는다. 왕실 마법 아카데미는 영국의 상징이고, 성역(聖域)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영국의 국민으로서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될 의무다. 기억해라. 평화는 끝났고, 우리는 다시 몬스터들과의 싸움을 대비해야 한다.”
네 개의 대응 체계.
그중에서 다행히도 이번에 발령된 것은 그린 드래곤이었다.
지정된 위치에서의 수성.
강민혁은 빠르게 같은 반의 학생들을 따라갔다. 클리스만의 설명이 없었기에 어떤 위치에서 수성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 반이 같은 구역을 수성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일단 무기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아카데미의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무기를 지급했다.
“받아!”
탁.
그것은 수성전용 스태프였다.
스태프의 크키가 크고 무겁기 때문에 이동하는 상황에서는 사용이 어렵지만, 지금은 그린 드래곤 상황이다. 수성에는 그에 걸맞은 무기가 필요한 법. 스태프를 받은 학생들이 낑낑거리면서 힘겹게 자리로 이동했다. 강민혁도 마찬가지로 스태프를 받았고, 건물 밖으로 나가자 시야가 확 트였다.
그리고
“공격해!”
“인페르노(Inferno)!”
콰콰쾅!
화르르르르르륵!
전장의 소음.
전장의 냄새.
강민혁의 눈앞에, 치열한 전장의 한순간이 펼쳐졌다.
높디 높은 성벽 위 .
그 너머로 칠흑같이 어두운 게이트의 모습이 보였다.
합동 수업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엄청난 양의 마력을 끊임없이 토해냈다. 그 안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 그들은 분명히 B급 몬스터인 웨어 울프(Werewolf)였다.
크르르륵.
캬악!
웨어 울프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의 숫자는 정말 많았다.
언뜻 보아도 수백 마리가 훌쩍 넘어갈 정도였고, 그들은 성벽에 도착하자마자 폭발적인 점프력을 이용해서 곧바로 성벽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해서 성벽을 빠르게 올라갔다. 검은 형체들이 일제히 밀려드는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그때였다.
성벽에 위치한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사용하였다.
“인페르노.”
“파이어 월(Fire Wall).”
“플레임(Flame).”
화르르르륵.
강렬하게 타오르는 화염.
동시에 성벽 바닥에서 밝은 불빛이 일어났다.
“화염 증폭 마법진 가동!”
지휘탑.
그곳에 위치한 마법사가 버럭 소리쳤다.
붉게 일어나는 마나가 마법에 그대로 흡수되었고, 동시다발적으로 사용된 4서클 화염 마법의 위력이 증폭되었다. 그리고 작렬하는 마법! B급 웨어 울프는 5서클 마법 정도는 돼야 데미지를 받는 몬스터지만, 마법진의 버프와 상급 마법의 조합은 그들의 외피를 새까맣게 태워버렸다.
크아아아악!
웨어 울프들이 괴성을 지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바닥에 떨어진 그들의 육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겨나갔지만, 웨어 울프들은 동족의 상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정도로 웨어 울프의 숫자는 많았다. 동족의 사체를 밟고서 새로운 웨어 울프들이 성벽에 달라붙었고, 위기는 끝나기는커녕 더욱 숨통을 조여왔다.
‘이 정도의 게이트라니.’
당황스러웠다.
게이트는 생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수백 마리에 달하는 웨어 울프를 토해낼 정도라면, 이것은 재앙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
강민혁이 사는 세상에도 이와 같은 게이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절대 흔한 현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수호문의 후계자인 강민혁조차도 재앙급의 게이트는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급박한 상황에도 절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익숙하다는 듯한 표정. 그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학생들의 미숙함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파이어 웨이브.”
“파이어 버스트.”
“파이어 랜스.”
화르르륵!
콰앙!
강민혁의 동급생들.
그들도 침착하게 마법을 사용했다.
차례로 순서를 맞추어 사용하는 마법에, 웨어 울프들은 일정 높이를 통과하지 못하고 모두 떨어졌다.
이질감이 들었다.
클리스만의 세상.
그쪽 세상과 자신의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 이제야 체감이 됐다.
‘2000년 동안 몬스터의 위협을 받은 세상. 이 세상은 게이트의 수준도 우리와 다르다는 건가.’
그럴 수밖에 없다.
강민혁이 사는 세상은 게이트를 통해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이 전부인 반면, 클리스만의 세상은 한국을 시작으로 해서 러시아까지가 모두 ‘몬스터 랜드’라고 명명한 죽음의 땅이다. 그곳에서 엄청난 수의 몬스터가 주기적으로 유럽의 장벽을 공격할 뿐만 아니라, 게이트를 타고 장벽 너머를 공격한다.
2000년.
그 시간은 마법이 발전한 만큼, 몬스터들 또한 더욱 위협적으로 변했다.
쿠르르르르릉.
성벽이 흔들렸다.
무저갱(無底坑)에서 기어 나오는 악마처럼, 불이 붙은 웨어 울프들이 악착같이 성벽 위를 올랐다.
창과 방패의 대결.
성벽은 언제 뚫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한 타이밍에.
“파이어 스톰(Fire Storm).”
대마법사의 등장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파이어 스톰.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마법이다.
그게 몇 서클의 마법인지, 또한 어떠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강민혁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파이어 스톰이 발현되는 순간 지옥의 화마(火魔)가 세상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휘이잉.
화르르르르르륵!
강력한 바람을 동반한 화염.
화염의 폭풍이 수십 마리의 웨어 울프를 단번에 집어삼켰다. 웨어 울프의 단단하고 질긴 외피는 이번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외피가 타버렸으며, 폭풍에 휩쓸린 웨어 울프는 허공 높이 떠올랐다가 바닥에 추락해서 육체가 그대로 터져버리고 말았다.
“빈 로즈(Vin Rose)님이다."
“드디어 오셨구나.”
빈 로즈.
왕실 마법 아카데미가 자랑하는 대마법사 중 한 명.
7서클의 경지에 오른 그는, 파이어 스톰으로도 모자란 모양인지 다시 한번 7서클 마법을 사용하였다.
“어스퀘이크(Earth Quake)."
쿠쿠쿠쿵.
콰콰쾅!
땅이 뒤집어졌다.
땅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웨어 울프들을 집어삼켰고, 바닥에서 튀어나오는 가시 바위들이 웨어 울프의 육체를 찢어발겼다. 단 두 번의 마법. 빈 로즈가 사용한 마법에 수백에 달하는 웨어 울프들이 학살을 당했다. 지상에 있는 웨어 울프들은, 빈 로즈의 마법에서 무사할 방법이 없었다.
'..........'
강민혁은 그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7서클.
그건 ‘수호문’이라는 넓은 세상에서 살았던 강민혁에게도 충격적인 위력이었다. 세상에 저런 마법이 있다니. 2000년의 마법 문명이 새로운 경지의 마법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대마법사의 위력은 강민혁을 충격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만약 자신이 사는 세상에서도 저런 위력의 마법이 있었다면, 마법사는 절대 비주류의 대우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강민혁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클리스만의 서클은 겨우 한 개의 고리만이 생성되어 있었기에, 강민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마법사의 등장.
그로 인해 상황이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때, 날카로운 소리가 모두의 귀를 파고들었다.
캬아악!
캬우우우우우우우!
“제길!”
"....설마."
학생들도 당황하는 눈치였다.
게이트 바깥.
거대한 형체의 웨어 울프가 등장하였다. 사자처럼 자라난 거친 갈기에 사람 팔뚝만 한 거대한 발톱. 그는 등급 외, 에픽(epic) 몬스터인 웨어 울프 로드였다. 웨어 울프들의 왕. 그가 등장하자 웨어 울프들이 일제히 하울링을 토해냈다. 거대한 울음이, 왕실 마법 아카데미에 울려 퍼졌다.
캬우우우우!
캬우우우!
상황이 반전되었다.
로드의 등장은 웨어 울프들을 강하게 만든다.
로드의 고유 특성으로 인해 몇몇 웨어 울프들이 A등급으로 상향되었고, 그들이 성벽으로 달려들었다.
에픽 몬스터.
그들의 위력은, 전장의 판도를 바꾼다.
“파이어 캐논(Fire Cannon)."
콰앙!
화르르륵.
마법이 먹히지 않았다.
적중당하기 직전 A급의 웨어 울프들이 몸을 날렸고, B급과는 다르게 정말 빠른 속도로 성벽을 탔다. 마법이 계속해서 작렬했다. 성벽 위에 있는 마법사들은 웨어 울프들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타이밍을 맞추어서 마법을 사용했지만, 그것만으로는 A급 웨어 울프를 모두 처리할 수 없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강민혁이 위치한 구역에도, 웨어 울프 한 마리가 거의 성벽을 올라오기 직전이었다.
‘나도 싸워야 한다.’
꽈악.
손에 잡힌 스태프의 감촉이 묵직하다.
하지만 이런 무기로는 싸울 수 없다.
겨우 1개의 서클을 가지고 있는 이 몸뚱이로, 웨어 울프를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저거다.’
예비용으로 준비되어있는 검.
강민혁은 한편에 진열되어있는 검을 하나 뽑았다.
그리고 그때.
확!
캬아아아아악!
A급 웨어 울프.
그 강력한 괴물이, 성벽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52화. < 15. 마법사들의 생존 방식(2) >
“왔다!”
“준비해!”
성벽 위.
가장 앞에서 몬스터의 진입을 대비하던 경비병들이, 들고 있던 방패에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그리고 웨어 울프가 착지하는 순간.
대장으로 보이는 경비병이 소리쳤다.
“차징(charging)!”
“차징!”
화악-
방패에서 세찬 빛이 일어났다. 그것은 일반 방패가 아니라 마법의 힘을 부여한 아티팩트였다. 그 안에 깃든 강력한 힘이 방패에서 휘몰아치더니, 그대로 웨어 울프를 들이받았다.
콰앙!
캬아아악!
웨어 울프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져나갔다. 차징의 목적은 상대에게 물리 데미지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뒤로 밀어내는 것에 있다. 지금 위치한 곳은 성벽 위. 낭떠러지 밑으로 밀려난 웨어 울프는 그대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A급의 웨어 울프라 할지라도, 특별한 비행 능력이 없는 이상 중력의 힘을 거스를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준비해!”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처음이 어려울 뿐이지, 이후부터 계속해서 웨어 울프들이 성벽 위로 진입하는 것에 성공했다.
캬악!
퍽!
“크악!”
웨어 울프의 공격에 경비병이 나가떨어졌다. 차징으로 밀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웨어 울프들은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마법사들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경비병들을 앞에 내세운 것처럼, 성벽 위에는 여러 방어 장치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목표를 포착]
[발사!]
파파파파팍!
크에엑!
마법 석궁.
아티팩트의 일종인 마법 석궁에서 발사된 수십 발의 화살이 웨어 울프의 몸에 박혔다. 그것은 터렛(turret) 형태의 방어 장치였다. 성벽 위에서 일정 선을 넘어서는 몬스터가 나타날 경우, 자동으로 타겟을 포착하는 방식. 수십 개의 터렛에서 발사되는 화살이 웨어 울프를 공격했다.
그리고.
“라이트닝 블레이드(Lightning Blade)!”
“록 캐논(Rock Cannon)!"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찌지지직
콰앙!
동시다발적으로 사용되는 마법들.
경비병이 다칠 것을 염려해서 화염 마법은 자제하고, 최대한 위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하였다. 학생들의 대응은 잘 훈련된 체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이 이전에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었고,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캐스팅을 진행했다.
성벽 위에서의 싸움은 격렬했다.
뚫리지 않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
동족 수백의 목숨을 대가로 성벽 위로 올라온 웨어 울프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차징!”
“차지잉!”
다시 한번 사용되는 방패 공격.
경비병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그 순간, A급의 웨어 울프 한 마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런!”
상대를 놓쳤다.
마법 석궁이 일제히 A급 웨어 울프에게 집중되자, 웨어 울프의 털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웨어 울프는 이족 보행의 몬스터다. 인간과 늑대를 섞어놓은 듯했던 모습이, 완전히 짐승의 것으로 변했다.
“크아아아아아악!”
“으악!"
"악!"
강력한 피어(fear) 공격에 일부 마법사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웨어 울프에게 작렬한 화살 공격은 먹히지 않았다. 대부분의 화살은 크게 부풀은 털에 막히는 것으로 끝났고, 몇 발의 화살이 살을 파고들기는 했지만 웨어 울프를 쓰러트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틈.
길이 열렸다.
견고했던 성벽 위의 방어 체계가 무너지며, 웨어 울프가 빠르게 한 마법사에게 달려들었다.
“썅!”
마법사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는 클리스만의 동급생.
빠르게 마법을 캐스팅해서 대응해보려고 했지만, 웨어 울프가 코앞에 들이닥치는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불안감. 3서클 마법사에 불과한 자신이 마법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웨어 울프에게는 타격이 없을 거란 생각에 손이 떨렸다.
‘이대로 죽는 건가.’
게이트.
현실에 재앙이 닥칠 때마다 항상 사망자는 발생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에 힘이 풀리는 순간, 이상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카앙!
“정신 차려!”
클리스만.
마법사인 그가, 검을 들고 웨어 울프를 막아섰다.
캬악!
웨어 울프가 분노했다.
자신의 앞을 막아선 강민혁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거대한 손톱을 연속해서 휘둘렀다.
카앙!
카카카캉!
스파크가 튀었다.
검을 통해 전해지는 충격에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지만, 강민혁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통한다.’
검에서 피어오른 오라.
강화 문명의 기술이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발현되었다. 덕분에 강민혁의 검은 웨어 울프의 공격을 막아서고도 부러지지 않았다. 충격으로 얼룩진 동급생의 시선이 자신을 따라붙었지만, 강민혁은 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훅!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공격!
강민혁은 간발의 차이로 웨어 울프의 공격을 피해내며, 오라를 극성으로 일으켰다.
화르르륵.
서걱!
캬아아아아악!
웨어 울프가 비명을 질러댔다. 강민혁의 검에서 표출된 오라가, 웨어 울프의 단단한 외피를 갈라버린 것이다. 그러자 강민혁의 눈빛이 확신으로 변했다. 자신의 세상에서도 A급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오라가 필요하다. 만약 클리스만의 오라가 먹히지 않았다면 웨어 울프를 쓰러트릴 방법이 없었을 텐데, 놀랍게도 클리스만의 오라는 A급 몬스터를 상대로 먹혔다.
황당한 일이다.
벌써부터 이런 위력을 보이다니.
하지만 감상에 빠질 겨를도 없이, 웨어 울프와 강민혁의 몸이 뒤얽혔다.
퍽!
“크윽."
웨어 울프가 그대로 강민혁을 들이받았다.
강력한 충격이 머리를 뒤흔듦과 동시에, 웨어 울프는 거대한 아가리를 쫙 벌려 강민혁을 물어뜯었다.
아니, 뜯기기 전에 강민혁이 빠르게 대응했다.
퍽!
오라를 두른 주먹으로 턱을 가격했고, 반격해오는 웨어 울프의 공격을 고개를 숙이는 동작으로 피했다. 그리고 번뜩이는 검. 오라의 잔영이 웨어 울프의 복부를 지나가자, 살이 쩍하고 갈라졌다.
푸슈숙.
피가 튀었다.
그때였다.
웨어 울프의 발이, 그대로 강민혁의 복부에 작렬했다.
퍽!
콰다당!
크르르르륵.
웨어 울프가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강민혁의 반격은 찰나의 틈을 노리는 매우 훌륭한 공격이었지만, A급 웨어 울프는 단순히 외피만 단단한 것이 아니다. 느리지만 점점 치유되는 상처 부위. A급의 몬스터들은 확실하게 끝내지 않는 이상, 끝까지 달려드는 성향이 있다.
확실히 강했다.
복부에서부터 심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강민혁의 얼굴엔 오히려 웃음이 피어올랐다.
“킥, 킥킥.”
웃겼다.
A급 몬스터.
현실에서 강민혁은 그들을 상대로 절망을 맛보았다.
그런데 웃긴 것은 겨우 며칠 훈련한 클리스만의 육체는, 그들을 쓰러트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지난 세월이 허무해질 정도였다.
꽈악.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내 공격이 먹힌다면.’
타닥.
바닥을 박차는 웨어 울프.
그의 모습에, 강민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승산은 충분히 있다.’
화륵.
불타오르는 오라.
강민혁이, 정면에서 웨어 울프를 맞받아쳤다.
흐릿한 기억.
그건 강민혁으로서는 잊고 싶은 순간이었다.
촤악!
A급 몬스터 데스 나이트(Death Knight).
그의 공격에 동료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지는 동료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후계자로서 살았던 강민혁의 인생이 와르르 무너졌다.
‘아아.’
사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마나의 재능이 없는 자신으로서는, 아무리 검술 실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지만 애써 외면했다. 친구들은 자신을 진심으로 따랐고, 여러 무투 대회에서 수상한 기록은 후계자로서 남을 명분을 주었다. 그러나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은 탓에 동료가 다치는 모습을 목격한 순간, 강민혁은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난 수호문을 맡을 자격이 없어.’
마나.
중요한 재능이다.
수호문의 비기는 마나를 기반으로 하기에, 강민혁에게는 결국 넘어설 수 없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했다.
어릴 때야 괜찮았다.
그때는 마나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민혁의 약점은 두드러졌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에서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것은 치명적이었고, 그럼에도 자신을 따라주는 친구들과 동료들의 모습에 강민혁은 결국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은 그 날.
강민혁은 다시 검을 잡을 날이 찾아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강민혁의 검에서 강한 오라가 표출되었다.
서걱!
캬아아아악!
웨어 울프가 괴성을 질렀다. 웨어 울프는 빠르고 강했지만, 그만큼 강민혁의 대응도 빠르고 강했다. 잊고 있었던 나날들의 감각이 몸에서 살아났다. A급 몬스터에게도 통하는 칼이 강민혁에게 쥐어진 이상, 강민혁은 이 싸움에서 물러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자신의 친구들이 마나의 재능을 바탕으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듯이, 자신도 반드시 승리하리란 확신이 있었다.
푹!
복부를 갈랐다.
웨어 울프가 팔을 휘두르는 모습에, 강민혁은 오히려 품 안으로 파고들며 검을 위로 힘껏 베었다.
촤악!
크아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
후두둑 떨어지는 피의 비에, 강민혁의 표정이 희열로 차올랐다.
‘통해, 통한다고!’
이러한 상황을 얼마나 바랐던가.
자신의 오라가 A급 몬스터들에게도 통했다면, 강민혁은 결코 검을 버리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통한다.
평생을 검에 바쳤던 자신의 육체는 간절한 바람을 외면했으나, 겨우 며칠. 클리스만이 직접 훈련한 기간을 합쳐도 두 달도 되지 않는 이 몸뚱이는, 강화 전사로서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달랐다.
자신이 기억하는 오라는 이렇게 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강민혁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캉!
카카카캉!
격렬하게 격돌했다.
웨어 울프와 강민혁이 바로 근접해서 공방을 주고받는 모습에, 주변에 있는 동급생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어떻게 공방을 주고받는지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섣불리 마법을 사용했다간 강민혁이 맞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에, 그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결국.
서걱!
강민혁의 검이 웨어 울프의 가슴팍을 베었다.
웨어 울프가 힘을 잃고 뒤로 물러나는 그 순간, 강민혁은 앞으로 달려들며 상대의 목을 베었다.
푸확!
허공에 흩뿌려지는 피.
아무리 재생 능력이 뛰어난 웨어 울프라지만, 목이 날아가고도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비틀.
쿵!
웨어 울프가 쓰러졌다.
강민혁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핏물을 그대로 맞으며,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후욱, 후욱.”
지친 것이 아니다.
다만 기쁠 뿐이다.
이게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지만, 간접 체험을 한 것만으로도 강민혁은 기뻤다.
“또 올라온다!”
“제길!”
아직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게이트에서 웨어 울프들이 끊임없이 나타났고, 그들은 로드의 버프를 받아 성벽 위로 올라왔다.
강민혁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제가 앞에서 막겠습니다.”
특정 인물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이 구역 모두에게 하는 말.
강민혁은 또다시 올라오는 웨어 울프들의 모습에, 검에서 오라를 일으켰다.
지금부터는.
‘수호검법.’
지키는 검을 사용할 차례다.
53화. <15. 마법사들의 생존 방식(3) >
수호검법.
그것은 단순히 ‘검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나를 동반했을 때 나타나는 수호검법의 특성이야말로, 수호검법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다.
화악-
감민혁을 중심으로 마나의 파동이 휘몰아쳤다. 내부에서 수호문의 심법을 사용하였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마나의 흐름이 검에서 표출되었다. 은은하게 일어나는 마나. 활활 타오르는 강(强)의 기운이 아니라, 부드럽게 흘러가는 유(柔)의 기운이 강민혁의 전신을 뒤덮었다.
캬우우우우-
캬악!
웨어 울프들이 성벽을 넘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이 이전과는 달랐다.
적의로 넘실거리는 눈빛은, 바로 코앞에 있는 경비병들이 아니라 강민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온다!’
타다다닥!
다수의 웨어 울프.
그들이 일제히 강민혁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도중에 차징을 당하고, 마법에 맞았으며, 수십 발의 확실히 전신에 박혔지만, 그들의 시선은 강민혁에게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수호검법의 효과였다. 수호검법의 오라는 묘한 파동을 일으키는데, 이 파동은 몬스터들로 하여금 강한 적의를 이끌어낸다.
전장의 한복판.
공간이 분리되었다.
몬스터들의 의식 속에는 강민혁 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러한 위험은 강민혁 홀로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했다.
캬악!
지척에 도달한 웨어 울프.
그의 팔뚝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그대로 강민혁의 얼굴을 할퀴었다.
카앙-!
간발의 차이였다.
하지만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뒤늦게 도착한 웨어 울프들의 공격이 연달아서 강민혁에게 작렬했다.
캉!
카카카캉!
불꽃이 튀었다.
강민혁의 사방에서 웨어 울프의 공격이 쇄도했다. 정면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쳐냈더니 바로 옆에서 웨어 울프가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그의 이빨을 막아내는 사이에 하늘 위에서 서늘한 기운이 덮쳤다. 웨어 울프의 머리를 뛰어넘어서 공격하는 또 다른 웨어 울프. 붉게 물든 그들의 눈빛은 어떻게든 강민혁을 죽여버리겠다는 강한 살의를 보였다.
‘수호검법 수비초식.’
확!
전반부 초식.
강민혁이 웨어 울프의 공격을 흘려보냈고, 동시에 앞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검을 간결하게 휘둘렀다.
푸확!
피가 튀었다.
B급의 웨어 울프가 끄르륵 피가 끓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자, 다른 웨어 울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정신없는 공방이었다.
가장 앞에서.
강민혁은 혼자만의 힘으로 웨어 울프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격렬하게 진행되는 상황이었지만, 강민혁의 눈빛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강민혁은 익숙했다. 수호문의 후계자로서, 가장 최전방에서 적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후계자의 숙명이었다.
강민혁의 아버지.
강덕철은 ‘레드 게이트’가 발발되었을 때, 홀로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막아냈었다.
그는 단순히 수호문의 문주라서 수호검이라 불린 게 아니라, 그 자격을 증명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수호검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희망. 만약 서울에 대재앙이 닥친다면, 한국의 국민들은 수호검이 나타나 가장 최전방에서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줄 거란 믿음이 있다.
그래서 포기했다.
강덕철이 강조하는 후계자의 능력이란, 단순히 지도력을 떠나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사지(死地)의 가장 앞.
그곳에서 강하지 않은 자는, 수호문의 이름을 달고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서걱!
웨어 울프의 머리를 베었다.
숨이 차올랐고, 피비린내는 이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다량의 피를 뒤집어썼다. 웨어 울프들이 사방에서 달려드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강민혁은 격렬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히죽.
‘좋네.’
좋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수호검법이 자신의 의도대로 발현되는 상황에 기뻐서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동료의 부상.
그건 강민혁의 마나가 수호검법을 제대로 발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제대로 된 수호검법이었다면 데스 나이트는 동료를 보지 않았을 테고, 부상을 당할 일도 절대 없었을 것이다.
‘클리스만.’
푸확!
웨어 울프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 뒤로 또 다른 웨어 울프가 달려들었지만, 강민혁은 물러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버텼다.
‘내가 너의 몸으로 행하는 경험들. 이것을 똑똑히 기억해둬. 네가 앞으로 강해지길 바란다면, 지금부터 보여주는 나의 모습이 네 궁극적인 목표가 될 테니까.’
수호보법을 밟았다.
뒤로 물러나되.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앞으로 튀어나가되.
멀리 나아가지 않는다.
수호검법과 수호보법은 자리를 지키고, 내 뒤에 있는 동료들을 지키는 방법.
캬악!
캭!
강민혁으로부터 타오르는 오라가, 득달같이 달려드는 웨어 울프 무리를 정면으로 맞이했다.
강민혁의 도움을 받았던 학생.
해리 윌슨(Harry Wilson)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몸을 덜덜 떨었다.
“제길.”
그린 드래곤 훈련.
숱하게 진행했던 훈련이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발발한 상황에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막상 본인의 목숨이 진짜로 위태로워지자 평정심이 무너지고 말았다. 쩍 벌어진 아가리에서 악취를 풍겨대는 괴물. A급의 웨어 울프는, 이전에 상대했던 몬스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압감을 선사했다.
덜덜덜.
몸이 떨렸다.
일어나서 전투에 가담해야 하지만, 놀람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질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앞에, A급 웨어 울프를 처리한 것으로도 모자라 최전방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강민혁의 모습이 보였다.
“...저게 클리스만이라고?”
경악했다.
클리스만.
그는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들었을 이름이다.
역사상 제일의 열등생.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역사를 통틀어 1서클 마법사가 입학한 경우는 없는데, 클리스만은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되었다. 그래서 말이 많았다. 클리스만이 어떻게 입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해서, 클리스만을 부정적으로 깎아내리는 여러 소문들. 아카데미 내에서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클리스만은 철저하게 아카데미에서 부정 받는 존재였다.
그런 그가.
지금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앞에 나섰다.
그것도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겨우 한자루의 검으로 웨어 울프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검.
이 세상에서 외면당한 무기.
A급 몬스터의 외피를 잘라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무기인데, 클리스만의 손에서는 웨어 울프의 외피가 쩍쩍 갈라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성벽에 올라서는 웨어 울프들이 모두 강민혁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마른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장관이었다.
강민혁이 아니었다면 학살이 벌어질 상황이었는데, 개인의 능력이 그런 참극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여성이었다.
붉게 자라난 머리를 치렁치렁 허리까지 길렀는데, 그녀를 발견한 해리 윌슨의 눈동자가 커졌다.
“엘리샤(Elisha) 선배님!”
엘리샤.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4학년생으로서, 현재 최고의 천재라고 불리는 마법사.
홍염(紅德)의 마법사라고도 불리는 그녀의 등장에, 해리 윌슨의 표정은 밝아질 수밖에 없었다.
“저게 대체 뭐야?”
엘리샤의 시선.
그 끝에는 강민혁이 있었다.
C-1 구역이 위험에 빠졌다고 해서 지원을 왔는데, 그녀의 앞에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 그게 웨어 울프가 방어벽을 뚫었는데, 클리스만이 나서서 웨어 울프를 막았어요. 아참, 클리스만이 누군지 모르시겠구나. 클리스만은 저랑 같은 1학년 동급생인데, 1서클 마법사여서 아카데미의 열등생으로 유명한 녀석이에요. 그, 그런데 어떻게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횡설수설했다.
당황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해리 윌슨의 모습에, 엘리샤는 고운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혼자서 막았다고?’
웨어 울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1학년생의 실력으로는 과한 상대지만, 그렇다고 해리 윌슨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강민혁이 직접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서걱!
하늘로 솟구치는 웨어 울프의 머리.
다수의 웨어 울프를 상대하면서도, 강민혁은 물러나기는커녕 꾸역꾸역 웨어 울프를 처리하고 있었다.
황당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몬스터부터 처리하자.’
화르륵.
홍염의 마법사.
그녀의 양손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캐스팅을 마쳤다.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마력에, 그녀가 소리쳤다.
“비켜!”
강민혁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녀의 마법은 강력한 폭발력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아군 또한 위험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냥 사용해!”
강민혁은 엘리샤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다.
그러나 뒤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밀려드는 웨어 울프들.
엘리샤의 마법이 그들에게 강한 피해를 입힌다 할지라도, 자신이 비키면 분명히 뒤에 있는 사람들은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뒤로 물러나는 것은 선택지에 포함되지 않았다. 강민혁의 고집에, 엘리샤의 표정이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이런 미친 새끼.”
이를 악물었다.
그녀도 강민혁의 의도를 알아채고, 하는 수 없이 마법을 발현시켰다.
‘최대한 저 녀석을 피해서 사용하자.’
“익스 플로전(Explosion).”
6서클 화염 마법.
붉은 기운이 마법으로 화하는 순간, 전방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쾅!
화르르르르르르르륵!
순간 강한 바람이 성벽 위를 휘몰아쳤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웨어 울프들을 덮쳤고, 성벽의 일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지만 덕분에 많은 숫자의 웨어 울프도 그에 딸려갔다. 지금은 성벽의 상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성벽은 형상 기억 마법으로 복구하면 그만이기에, 엘리샤는 최우선으로 몬스터의 척살에 집중하였다.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강민혁의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강민혁이 연기를 뚫고 나타나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웨어 울프의 목을 베었다.
‘이것 봐라?’
이상했다
아무리 강민혁을 피해서 마법을 사용했다고는 하나, 강민혁은 분명히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강민혁은 멀쩡했다.
오히려 상대가 흔들리는 틈을 노리는 모습에, 엘리샤는 재차 마법을 사용했다.
“파이어 캐논(Fire Cannon)."
펑!
화르르르륵!
5서클 화염 마법.
붉게 타오르는 화염이 적들에게 작렬하는 순간, 엘리샤는 강민혁이 보여주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
그건 찰나의 움직임이었다.
강민혁은 마치 마법이 떨어질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순간적으로 그 위치에서 벗어나더니, 파랗게 일어나는 마나로 본인의 몸을 보호하였다. 말이야 쉽지, 그건 정말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예민한 감각.
강민혁은 특별한 기술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엘리샤의 마법을 포착하고 보법으로 피하며 대응했다.
최전방.
그곳에서 버티다 보면 수많은 위험에 노출된다. 그건 단순히 적의 공격뿐만 아니라, 적을 처리하기 위한 아군의 공격도 포함된다. 그래서 아군의 공격을 피해내는 것도 후계자 훈련에 있었다.
엘리샤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엘리샤가 해리 윌슨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쟤 대체 정체가 뭐야?”
54화. <15. 마법사들의 생존 방식(4) >
강민혁의 시선이 바삐 움직였다.
자신의 틈을 노리는 웨어 울프의 공격을 피해냄과 동시에, 오라를 일으킨 검으로 상대를 베었다.
서걱!
크아아악!
생각한 것 그대로의 상황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웨어 울프의 공격은 한발 빠른 강민혁의 대응에 실패로 돌아갔고, 오라는 적당한 강도와 스피드로 웨어 울프의 사지를 갈랐다. 조금의 이질감도 없는 상황. 오히려 완벽한 결과에, 강민혁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뭐지?’
클리스만.
그는 나이가 어리고, 마나로 인한 육체적인 단련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상식적인 상황이었다면 강민혁의 생각과는 다르게 육체 반응이 조금씩은 늦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클리스만의 육체는 강민혁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강화액이 아니라 자연의 기운으로 쌓은 마나는 A급 몬스터를 베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보여주었고, 클리스만의 육체는 강민혁이 바라는 만큼의 힘과 스피드를 표출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일까.
불가능하다.
아무리 강민혁의 ‘의식’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하나, 육체 반응은 확실히 상식을 넘어섰다.
푹!
끄르르르륵.
턱밑을 찌르는 검에 웨어 울프가 피거품을 물었다.
조금이라도 반응 속도가 늦었다면 어깨가 물어뜯겼겠지만, 웨어 울프는 의도를 이루지 못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투 상황에서, 클리스만의 육체는 훈련의 기간과 나이를 뛰어넘었다. 클리스만의 수준에서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능력이었고, 마치 바짝 말랐던 스펀지가 다시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순간순간마다 능력치가 상승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마나의 재능만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민혁은 클리스만의 재능은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넌 정말 미스터리한 존재야.’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니, 이제는 이해하길 포기했다.
끊임없이 클리스만에 대해서 알아갈 생각이나, 이러한 상황에서는 상식적인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클리스만은 천재다.
강화 전사로서 타고난 육체.
그게 끝이다.
현재의 강민혁으로서는, 그 이상의 가설을 제시할 수 없었다.
‘이준호, 그 이상이야.’
강민혁은 평생을 살면서, 이준호보다 뛰어난 재능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아버지인 강덕철도 마찬가지다.
강덕철은 대단한 강자이지만, 단순히 재능만 비교하자면 절대 이준호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클리스만은 이준호조차도 넘어서는 재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나의 재능, 육체적인 능력. 무엇하나 빠질 것이 없었다. 자신이 조금만 단련시켰음에도 이런 능력을 보여줄 정도라면, 충분한 시간과 몸을 다루는 능력을 갖춘 클리스만은 후일 괴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부럽군.’
진심이었다.
A급 몬스터.
사람들은 그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느냐, 쓰러트릴 수 없느냐를 두고 헌터의 가능성을 측정한다.
그들이 강하기 때문에?
맞다.
A급 몬스터는 가장 위협적인 적이지만, 단순히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A급 몬스터는 상위 포식자이나, 그렇다고 개체수가 적은 몬스터가 아니다. 헌터로서 일하다 보면 숱하게 보게 되는 종류의 몬스터고, 그래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지 못하는 헌터는 인정받지 못한다.
수십, 수백 마리의 A급 몬스터.
그들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A급 몬스터에게 상처도 주지 못하는 헌터가 인정받을 리가 있겠는가.
6서클의 벽에 막힌 마법사가.
그리고 마나의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강민혁이.
강화 문명의 세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A급이라는 기준점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리스만은 다르다.
그의 차고 넘치는 가능성은, 강민혁으로서도 그 끝을 예상할 수 없었다.
‘확실한건.’
카앙!
수호검법의 수비 초식이 발휘되었다. 웨어 울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지만, 단단한 마나는 강민혁이 받을 충격을 완화 시켜주었다. 생각보다 버틸 만했다. 아무리 성벽 위라는 좁은 공간이라고는 하나, 강민혁의 ‘경험’과 클리스만의 ‘육체적인 재능’은 A급 몬스터가 포함된 적들을 단 한 마리도 뒤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이게 만약 현실에서 자신의 몸이라면 정말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클리스만의 육체를 주도하는 강민혁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클리스만, 넌 더 이상 약하지 않아.’
서걱!
날아가는 웨어 울프의 머리.
성벽 위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다.
에픽 몬스터.
그것은 재앙이었다.
수천 마리의 웨어 울프라 할지라도 그들만의 힘으로는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성벽을 넘지 못했을 텐데, 웨어 울프 로드의 버프를 받아 결국 성벽을 넘어섰다. 웬만한 국가는 그대로 몰락해버렸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의 게이트였지만,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과연.
영국의 중심이라고 할만 했다.
잠시 흔들리는 것 같았으나, 성벽 위에서 웨어 울프를 완전히 몰아내며 결국 다시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씨 블라스트(Sea Blaster).”
화아악-
콸콸콸콸!
또 다른 대마법사가 등장해 사용한 7서클 마법에, 엄청난 위력의 해일이 그대로 웨어 울프 무리를 휩쓸었다. 성벽 위에서 자비 없이 폭격하는 마법. 마법사가 왜 수성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지를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강화 문명의 마법사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쪽 세상 마법사들의 위력은 상식을 초월한다는 점이었다.
쿵!
쿠르르르르릉.
땅이 뒤흔들렸다.
위기는 넘겼지만, 아직도 게이트는 닫히지 않았다.
‘결국 웨어 울프 로드를 처리해야 해.’
강민혁이 피를 털어내며 성벽 너머를 보았다.
가장 최후방에 위치한 웨어 울프 로드.
에픽 몬스터가 무서운 점은, 그 자체의 위력을 떠나서 그가 죽지 않으면 게이트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고로 지금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었다. 사람인 이상 왕실 마법 아카데미 사람들의 체력과 마나가 떨어지는 시기가 올 테고, 그때는 주도권이 웨어 울프에게 넘어갈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마법사들은 무리하게 로드를 공격하지 않았다.
‘노리는 수가 있는 건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이 사는 세상보다도 오랜 시간 몬스터와 싸웠던 이 세상의 사람들이, 에픽 몬스터의 특성을 놓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성벽 위에서 엄청난 마나가 휘몰아쳤다.
“서먼 기간트(summon Gigant)."
화아아악-
바람이 휘몰아쳤다.
마나가 일순간에 성벽 위로 집중되더니, 아공간이 쩍 열리며 난생처음 보는 형태의 괴물이 고개를 내밀었다.
‘...고렘?’
분명했다.
그것은 마법으로 만들어낸 생명체인 고렘(golem)이었다.
강민혁의 세상에 있는 것과는 그 크기와 마력의 양이 완전히 달랐지만, 기간트라고 불린 괴물은 고렘의 특성을 하고 있었다. 특수한 광물로 만들어진 몸체.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그 크기는 거의 10M에 달했고, 머리에는 황소의 뿔과 양손에 거대한 도끼를 들고 었었다.
쿵.
기간트가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도끼를 휘두르는 순간.
퍼억-
콰콰콰콰쾅!
그대로 전방에 있는 웨어 울프들이 단번에 휩쓸렸다.
그 강력한 위력에, 강민혁은 넋을 잃었다.
‘이게 고렘이라고?’
자신의 기억과는 달랐다.
자신의 세상에서 고렘은 아직 완벽하게 개발되지 않았고, AI 로봇이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모습처럼 겨우 몇 가지 행동 명령어를 실행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세상의 고렘은 달랐다. 기간트가 뿜어내는 막대한 양의 마력에, 강민혁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왜 그래?”
바로 옆.
고개를 돌리자, 엘리샤가 강민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이상한 표정은 뭐야? 기간트 처음 봐?”
클리스만의 세상.
마법 문명이 발달한 이 세상에서 육체를 단련하지 않는 이유는, 그럴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고렘의 발명은 마법 문명의 판도를 바꾸었다.”
고렘.
마법 생명체의 종류는 다양하다.
인간과 비슷한 사이즈를 하고 있는 병사 고렘도 있고, 마법사들이 직접 탑승해서 신체 능력을 상승시켜주는 슈트 형태의 고렘도 있다. 그러나 이 고렘 기술력의 꽃이라고 불리는 집합체는, 바로 엄청난 크기와 마력을 자랑하는 전투용 병기 기간트였다.
기간트.
그것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적 자원과 광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들여서라도 기간트를 제작할 만큼, 기간트는 사람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다.
바로 지금처럼.
콰앙!
기간트가 웨어 울프들을 짓밟았다. 그중에는 A급의 웨어 울프도 있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웨어 울프는 기간트가 뿜어내는 강력한 마력에 그대로 짓이겨지고 말았다. 그리고 도끼를 휘두르는 기간트. 그건 물리적인 충격이 아니라, 도끼날에서 일어나는 마력이 주변의 몬스터들을 덮쳤다.
콰콰콰콰쾅!
기간트는 재앙이었다.
매우 특수한 광물인 오리하르콘과 수천 개의 마나석을 만들어낸 집합체.
그리고 이 괴물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수많은 마법사들이 동력(兵士)을 주입해야만 한다.
화아아악-
성벽 위.
수십 명의 마법사가 마나 링크를 통해 기간트에게 마력을 주입하였다. 그 많은 인원으로도 기간트를 오래 지속시킬 수는 없겠지만, 기간트의 힘은 짧은 시간으로도 충분하다. 에픽 몬스터에 대항할 수 있는 마법사들의 무기. 기간트가, 몬스터들을 뚫고 웨어 울프 로드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플라이(fly).”
“플라이.”
마법사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제껏 성벽 위에서 수성에 전념하던 그들이, 기간트를 따라서 웨어 울프 로드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웨어 울프 로드를 공격하였다.
기간트의 강력한 힘이 웨어 울프 로드를 강타하였고, 하늘에서는 마법사들의 마법이 웨어 울프 로드에게 떨어졌다. 웨어 울프 로드의 반항은 격렬했다. 본인이 어째서 에픽 몬스터인지를 증명하듯, 그의 강력한 발톱 공격은 기간트의 단단한 몸체조차도 크게 찌그러질 정도였다.
하지만.
“플레어(Flare).”
“파이어 레인(Fire Rain).”
화르르륵!
콰콰쾅!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법사들의 마법에 웨어 울프 로드는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기간트에게 발이 완전히 묶여버렸고, 그렇게 시간을 버는 사이에 마법사들이 천천히 로드의 체력을 깎았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땅이 흔들렸고, 하늘이 분노했다.
하지만 머리 위로 떨어지는 기간트의 도끼에, 결국 웨어 울프 로드로서도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콰앙-!
치지지지직.
게이트가 일그러졌다.
로드의 죽음을 증명하듯 점점 사라지는 암흑의 통로에, 강민혁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게 이 세상의 저력이구나.’
사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마법사들.
근접전에는 약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힘으로, 대체 어떻게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일까.
클리스만의 세상은 2000년의 역사 동안 본인들만의 생존 방식을 구축하였다. 유리한 고지를 철저하게 활용해서 적의 숫자를 줄이고, 근접에서 싸우는 경우에는 기간트와 같은 마법 인공물을 앞에 내세웠다. 그러한 과정에서, 검을 휘두르는 전사들의 힘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야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강민혁도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편견이, 이번 전투를 통해서 완전히 사라졌다.
‘마법사들은 강해.’
그들의 선택은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강화 문명을 배제한 것은, 그래도 될 만큼의 충분한 힘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삐이이이이익-
[코드 레드 종료, 코드 레드 종료]
[그린 드래곤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상황 종료.
강민혁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투를 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격렬한 전투로 인해 엄청난 피로감이 그의 몸을 덮쳤다.
그런데 이상했다.
전투가 끝났음에도 너무나도 고요한 상황에, 강민혁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
강민혁이 기간트의 등장에 넋을 잃은 것처럼, C-1 구역의 사람들은 강민혁의 활약에 충격을 받았다.
55화. <15. 마법사들의 생존 방식(5) >
전장 정리가 진행되었다.
형상 기억 마법으로 인해 성벽은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되었고, 의료팀이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부상자를 수습하였다. 사망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동급생들은 친구의 죽음에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게 전체의 분위기로 퍼져나가진 않았다. 이 세상의 평화를 무너트린 게이트 현상이 발발한 이후, 장벽 안의 사람들도 일상에서의 죽음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그나마 이번 전투는 다행이었다.
게이트 규모에 비해 사상자가 거의 없었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피해를 입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CCTV 영상 하나가 퍼졌다.
C-1 구역의 상황을 촬영한 영상이었는데, 당시 생생했던 순간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게 클리스만이라고?”
“와."
"이게 가능한 일이야? 골렘 슈트를 입은 것도 아닌데, 마치 초인처럼 날아다니면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잖아. 상식적으로 이건 말이 되질 않는데. 영상이 잘못된 거 아닌가?”
학생들이 눈을 의심했다.
클리스만.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열등생이 엄청난 무력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떠나, 인간이 맨몸으로 A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이 세상의 상식이 아니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웨어 울프들을 상대로 전혀 물러섬이 없는 클리스만의 모습. 예전에는 학생 1로서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녀석이었는데, 영상 속의 클리스만은 거인(巨人)의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클리스만과 관련된 소문에 부채질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강민혁에게 도움을 받았던 해리 윌슨이었다.
"어떤 상황이었냐고? 그냥 막막했지. 웨어 울프가 방어벽을 뚫고 나를 공격하는데, 진짜 눈앞이 깜깜해지더라고.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무빙 캐스팅으로 웨어 울프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한다 할지라도, A급 몬스터에게 3서클 마법은 전혀 먹히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순간, 클리스만이 나타나서 내게 정신을 차리라고 말했어.”
“정말?”
“클리스만이 널 구했단 말이야?”
경청하는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였다.
그에 해리 윌슨은 당시의 상황에 젖어 들었다.
“어. 클리스만이 날 구해줬어. 그뿐만이 아니야. 혼자만의 힘으로 A급 웨어 울프를 기어코 쓰러트리더니, C-1 구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어. ‘지금부터는 제가 앞에서 막겠습니다.’ 캬아- 미쳤지 않았냐? 그러고 진짜로 클리스만 혼자서 몬스터들을 막는데, 순간 난 내 성별이 전환되는 줄 알았어. 내가 여자였다면, 클리스만의 모습에 반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클리스만의 활약은 가장 핫한 키워드.
CCTV 영상이 아니라 직접 눈앞에서 목격한 해리 윌슨은, 무용담(武勇談)을 전파하는 이야기꾼이 되었다. 이전에 클리스만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직접 도움을 받은 이후로는 태도가 완전히 돌변하였다. 강민혁을 직접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도 전한 해리 윌슨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서 강민혁을 찬양했다. 해리 윌슨의 부연 설명에 CCTV 영상이 한데 어우러지자,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들로서는 클리스만이라는 존재를 달리 볼 수밖에 없었다.
1서클 마법사.
아카데미의 열등생.
배경이 불분명한 녀석.
클리스만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스토리는, 이번 활약으로 단번에 스타로 떠오르기 충분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던가.
아직 복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모두 클리스만의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소문은 결국 ‘윗선’에게도 흘러 들어갔다.
백발을 올백으로 넘긴 중년의 사내.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총장인 아비드(Arvid)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눈앞의 학생을 바라보았다.
탁.
“클리스만, 너의 활약에 대해서는 들었다. C-1 구역은 상황이 제일 좋지 않았는데, 네가 나서는 덕분에 큰 피해가 없을 수 있었다. 참 대단해. 겨우 검 한 자루를 들고 A급 웨어 울프를 상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텐데.”
“아닙니다. 주변의 도움이 있어서 피해가 없었던 겁니다.”
사실 이 자리가 강민혁으로서는 상당히 의외였다.
아비드.
마법 왕실 아카데미의 총장은 얼굴을 보기가 정말 어려운 인물이다. 7서클 대마법사라고 알려져 있는 그는, 게이트 사태가 발발했을 당시 아카데미에 없었다. 뒤늦게 도착한 그는 상황을 정리하고 논공행상(論功行賞)을 진행했고, 그중 한 명으로 1학년생인 강민혁이 이례적으로 선정되었다.
타당한 선택이기는 했다.
아비드의 말대로 C-1구역의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다. 몬스터가 과도하게 집중되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조치가 늦어졌다면 참극이 벌어질 뻔했는데, 강민혁이 나서서 그러한 상황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자 오히려 1학년이라는 신분이 부각되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섰다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비드가 묘한 눈빛으로 강민혁을 훑었다.
아비드 또한 CCTV 영상을 보았고, 강민혁의 기술이 이 세상의 상식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나로 물리 데미지를 입히는 방법. 그건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총장인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생소한 기술이었다. 혹시 그걸 네가 직접 개발했나? 마법이 아니라, 검으로 싸우는 방법을?”
당연한 질문.
그렇기에 예상했다.
검을 들고 나서는 순간부터, 강민혁은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리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예. 아시다시피 저는 마법에 재능이 없는 편이라서, 제 재능을 살려서 싸울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굳이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자신의 기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설명할 의무는 없다.
딱 필요한 정도의 해명을 한 뒤에 강민혁은 입을 닫았고, 아비드는 차를 마시며 웃음을 지었다.
"참 재미있어. 사실 너의 입학 ‘청탁’을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게 이런 결과를 낳다니. 클리스만. 넌 비록 마법에 재능이 없을지라도, 선구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타고났구나. 홀로 A급의 몬스터를 쓰러트릴 정도라면, 네가 발명해낸 기술은 이미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청탁.
그 단어에 꽂혔다.
클리스만의 입학을 부탁한 사람이 있다면, 아비드는 클리스만의 배경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되묻지 않았다.
아비드는 진실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만약 클리스만의 몸에 다른 영혼이 빙의되어 있다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면, 자신의 앞에서 청탁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클리스만도 당연히 청탁한 사람이 누군지 아는 것 같은 말투. 여기에서 청탁의 대상을 묻는다면, 의심을 받을 수가 있다.
일단은 의문을 참았다.
정답을 들은 것은 아니나, 이로써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있었다.
‘저번에 내 문제를 해결해주었던 배경. 그 배경은 아비드에게 청탁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존재였어.’
보통 배경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비드는 이 세상에서 최상위 계층의 사람이고, 그에게 청탁할 정도면 보통의 배경으로는 힘들다.
최소 대마법사와 동급의 존재.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그때, 아비드가 말했다.
“아카데미 장로들과 의논한 결과, 희생과 용기를 보여준 네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기로 결론을 내렸다. 내게 특별히 바라는 보상이 있나? 그게 타당한 보상이라면, 이번 일의 보상으로 그것을 반영하도록 하겠다.”
보상.
아비드가 자신을 만나자고 했을 때, 강민혁은 상이 부여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아비드란 그런 사람이었다.
공과 사가 철저한 사람.
실수는 용납하지 않으나, 공을 이룬 사람은 그에 타당한 보상을 내린다.
그래서 소문을 통해 아비드의 성향을 파악한 강민혁은, 고민 끝에 어떤 보상을 받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두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보상으로 시련의 탑에 오르고 싶습니다.”
마법 도서관.
그곳에서 여러 책들을 읽으며, 강민혁은 우연히 ‘시련의 탑’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시련의 탑의 역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세상에 차원의 균열이 일어나며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장벽 안의 땅에서도 균열이 생겨났다. 그런데 그건 몬스터가 나타나는 균열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균열이었고, 그 안에 발을 들인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정신적으로 폐인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처음 수백 년간은 금지(禁地)로서 취급하였으나, 균열의 생존자가 나타나면서 균열의 용도는 변했다. 균열은 이곳과는 전혀 다른 ‘정신(精神)의 세상’에 발을 들이는 통로였고, 그 공간에서 일정 시간을 버티면 인간은 육체를 초월한 정신을 얻게 된다. 그건 곧 마법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 마법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으로 성취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정신력의 발전은 마법사를 새로운 경지로 인도하는 것이다.]
정신력의 발전.
차원의 균열이 시련의 탑이라고 명명되는 순간이었다.
이와 같은 효과를 가진 균열은 세상에 딱 세 개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영국에 있었다.
시련의 탑은 평범한 사람은 출입할 수 없다. 대마법사의 자질을 가진 사람들은 시련의 탑을 일종의 성장 코스로 여기면서 정신력의 발전을 얻어서 돌아오지만, 평범한 사람의 능력으로는 폐인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시련의 탑 출입은 철저하게 관리되는데, 강민혁은 그곳의 출입을 바랐다.
‘성장을 위해서는 발판이 필요하다.’
이번 전투.
강민혁은 마법사들의 ‘진짜 위력’을 목격하였다.
그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결국 한계가 있었던 자신의 세상과는 다르게, 이곳에서 마법사의 가능성은 감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의 자신은 겨우 3서클 마법사고, 이 세상에서는 절대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는 경지다. 그에 반해, 클리스만의 육체는 수호 심법을 익히자마자 현실에서의 자신을 뛰어넘고 있었다. 물론 대단한 무력을 보여준 것은 강민혁의 정신이지만, 클리스만이 타고난 재능 자체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정도로 대단했다.
강해지고 싶었다.
더 높은 세상을 바라볼수록, 강민혁은 자신의 성취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타들어 가는 갈증에 목이 말랐고,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지 견뎌낼 준비가 되었다.
언제고.
강민혁은 강화 문명에서 세상을 위험에 빠트리는 몬스터 무리를 소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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