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a 5

“이제 마무리하자.”
합동 수업.
그건 학생들에게 친절한 시스템이 아니다.
학생들을 던전에 몰아넣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아카데미에서는 안전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하면 경비팀이 투입되겠지만, 그 사이 학생들이 다치거나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 않는다.
몬스터가 출몰하며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의 죽음은 이제 일상과도 같았으니까.
합동 수업은 그런 차가운 현실을 부각시킴으로써, 학생들을 진짜 헌터로 단련시키고자 한다.
마지막 보스 스테이지를 앞둔 상황에, 강민혁이 말했다.
“앞에 약 20마리의 리자드맨이 있는 것으로 추정돼. 그리고 처음에 교수가 던전에 대해 설명했던 것을 참고하면, 그중에는 C급의 리자드맨 전사도 있을 테고. 어떻게 할래? 정면에서 부딪치는 방법도 있고, 아니면 안전하게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공략하는 방법도 있어.”
두 가지의 선택지.
보통은 후자를 택한다.
사냥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위험천만한 시험을 안전하게 끝낼 방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C급 리자드맨 전사의 경우에는, 2서클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파이어 볼 정도로는 타지 않는 점액질을 보유하고 있기에, 사냥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냥 정면으로 부딪치자.”
이장후 일행은 전자를 택했다.
그건 상당히 위험천만한 선택이었지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선택의 이유를 증명해냈다.
끼에에에엑!
서걱!
리자드맨을 도륙하는 이장후 일행.
그들의 전투는 격렬했다. 혼자서 6마리 이상의 리자드맨을 상대하고 있음에도,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강력한 전투력을 선보였다. 오라가 번뜩일 때마다 사지가 절단당하는 리자드맨. 강민혁이 화염 마법으로 적절하게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기어코 그 많던 리자드맨을 모두 쓰러트렸다.
그리고 마지막.
리자드맨 전사마저도 목을 날린 이장후가, 녹색 피로 흠뻑 젖은 모습으로 강민혁에게 말했다.
“고생했어.”
그 모습에, 강민혁은 씁쓸하게 웃었다.
마법사.
만약 3서클 마법사들이 나섰다면, 3명의 인원만으로 리자드맨 20마리를 도륙할 수 있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3서클이면 그래도 마법사로서 인정을 받는 단계임에도, 이 전투에서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장후 일행의 실력이 검술 학과에서는 평균이라는 거지.’
수많은 검술 학과생들.
그들 중 한 명에 불과한 이장후 일행은, 리자드맨 20마리를 정면에서 도륙하는 무력을 보여주었다.
이게 바로 현실이다.
강화 전사가 각광받는 이유.
그 진실이, 이번 합동 수업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던전 공략이 끝났다.
이장후 일행이 밖으로 나오자, 검술 학과의 교수 김무진은 상당히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던전 클리어까지 40분 걸렸다. 지금까지 너희들이 가장 빨랐다.”
이장후, 도재성, 장기용.
검술 학과에서 그저 그런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1위라는 기록을 세운 상황에, 김무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강민혁을 향했다.
‘강민혁 덕분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리자드맨 던전.
사전에 던전의 난이도를 책정한 결과, 1학년 학생들의 수준이라면 약 1시간이 걸릴 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이장후 일행은 무려 20분이나 단축하였다. 곧이어 검술 학과에서 엘리트라고 불리는 학생들의 파티가 차례로 던전 공략을 마쳤지만, 그들의 기록이 45분 이후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장후 일행의 기록은 매우 대단했다.
먼저 끝낸 파티는 휴식을 취했다.
삼삼오오 모여서 몸에 있는 점액질을 털어냈고, 바닥에 앉아 숨 가빴던 던전에서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는 와중에 사고가 발생했다.
몇몇 학생들이 던전에서 부상을 당했고, 사망까지 직결되지는 않았으나 경비 팀이 투입되어서 해당 던전의 탐사는 중단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탐사를 마친 팀이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파티는 무려 1시간 30분의 시간이 걸리고서야 던전 공략을 성공했다.
합동 수업의 첫 단계.
던전 탐사가 끝났다.
김무진은 앞으로 나서더니,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다행히도 아무런 사망자 없이 훈련을 끝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너희들이 마냥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만약 정상적으로 탐사를 진행했다면 1시간 이내에 던전의 공략을 마쳤어야만 한다. 그런데 1시간 이상이 걸린 팀이 무려 절반 이상인 데다, 참담하게도 1시간 30분이나 소모한 팀도 있었다. 만약 너희가 이따위의 상태로 헌터를 희망한다면, 나는 너희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헌터들이 있지만, 그만큼 실력이 없는 헌터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수히 많이 죽어 나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김무진의 음성은 차가웠다.
한때 철혈검(鐵血劍)이라고도 불렸던 검술의 고수인 그는, 옆에 서 있는 조교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그들이 스크린을 세팅하였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커다란 스크린이 배치되자, 김무진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1등과 꼴등의 던전 탐사 영상을 확인하도록 하겠다. 이번 영상을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던전을 공략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이 틀린 것인지를 충분히 공부하기를 바란다. 이곳에서의 경험이, 차가운 바깥세상에서 너희들의 구명줄이 될 것이다.”
팟.
화면을 켰다.
그 시작은, 1시간 30분이나 걸린 꼴찌 팀의 영상이었다.
39화. 10. 비주류의 현실(3)
꼴찌 팀은 개인의 실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꼴찌 팀의 검술 학과생들은 이장후 일행과 실력이 비슷한 수준이었고, 마법 학과생인 엄효섭은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1인분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마법사였다. 서로 호흡을 잘 맞추었다면 1시간 내에 충분히 던전을 클리어했겠지만, 던전에 미리 설치된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에서 그들의 문제점이 시작부터 드러났다.
[“앗, 뜨거!”]
[“야, 방해되니까 마법 사용하지 마. 어차피 네 도움이 없더라도, 던전 클리어는 문제없어.”]
엄효섭이 리자드맨을 견제하기 위해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사의 포지션에서 적절한 대응을 한 것이었는데, 검술 학과생들은 열기가 조금 전해진 것만으로도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부터 엄효섭은 잔뜩 위축되었다. 나름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고 싶은데, 조금이라도 무엇인가를 하면 검술 학과생들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통에 멍하니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사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검술 학과생들이 자신한 것처럼, 그들은 엄효섭의 도움이 없더라도 충분히 리자드맨을 제압했다.
문제는 사냥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 발생했다.
[“여기가 어디지?”]
[“길을 잃은 건가?”]
던전은 기본적으로 미궁처럼 형성되어 있다.
무턱대고 이동했다간 막다른 길에 막힐 가능성이 있기에, 보통은 주변의 흔적을 파악하고 최대한 옳은 길을 찾아야만 한다. 그런데 꼴찌 팀은 그러한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 무턱대고 걸음을 옮기면서 마주하는 적들을 상대했고, 그런 행동으로 인해 다른 팀보다 탐사 속도가 느려졌다.
그리고 마지막.
엄효섭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않은 것이, 나중에 20마리의 리자드맨 무리를 만났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막아!”]
[“이익!”]
20마리의 출현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
급작스럽게 벌어진 전투에 그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미끈거리는 점액질로 물리 피해를 감소시키는 리자드맨의 특성에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검술 학과생들의 자존심은 엄효섭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숫자의 리자드맨을 만날 때마다 발목이 붙잡힌 꼴찌 팀은,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어도 결국 엄효섭의 도움 없이 던전을 클리어했다.
대단한 일이었다.
검술 학과생들은, 적어도 본인들만의 힘으로 던전 클리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1시간 30분.
영상의 시청이 끝나자, 김무진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꼴찌 팀의 판단은 최악이었다. 던전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고, 마법사는 파티에서 없는 존재나 다름이 없었다. 리자드맨이 강한 상대는 아니라고는 하나, 이따위 방식으로 던전 공략에 나섰다간 혹시 모를 변수에 당할지도 모른다. 최상의 방법으로 공략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던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쥐고 있는 힘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꼴찌 팀의 경우에는, 이후 수업에서 어떤 성적을 받든 간에 F등급을 책정하도록 하겠다.”
“아!”
“교수님!”
해당 영상의 학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김무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들은 시선을 피하며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머저리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몇몇 학생들의 경우에는, 수업의 성적이 아니라 마법 학과생들과의 관계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애초에 마법 학과생들과 같이 파티를 이루는 것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불만인 것이다.
이해한다.
마법사가 없어도, 던전 공략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이번 수업을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가능의 여부가 아니라 효율을 따지는 것이다.
“방금의 영상은 헌터가 기피해야 할 최악의 선택지였다. 그럼 지금부터는, 1등의 영상을 보겠다.”
1등.
김무진도 궁금했다.
이장후 일행의 실력으로, 어떻게 가장 빨리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었는지.
스크린 화면에 떠오른 영상에, 김무진은 곧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동일했다.
이장후 일행은 강민혁의 마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강민혁의 말에 대립 구도가 정리되었다.
[“··················하지만 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어렵게 갈 필요는 없잖아? 이번 합동 수업이 너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지만, 그게 성적을 포기할 정도의 이유는 아니잖아.”]
이후부터 사냥의 속도는 빨랐다.
강민혁이 점액질을 태우면, 이장후 일행의 실력으로 리자드맨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강민혁이 나섰다.
[“이 앞으로는 리자드맨이 이동한 흔적이 드물어. 보스 스테이지에 많은 숫자의 리자드맨이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마 막다른 길이 형성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 그러니까 오른쪽으로 이동하자.”]
판단은 옳았다.
왼쪽에는 막다른 길이 있었고, 대부분의 파티는 왼쪽을 택함으로써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효율적으로 리자드맨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점액질을 태우는 것이 우선이야. 먼저 공격을 당하더라도, 처음에는 방어적으로 리자드맨의 공격을 막아. 그리고 내가 화염 마법으로 리자드맨의 점액질을 태우면 그때부터 반격을 시작해. 던전에서의 사냥은 항상 위험의 연속이야. 언제 어디서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의미한 체력 소모는 지양해야만 해.”]
강민혁의 조언이 적절하게 작용했다.
이장후 일행의 실력이 대단히 특출난 것은 아니었으나, 강민혁과의 호흡으로 인해 리자드맨들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다. 점액질이 모두 타버린 리자드맨. 그들은 이장후 일행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강민혁이 상황에 따라 마법적인 지원을 해주다 보니, 다수의 리자드맨을 처리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장후가 리더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장후 일행이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상황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리더 강민혁.
위치가 바뀌었다.
이장후 일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파티의 리더는 분명히 강민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결국 보스 스테이지도 마무리한 상황에, 김무진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완벽해.”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철혈검이라고 부르는 김무진이, 이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검술 학과생들로서는 상당히 낯설었다.
“과연 1등 팀의 호흡은 다르군. 1등 팀은 던전 사냥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리자드맨의 점액질을 태우고 공략하는 방법은 아주 훌륭했고,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적절한 연계를 통해서 빠른 시간 내에 던전을 공략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강민혁의 역할이 아주 주요했다고 생각한다. 옳은 길을 찾고, 리자드맨의 공략법을 제시했으며, 강민혁이 찾은 정확한 정보들로 인해 1등 팀은 조금의 오차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게, 합동 수업에서 바라는 이상적인 결과다.”
분위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강민혁.
그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다.
검술 학과생들이 수백 명 있는 자리에서, 김무진이 지금 마법 학과생을 칭찬하고 있었다.
던전에서의 활약?
인정한다.
영상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강민혁은 매우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검술 학과생들로서는, 김무진이 칭찬하는 대상이 강민혁이라는 사실에 배알이 꼴렸다.
‘강민혁의 활약이 뛰어났던 것은 인정해. 하지만 결국 리자드맨 무리를 처리한 건 이장후 일행이었잖아. 그들의 무력이 없었다면, 강민혁이 아무리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무용지물이었을 거야.’
이례적인 상황.
마법 학과생이 합동 수업에서 칭찬을 받는 경우는 없기에, 검술 학과생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1등 팀의 탐사 영상은 교보재로 삼겠다. 앞으로 3일의 시간을 줄 테니, 너희들은 1등 팀의 사냥법이 왜 이상적인 결과인지를 레포트로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기억해라. 헌터는 결국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입장이다. 강화 전사, 마법사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힘을 합쳐야만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김무진이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불만이 팽배하게 차오르는 모습에서,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였다.
“그럼 1일 차 합동 수업을 종료하겠다.”
수업이 끝났다.
굳이 학생들의 불만은 해결하지 않았다.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차이.
그것은 교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이 시대가 낳은 현실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마법 학과생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강민혁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칭찬을 받았으나, 다른 학생들도 강민혁과 같은 입장은 아니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정말 마법사는 필요가 없나 봐.’
‘검술 학과생들은 우리 없이도 리자드맨을 처리했어.’
C급 던전.
아직 마법 학과생들에게는 높은 벽이다.
그런데 같은 또래의 검술 학과생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그들로서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비주류의 현실.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체감하지 못한 현실이, 이번 합동 수업을 통해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검술 학과생들은 강했다. 마법사의 도움은 그들에게 사냥을 조금 더 편하게 해주는 보조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 사냥을 주도하는 것은 바로 강화 전사들이었다.
입맛이 썼다.
학과로 복귀하는 길에, 학생들은 웃는 얼굴을 보이지 못했다.
그건 정상훈도 마찬가지였다.
마법 학과 수석에 빛나는 그조차도, 이번 합동 수업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분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강민혁이 다가와 말했다.
“당연한 결과야. 아직 2서클 마법사에 불과한 네가, 던전 탐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
강민혁의 말은 전혀 위로되지 않았다.
이해한다.
강민혁은 검사였던 사람이고, 지금은 마법사다.
두 세계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기 때문에, 보다 객관적인 말을 할 수 있었다.
“마법사의 강점은 던전과 같이 변수가 많은 공간에서는 발휘되지 않아. 강화 전사가 주가 되고, 마법사가 보조적인 수단이 되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지. 그게 현실이야. 현실을 애써 부정하기보다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것을 구분하는 게 마음이 편할 거야.”
“하지만 검술 학과 녀석들의 태도를 봤잖아요. 그들은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아요.”
“그게 뭐가 중요해?”
“예?”
강민혁이 정상훈을 보았다.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우리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 그게 현시대의 흐름이고, 많은 사람들이 마법사가 아니라 강화 전사를 택하는 것만 보아도 마법사는 어딜 가서나 인정받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야. 우리가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주류의 사람들은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겠지.”
비참한 현실이다.
마법사들은 그렇게, 강화 전사들의 차가운 시선 아래 본인의 길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남들의 생각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무너지는 것은 너무 초라하잖아. 그러니 보여주자고. 던전 사냥에서야 그들이 활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다음 차례인 수성전에서는 달라.”
수성전.
자리를 지키고, 적의 공격을 막는 행위.
강민혁이 말했다.
“너와 나, 이렇게 둘이서 같은 구역을 막자. 수성(守城)에서만큼은, 마법사라는 존재가 가치가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자고.”
강민혁.
그는 리더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수호문에 있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던 것처럼, 강민혁을 바라보는 정상훈의 눈빛이 변했다.
불안한 현실.
남들은 인정해주지 않는 비주류의 길.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정상훈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민혁의 흔들림 없는 음성은 단단한 버팀목이 되었다.
‘스승님을 따라가다 보면, 옳은 길로 나아갈 수 있어.’
서로의 목표를 위해 형성된 관계.
하지만 지금은, 인간적으로도 강민혁에게 끌리는 정상훈이었다.
40화. 11. 수성전
2주간 진행되는 합동 수업은, 하나의 훈련이 끝나고 나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교육을 진행한다.
복습 과정을 맡은 백동석 교수.
그에게 있어, 강민혁의 영상은 매우 훌륭한 교보재였다.
“이번 합동 수업을 앞두고 몇몇 학생들은 내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교수님, 던전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마법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보통은 다들 착각하지. 강화 전사가 앞에서 막아서고, 마법사가 뒤에서 공격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라고 말이야.”
실전 경험이 없는 마법사들.
그들은 열이면 열, 백동석과 같은 말을 한다.
“그건 틀렸다. 던전과 같이 변수가 많고 협소한 공간에서, 마법사는 주도적인 입장이 아니라 강화 전사의 힘을 부각시킬 수 있도록 보조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왜냐고? 협소한 공간에서는 아군을 피해서 적만을 타격하는 것이 힘들뿐더러, 캐스팅에 필요한 시간과 공간적인 여유가 없다. 그럴 때는 무리하게 공격 마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보조적인 포지션을 취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던전을 공략하는 방법이다. 물론 상황적인 제한들을 넘어서는 실력이 있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야.”
삑-
영상을 재생시켰다.
백동석이 이렇게 길게 설명한 이유는, 본인의 설명과 강민혁의 활약상이 완벽하게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파이어 볼.”]
[화르르르륵!]
리자드맨과의 전투.
강민혁이 선공으로 리자드맨의 점액질을 태워버렸다. 이후 강민혁은 무리하게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범위가 넓지 않은 마법으로 리자드맨을 공격했다. 격렬한 전투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는 포지션이었고, 덕분에 이장후 일행은 수비적인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완벽한 보조.
강민혁의 마법이 발휘될 때마다, 백동석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이 영상을 봐라. 마법사가 할 수 있는, 마법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강민혁이 보여주었다. 화염 마법으로 리자드맨의 점액질을 태우고, 전투 도중에는 보조적인 포지션으로 강화 전사들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 만약 내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이 있다면, 강민혁의 모습이 실전 마법의 교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야말로 극찬이었다.
백동석은 낯부끄러울 정도로 강민혁을 칭찬했고, 3일간 진행된 복습 과정에서 강민혁의 영상을 매일 재생시켜주었다. 그만큼 강민혁의 플레이는 마법사로서 부족한 부분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며칠 전이었다면.
강민혁에 대한 시기심에, 몇몇 학생들은 지금의 상황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검술 학과라는 공공의 적이 생겨나면서, 수업을 듣는 마법 학과생들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혹시 따로 영상을 받아갈 수 있을까요?”
적극적인 학습 태도.
학생들이 수업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그들은, 검술 학과와의 합동 수업으로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 그들도 아는 것이다.
절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였을까.
처음에는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접근하지 않던 학생들이, 은근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민혁아, 리자드맨의 점액질이 공략 포인트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어? 혹시 주로 읽는 몬스터 백과사전이 따로 있어?”
“합동 수업에서 정말 대단하던데.”
“이렇게 인사하는 건 처음이지?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태도가 한순간에 변했다.
절박함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강민혁은 적당한 선에서 대응해주었다.
이해한다.
그들이 왜 자신을 배척했으며, 자신을 어째서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비주류 학문을 배우면서 겪었던 지난 서러움들이, 수호문의 출신이었던 강민혁에 대한 벽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딱 그 정도.
강민혁은 그들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강민혁의 아버지는 말했었다.
“되도록 원만한 대인 관계를 맺되, 내 사람과는 확실히 다르게 대할 필요성이 있다.”
선을 그었다.
강민혁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은 정상훈 정도.
그나마 김창수가 무리에 포함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외에는 절대 과한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그래야 사람들이 깨닫는다.
강민혁에게 잘해야만, 본인 또한 ‘울타리’에 포함될 수 있음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강민혁은 본능적으로 본인의 세력을 형성하는 방법을 행하고 있었다.
며칠 뒤.
헌터 아카데미에서 가장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Z구역에서, 두 번째 과정인 수성전이 진행되었다.
학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
김무진이 앞으로 나섰다.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만 던전과 게이트는 다르다. 던전은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공략할 수 있다면, 게이트는 갑작스럽게 생성되는 만큼 변수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수성전 훈련은 반드시 필요한 과목이다. 게이트는 언제 어디서 어떤 형식으로 생성될지 모른다. 만약 시가지 한복판에서 게이트가 생성된다면, 주변에 있는 헌터들은 소집 명령을 받고 수성전을 준비해야 한다.”
Z구역은 여러 형태의 시가지 훈련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 도시를 모델로 한 훈련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김무진이 설명을 덧붙였다.
“게이트의 지속 시간은 약 1시간 내외. 보통 게이트가 생성될 경우, 1차 저지 병력이 게이트를 기점으로 1km 반경을 완벽하게 포위한다. 그리고 동서남북으로 퍼지는 몬스터들을 저지함으로써, 게이트로 인한 민간인들의 피해를 막아낸다. 이것을 우리는 초동 조치라고 부른다. 이후 해당 구역의 헌터 부대가 출동해서 몬스터들을 소탕하는데, 우리는 소탕이 아니라 수성의 임무를 훈련할 예정이다.”
수성.
매우 중요한 단어다.
자리를 지키고 막아내는 것.
초동 조치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피해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초동 조치에 성공하면 민간인의 피해는 적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지 예상할 수 없다.
“수성전의 포인트는 총 세 가지다. 첫 번째로는 빠르게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방어 라인을 형성하는 것. 미리 자리를 선점하는 것은 수성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지형지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몬스터를 통과시키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두 번째로는 적절한 인원의 분배.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는 사방으로 퍼지기 때문에, 적절하게 인원을 배치하지 않을 경우 세 방향을 막더라도 나머지 한 방향이 뚫릴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수성전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민간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 헌터는 민간인의 보호를 위해 존재하며, 몬스터의 소탕은 수성전에서 진행할 임무가 아니다. 우리가 버티면서 몬스터들이 퍼져나가지 않도록 막는다면, 민간인들은 대피하고 그 이후에 소탕 작전이 시작된다.”
몬스터의 등장.
재앙이 닥치고 백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인간들은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체계적인 구조를 형성했다.
수성전은 그 일부였다.
사실 몬스터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소탕전보다 더 요구되는 부분이 많은 만큼, 이번 합동 수업에서는 수성전에 무려 1주일의 시간을 부여하였다. 그만큼 수성전은 충분한 훈련이 필요한 임무였다.
김무진이 말했다.
“그럼 수성전을 진행할 조를 발표하도록 하겠다.”
조에 대해서는 이미 언질을 받았다.
희망하는 사람에 따라 같은 조로 묶어주었기 때문에, 강민혁과 정상훈은 같은 조에 소속될 수 있었다.
[3조]
강민혁의 조였다.
한 조마다 마법사 5명과 강화 전사 40명이 배치되었다.
던전 탐사 때와는 다르게 스케일이 매우 커졌는데, 이게 보통 수성전을 진행하는 최소한의 인원이었다.
3조의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Z-3구역을 맡은 담당관이 상황을 부여했다.
“이번에 게이트를 통해 출몰한 몬스터는 D등급의 오크입니다. C등급의 오크 전사도 포함되어 있으며, 게이트의 형성 시간은 약 1시간. 그 시간 안에 오크를 모두 토벌하거나, 1km 반경 밖으로 몬스터를 통과시키지 않으면 수성에 성공합니다. 참고로 북쪽에는 다른 방향보다 2배 이상의 몬스터가 투입될 예정이니, 이를 감안해서 인원을 배치하시면 됩니다.”
나름 친절한 설명이었다.
실전은 이와 같지 않지만, 그래도 아카데미에서는 학생들이 수성전에 경험이 없음을 배려해주었다.
검술 학과생 한 명이 대표로 나섰다.
“아무래도 북쪽에 많은 인원을 투입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차피 나머지 세 방향을 막아도 한쪽이 뚫리면 말짱 도루묵이잖아. 북쪽에 마법사 2명에 강화 전사 16명을 투입하고, 나머지 방향에 각각 마법사 1명과 강화 전사 8명으로 방어 라인을 형성하자. 나는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은데.”
“괜찮네.”
“그럼 북쪽에 지원할 사람?”
북쪽.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게 아무리 훈련이라지만, 위험성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다칠 가능성도 커진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러나 선택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강민혁이 나섰다.
“나와 상훈이가 북쪽으로 갈게.”
“그럼 마법사는 끝.”
이제 남은 것은 강화 전사.
그런데 처음에는 눈치를 보던 그들이, 강민혁이 간다고 말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나도 북쪽으로 갈게.”
“나도.”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야지.”
그들 중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바로 이장후 일행.
그들은 강민혁의 조에 자진해서 포함되었고, 강민혁이 북쪽으로 간다고 하자마자 따라서 지원했다.
사실 그들은 지난 수업으로 인해 강민혁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었다. 강민혁이 아니었다면 절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이장후 일행이, 김무진의 말처럼 강민혁의 도움으로 1위를 하지 않았던가. 그때의 순간을 떠올린 그들은, 이번에도 강민혁의 덕을 보려고 일부러 3조에 자진해서 포함되었다. 그러니, 북쪽으로 가겠다는 강민혁의 말에 당연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수성전 3조.
이 조에 포함된 이들은 대체적으로 강민혁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마법 학과에서 보낸 명단을 확인하고 대부분 다른 조를 택했다.
인원 배치는 끝났다.
곧바로 3조의 학생들은 본인의 위치로 걸음을 옮겼고, 북쪽으로 이동하자 시가지의 모습이 보였다.
평범한 도시의 풍경.
강민혁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나쁘지 않네. 건물의 배치가 방어 라인을 형성하기에 용이한데다,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몬스터가 오크라면 건물 위로 넘어갈 위험성은 없어. 뚫려 있는 공간만 막는다면 수성에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지.’
강민혁은 이 상황이 익숙했다.
수호문에서 토벌과 수성은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수성이라는 상황이 크게 낯설지가 않았다.
그걸 알았던 걸까.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3조 학생들 중에, 이장후가 대표로 나섰다.
“강민혁.”
“왜?”
“네가 리더를 맡는 게 어때?”
의외였다.
리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단어일 수도 있겠지만, 자존심이 강한 검술 학과생이 마법사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그들은 확신했다.
저번 던전 사냥으로, 적어도 강민혁의 경험은 진짜라고.
이번에도 강민혁의 말을 따르는 것으로 좋은 점수를 얻고자 했다.
‘귀엽네.’
상대의 의도가 보였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저들은 비주류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음에도, 점수를 위해서 자존심을 버린 케이스가 아니던가.
현실에 순응하는 것.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고, 저들의 선택을 나쁘게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다.
이장후가 말했다.
“저번 훈련에서 느꼈어. 수호문의 후계자였던 너는, 다른 학과생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련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네가 리더를 맡는다면, 약속하는데 네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할게. 일부러 수성 훈련을 망칠 만큼, 우리가 그렇게 멍청한 녀석들은 아니거든.”
솔직하게 의도를 밝혔다.
그렇게까지 말하자, 강민혁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강민혁이 나머지 학생들을 보았다.
“너희들도 같은 생각이야?”
“응.”
“우리도 네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
판은 깔렸다.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강민혁은 발을 빼는 사람이 아니다. 
강민혁이 말했다.
“그럼 내가 리더를 맡도록 하지.”
그리고 10분 뒤.
강민혁의 명령에 따라 준비를 마치자, 드디어 수성전 훈련이 시작되었다.
[균열 확장]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나타납니다.]
활짝 열린 게이트.
그곳에서부터, 수많은 오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41화. < 11. 수성전(2) - 유료 연재 시작 >
게이트.
그것을 재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차원의 균열이 일으키는 변화무쌍함 때문이었다.
“게이트는 차원의 균열이 일어나는 현상을 표현하는 단어일 뿐, 던전과는 달리 ‘하나의 통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최초로 게이트 현상이 포착되는 지점. 그곳에서부터 약 1km 반경으로 어디에서든 게이트가 생성될 수 있기 때문에, 수성전의 범위는 위험 지역을 모두 포함한다.”
1km.
그 범위가 기준점이 된 이유였다.
던전과 같이 한 지점에서 게이트가 생성된다면 그곳만 공략하면 되지만, 게이트의 경우에는 일정한 패턴이 없어서 1km 범위를 완전히 포위해야만 한다. 그래서 수성전이라는 초동조치가 생긴 것이고, 사람들은 이러한 골든 타임(Golden Time)의 시간을 약 15분 정도로 설정하였다.
최초 게이트 현상 포착 이후, 인근에 위치한 헌터를 소집하는 시간 5분.
그리고 헌터들이 모여서 1km 반경으로 방어 라인을 형성하는 시간이 10분.
이렇게 15분의 시간이 흐르면 적게는 한두 개, 많게는 수십 개의 게이트가 몬스터들을 토해낸다.
그나마 15분의 딜레이가 있는 게이트는 대응이 쉬운 편이지만, 가끔 예고도 없이 나타나는 레드 게이트라는 종류도 있다. 그것은 국가적 재앙으로 선정되었으며, 레드 게이트에서는 보통 A급 몬스터들이 출몰하기 때문에 그때는 인근 헌터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헌터가 모두 소집된다.
상황 발생.
아카데미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통로를 통해, 오크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륵.
취익.
오크들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낯선 환경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게이트를 통해 속속들이 나타나는 오크들. 짧은 시간에 오크들이 벌써 시야를 가득 메우는 모습에,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장후는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이게 게이트구나.’
난생처음 보았다.
이론적으로야 질리도록 공부했던 분야이지만, 게이트를 실제로 보는 것은 흔한 경험이 아니다.
헌터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 아카데미생에 불과한 이장후에게는 낯선 세계였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강민혁의 명령에 따라 방어 라인을 형성하기는 했지만, 괜히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크들이 우리의 의도대로 움직여줄까.’
북쪽.
이쪽에는 가장 많은 몬스터들이 출몰한다고 했다.
당연히 커버해야 하는 공간이 많은데, 강민혁은 적절한 분배가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북쪽의 통로는 총 다섯 개가 있어. 두 개는 길목이 좁아서 차를 이용해서 막으면 되고, 다른 두 개는 ‘게릴라 부대’라고 명명한 3명의 강화 전사를 각각 배치할 거야. 게릴라 부대는 절대 정면에서 싸우지 마. 혹시라도 본인들이 담당한 길목으로 진입하는 오크가 있을 경우 기습으로 처리하고, 만약 감당하지 못할 적이 나타나면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해. 그리고 정 위급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미리 지급받은 마법 폭탄을 이용해서 양쪽 건물을 폭발시켜버려.”
마법 폭탄.
겨우 17살의 학생들에게, 위험천만한 무기가 쥐어졌다.
건물의 폭파는 최우선 선택지가 아니다.
몬스터가 나타날 때마다 건물을 폭발시켜버린다면, 인간들이 살아갈 건물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마지막 보루.
강민혁의 설명에, 이장후는 질문을 던졌었다.
“그럼 가장 큰 통로에 모든 병력을 배치시키겠다는 건데, 오크들이 어떻게 그리로 오리라고 확신해?”
당연한 질문이었다.
양쪽에 낮은 건물이 있는 그 길목이 수비에 용이하다는 사실은 동의하지만, 오크가 의도대로 따라주리라는 확신은 없다. 그러나 생각보다 강민혁이 제시한 방법은 간단했다. 오크들이 원하는 것이 피와 살육이라면, 그들이 원하는 부분을 충족시켜주면 된다는 것이다.
“시작해.”
쫘악.
투두두둑.
강민혁의 명령에 이장후를 비롯한 검술 학과의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찢었다. 그건 바로 수혈팩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미리 챙겨둔 것을, 그들은 오크들을 유인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바닥에 쏟아지는 다량의 피들. 그 피들이 풍겨대는 비릿한 향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오크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크르르륵!
캬악!
번들거리는 살의.
강민혁의 의도는 통했다.
이장후는 그에 안도하면서도, 파도처럼 밀려드는 오크들의 모습에 식은땀으로 젖은 손으로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강민혁의 지시는 간결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정석이었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방어 라인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크아아악!
취익!
일제히 달려드는 오크들.
선공은 4층 건물 위에 있는 마법사들이었다.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파이어 볼 세례.
강민혁과 정상훈이 동시에 사용한 마법에, 화끈한 불길이 타오르며 그대로 오크를 덮쳤다.
콰앙!
화르르르르륵!
크아아아악!
오크들이 비명을 질렀다. 대여섯 마리의 오크가 불길에 휩싸였지만, 그 정도만으로는 대세에 크게 지장이 없었다. 기어코 지척에 도달한 오크들. 선두에 위치한 강화 전사들이 오러를 뿜어내는 순간, 오크와 강화 전사들이 한데 뒤얽혔다.
크아아악!
“죽여!”
서걱!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장후의 검이 번뜩이면서 오크의 가슴팍을 갈랐고, 오크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끼를 그대로 내려찍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도재성이 오크의 도끼를 막았다. 강민혁은 이번 전투에서 강화 전사들을 2인 1조로 형성하였다.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투 상황에서, 등을 맡길 동료가 있도록 안전장치를 만든 것이다.
푹! 퍽퍽!
오크의 몸에 검이 꽂혔다.
강화 전사들은 본인들의 무력을 표출하며, 파도처럼 밀려드는 오크들의 목을 단번에 베어버렸다.
하늘에 흩뿌려지는 피.
피가 비처럼 후드득 떨어졌지만, 강화 전사들은 흔들림이 없었다.
“후욱, 후욱.”
이장후의 숨이 거칠어졌다.
겨우 몇 분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숨이 차오를 정도로 오크와의 전투는 격렬했다.
그러자 마법 폭탄이 아쉬웠다.
조마다 4개의 폭탄이 보급되었는데, 그걸 사용한다면 오크들을 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고 했어.’
마법 폭탄.
그것의 위력은 3서클 마법보다 강한 정도.
만약 네 개의 폭탄을 동시에 터트린다면 10마리 이상의 오크를 처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대세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잠깐 숨을 돌리는 정도. 그래서 강민혁은 제한적인 마법 폭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법 폭탄은 적을 처리하는 용도가 아니야. 마법 폭탄의 숫자는 제한적이고, 마법 폭탄은 특수한 마나 파동으로 인해 건물 파괴에 더 특화되어 있어. 그것을 이용해서 몬스터들을 한 번에 제압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수성전의 임무를 기억할 필요성이 있어. 몬스터들을 1km 반경 밖으로 통과시키지 않는 것. 고로 마법 폭탄은 수비적인 임무에 사용해야 해.”
마법 폭탄은 희소성이 크다.
많이 보급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강민혁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마법 폭탄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아마 다른 조들.
그들은 마법 폭탄을 공격적으로 사용할 활용성이 크다.
실제로 그렇게 하겠다는 계획을 듣기도 했지만, 이장후는 이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강민혁의 말이 맞을 거야.’
던전 탐사.
강민혁은 그곳에서 맹목적인 믿음을 선사해주었다.
그리고 강민혁은, 마법 폭탄을 후방에 배치하는 대신에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다.
“지금이야!”
약 10분 정도 흐른 시간.
밀려드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이장후가 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때였다.
4층 건물에 있던 강민혁이,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파이어 볼.”
화르르륵!
강하게 타오르는 불길.
그것의 목표는 바로 길목 한가운데 있는 가스차였다.
수성전의 기본은 지형지물의 활용이다.
그래서 가스차를 몬스터들이 지나갈 길목에 배치했고, 그것은 곧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펑!
퍼퍼퍼퍼펑!
쿠르르릉.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오크들이 폭발에 휩쓸리며, 새카맣게 타버린 오크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총과 같은 화기들은 몬스터들에 잘 통하지 않는다. 급소를 관통해도 몬스터가 죽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이지 않지만, 화력을 이용한 폭발은 지금도 사용되는 수단이다. 한차례 폭발이 휩쓸면서 오크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문제는 아직 게이트가 닫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오크들.
이장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길.’
전략은 좋았다.
피를 이용해서 한곳에 몬스터를 집중시킨 것은 적절했으나, 그걸 감당할 만한 전력이 없었다.
더 큰 화력.
지금은, 그런 것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강민혁은 건물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행형 몬스터는 없어. 전부 오크들이고, 그렇다면 4층 건물 옥상은 적으로부터 안전해.’
사실 당연한 일이다.
이미 오크가 출몰될 거란 정보를 받았지만, 강민혁은 실전처럼 상황을 충분히 지켜보길 택했다.
변수는 없었다.
D급의 오크나, C급의 오크 전사는 4층 건물 옥상을 올라갈 만한 능력이 없다. 그건 상당히 희소식이었다. 강화 전사일 때는 몰랐지만, 마법사에게 ‘안전한 지역’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었다.
“상훈아.”
“예."
“지금부터 준비해.”
확-
히공에 마나를 흩뿌렸다.
동시에 서클을 활성화시키면서, 자연의 마나와 자신의 마나를 ‘동화’시켰다.
‘강화 전사들이 버티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강한 화력을 사용해서 오크의 숫자를 줄여야 해.’
2서클?
아니다.
그 정도의 마법으로는 오크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없다.
그래서 곧바로 3서클 마법을 준비했다.
이로 인해서 사람들은 충격에 빠지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정쩡한 대응은 독이 된다.
할 거라면 확실하게.
강민혁은 결단을 내렸다.
이번 훈련은, 사람들이 자신을 다시 한번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화아악.
붉게 올라오는 마나들.
그것이 3서클 화염 마법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평범한 3서클 마법이 아니다.
서클 강화로 인해 위력이 상승하였고, 최상급 3서클 마법을 사용함으로써 그 위력은 4서클에 버금간다.
그리고.
“윈드 피스트.”
위이잉.
정상훈이 판을 만들었다.
바람의 주먹으로 인해 주변에 바람이 휘몰아쳤고, 이것은 화염 마법의 좋은 장작이 될 것이다.
화룡점정.
강민혁이 마침내 캐스팅을 끝냈다.
“파이어 버스트(Fire Burst)."
화염의 폭발.
붉은 마나가 오크 무리에게 작렬하는 순간, 강한 열기가 폭발하였다.
쾅!
화르르르르르륵!
엄청난 폭발이었다.
아카데미생 수준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강한 열기가 그대로 주변의 오크들을 휩쓸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
마법의 위력에, 지상에 있던 검술 학과생들이 옥상을 쳐다보았다.
“이, 이게 뭐야?”
“방금 위에서 파이어 버스트를 사용한 거야?”
4서클에 버금가는 위력.
방금 강민혁이 사용한 마법은, ‘아카데미 수준’에서는 강화 전사들조차도 충격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42화. <11. 수성전 (3) >
서클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파이어 버스트의 열기가 아직 채 가라앉기도 전에, 더블 캐스팅으로 하나의 마법이 더 완성되었다.
“파이어 웨이브(Fire Wave).”
화르르륵.
화염의 파도.
옥상에서부터 시작된 거대한 물결이, 그대로 지상에 있는 오크들을 덮쳤다.
콰앙!
화르르르르륵.
끄에에엑!
오크들이 비명을 질렀다.
2서클 마법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강민혁의 마법은 차원이 달랐다. C급은 4서클, D급은 3서클 마법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마법 세계의 공식이다. 그런데 지금 강민혁이 4서클에 버금가는 화력의 마법을 사용하니, 대부분 D급의 오크들로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새카맣게 타 들어가는 피부. 픽픽 쓰러지는 오크들의 모습에, 이장후를 비롯한 강화 전사들은 여유를 되찾았다.
“공격해!”
“죽어!”
서걱!
반격이 시작되었다.
비교적 상황이 널널 해지자, 강화 전사들의 오러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오크들의 머리를 무차별적으로 베어버렸다. 대혼란이 벌어졌다. 한쪽에서는 화염에 타오르는 오크들이 비명을 지르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오크들의 학살이 벌어지고. 게이트에서 나타난 오크들의 숫자는 무려 백 마리에 달했지만, 그런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북쪽 진지는 단 한 마리의 오크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역시 엘리트들이라는 건가.’
강민혁이 힐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는 오크들을 막아내는 검술 학과생들의 모습에, 새삼 그들이 달리 보였다.
검술 학과.
명칭을 ‘검술’로 통합하기는 했지만, 검술 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무기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강화 전사에 특화된 재능을 말한다. 검술 학과에서 평균의 실력을 갖춘 이장후조차도, 일반인 출신 헌터들과 비교했을 때는 재능이 뛰어난 편이다. 그걸 증명하듯, 검술 학과생들은 오크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았다. 그들의 선전 덕분에, 애초에 지금과 같은 판을 만들 수가 있었다.
옥상은 평화로웠다.
지상에서 그려지는 지옥도와는 다르게, 강민혁은 검술 학과생들의 희생으로 시간과 공간적인 여유를 얻었다.
화악-
다시 흩뿌려지는 마나.
이번 수성전에서 강민혁의 역할은 명확하다.
딜러.
오크들의 씨가 마를 때까지, 폭발적인 화력을 계속해서 뿜어낼 것이다.
“파이어 버스터.”
쾅!
화르르르륵.
옥상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정상훈이 보조하고, 강민혁이 마무리하고.
그러한 모습에 밑에 있던 검술 학과생들이 감탄한 표정을 보였다. 그만큼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그들의 상식에서는 마법사가 보일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이 있는데, 강민혁과 정상훈의 호흡은 대단했다. 특히 강민혁의 마법. 1학년 학과생이 3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화르르르르륵.
활활 타오르는 대지.
오크들이 분노에 차오른 눈빛으로 옥상을 올려다보았으나, 그들에게는 강민혁을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비행 능력이 없는 그들에게는 너무 높은 위치인 데다,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려고 해도 강화 전사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완벽했다.
강민혁은 수성전의 이상을 보여주었다.
강화 전사들이 앞에서 막아서고, 마법사들이 안전한 상태에서 딜을 넣고.
적어도 ‘뛰어난 마법사’라는 전제만 갖추어진다면, 이러한 이상적인 그림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눈에 띄게 줄어드는 오크들.
그리고 격렬하게 전투가 벌어지는 북쪽의 현장은,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교수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강민혁이 3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자리에 앉아 흥미롭게 영상을 지켜보던 백동석 교수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벌떡!
“파, 파이어 버스트라니.”
당황스러웠다.
전에 강민혁이 2서클 마법사임을 밝힐 당시, 백동석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도 강민혁의 성장에 경악했었다. 강민혁은 분명히 입학 할 때만 하더라도 1서클 마법사였는데, 지금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3서클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재차 확인해 보았지만, 영상에서의 강민혁은 강력한 3서클 마법으로 오크들을 그야말로 학살하고 있었다.
“백동석 교수님. 강민혁이 원래 3서클 마법사였습니까?”
김무진이었다.
김무진도 상당히 당황한 모양인지, 그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보였다.
“아니요. 아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얼마 전에 2서클의 경지에 올랐다고 했는데, 지금은 3서클 마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김무진 교수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서클의 형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몇 개월 만에 간단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짧은 시간에 강화액을 과다하게 투입할 경우, 아직 단련되지 않은 인간의 육체는 그대로 붕괴하고 맙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현실을 부정하는 그의 모습에, 김무진의 시선이 모니터에 고정되었다.
“...저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저는 예전에 강민혁을 실제로 본 경험이 있습니다. 무투 대회에 출전했던 강민혁은, 마법사로서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마법 학과에 입학해서야 마법을 시작했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천재는 상식의 영역을 벗어난다지만, 강민혁의 성장은 천재라는 단어조차로도 설명하지 못할 수준입니다.”
충격에 빠졌다.
영상을 보는 교수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그들은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당황스러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민혁의 마법은, 백동석이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이번 수성전의 상대로 오크가 선정된 것은, 현재 마법 학과생들의 마법으로는 다소 버거운 상대이기 때문입니다. D급의 오크를 효율적으로 상대하기 위해서는, 마법사들이 서로의 힘을 합칠 필요성이 있죠. 그런데 보십시오. 강민혁의 마법에 D급의 오크들이 그야말로 학살을 당하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3서클 마법을 버텨내야 할 C급의 오크 전사도 죽어 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C=4서클.
그건 공식이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전투 끝에 내린 결론.
그렇다면 오크 전사는 강민혁의 마법을 버텨내야 할 텐데, 비명을 꽥꽥 지를 뿐 전혀 반항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알 수 있는 사실.
강민혁의 마법은 3서클이나, 그 위력은 4서클에 버금간다는 것이다.
“...이,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3조의 전술에 감탄했다.
하지만 한 길목에 몬스터를 집중시킨 것은 패착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상식 밖.
교수들의 상식으로도 강민혁은 설명할 수 없다.
그때, 김무진이 말했다.
“어찌됐든 간에 강민혁은 ‘합동 훈련’의 수준을 벗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 정도의 화력을 갖추고 있다면, 몬스터를 한 길목에 집중시킨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되겠지요.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강민혁은 대단하다.
인정한다.
그의 활약 덕분에, 백 마리에 달하던 몬스터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문제는.
“게이트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옥입니다. 우리는 ‘오크 우리’에서 배출되는 오크가 40분 동안은 일정 숫자를 유지하도록 설정했기때문에, 아무리 많은 오크를 죽였다 할지라도 위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만약 강민혁의 마나가 다 떨어진다면, 그때부터 위기는 시작될 겁니다. 강민혁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나, 그와 같은 특별함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니까요.”
벌써 6번째 마법.
[쾅!]
[화르르르르르륵!]
비명을 지르는 오크들을 바라보며, 김무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 곧이다.
강민혁의 마나가 동이 나는 순간, 3조의 위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이상했다.
벌써 처리한 오크만 오십 마리 정도.
그런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오크들의 모습에, 강민혁은 하나의 가설을 유추할 수 있었다.
‘몬스터의 숫자가 유지되도록 설정되어있는 건가.’
그것밖에 없었다.
백 마리면 학생들의 힘으로 간신히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인데, 게이트는 그 이상의 몬스터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밸런스가 무너지는 수준. 강민혁의 마법이 중단되는 순간, 체력적으로 고갈이 심할 강화 전사들로서는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마법이 중단될 가능성은 없어.’
마나 룸.
그 훈련의 효과는 정말 탁월했다.
남들은 고가의 물품이라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상급의 마나석을 매일 6개나 사용하니, 강민혁의 서클에는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방대한 양의 마나가 축적되어 있었다. 옆에 있는 정상훈과 비교하면 가히 대해라 칭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 3서클 마법을 벌써 6번이나 사용한 상황이었지만, 아직 강민혁의 서클에는 상당한 양의 마나가 남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나 동화.
강민혁은 마법을 사용함에 있어 온전히 본인의 마나만을 사용하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자연의 마나를 빨아들임으로써, 절반의 소모만으로 3서클의 마법을 구현해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상식이라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마법사가 장기전에 약하다는 것인데, 강민혁은 그러한 상식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다.
“파이어 버스트, 파이어 웨이브.”
쾅!
화륵, 화르르르륵!
마법이 계속해서 발현되었다.
교수들이 놀라건 말건, 강민혁은 강력한 화력으로 전장의 밸런스를 맞추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분명히 강화 전사가 이 세상의 주류이지만, 지금은 마치 마법사가 주류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매우 특별한 케이스였다.
만약 강민혁과 똑같은 3서클 마법사를 데려와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연출할 수는 없다. 마법의 위력이 차이가 나는 데다, 그들은 마법을 조금만 사용해도 마나가 동이 날 것이며, 캐스팅 속도도 평균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건 마법사라는 포지션의 대단함이 아니라, 그냥 강민혁이 대단한 것이다.
괴물.
강민혁의 활약은 상식을 무너트렸다.
강화 전사들의 활약도 분명히 대단했지만, 지금만큼은 강민혁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쾅.
화르르르르륵!
강민혁의 마법이 다시 한번 작렬하는 순간, 더 이상 게이트로부터 오크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40분.
그 시간이 지난 것이다.
교수들은 40분 동안 오크를 소환하면, 남은 20분의 시간 동안 남아 있는 오크들과 사투를 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오크들이 추가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남아 있는 오크들은 순식간에 학살을 당했다. 강민혁의 지원과 강화 전사들의 무력이 한데 어우러지자, 개개인이 강하지 않은 오크 무리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푸확!
끼에에엑!
팔이 날아간 오크가 비명을 질렀다.
길게 이어진 전투에 이장후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버텨냈다는 사실에 표정은 희열로 차올랐다.
강화 전사.
그들은 본인들이 어째서 주류인지를 보여주었다.
아무리 지원이 있었다고 한들, 40분의 시간 동안 버텨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마지막.
드디어 딱 한 마리 남은 오크마저 처리했을 때,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 게이트가 보이지 않았다.
털썩!
“끄, 끝났어!”
“후욱, 후욱.”
학생들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몸을 경직시키던 긴장감이 사라지자,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강민혁은 쉬지 않았다.
강민혁은 상황이 종료되자마자 곧바로 옥상에서 내려오더니, 숨을 헐떡이고 있는 이장후에게 말했다.
“가자.”
“어, 어딜?”
“어디긴. 다른 방향을 도와주러 가야지.”
북쪽의 임무는 끝났다.
하지만 이번 임무는 한쪽만 막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방향에서 조금의 실수도 없어야 한다.아직 10분이 남은 상황.
“지금부터 병력을 세개로 나누자.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딱 10분만 더 고생하면, 너희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이장후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도저히 힘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강민혁의 말에,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그래, 하자.’
복종을 약속했기 때문이 아니다.
단 두 번의 경험.
강민혁과 있었던 순간들의 기억에, 이장후는 이제 진심으로 강민혁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43화. <11. 수성전 (4) >
남쪽 방향.
그곳에 투입된 3조의 멤버들은, 시작부터 상황이 아주 좋지 않았다.
크아아악!
“이런!”
“따라가!”
남쪽에는 2개의 길목이 있다.
그래서 당연히 양쪽에 4명씩 강화 전사를 배치하고, 중앙에 있는 건물에서 마법사가 상황에 따라 양쪽을 모두 커버하는 방법을 택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투 경험이 떨어졌고, 현실이 계산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게이트에서 나타난 오크들.
그들이 계획과는 다르게, 대다수가 오른쪽 방향을 공격한 것이다.
크아아악!
“제길!”
그때부터 남쪽은 혼란에 빠졌다.
오른쪽을 도와주기 위해서 자리를 이탈하는 바람에, 남쪽의 학생들은 수성의 이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방이 노출되어버린 상황. 그들은 정신없이 달려드는 오크들을 상대했다. 전략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마주하는 적을 상대할 뿐이고, 죽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발악했다.
“윈드 커터(Wind Cuttur)."
사사삭!
옥상에서 마법사의 마법이 발현되었다.
그러나 2서클 마법 하나만으로는, D급 이상의 오크들에게 타격을 입히기엔 힘들었다.
기껏해야 몇 마리가 다치는 정도.
마법사는 강민혁처럼 강력한 화력을 선보일 수 없었고, 전투 내내 큰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마법사란 그렇다.
한 명보다는 두 명.
두 명보다는 세 명이 시너지를 발휘한다.
아무리 수성전에 이점이 있다지만, 겨우 ‘2서클 마법사’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위태로운 상황.
그럼에도 남쪽의 학생들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강화 전사의 저력 덕분이었다.
푸학!
화르르르르륵!
“물러나지 마!”
남쪽의 리더.
송기백이라는 학생이, 오러를 강력하게 일으키며 오크를 베어버렸다.
그는 검술 학과에서 이장후보다 뛰어난 실력의 검사로 인정받는다. 그를 필두로 학생들이 고군분투하였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베고 또 베고. 정신없이 오크들을 상대하다 보니, 정말 다행히도 남쪽의 학생들은 오크들을 뒤로 밀어낼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뒤가 안전했다.
적어도 사방에서 공격받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수성전이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 많이 남은 시간.
치열한 혈투가 시작되었다.
혹시라도 부상자가 발생하면 곧바로 경비 병력을 투입시키기 위해서, 교수들은 남쪽 학생들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였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남쪽 학생들. 활활 타오르는 그들의 투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냈지만, 마지막 10분에 그 불길이 약해지고 말았다.
체력의 한계.
50분을 버텼으면 충분히 대단한 것이었다.
북쪽보다는 몬스터의 숫자가 현저히 적다고는 하나, 그들은 시작부터 너무 어려운 싸움을 했다.
퍽!
“커억.”
한 학생이 오크의 발길질에 맞았다.
그가 바닥을 나뒹굴자, 대열에 생긴 공백으로 오크들이 밀려 들어왔다.
게이트에서 더 이상의 오크는 소환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아 있는 오크들을 처리할 힘이 없었고, 옥상 위에 있는 마법사는 마나를 모두 사용하는 바람에 발만 동동 굴렀다. 어떻게 도와주고 싶었지만, 옥상에서 내려와 싸우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위기.
남쪽의 방어 라인이 무너지려는 순간.
오크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격해!”
“와아아아아아!”
북쪽 학생들.
그들이 도착했다.
정확히 세 조로 인원을 나눈 그들은, 남쪽에 도착하자마자 오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남쪽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체력이 떨어진 것은 같았지만, 그렇다고 동료의 위험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상황이 반전되었다.
오크의 소환이 끊긴 상황에서, 북쪽 학생들의 도움은 희망의 불길을 살렸다.
서걱!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오크.
이장후는 몸만 남은 몸통을 그대로 걷어차더니, 피로로 얼룩진 송기백을 내려다보았다.
“괜찮아?”
“괜찮기 한데, 북쪽은 어떻게 했어?”
송기백의 눈빛이 불타올랐다.
이장후.
그는 북쪽으로 간 멤버다.
그런데 아직 수성전의 시간이 남은 상황에서, 그들이 이곳에 도착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수성이 아니라, 소탕에 성공한 게 아닐까.
그러나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북쪽에 마법사 1명, 강화 전사가 8명이나 더 갔다지만, 북쪽은 커버해야 할 범위도 넓을뿐더러 오크의 숫자도 많다고 했다. 남쪽보다 상황이 좋지 않으면 더 좋지 않았지, 벌써 북쪽의 상황을 정리하고 다른 쪽을 도와주는 것은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
이장후가 피식, 웃었다.
본인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남쪽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 북쪽은 이미 상황을 모두 정리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나중에 확인해 봐. 북쪽에는 우리가 알던 상식과는 다른 ‘진짜 마법사’가 있었거든.”
훈련이 끝나면.
던전 탐사 때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훈련 영상을 보게 될 것이다.
이장후는 입 아프게 본인이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 모두가 본인이 받은 충격을 경험하길 바랐다.
삐익-
훈련이 종료되었다.
수성전을 성공리에 마친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김무진이 상황을 정리했다.
“총 10개의 조가 수성전을 진행하였고, 그중 3개의 조가 부상자가 발생해서 도중에 수성전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5개의 조는 길목이 뚫림으로써 수성 실패. 1조와 3조만이 수성전 임무에 성공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려 여덟 개의 조가 수성에 실패했다.
참담한 성적에 고개를 숙인 학생들과는 다르게, 1조의 학생들은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 김무진을 보았다.
‘우리가 1등이겠지.’
확신했다.
1조의 학생들은 미리 사전에 얘기해서 검술 학과의 엘리트들만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강민혁이 사용한 전술처럼 ‘수혈팩’을 사용하는 등의 상당히 체계적인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은 완벽하게 수성에 성공하였다. 그러니 자신들이 1위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사실 오크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1시간 동안 버터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수성전의 1위는 바로 3조다.”
“예?”
1조의 리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도 모르게,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3조가 1위입니까? 저희도 부상자 없이 성공적으로 수성을 마쳤습니다. 3조도 저희와 다르지 않을 텐데, 왜 3조를 1위로 선정하신 겁니까?”
타당한 의견이었다.
리더의 말에 1조의 조원들도 동조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등한 결과를 만들어냈다면, 그 결과에서 순위가 나누어진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주기를 바랐다.
“너희는 수성에 성공했고, 3조는 ‘소탕’에 성공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너희도 알고 있을 텐데.”
“...소탕이라고요?”
1조의 리더가 당황했다.
소탕.
예상치도 못한 단어다.
이번 훈련은 수성만 해도 대단한 것인데, 3조는 소탕을 했다는 말인가.
“그래, 소탕. 3조는 1시간이 되기 전에 오크를 모두 소탕하였다. 수성전의 임무가 민간인의 보호를 위해 일정 구역으로 몬스터를 통과시키지 않는 것이지만, 그래도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오크들을 모두 처리하는 것이다. 3조는 수성뿐만 아니라, 소탕의 임무도 완벽히 성공했다.”
반박할 수 없었다.
정말 3조가 소탕에 성공했다면, 이번 수성전 훈련에서 3조가 1위로 선정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아직 납득하지 못하는 학생들.
실제로 영상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눈빛들에, 김무진이 말했다.
“직접 봐야 납득할 수 있겠다는 눈빛들이군. 그럼 이번에는, 1위의 영상을 먼저 보여주도록 하겠다."
팟.
영상이 재생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1시간 동안, 학과의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마법사.
그들도 엄연히 헌터다.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위력적이기에, 현역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은 마법사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그런데 검술 학과는 왜 이렇게까지 마법 학과를 배척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어른들로부터 내려온 인식 때문이었다.
마법사는 약하다.
마법사는 미래가 없다.
마법사는 강화 전사보다 밑이다.
어른들이, 사회가 꾸준히 떠들어대는 말들로 인해, 검술 학과의 학생들은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보는 마법사도 편견과 다르지 않았다. 아직 낮은 서클의 마법사는 효율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벌써부터 강한 무력을 선보이는 자신들에 비해 하찮게만 보였다. 저들이 강해져서 3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된다면, 그때는 마법사도 나름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들이 3서클에 오를 정도면, 검술 학과의 학생들은 더욱 강력한 헌터가 될 것이다.
점점 벌어지는 차이.
마법사가 평생 을의 위치에 있음을 알기에, 검술 학과생들은 마법 학과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었고, 인정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3조의 수성전 영상은 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쾅!]
[화르르르르르륵!]
강민혁이 사용하는 마법.
강력한 불길이 오크들을 덮치자, 수많은 오크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그건 검술 학과생들이 익히 알고 있던 마법의 위력이 아니었다. 아카데미라는 제한적인 그들의 세상에서는 2서클 마법, 강해봤자 3서클 마법이 전부였는데, 4서클의 위력을 뿜어내는 마법을 보자 넋을 잃고 말았다.
3서클.
강민혁이 어떻게 3서클의 경지에 올라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법사가 이러한 활약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검술 학과생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마법사는 가능성이 있다.
6서클 이후의 마법이 발명되지 않아서 그렇지, 그들은 분명히 헌터의 한 갈래로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영상이 끝났다.
마지막 오크마저 쓰러지는 모습에, 방금까지도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던 1조의 리더가 고개를 푹 숙였다. 웃긴 것은 충격을 받은 사람이 검술 학과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법에 대해 더 잘 아는 만큼, 마법 학과생들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상황에 부릅뜬 눈으로 강민혁을 보았다.
김무진이 말했다.
“사실 3조의 결과는 매우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인원을 분배하고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선택이 좋기는 했지만, 강민혁의 마법이 아니었다면 오크들을 절대 소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잠시 말을 끊었다.
김무진의 시선이 강민혁에서 멈추더니, 고민하는 듯 묘한 눈빛을 보였다.
그로서는 궁금했다.
강민혁이 어떻게 3서클을 마법을 사용했는지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의문이었다.
“강민혁.”
“예."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해도 괜찮겠나?”
“예, 하셔도 괜찮습니다.”
강민혁은 천재다.
뛰어난 재능 덕분에 3서클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천재라고 한들, 절대 해소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
그건 마법사 전체의 문제점이고, 마법사의 약점으로 거론되는 부분이다.
“너는 이번 수성전에서 3서클 마법을 무려 16회나 사용했다. 그전에 사용한 2서클 마법도 포함 시킨다면, 1시간 동안 20회에 달하는 마법을 사용한 것이지. 이는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마법사의 서클에는 한계가 있고, 아무리 많은 양의 약물을 투여했다 할지라도 3서클 마법사는 절대 10회 이상의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모두의 시선이 강민혁에게 집중되었다.
맞는 말이다.
강민혁과 같은 조였던 이장후 일행조차도, 끊임없이 사용되던 마법에 의문을 가졌었다.
대체 어떻게?
모두가 해명을 바랐다.
그리고 강민혁은, 애초에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마나 동화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마나 동화? 그게 무엇이지?”
“자연의 마나를 이용해서 마법의 소모 마나량을 줄여주는 방법입니다.”
“...?!"
김무진의 눈이 커졌다.
마나 동화라니.
처음 듣는 기술이었다.
“그런 기술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아무리 강화 전사라 할지라도, 마법사의 세계에 대해서 모르지 않다. 만약 그런 기술이 있었다면, 나 또한 마나 동화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교수님께서 마나 동화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강민혁이 김무진을 올려다보았다.
의심과 경악으로 얼룩진 그의 눈빛을 마주 보며, 강민혁은 모두를 충격에 빠트릴 폭탄을 떨어트렸다.
“마나 동화는 제가 만들어낸 기술이니까요.”
쇼타임.
강민혁은, 합동 수업의 주인공이 되길 택했다.
44화. < 12. 마법의 선구자 >
뇌가 굳는 느낌이 이런 걸까.
일반 학생의 입에서 결코 나올 수 없는 말에, 김무진의 눈동자가 파도를 만난 것처럼 흔들렸다.
‘마나 동화를 직접 개발했다고?’
마나.
이 세상의 미스터리.
마나로 인해 새로운 세상이 열린 이후, 마법사들은 마법에 들어가는 마나 소모량을 낮추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래야만 했다. 서클에 있는 마나만으로는 장시간 마법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마법사들은 마나의 비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뚜렷한 방법은 찾지 못했고, 결국 사람들은 그 문제를 ‘난제(難題)’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지금.
강민혁이 마법사들을 괴롭히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아무리 김무진이 강화 전사라고는 하나,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마법사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투자하는 마나에 비해 그 효율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강화 전사는 일말의 마나로도 오라를 형성할 수 있지만, 마법사의 경우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이러한 약점은 마법사들을 항상 괴롭혀오던 문제다. 무슨 뜻인지 알겠나? 네가 정말 마나 동화라는 기술을 발명해냈다면, 그건 마법 학계를 발칵 뒤집을 만한 사건이다.”
현실을 부정했다.
마나 동화가 얼마나 대단한 이론인지.
김무진은 그러한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경악으로 얼룩진 눈으로 강민혁이 얼른 대답하길 바랐다.
그건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마법 학과생들의 경우에는,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처음 마법에 입문할 때.
조언이랍시고 그들이 듣는 말이 있다.
“정말 마법에 입문할 생각이라면 이것만은 기억해. 마법사가 세상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5서클 이후의 미래가 없다는 것과 마나의 한계 때문이야. 네가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다 할지라도, 네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5서클이 끝인 데다 그 마법조차도 오래 사용할 수 없는 거지. 이 세상의 재앙은 마법사를 배려해주지 않아. 무기만 있으면 끝까지 싸울 수 있는 강화 전사들과는 다르게, 너희는 마나가 동이 나는 순간 스스로 목숨을 지킬 힘이 사라지게 돼.”
마법사.
그들이 저평가받는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김무진의 발언은 그것을 지적하였고, 마법 학과생들의 시선이 강민혁에게 집중되었다.
정말일까.
마나 동화라는 기술이 실제로 개발되었고, 그 기술만 있다면 마나의 약점을 해결할 수 있을까.
강민혁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마나 동화의 개발이 마법 학계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저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교수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다른 학과생들이라면 몰라도, 마법 학술 대회에서 더블 캐스팅과 마법 형태 변화를 발표한 저의 발언은 그 무게가 다르다는 사실을요."
".........."
안다.
그래서 되물었다.
정말 꿈의 기술이 발명되었다는 사실을, 강민혁의 입으로 재차 확인하고 싶었다.
“미치겠군.”
평가의 자리가 변했다.
수성전의 영상을 분석하고 가르쳐야 하는데, 너무 큰 사건에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버렸다.
‘대체 강민혁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강민혁.
수호문의 후계자.
분명히 강화 전사로서 두각을 나타내던 그가, 마법의 길을 걷자마자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머리로는 이 상황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강민혁이 마법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김무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철혈검이라고 불리는 그조차도, 강민혁 앞에서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네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단언한다.
강민혁은 앞으로.
“너는 마법의 선구자(先驅者)가 되겠구나.”
수성전의 소식이 곧 학과에 전달되었다.
그러자 학과장 최병호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뭐어???!!”
마나 동화.
설명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단어.
최병호는 부랴부랴 학과장실로 복귀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민혁이 학과장실을 방문했다.
“아이고, 혁아. 훈련이 많이 힘들지는 않았니?”
“괜찮아요.”
“어서 이리 와서 앉으렴.”
최병호가 호들갑을 떨었다.
최병호의 안내에 강민혁은 푹신한 소파에 앉았는데, 최병호는 늘 그렇듯 상석이 아니라 맞은 편에 앉았다. 볼 때마다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과장 정도의 신분이 학생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최병호는 강민혁 앞에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상하 관계가 무너진 상황.
최병호는 마치 본인이 아랫사람인 것처럼,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마나 동화에 성공했다고?”
목소리가 떨렸다
사실 마나 동화에 대한 말을 듣고, 최병호는 믿을 수가 없어서 수차례 볼을 꼬집었다.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그것들은 정말 대단한 발견이다.
특히 더블 캐스팅으로 인해 마법사의 위력이 강해졌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마나였다.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마나가 동이 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최근에는 ‘조루 마법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더블 캐스팅으로 한 번에 화력이 확 타올랐다가, 금방 빌빌대는 마법사들을 비유한 단어였다. 그러한 이유로 현재 마법 학계는 마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강민혁이 완벽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강민혁이 말했다.
“예, 성공했습니다. 예전에 이학범 교수님을 통해 보고받으셨지 않습니까? 마법 학술 대회가 끝나고 이학범 교수님과 저는 마나 동화 연구를 시작했고, 최근에 완벽한 이론을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아.”
최병호의 표정이 환해졌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신음 섞인 뜨거운 숨이 내뱉어질 정도였다.
그가 말했다.
“그걸 우리 아카데미에, 아니 내게만이라도 공개해줄 수 있나?”
중요한 문제다.
최병호도 엄연히 마법사다.
학과장으로서 학생들의 수준이 발전하길 바라지만, 그래도 가장 최우선은 자신의 발전이다.
최병호의 기대 어린 눈빛이 강민혁을 향했다.
처음 입학할 때는 근엄하게 학생들을 내려다보던 그가, 지금은 강아지마냥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애초에 마법 학과의 지원을 받고 시작한 연구입니다. 학과장님뿐만 아니라, 마법 학과의 학생들에게도 ‘마나동화’를 최우선으로 제공할 생각입니다. 저는 학과장님과의 거래를 잊지 않았습니다. 제게 학교 생활의 편의를 봐주겠다고 약속한 대신, 저 또한 학과장님의 기대를 저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역시.”
확.
최병호가 강민혁의 손을 움켜잡았다.
감격에 차오른 표정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표현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조금 있어. 민혁이 널 처음 보았을 때, 마법 학과의 보배임을 한 번에 알아보았지.”
피식, 웃었다.
첫 만남.
그때만 하더라도, 수호문의 출신인 강민혁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계산기를 두드리던 최병호가 있었다.
절대 이렇게 살갑지 않았던 그가, 과거의 기억을 미화했다.
강민혁이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말만 해.”
계산이 빠른 사람은 상대하기 편하다.
주도권을 확실하게 움켜쥐고 있는 이상, 상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줄 것이다.
“세계 마법 연합에게 연락을 돌려주세요. 제가 마나 동화를 발명해냈으니, 그걸 확인하고 싶다면 내일 점심까지 이곳으로 모두 모이라고. 그것만 해주시면 됩니다.”
계획의 일부.
지금부터는 판을 주도할 차례다.
난리가 났다
최병호가 열심히 연락을 돌리자, 전 세계의 마법 연합들이 경악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입니까?”
“소모 마나량을 감소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요?”
“당장 가겠습니다!”
세계 마법 연합.
그리고 여러 마탑들.
각자의 나라에서 강대한 세력을 일군 그들과 비교하면, 마법 학과 최병호의 이름값은 정말 보잘것이 없다. 최병호는 정치를 잘해서 학과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지, 마법사로서 뛰어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연락을 받은 사람들은 최병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최병호가 강민혁의 대변인임을 알기에, 그들은 당장 떠날 채비를 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마법 세력들.
그들 중에는 명망 높은 대마법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 마법 협회의 존 웨슬리와 같은 인물도, 전화 한 통에 마법 학과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 학과의 한 강당.
그곳에 자리한 사람들은 묘한 기대감으로 차올라 있었다. 강민혁이라는 어린 학생의 요구에 먼 걸음을 달려온 것은 상당히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마나 동화.
마법사의 난제를 해결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한국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이라 할지라도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다.
“마나 동화라는 기술이 정말 가능한 걸까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더블 캐스팅과 마법의 형태 변화를 성공시킨 강민혁이에요. 이미 선례가 있는 이상, 그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어요.”
속닥이는 사람들.
그들은 진위 여부를 당장 확인하고 싶었다.
강민혁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뜻 받아들기에는 이번 발견은 그 무게가 대단했다.
그때였다.
강민혁이 나타나자, 소란스러웠던 강당이 깊은 침묵으로 내려앉았다.
“제 연락에 이렇게 한달음에 찾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전합니다. 저는 헌터 아카데미 마법 학과의 1학년생인 강민혁이라고 합니다.”
짝짝짝.
짝짝짝.
박수가 나왔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강민혁이라는 이름에, 마법 학계의 명사(名士)라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박수를 쳤다.
“일단 마나 동화를 설명하기 전에, 제가 생각하는 방향성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난 마법 학술 대회에서 더블 캐스팅과 마법의 형태 변화를 발표한 것처럼, 제가 알아낸 지식을 독점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마법 학계의 부흥입니다. 고로 마나 동화를, 아무런 대가 없이 여러분들에게 공개하겠습니다.”
"헉."
“무료로 공개한다고?”
“대체 왜?”
웅성웅성.
사람들이 당황했다.
마나 동화.
그건 억만금을 받아낼 수 있는 기술이다.
만약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지식의 대가를 지불하라고 한다면, 수천억의 돈을 그냥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강민혁에게 이제 돈은 큰 의미가 없었다. 붉은 마나석의 비밀을 알아낸 이후, 강민혁은 금전적인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부를 축적했다.
그래서 무료로 풀었다.
이로 인해 보일 사람들의 반응.
이 모든 것이 계획의 일부였다.
‘마법 학술 대회로 나는 유명세를 얻었어.’
첫 번째 단계.
사람들에게 더블 캐스팅과 마법의 형태 변화를 공개한 대가로, 사람들은 강민혁의 이름을 주목하였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가능했다.
만약 강민혁이 이름 모를 평범한 학과생이었다면, 마나 동화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헛소리로 치부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을 경악에 빠트린 선례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의구심은 가지되 차마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엉덩이가 무거운 마법 학계의 명사들이 대거 움직였다.
이게 두 번째 단계다.
마법 학계의 명사들이 강민혁의 의도대로 움직인 순간부터, 강민혁은 보다 확실한 발언권을 얻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는 어떤 말을 하든, 마법 학계는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식을 가지고 강경하게 나가야 하나, 아니면 대가성 거래를 해야 하나.
아니다.
강민혁은 힘이 없다.
그래서 무료로 지식을 공개함으로써 분란은 일으키지 않되, 그 안에는 치명적인 독을 풀었다.
‘나는 마법 학계의 성역(聖域)이 될 것이다.’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마나 동화.
대단한 기술들의 발명으로, 전 세계 마법 연합은 욕심은 있지만 강민혁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만약 잘못 건드린다면, 다른 세력의 공격을 받을 테니까.
그런 아슬아슬한 힘의 경계선에서, 강민혁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다.
더 대단한 지식들.
마법 학계를 발전시킬 새로운 발견들.
아기새처럼 자신에게 지식을 공급받는 것에 익숙해질 무렵, 강민혁이 새로운 마탑을 건설하고 지식을 끊는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마법 학계의 판도가 바뀌겠지.’
자신과 타협하든.
자신에게 가담하든.
아니면 자신에게 돌아서든.
마법 학계가, 자신의 마탑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강민혁은 상당히 대담하고 계획적인 방법으로, 마법 학계가 100년간 쌓은 탑을 무너트리고자 했다.
강민혁이 웃었다.
“지금부터 마나 동화에 대해서 발표하겠습니다.”
이건 독이다.
하지만 아직은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욕망이 있는 인간이라면 꿀떡꿀떡 삼킬 수밖에 없는 독.
강민혁의 설명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45화. < 12. 마법의 선구자(2) >
발표는 끝났다.
독일 마법 협회의 일원인 마르코 도슨은, 강당을 나와서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대가 변했구나.”
강민혁의 발표는 진짜였다.
강민혁은 수많은 마법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나 동화의 이론을 증명했고, 발표가 모두 끝났을 때 열화와 같은 박수 세례가 터져나왔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00년간 그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마나의 비밀을, 겨우 17살에 불과한 강민혁이 증명한 것이다. 몇몇 의심병자들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탄탄한 이론은 조금의 허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완벽했다.
확신에 차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강민혁의 모습에, 마르코 도슨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마치 마법의 신(神)처럼 보였어.’
“...강민혁, 그는 정말 무서운 녀석이야.”
“강민혁이요?”
마르코 도슨의 중얼거림에, 이번 한국행을 따라온 그의 제자인 케빈 라이트(Kevin Wright)가 불쑥 끼어들었다.
“강민혁의 재능이 무서울 정도로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는 진정한 마법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마나 동화는 모두 마법 학계의 한 획을 그을 만한 엄청난 발견인데, 혼자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공개했잖아요. 자신의 방향성은 마법 학계의 부흥이라니. 정말 멋있지 않아요?”
주절주절 말이 많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강민혁의 선택은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마르코 도슨이 살아온 세월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섭다는 거야.”
“왜요?”
“강민혁이 마법 학술 대회에서 발표한 직후, 마법 학과에 1년간 남겠다고 선포하면서 그를 원하는 사람들의 제안을 거절할 명분을 만들었어. 우리 독일 마법 협회도 마찬가지였지. 강민혁이 탐나서 함부로 대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우리에게 올 것이라는 확신도 없어.”
마르코 도슨.
그는 강민혁의 영입에 제일 적극적이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렇기에, 강민혁의 생각이 조금은 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마나 동화를 무료로 발표하는 행보를 보여주었어. 다들 강민혁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하더군. 이해해. 그만큼 마나 동화는 대단한 발견이니까. 문제는 이번 발표에 참석한 사람들이 마법 학계에서 모두 알만한 명사들이라는 거야. 이게 무슨 의미인지 너는 알아?”
“...잘 모르겠어요.”
“마법 학계에서 강민혁의 발언에 힘이 생겼다는 거야. 그가 오라고 하면 우리는 가야 하고, 그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들어줄 수밖에 없어. 왜냐고? 그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아주 매력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거든. 시대에 도태되지 않으려면, 강민혁과 협력할 수밖에 없어.”
화륵.
불의 원소를 일으켰다.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폐부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였다.
“하아.”
담배가 썼다.
강민혁을 영입하기에는, 그가 생각보다 빠르게 거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강민혁은 본인의 지식을 아무런 대가 없이 공공재(公共財)로 취급하겠다고 말했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임을 알아본 이상, 마법 학계의 사람들은 절대 강민혁을 해할 수 없어. 그랬다간 난리가 나겠지. 대단한 학자가 나타났는데, 그를 해하는 것은 지식을 갈망하는 마법사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일일 테니까. 적어도 강민혁이 특정 세력에 포함되지 않는 한, 강민혁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돼. 그게 문제인 거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
참 애매했다.
강민혁 개인의 힘이 대단한 건 아닌데, 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세력의 싸움이 그에게 힘을 주었다.
마르코 도슨의 시선이 케빈 라이트를 향했다.
“넌 강민혁이 겨우 17살의 어린 아이로 보여?”
".........."
대답하지 못했다.
강민혁은 아직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발표와 행보는 17살의 나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부터 강민혁은 절대적인 갑(甲)임과 동시에 마법의 선구자가 되었어. 고로 판이 바뀌겠지. 세계 마법 연합과 소수의 세력이 주도하던 판이, 일개 개인과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될 거야. 웃기지 않아? 100년의 마법 역사가, 이렇게 일순간 큰 변화를 맞이한다는 게?”
마르코 도슨이 낄낄 웃었다.
약간 실성한 듯, 그는 담배를 바닥에 버리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자존심을 버려. 우리는 강민혁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아니라, 그의 곁에 남아야 하니까.”
발표는 대단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강민혁은 무대에서 내려왔다.
무대 뒤.
그곳에는 이학범이 있었다.
마나 동화가 성공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도, 그의 표정에는 왠지 모를 그림자가 보였다.“정말 대단한 발표였어. 우리가, 아니 네가 마법 학계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킨 거야.”
네가.
그 단어에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이학범은 강민혁에게 마나 동화의 자료를 받고, 그간 정말 엄청난 노력을 했다. 학자로서의 이학범. 지도자로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학자 이학범은 그 열정과 노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법을 연구하다 보니 알겠더군. 내가 연구의 세부적인 것들을 조율하지만, 결국 연구의 완성은 너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래서 참 씁쓸해.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된다 할지라도, 마나 동화를 비롯한 대단한 연구들은 앞으로도 성공적으로 완성될 거야. 하지만 민혁이 네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된다면, 예전과 똑같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
화려한 무대 뒤.
그곳에서 이학범은 자괴감에 빠졌다.
이번 연구에 대단한 역할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자신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것에 불과했다.
참담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을 선사했다.
“부정하지 않을게요. 연구에 필요한 결정적인 자료를 제가 제공한 것은 맞지만, 제가 앞으로도 계속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이학범 교수님이 필요해요.”
“...내가 왜 필요하지? 내가 아니라 하더라도, 너의 연구를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많을 텐데.”
“이학범 교수님. 본인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수많은 교수들.
그중에서 강민혁은 이학범을 선택했다.
왜일까?
그가 대단한 학자라서?
아니다.
열망과 노력은 대단하나, 이학범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와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의 학자들은 널리고 널렸지만, 강민혁은 이학범이라는 사람을 원했다.
“제가 생각하는 이학범 교수님은 마법 학계의 부흥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부와 명예가 보장되었던 마탑 생활을 청산하고 마법 학과에 들어오셨고, 후학들을 양성하면서 마법 학계에 도움이 될만한 연구를 진행하셨어요. 저는 그런 이학범 교수님의 모습에 반했어요. 누가 연구를 주도적으로 완성 시켰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와 이학범 교수님이 같이 이룬 결과고, 이학범 교수님의 그 순수한 열정이 후일 마탑의 순기능을 활성화시킬 거라 생각해요.”
마탑.
마법사들의 보금자리.
그건 단순히 ‘힘’을 위한 세력이 아니다.
강민혁은 항상 정답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아기새마냥 지식을 받아먹는 그림을 바라지 않는다.
결국 스스로 해내는 힘도 필요하다.
이학범은 그 힘의 원동력이 될 것이고, 강민혁의 마탑에 소속되는 사람들은 강민혁의 지식과 이학범의 열의에 스스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그게 강민혁이 바라는 이상적인 마탑의 모습이었다. 이학범의 명성이 이제는 필요 없다 할지라도, 끝까지 그와 같이 연구를 행하는 이유다.
먼 미래.
몬스터들을 이 세상에서 몰아내기 위해서, 강민혁은 단단한 기반을 만들고자 했다.
".........."
이학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
연구에서 대단한 성과를 얻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로 인한 마법 학계의 부흥이었을까.
후자다.
마법이 무시를 받는 이 세상에, 이학범은 크지는 않지만 자신의 힘이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웃음이 나왔다.
연구에는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지만, 강민혁이 자신이라는 사람을 바란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면 됐다.
강민혁은 마법 학계를 부흥시킬 인물이고, 자신은 그를 도와줄 것이다.
바라보는 길이 같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강민혁을 위해 일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이학범.
훗날 마법 학계의 대부(代父)라고 불릴 사나이.
그는 그렇게 강민혁의 곁에서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수성전 이후.
마법 학과에서 강민혁의 위상이 달라졌다.
합동 수업은 마법 학과생들의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것으로 유명한 수업인데, 강민혁은 오히려 주인공이 되었다.
“수성전 영상 봤어?”
“강민혁 개쩔던데.”
"강민혁은 마법의 천재야. 벌써 3서클을 형성하고, 마나 동화를 개발해냈잖아. 사실 처음에는 강민혁이 도피성 입학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워.”
마나 동화.
아무런 대가 없이 대단한 지식을 공개하면서, 마법 학과의 학생들은 강민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학기 초반.
강민혁은 양쪽 모두 소속되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그러나 지금은 마법 학과의 우상이 되었다.
그렇게 마법 학과에서 인정을 받는 것과는 달리, 검술 학과의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검술 학과 역사상 마법 학과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이건 검술 학과의 굴욕이고, 우리는 이를 반드시 만회해야만 해. 그러니 마지막 ‘생사 결투’에서는 검술 학과의 저력을 마법 학과 녀석들에게 보여주자고.”
검술 학과에서 퍼지고 있는 말이다.
그들은 자존심이 상했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이나 강민혁에게 1등의 영광을 빼앗겼다.
물론 1등 조에는 이장후 일행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들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그래서 검술 학과생들이 마지막 생사 결투를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생사 결투는 양쪽의 학과생들이 나와서 겨루는 무대. 어떤 학생이 강민혁의 상대로 선정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3서클 마법사라고 해도 마법사에게 패배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럴 일은 벌어질 리 없다.
강화 전사와 마법사.
누가 1대1에 강한지는 너무나도 명백하지 않은가.
마지막 합동 수업.
수성전이 마법사를 위한 무대였다면, 생사 결투는 일방적으로 강화 전사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무대다.
강민혁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중심으로 피어오르는 소문에, 강민혁의 신경도 예민하게 변했다.
‘내가 강화 전사를 이길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차라리 검을 들면 승산이 있을 것 같지만, 마법사로서의 강민혁은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이겨야만 해. 마법사로서의 가능성. 클리스만의 지식이라는 특혜를 받아놓고도 검술 학과 1학년생에게 패배한다면, 강화 전사를 상대하는 상황에서 나는 매번 약자일 수밖에 없어.’
의욕이 불타올랐다.
강민혁은 이번 기회가,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며칠 뒤.
모두가 기다리던, 생사 결투의 날이 밝았다.
46화. < 13. 천적을 상대하는 방법 >
생사 결투.
처음 합동 수업이라는 시스템이 도입되었을 때, 가장 많은 논란이 있었던 훈련이다.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1대1 대결.
사실상 강화 전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캐스팅에 최소 몇십 초의 시간이 걸리는 마법사와, 그 시간이면 수백 미터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파하는 강화 전사와의 싸움은 애초에 성사될 리가 없다. 그래서 초창기만 하더라도 생사 결투는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헌터 아카데미의 초대 총장은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마법사에게 불리한 싸움이고, 강화 전사가 마법사의 천적(天敵)이라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생사 결투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화 전사는 마법사를, 마법사는 강화 전사를. 아직 실수가 용납되는 아카데미에서 상대해보아야만, 후일 바깥세상에서 어떠한 상황이 발생할지라도 대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매번 쉬운 싸움이란 없습니다. 마법 학과생들에게 가혹한 말일 수도 있으나, 그들은 천적을 상대하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합니다.”
모두가 안다.
마법사의 불리함을.
하지만 총장의 의견은 타당한 부분이 있었고, 결국 생사 결투는 합동 수업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1대1 대련의 성향을 보이는 훈련에 ‘생사 결투’라는 이름을 붙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최대한 실전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번 훈련의 경우에는 제한을 걸지 않았다. 상대를 베어도 되고, 강력한 화염 마법으로 불태워도 된다. 목숨이 걸린 싸움이라는 설정을 밑에 깔아놓은 만큼, 강화 전사와 마법사는 승리를 위해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도 용납된다.
다만.
큰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해두었다.
강화 전사의 경우에는 마법 면역 보호구를 착용해서 일정 이상의 데미지를 입으면 자동으로 패배 처리를 하였고, 마법사는 칼에 베인다 할지라도 실제 출혈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련용 무기를 강화 전사에게 지급하였다. 실제 목숨을 거는 위험은 없겠지만, 공격으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에 생사 결투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험악하고 처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훈련 며칠 전.
마법 학과생들은 불안에 떨었다.
훈련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으나, 100년이 흐른 지금 훈련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
“아무리 발악해도 마법사는 강화 전사를 절대 이길 수 없어.”
한 학과생이 했던 말.
헌터 아카데미의 총장은 생사 결투를 통해 마법사가 천적을 상대하는 방법을 터득하기를 바랐지만, 그런 방법 따위는 세상에 없었다. 간혹 뱀의 먹잇감인 개구리가 상대를 잡아먹는 현상이 벌어지고는 한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관계에서는 성립되지 않았다.
100년.
그 시간 동안 벌어진 수많은 생사 결투.
강화 전사가 다치는 경우는 있어도, 헌터 아카데미 역사상 마법사가 승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도.
“양쪽 위치로.”
“위치로.”
김무진의 차가운 음성에, 가장 먼저 생사 결투의 대상자로 선택된 마법 학과의 이정민은 지정된 위치로 걸음을 옮겼다.
쿵쿵.
심장이 뛰었다.
식은땀이 흥건하게 손바닥을 적셨고, 입은 바짝 말랐다.
“후욱, 후욱.”
그의 상대는 이정민이 직접 골랐다. 그건 마법사에게 허락되는 두 개의 특혜 중 하나였는데, 제일 만만해 보이는 상대를 골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긴장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상대의 반응. 이정민에게 호명되었다는 사실에, 상대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춘식아, 네가 만만하게 보였나 보다.”
“큭큭큭큭, 우리 춘식이가 만만하게 생기긴 했지.”
“혹시 마법사에게 지고 내려오는 건 아니지?”
훈련장 아래.
이정민의 상대인 김춘식의 친구로 보이는 학생들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검술 학과만의 분위기였다.
마법 학과가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검술 학과에게 마법사와의 대결은 승리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마법사와의 대결에서 가장 먼저 호명된 사람의 의미는 무엇일까? 바로 만만하게 보인다는 것. 김춘식의 얼굴이, 들끓는 분노로 인해 붉게 얼룩졌다.
빠득.
“내가 만만하게 보인다 이거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제일 만만해 보여서 택한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강화 전사인 그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섭다.
검술 학과생들과의 싸움에서, 마법 학과생이 다쳤다는 소문은 이제 특별하지 않을 정도로 흔하다.
몸의 떨림이 진정되지 않았다.
만약 그냥 결투가 시작되었다면, 그리고 이게 실전이었다면, 이정민의 머리는 단번에 날아갔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번 훈련에는 마법사를 위한 두 번째 특혜가 있었다.
바로 선공권.
검술 학과생은, 마법사가 먼저 선공을 시도하기 전까지는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시작.”
김무진의 신호가 떨어졌다.
이정민은 과호흡이 올 것 같은 호흡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곧바로 캐스팅에 들어갔다.
‘침착해.’
불리한 싸움.
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본인이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 상대를 쓰러트려야 하지 않겠는가. 선공의 마법 제한은 2서클. 이정민은 본인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캐스팅했다.
화르르륵.
붉게 타오르는 불길.
화염이 구의 형태를 형성하자, 이정민이 버럭 소리쳤다.
“파이어 볼.”
화아악!
대기가 타올랐다.
이정민이 사용한 회심의 일격이 김춘식에게 작렬하려는 순간, 김춘식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펑!
화르르르륵!
".........?"
이정민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다급하게 김춘식을 찾았다. 그리고는 동시에 다른 마법을 준비했다. 어떻게든 선공을 적중시켰어야 유리하게 싸움을 이끌어갈 수 있는데, 움직이는 적을 맞추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덜덜덜 떨리는 손. 평소보다 느리게 진행되는 캐스팅에 짜증이 일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도 잠시, 눈앞에 툭 튀어나온 존재에 이정민의 눈이 커다래졌다.
“병신.”
퍽!
“억!"
콰당!
이정민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칼에 베인 것이 아니다.
김춘식은 마법을 피한 뒤에 사각지대를 공략하였고, 그냥 이정민의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꺼억, 꺼억.........."
이정민이 복부를 움켜잡았다.
입에서 진득한 침이 뚝뚝 떨어졌고, 붉게 충혈된 눈은 이미 대항할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상대 지목권.
선공권.
마법사의 특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마법이 무조건 적중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음 캐스팅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
1대1 대결에서 마법사가 우위를 차지하기에는, 마법사의 발목을 붙잡는 단점들이 너무나도 컸다.
슥-
김춘식이 대련용 칼을 이정민의 목에 겨누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괴롭히고 싶었지만, 전투 불능의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실격 사유.
김춘식의 시선이 김무진을 향하자, 김무진은 더 확인할 것도 없다는 듯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결투 끝. 승자는 검술 학과의 김춘식.”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일방적인 승리.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검술 학과생들에게 다가가며 웃어 보이는 김춘식의 모습에, 마법 학과생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역시나.
이번 훈련은 그들에게 재앙이었다.
이후의 상황은 이정민과 다르지 않았다.
나름 마법을 적중시키는 학생도 있었지만, 검술 학과생은 화염을 뚫고 나타나 그대로 마법 학과생을 베어버렸다. 2서클 마법. 겨우 그 정도의 파괴력으로는 검술 학과생을 단번에 제압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발악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마법 학과생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마법 학과생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처음에는 그래도 결투의 성향을 보이는 듯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도살장의 돼지처럼 차례를 기다렸다.
참 안쓰러웠다.
합동 수업이라는 것은, 마법사에게 현실의 차가움을 알려주었다.
“다음은 강민혁.”
강민혁.
그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검술 학과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드디어 강민혁이네.”
“오오.”
“어떤 애를 지목하려나.”
매력적인 먹잇감이다.
강민혁이 합동 수업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면서, 검술 학과생들은 강민혁을 상대하기를 바랐다.
강민혁이 3서클 마법사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선공의 제한은 2서클이고, 이건 강화 전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그렇다면 강민혁을 상대하는 사람은 대박을 터트리는 것이다. 합동 수업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면서, 강민혁을 쓰러트림으로써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강민혁의 지목을 기다리던 학생 중 한 명이, 번쩍 손을 들었다.
“자기 PR해도 되겠습니까?”
“미친 새끼.”
“자기 PR이래.”
검술 학과 자리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무진과 강민혁이 특별하게 제지를 하지 않자, 그는 자신감이 넘치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 이름은 유정현이고 발이 아주 느려. 힘으로 승부하는 타입이라서, 마법사가 상대하기에 안성맞춤일 거야. 왜냐면 마법을 사용하는 족족 맞을 확률이 높거든. 기껏 선공했더니 휙휙 피해버리는 다른 녀석들보다는, 그나마 내가 상대하기 편하지 않겠어?”
자기 PR.
보통은 자신을 어필하는 것을 뜻한다면, 유정현은 자신을 깎아내림으로써 선택받기를 바랐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정현을 시작으로 다른 학생들도 나섰다.
“유정현은 마법 몇 방으로 쓰러질 녀석이 아니야. 그러니까 날 선택하는 게 어때? 특별히 마법을 3번 사용할 때까지 공격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마법을 캐스팅하면 돼. 물론 마법을 적중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겠지만, 그래도 3번이나 기회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저도 지원하겠습니다.”
“저도.........."
검술 학과만 재밌는 상황이었다.
김무진도 그 행태에 표정이 찌푸려졌으나, 가만히 있는 강민혁의 반응에 굳이 나서지는 않았다.
강민혁이 씰룩, 웃었다.
“아주 재밌나 보네.”
웃겼다.
검술 학과생들의 반응은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장후 일행이나, 수성전의 멤버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강민혁을 상대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열등감에 찌든 열등감 덩어리들. 그들은 강민혁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떻게든 처참하게 무너트리고자 했다.
그게 눈에 보였다.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강민혁을 깔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강민혁에 대한 열등감이 드러났다.
강민혁이 말했다.
“본인들의 입으로 본인이 얼마나 모자란 녀석인지를 증명했으니, 굳이 상대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애초에 상대할 사람은 정했어. 이게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천적을 상대해볼 수 있는 안전한 훈련이라면, 덜떨어진 녀석들이 아니라 실력자를 상대해야 지 않겠어?”
“이 새끼가.”
“와, 건방진 것 봐.”
검술 학과생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자존심을 벅벅 긁는 행동에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것 같았지만, 김무진의 존재가 그들을 억제했다.
점점 달아오르는 분위기.
강민혁의 시선이 한 사내를 향했다.
“저는 최광일을 상대하길 원합니다.”
최광일.
그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검술 학과생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검술 학과 1학년 수석.
지난 수성전 훈련에서 1조의 리더이기도 했던 사람이, 바로 최광일이었던 것이다.
47화. < 13. 천적을 상대하는 방법(2) >
강민혁은 처음부터 누구를 상대할지 정해두었다.
‘최광일.’
검술 학과 1학년 최고의 실력자.
마법 학과에서 정상훈을 천재라고 부른다면, 검술 학과에는 바로 최광일이 있다. 수성전 당시에도 홀로 수십 마리의 오크를 도륙했던 최광일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B급 몬스터의 토벌 경험도 있다고 했다. 강민혁에게 열등감을 내비치는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게 진짜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강민혁은 그런 상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최광일을 택했다.
“괜찮겠어?”
김무진이었다.
검술 학과의 열등생과 마법 학과의 우등생이 붙어도, 검술 학과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그런데 최광일이라는 실력자를 택하니, 강민혁이라 할지라도 걱정이 먼저 앞섰다.
“괜찮습니다.”
강민혁은 담담했다.
최광일.
아카데미라는 세상 안에서는 그의 이름값을 높이 평가하지만, 사실 강민혁에게는 크게 감흥이 없었다.
수호문.
그곳에는 괴물들이 산다.
아버지인 강덕철은 세상이 알아주는 실력자이며, 자신과 같은 시기에 훈련을 받았던 친구들만 하더라도 A급 몬스터 토벌에 성공하였다. 그게 강민혁이 살아온 세상이다. 검술 학과의 학생들은 최광일을 엄청난 재능인 것처럼 떠받들지만, 강민혁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딱 적당히 뛰어난 정도.
진짜 천재들은, 최광일의 수준에서 논할 수 없다.
‘최광일 정도도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마법사로서 나는 강화 전사 앞에서 언제나 을일 수밖에 없어.’
탁.
최광일이 훈련장으로 올라왔다.
지금의 상황이 황당한 모양인지, 그의 웃음이 비틀렸다.
“날 선택하다니.”
수성전.
그곳에서의 패배는 인정한다.
강민혁은 뛰어났고, 소탕이라는 완벽한 결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생사 결투는 다른 문제다. 수성전은 마법사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라면, 생사 결투는 마법사를 지켜주는 지형적인 이점이 조금도 없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했다. 강민혁은 똑똑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호명했다는 것은, 이런 환경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겠는가.
꽉.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자세를 낮추며, 강민혁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곧 그 선택을 후회하게 해주지.”
“시작!”
김무진의 신호.
그것이 떨어짐과 동시에, 최광일이 곧바로 땅을 박찼다.
팟.
최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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