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a 2

시야가 흐릿했다.
등은 딱딱한 벽 같은 것에 기대어져 있었고, 땅바닥에서는 스멀스멀 한기가 올라왔다.
잠시 눈을 깜빡이며 적응의 시간을 가진 강민혁은, 시야가 돌아오자 찬찬히 주변의 모습을 확인했다.
‘·········여기는?’
익숙했다.
이 공간이 익숙하다기보다는, 공간의 형태 자체가 익히 경험했던 것이다.
‘도서관이구나.’
강민혁이 기대고 있었던 것은 책장이었고, 주변은 온통 수많은 책들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으로 가득했다. 여전히 이 공간에 대한 정보는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라도 저번처럼 클리스만의 메시지가 있나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탄생의 기원]
수많은 책 중 하나.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강민혁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책을 확인했다.
사락.
[2000년 1월 1일. 새로운 밀레니엄(millennium) 시대가 열리던 그 날, 한국에 몬스터들이 나타나며 재앙은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몬스터들에게 학살되었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순식간에 멸망 당했다. 곧바로 북한, 러시아로 뻗어 나가는 몬스터들의 공격에 결국 다수 국가의 결정에 따라 핵공격이 지시되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재앙을 부추기는 꼴이 되었다. 핵폭발 속에서도 살아남은 몬스터들은 더욱 강력해졌고·················· 결국 인간들로서는 화기(火器) 말고도 몬스터에 대항할 힘이 필요했다. 그렇게 인간들의 염원이 하늘에 닿아 마법이 탄생했고, 사람들은 한국에서부터 러시아까지를 ‘몬스터 랜드’라고 명명함과 동시에 마법의 탄생일을 기점으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공표하였다. 마법력 0년 1월 1일, 마법 문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법력 0년 1월 1일이라고?”
순간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0년 1월 1일.
클리스만의 일기를 읽었을 때, 클리스만은 현재가 2030년도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이 사는 세상보다 시간이 조금 뒤처졌다고 생각했는데, 진실은 전혀 달랐다.
[인간은 2천 년의 역사 동안 마법을 발전시켰다. 마나의 힘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이능의 힘이 발현되었지만, 몬스터들을 완전히 토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수천 킬로미터가 넘어가는 장벽(障壁)을 세워 몬스터 랜드와 인간들의 세상을 분리하였고, 인간들은 몬스터와의 공존을 택했다. 그러다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몬스터 게이트.’ 오랜 시간 동안 몬스터 랜드에만 머물던 몬스터들이, 차원의 균열을 타고 인간 세상에 직접 들이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클리스만의 고향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제야 퍼즐이 맞추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 이 세상에서 눈을 떴을 때, 동급생은 한국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 설마 몬스터 랜드(Monster Land)를 말하는 건가? 한국은 아주 오래전에 멸망한 국가야. 네가 왜 한국에 대해서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을 비롯해서 러시아로 이어지는 땅덩어리는 모두 몬스터들의 땅으로 변했어. 그러니 잠꼬대는 그만하고 수업 준비나 하시지? 또 혼날라.”
아주 오래 전.
당시에는 그게 단순히 몇십 년 전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클리스만의 고향이 왜 몬스터들에게 당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고차원의 마법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무려 2천 년 동안이나 몬스터들과 공존했던 세상이라면 당연히 새로운 형태의 공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비슷한 시간대에 흐르는 평행세계라고 생각했지만, 이쪽의 세상은 현실보다 무려 2천 년의 역사가 더 많았다.
‘내가 사는 세상의 역사는 약 100년 정도.’
강화 문명도 시작은 같다.
밀레니엄 시대에 몬스터의 침공이 시작되었지만, 침공의 형태부터는 완전히 달랐다.
한국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게이트가 열리면서 몬스터가 등장하였고, 강화 문명은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을 이루었다. 수호문과 같은 문파들이 등장하면서 목숨을 대가로 각자의 영토를 지켜냈고, 몬스터들과 투쟁하는 세상은 겨우 100년 만에 빠르게 체계를 갖추었다.
강화 문명.
사실, 마법 문명에 비하면 그 역사가 정말 짧았다.
하지만 원래 문명이라는 것은 위기의 상황에 빠르게 꽃을 피우는 것처럼, 마법 문명도 강화 문명과 비슷한 역사를 바탕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천 년이라니.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강민혁은 허탈하게 웃었다.
‘마법은 정말 어려운 학문이야. 그래서 수많은 연구에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이 마법에 특화된 인류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 그들은 마법에 특화된 것이 아니라, 무려 2천 년의 시간 동안 마법을 연구했기 때문에 우리보다 고차원의 문명을 갖출 수 있었어.’
시간이 뒤죽박죽 얽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강민혁은 탄생의 기원을 다 읽었다.
그리고 뭐에 홀린 듯이, 바로 옆에 꽂혀있었던 ‘마법의 기본’이라는 책을 집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이윽고 책장을 넘긴 강민혁은, 마법의 기본을 전부 읽고 나서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마법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했구나.”
2천 년의 역사.
마법 문명의 사람들은,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 * *
예전에 상당한 실력의 검사가,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마법사의 단점이요? 정말 많죠. 일단 캐스팅이 오래 걸리는 데다, 마법 한 번에 소모되는 마나량도 많아서 몇 번 사용할 수도 없어요. 그렇다고 마나를 쌓는 과정이 쉬운 것도 아니고, 더블 캐스팅은 소수의 천재들에게나 허락되는 특권이에요. 대체 마법을 배우는 녀석들은 무슨 정신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저런 단점을 모두 감안해도, 오라 소드(aura sword)보다 센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팩트였다.
실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마법은 배울 가치가 없었다.
그런데 마법의 기본에서는, 검사가 말했었던 단점들을 완벽하게 보완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마법 입문자에게 필요한 네 개의 기본 과정]
첫 번째는 서클 형성.
‘내가 사는 세상에서 마나의 그릇인 서클을 형성하려면, 특수한 약물을 이용해서 인공적으로 마나를 인체에 주입해야 해. 그런데 이 세상은 달라. 마나를 심장으로 유도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명상을 통해서 순도 높은 마나를 심장에 축적할 수 있어. 고로 우리보다 많은 양의 마나를, 그것도 순도 높은 마나로 서클을 형성한다는 거지. 이럴 경우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횟수도 많을뿐더러, 마나의 질적인 향상으로 인해 마법의 위력도 강해져.’
두 번째는 마나 동화.
‘캐스팅할 때 체내의 마나를 사용함과 동시에 자연의 마나를 끌어들이는 방식. 사실 마법에 소모되는 마나의 양은 현실에서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이야. 그런데 이러한 방법을 사용한다면, 본인의 마나와 자연의 마나를 적절하게 섞어서 적은 양의 마나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
그리고 세 번째는 더블 캐스팅이고, 네 번째는 108가지의 1서클 마법에서 비롯된 마법 활용이었다.
이게 기초 단계다.
강화 문명에서는 곧바로 학술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지식인데, 마법 문명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만큼 2천 년의 역사 동안 이 세상의 사람들은 많은 실험을 거듭했다. 핵공격으로 인해 강력해진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마법이라는 인류의 희망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대단했다.
강민혁이 살던 세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된 마법에, 강민혁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현실로 돌아가면 이것들을 실험해보자. 만약 현실에서도 서클 형성과 마법 동화를 성공시킨다면, 내가 걱정했던 마법사로서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어.’
시간이 제법 흘렀다.
탄생의 기원과 마법의 기본을 읽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강민혁은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이곳에 있을 때,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마법서 보관소]
아까부터 눈에 밟히던 공간.
사서의 옆으로 쭉 길게 뻗어 나간 공간에, 강민혁은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그 공간은 문자 그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법서 보관.
책장에는 다양한 서클의 마법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마법을 확인한 강민혁의 눈이 커졌다.
“·········이게 대체.”
마법은 다양했다.
1서클부터 무려 7서클까지.
당혹스러울 정도로 대단한 마법들이, 마치 아무 것도 아닌 것마냥 책장에 고이 꽂혀있었다.
‘7서클 마법이라니.’
최병호는 5서클 마법이 보관된 마법 도서관 최상부 출입이, 마치 엄청 대단한 것처럼 굴었었다.
그런데 그건 실제로 대단한 게 맞다.
강민혁이 사는 세상에서 마법은 종류가 몇 가지 없다. 특히 5서클의 경우에는 겨우 5개밖에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하나하나가 천금(千金)과도 같다. 그러니 최병호는 최상부 출입을 고민했던 것이고, 그곳에 보관되어 있는 마법서들을 마법 학과가 보유한 대단한 보물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5서클 마법도 수십 가지가 넘어가는 데다, 6서클과 7서클 마법 또한 넘쳐났다.
‘현재 인류가 개발한 마법은 5서클이 한계야. 6서클 마법을 개발하기 위해서 전 세계 마법 학회가 많은 돈과 인적 자원을 투자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과가 없다고 들었어. 그런데 이곳에는 그런 대단한 마법들이 흔하게 널려 있다니. 2천 년의 마법 역사가 이룬 성과라 이건가.’
몸이 떨렸다.
강민혁은 일생을 검사(劍士)로 살았지만, 그래도 이 물건들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잘 안다.
마법서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뜻 그럴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도 마법서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할 수도 있기에, 강민혁은 사서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마법서들을 읽어도 괜찮을까요?”
“예?”
사서가 고개를 들었다.
20대 초중반의 남성으로 보이는 그는, 강민혁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하급(下級) 마법서들이야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마법서들로 괜찮으시겠어요? 이곳은 일반 시민들도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라 매우 기본적인 마법서들 밖에 없거든요. 행색을 보아하니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인 것 같은데, 그럼 상급(上級)의 마법서를 무료 열람할 수 있지 않아요?”
하급.
사서는, 강민혁이 보물처럼 여기던 것을 질적으로 매우 떨어지는 마법서라고 표현했다.
강민혁은 약 보름간 마법 도서관 최상부에서 살다시피 하였고, 그곳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다.
고로, 다시금 깨달았다.
‘·········두 세계의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크구나.’
현실에서 이룬 성과.
그건 정말, 이 세상에서는 티끌만도 못한 보잘 것 없는 성과였다.
13화. 3. 알고 보니 마법 천재?!(4)
사서의 말에, 강민혁은 단순한 의문이 들었다.
‘이 마법서들이 하급이라면 상급은 대체 뭐지?’
상급.
문자 그대로 더 높은 등급을 뜻할 텐데, 그렇다면 8서클 이상의 마법서를 상급이라고 하는 걸까?
“혹시 상급 마법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세요?”
“예.”
“나참,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이 이런 질문을 하다니. 왠지 절 놀리는 것 같지만, 그래도 성심성의껏 대답해드리죠. 마법서는 상중하(上中下)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제일 기본적인 하급 마법서의 경우에는, 캐스팅 속도와 위력이 매우 떨어지죠. 그러나 등급이 상승할수록 마법의 체계가 간단해지면서 캐스팅 속도가 빨라지고, 위력 또한 같은 마법이라 할지라도 차이가 심할 정도로 위력이 강해져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최상(最上)의 마법서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거야 저와 같은 서민들은 평생 구경할 수도 없는 물건이겠죠.”
사서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의 설명 덕분에, 강민혁은 등급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렇다면 이게 다 하급 마법서란 말이지.’
책장을 둘러보았다.
현실 세계에서 보았던 마법서와 비교하기 위해서, 강민혁은 마법서 몇 개를 꺼내서 내용을 읽었다.
[3서클 마법]
[불속성]
[파이어 웨이브(Fire Wave)]
현실에서 있는 마법이다.
마법의 체계와 형태를 확인한 강민혁은,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게 하급이라고?”
하급.
사서는 분명히 하급이 제일 낮은 등급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하급 마법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현실 세계에서 확인한 마법서보다 더 효율적이고 위력적인 체계를 설명하고 있었다. 등급을 매기자면 현실 세계의 마법서는 최하급(最下級) 정도. 최병호가 보물처럼 여기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두 마법서의 격차는 컸다.
‘설마.’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클리스만을 통해서 익혔던 1서클 마법은 무엇이었을까.
강민혁은 곧바로 1서클 마법을 확인했다.
“내가 익힌 것과 달라.”
완전히 틀렸다.
하급 마법서의 점수가 10점 만점에 3점이라면, 자신이 익혔던 것은 거의 만점에 달하는 수준.
어쩌면 상급 이상의 마법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캐스팅 속도가 빨랐던 건가.’
사실 그간 의문이 있었다.
강민혁은 이제 막 마법에서 걸음마를 뗐다.
그런데 실전 수업 당시, 강민혁의 캐스팅 속도는 평균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빨랐다.
또한 마법의 위력도 강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단순히 ‘마나 폭발’의 위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원소를 생성하는 파이어 마법만으로 그 정도의 위력을 발휘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았다. 사서의 말처럼, 상급 마법서의 효과라고 생각한다면 실전 수업에서의 활약에서 의문이 남을 일은 없었다.
초심자조차 뛰어난 마법사로 만드는 상급 마법서의 위력.
클리스만의 세상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들이 쌓아온 마법 문명은 엄청난 깊이를 자랑했다.
‘클리스만은 나를 단계별로 유도하고 있어.’
처음에는 더블 캐스팅.
두 번째는 108가지 1서클 마법.
그리고 세 번째인 지금에는, 이 세상의 배경과 마법의 기본을 가르치려 하고 있었다.
수많은 책들 중에서 탄생의 기원과 마법의 기본, 그리고 마법서 보관실이 눈에 보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차례대로.
마법 문외한인 자신을, 클리스만은 성장시키고 있었다.
‘일단은 2서클 마법을 확인해두자.’
6서클 이상의 마법들.
이 세상에서는 하급으로 분류되는 것이라지만, 강민혁의 세상에서는 엄청난 가치의 보물이다.
하지만 관심을 껐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당장 필요한 물건이 아니다.
언제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강민혁에게 필요한 것은 6서클 마법이 아니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차분하게, 2서클 마법서들을 읽기 시작했다.
* * *
여명이 밝아올 즈음.
강민혁은 눈을 떴다.
“돌아온 건가.”
담담했다.
나름 몇 차례 경험한 일이기에, 강민혁은 벌써부터 두 세계를 오가는 일에 적응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피로는 없었다.
다른 세계로 넘어갔을 때 이쪽 세상의 몸은 숙면 상태일 텐데, 머리는 조금의 피곤함도 호소하지 않았다.
“수업 전까지 마법의 기본을 실험해보자.”
시간은 넉넉했다.
아직 아침 6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라, 3시간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강민혁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더니, 그 내용에 따라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시작했다.
[서클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단 주변의 마나를 느껴야 한다.]
마나.
이 세상을 구성하는, 강화 문명과 마법 문명을 발전시킨 새로운 에너지원.
강화 문명에서는 마나를 직접적으로 주입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마법 문명의 방식은 전혀 달랐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책에 따르면, 보통 범인(凡人)들은 마법을 느끼기까지 약 일주일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둔재라고 불리는 부류들은 그 기간이 무기한 연장이 되지만, 대략 평균을 따지면 그 정도가 걸린다.
기본.
마법의 첫걸음이라고 해서 마냥 쉬운 것이 아니었다.
강민혁은 첫술에 배부르길 바라지 않는다.
오늘부터 인내심을 가지고 마나에 적응한다면, 한 달 안에는 마나를 느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품었다.
그런데.
‘·········어?’
1시간 뒤.
강민혁은 묘한 감각을 느꼈다.
어떤 때는 따뜻하고, 어떤 때는 서늘하고.
책의 설명대로라면, 이건 분명히 마나였다.
‘벌써 마나를 느끼다니.’
감탄할 시간은 없었다.
서클을 형성하는 것은 마나를 느끼기까지가 오래 걸리는 것이지, 그 이후 단계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강민혁은 전신의 구멍으로 빨려들어 오는 마나를 심장으로 인도하였다. 강민혁의 심장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서클이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마나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사실 이미 서클이 자리 잡은 상태에서 마나를 받아들이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는 강민혁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확인해야만 하는 문제였고,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강민혁의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헉.’
쿠르르르.
서클이 요동쳤다.
약물을 주입해서 만들어낸 서클이 점점 허물어지더니, 자연의 마나가 새로운 형태의 서클을 형성했다.
더 단단하고, 더 순도 높은 서클.
처음 가부좌를 틀었을 때부터 약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강민혁의 심장에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크기의 서클이 형성되었다.
확!
안광이 빛을 발했다.
강민혁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간단하게 서클을 형성하다니.”
서클.
이로써 강민혁은 남들과는 다른 이점을 확보했다.
약물 주입이 아니더라도 양질의 마나를 확보할 수 있으며, 순도 높은 마나는 마나 동화에 유리하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마법의 기본에서는, 분명히 서클 형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천재라고 불리는 부류들은 보통 서클 형성에 하루의 시간이 걸린다. 8서클 이상의 대마법사들의 경우에는 무려 3시간 만에 서클을 형성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마법의 재능은 태생에서부터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마법 문명.
고도로 발달한 문명에서도,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만이 서클 형성에 하루의 시간이 걸린다.
대마법사의 경우에는 3시간.
그런데 강민혁은 겨우 2시간 만에 서클을 완성시켰다.
“·········내가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건가?”
재능.
정말 원망스러웠던 그 단어가, 오늘만큼은 다르게 느껴지는 강민혁이었다.
* * *
강민혁의 일상은 바빴다.
학과 수업을 충실하게 들으면서 방과 후에는 연구에 참여했고,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면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얻었던 지식을 복습했다. 처음 마법 학과에 입학할 때와는 다르게 정말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이었지만, 강민혁은 오히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특히.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상황에, 강민혁은 마법에 푹 빠지고 말았다.
검술과는 달랐다.
한때는 인생을 바쳤던 일이었지만,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재능의 한계 때문에 강민혁은 검을 버렸다.
그런데 마법은 달랐다.
서클을 2시간 만에 형성하였고, 며칠 뒤에는 마나 동화에도 성공했다. 1서클 마법의 활용법은 날이 갈수록 익숙해지는 데다, 이번에 공부한 2서클 마법에 대한 지식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학범과 연구를 진행하는 도중, 강민혁이 말했다.
“교수님.”
“왜?”
“저희도 이번 마법 학술 대회에 참가하는 게 어떠십니까?”
멈칫.
이학범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법 학술 대회.
학자들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 이학범 또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너도 잘 알잖아. 현재 연구 상황으로는 마법 학술 대회까지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거. 네 도움 덕분에 연구가 빠르게 진척되고 있지만, 조급한 마음에 무리할 필요는 없어. 이번에 강필두 교수와 마법 학술 대회에 출전하는 일로 마음이 걸리는 모양인데, 나는 괜찮아. 네가 정말 뛰어난 인재이기 때문에 다른 연구에도 참여하는 것이고, 사실 강필두 교수의 말대로 형태 변화는 한 달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잖아. 네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이학범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말로는 애써 강민혁을 다독이고 있지만, 학자의 욕심이라는 게 표정을 쉽게 관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출전하자는 겁니다.”
“뭐라고?”
“마법 학술 대회 전까지만 연구를 끝내면 되는 거지 않습니까?”
“말이야 쉽지.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더블 캐스팅 연구가 미제(謎題)라고 불리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 지금 당장은 형태 변화 연구에만 집중해. 그것이 네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순간 이학범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눈이 커다래지면서,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설마?!”
강민혁이 웃었다.
이제 확신이 생겼다.
어느 정도의 선까지 지식을 공개할지, 그리고 그 지식들로 어떤 이득을 취할 것인지.
이번 마법 학술 대회는, 강민혁이 앞으로 생각하는 미래를 위한 아주 단단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예. 아무래도 제가 더블 캐스팅을 실현시킬 방법을 알아낸 것 같습니다, 교수님.”
설마 했던 생각.
이학범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14화. 4. 마법 학술 대회
이학범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더블 캐스팅의 원리를 알아냈다니.
강민혁이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심장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건 마법 학계의 혁명이야.’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이학범은 마법의 현실을 심각하게 고민했었던 적이 있었다.
마법 또한 매력적인 학문인데, 사람들은 어째서 마법을 천대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이학범은 마법이 비주류 학문일 수밖에 없는 명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마법은 한계가 정해져 있는 학문이야. 세상에 공개된 마법은 5서클이 한계고, A급 이상의 몬스터들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러니 마법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매년 줄어들 수밖에. 직업을 정할 때 해당 직업의 전망을 고려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차츰 마법을 외면하게 되었어. 강화라는 아주 손쉬운 방법이 있는데, 굳이 마법을 택할 이유는 없는 거지.’
그렇다면 마법만의 강점은 무엇일까.
딱 하나 있다.
원거리에서 많은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처음에는 마법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나, 반짝인기는 결국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사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강화 인간은 체내의 마나를 뿜어내서 다수의 적을 공격하는 오라 웨이브(aura Wave)를 사용할 수 있어. 마법사가 낮은 등급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효율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마법사의 능력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거지. 차선(次善)조차 되지 않는 선택지. 이대로 있다가는, 마법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장되어버릴 거야.’
그때부터였다.
이학범은 더블 캐스팅에 매달렸다.
동시에 두 가지의 마법을 사용하는 행위.
만약 더블 캐스팅의 대중화에 성공한다면, 적어도 낮은 등급의 몬스터를 상대로는 마법사들이 확고한 이점을 확보할 수 있다. 강화 전사들이 아무리 강한 무력을 뿜어낸다 할지라도, 후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강력한 마법들은 활용 가치가 충분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학범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강민혁이 하는 말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 정말이니? 더블 캐스팅을 실현시킬 방법을 알아냈다는 게?”
“예.”
“하아.”
숨을 크게 내뱉었다.
떨리는 마음에, 이렇게라도 진정시키지 않으면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너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더블 캐스팅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성공시키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했던 학문이야. 그만큼 가치가 있는 학문이라는 뜻이지. 만약 네가 말하는 이론이 정말 현실성이 있는 것이라면, 넌 마법의 선구자가 될 수 있어.”
이학범.
그는 진정한 학자였다.
더블 캐스팅 발견으로 인한 본인의 성공보다는, 마법의 발전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래서 강민혁은 이학범을 택했다.
강필두를 경험해본 결과, 이학범이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상에 가장 부합했다.
고지식하고, 깐깐하고, 가끔은 편견을 보이는 사람이지만, 마법에 대한 열정만큼은 진짜였다.
“일단 더블 캐스팅의 원리를 말씀드리기 전에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
이건 거래다.
강민혁은 자신에게 큰 가치가 없는 지식을 내어주는 대가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낼 것이다.
학술 대회는 그중 하나.
그리고 강민혁이 바라는 또 다른 목표는.
“이학범 교수님, 교수님을 제 사람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먼 미래.
그때를 위해, 사람을 얻는 것이었다.
* * *
마법 학술 대회를 열흘 정도 앞두었을 때, 마법 학과에서 공지문을 올렸다.
[제 82회차, 마법 학술 대회에 출전할 명단을 발표하겠습니다. 1조는 강필두 교수와 강민혁 학생, 2조는 이학범 교수와 강민혁 학생, 3조는 이미혜 교수와 김무열 학생이 출전할 예정입니다. 마법 학과의 이름을 빛내러 갈 그들을 위해, 학과생들은 진심으로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명단 발표.
그런데 이게, 학생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강민혁이라고?”
“아니, 1학년생인 강민혁이 마법 학술 대회까지 나가?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이학범 교수의 연구에 참여할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교수와 커넥션이 있는 거 아냐?”
당연한 반응이었다.
3조인 이미혜 교수와 김무열의 경우에는, 김무열이 2학년일 때부터 같이 연구를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4학년 졸업반에 해당하는 김무열은 모두가 인정하는 마법 엘리트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마법 학술 대회에 참여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강민혁은 아니다.
겨우 1서클 밖에 되지 않은, 마법을 제대로 아는지도 의심되는 녀석이 학술 대회에 나가다니.
이건 확실히 부당했다.
마법 학술 대회가 어떤 무대인가.
마법의 길을 걷는 학생이라면, 평생 딱 한 번이라도 서보고 싶은 꿈의 무대이지 않은가.
만약 그곳에서 성적이라도 내는 날에는, 사실상 그 사람의 미래는 탄탄대로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아주 큰 문제가 있는 결정이야.”
“그래, 강민혁이 출전할 수는 있어. 그의 마법 실력이 별로라고 해도, 연구원의 자격으로 출전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잖아. 하지만 동시에 두 개의 주제로 연구에 참여하는 것은 엄연히 규칙에 위반되는 행위야.”
“수호문의 장남이라고 특혜를 주는 모양이네. 사실 강민혁의 실력으로 연구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도 어이없는 일이잖아. 그래도 이학범 교수는 마법 학과에서 몇 안 되는 진정한 학자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이번 일은 실망이다.”
불만은 급속도로 퍼졌다.
학과생 대표가 정식으로 항의를 했고, 그들은 이번 문제가 금방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반발을 뿌리치고 이번 일을 진행할 만큼, 강민혁의 비중이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병호 학과장입니다. 이번 마법 학술 대회 문제로 논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과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강민혁 학생이 출전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이학범 교수와 강필두 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더블 캐스팅과 형태 변화에서, 강민혁 학생은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강민혁 학생이 빠지면 연구가 진행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라, 부득이하게 동시 출전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정해진 사안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불만 제기는 받지 않겠습니다.]
확고한 태도.
최병호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학과생들과의 사이가 틀어지더라도, 강민혁을 무조건 출전시키겠다는 입장이었다.
“대체 그렇게까지 강민혁을 출전시킬 이유가 있나?”
“진짜 학과 이름에 먹칠을 하기만 해봐.”
학생들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매우 이례적인 상황에, 대회 당일까지도 강민혁과 관련된 논란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 *
한참 아카데미가 시끄러울 그 시각.
수호문에서는 경사가 있었다.
바로 일급 제자인 정판수가, 성동구에서 나타난 A급 몬스터를 혼자만의 힘으로 처리한 것이다.
A급 몬스터.
그들을 처리할 수 있느냐는 헌터의 능력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잣대고, 이번 일로 정판수는 기사(騎士)의 작위를 부여받을 수 있는 자격을 충족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호문의 가신이자 정판수의 아버지인 정판호는 잔치를 열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정판수가 구석에 앉아있는 강민혁의 얘기를 꺼낼 때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그나저나 혁이가 이번에 마법 학술 대회에 출전한다면서요? 벌써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강민혁이, 마법 학과를 대표해서 무려 두 개의 종목으로 마법 학술 대회에 출전한다는 소문이.”
“그게 정말이냐?”
정판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화 전사들은 대체로 마법을 우습게 보지만, 그래도 마법 학술 대회의 명성은 익히 들었다.
마법의 꽃.
아무리 비주류 학문이라지만, 마법 학술 대회는 어중이떠중이가 참가할 수 있는 그런 대회가 아니다.
그런데 강민혁이 마법 학술 대회에 나간다니.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민혁아, 판수의 말이 사실이냐? 마법 학술 대회에 나간다는 것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억지로 자리에 참석했던 강민혁은, 갑자기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도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이런.”
정판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래도 한때는 검사를 꿈꾸었던 강민혁이, 그것도 수호문의 독자가 마법 대회에 나가는 게 못마땅했다.
“대체 왜? 네가 마법 학술 대회에 나갈 이유가 없잖아. 네가 진정으로 마법 학술 대회에 나가서 수상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자라면 나 또한 응원해주겠지만, 넌 17살이 되기 전까지 마법은 쳐다도 보지 않았던 녀석이야. 설마 반항하는 거냐?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은 거에 대해?”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자리에 참석한 가신들은 힐끗 문주인 강덕철의 눈치를 살폈지만, 강덕철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덤덤히 차를 마시는 강덕철.
그것을 무언의 허락으로 받아들인 정판호는,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네가 후계자의 자리를 포기했다고 해서 네가 강씨 가문의 독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행보를 주목할 테고, 당연히 마법 학술 대회 출전 소식에 관심을 가지겠지. 그러니 괜히 어쭙잖게 도전할 생각이라면 당장 그만두거라. 네가 수호문의 독자로서의 의무를 포기한 것까지는 넘어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호문의 이름을 먹칠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마법 학과에 입학했을 때도, 정판호를 필두로 가문의 가신들은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이건 수호문의 치욕이라면서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던 그 사람들이, 지금도 똑같은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강민혁은 강덕철을 보았다.
자신은 쳐다도 보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예상했던 결과야.’
후계자의 자리를 포기하던 그 날.
강덕철의 호통에도 강민혁은 본인의 선택을 무르지 않았고, 그때부터 강민혁은 내놓은 자식이 되었다.
그나마 하는 역할이라고는 얼굴 마담 정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상황에서도, 강덕철은 아버지로서 보호해주지 않았다.
뭐, 상관은 없었다.
자신에게 기대를 품었던 어린 시절에도, 강덕철은 자상한 아버지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강민혁이 말했다.
“제 인생이니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 뭐라고?”
“제가 수호문의 후계자 자리를 내려놓은 건, 앞으로 제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들 된 도리로서 가문의 경사가 있을 때는 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저를 핍박하신다면 아예 집을 나가겠습니다. 제가 마법 학술 대회에 나가든,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를 하든. 이건 제 문제지, 가문의 어르신들이 참견할 바가 아닙니다.”
“이 녀석이!”
정판호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당장에라도 식탁을 엎어버릴 것 같은 기세에, 강민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아버지인 강덕철에게 간단한 목례도 하지 않은 것이, 부자의 사이가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보여주었다.
‘짜증 나.’
뒤에서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일이면 마법 학술 대회구나.’
낙오한 후계자의 삶.
이건 이제, 강민혁으로서는 적응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15화. 4. 마법 학술 대회(2)
수호문 내부의 납골당.
수천 명의 유골을 안치시킨 그곳에서, 강민혁이 한 여성의 사진이 걸린 납골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실 사진 속 여성과의 추억이 잘 기억나진 않았다. 어머니라고 불렀던 그녀는 강민혁이 아직 어렸을 시절에 죽음을 맞이했고, 그때부터 쭉 수호문의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강민혁으로서는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컸다.
8살부터 17살이 되기 전까지.
흐릿한 기억 속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목표 의식을 부여하는 수단이었다.
얼마나 있었을까.
창밖의 햇살이 노을로 물들어갈 즈음, 복도에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었네?”
밝은 목소리.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 인상적인 사내는, 정판수와 마찬가지로 수호문의 일급 제자인 하민성이었다.
강민혁이 대답하지 않자, 하민성은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꼭 그렇게까지 깽판 칠 이유가 있었냐? 사실 네가 고분고분하게만 나온다면, 수호문의 가신들도 딱히 너를 건드릴 이유가 없잖아. 그런데 매번 툭 튀어나온 송곳처럼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사건을 저지르고 다니니까, 가신들도 저 지랄을 떨지.”
강민혁이 떠나고.
축제 분위기였던 자리는 아주 난장판이 되었다.
정판호는 강민혁을 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강덕철이 표정을 찌푸리자 자리는 금세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지금.
창술의 대가인 하동철의 아들 하민성의 걱정에, 강민혁이 피식 웃었다.
“민성아.”
“응.”
“내가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은 순간, 나로서는 확고하게 태도를 정할 필요성이 있었어. 후계 구도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르는 불안한 변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후계자가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나는 엇나가야만 했어. 그게, 후계자의 의무를 포기한 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현실이야. 만약 네 말대로 내가 조용히 있었다면, 또 그것대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는 의심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겠지”
“·········.”
강민혁이 하는 말.
하민성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사람들은 강민혁을 가문의 골칫거리라고 표현하지만, 강민혁은 가문을 위해 골칫거리가 되길 택했다.
마법 학과의 입학.
그것은 우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계획된 의도였다.
“하아.”
하민성이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짜증이 났다.
만약 강민혁이 모두가 원하는 재능을 갖추었다면, 결코 이런 문제 따위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항상 네 편이야. 옛날에도, 지금도. 그러니까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내게 말해. 그게 정판수의 재수 없는 낯짝을 박살 내는 일이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도와줄 의향이 있으니까.”
“말이라도 고맙네.”
“그나저나 마법 학술 대회에 참가하는 건 어떻게 된 거야? 마법 학과 입학은 그냥 후계자의 자리를 완전히 내려놓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 아니었어?”
“전에는 그랬지. 그런데 막상 배우다 보니까 마법이 내 적성에 맞더라고. 그래서 진심으로 해보려고.”
“·········정말이야?”
하민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진심.
강민혁은 빈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학술 대회 출전은 단순히 퍼포먼스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괜찮겠어? 내가 알기로는, 마법 학술 대회는 그래도 마법 학계에서 인정받은 실력자들만이 출전하는 자리라던데. 네가 무턱대고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마법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그래도 한번 출전해보려고.”
“하긴.”
하민성이 웃었다.
사실 괜한 걱정이었다.
상대가 강민혁이라면, 나름 믿는 구석이 있을 터.
문득 예전의 추억이 떠올랐다.
“대장이라면 어떤 일이든 잘 할 수 있겠지.”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그때만 하더라도, 강민혁은 후계자의 자리에 정말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 * *
마법 학술 대회 날이 밝았다.
이번 대회는 경기도에서 치러진다.
아침에 마법 학과에서 모인 참가자들은 다 같이 마력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이동하는 길에 옆에 앉은 김무열이 자꾸만 말을 걸었다.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회에 참가하는 거야? 설마 형태 변화와 더블 캐스팅 연구가 성공했을 리는 없잖아.”
김무열.
아직 졸업하지 못한 학과생에 불과하지만, 그는 벌써부터 여러 마탑(魔塔)의 관심을 받고 있는 실력자다.
그리고 2학년 때부터 이미혜 교수와 같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학과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한 마법 지식을 쌓았다. 그런 김무열으로서는 강민혁의 행보가 의문투성이였다. 겨우 1학년 학생이 신성한 마법 학술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의문이었지만, 문제는 강민혁이 도전하는 형태 변화와 더블 캐스팅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마법 학계의 난제(難題).
그런데 강민혁이 포함된 조잡한 팀으로 대회에 참가한다고 하니, 김무열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
강민혁은 말이 없었다.
묵묵히 마법 서적을 읽는 모습에, 김무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수호문의 독자라서 그런가. 싸가지가 없네.”
그것은 열등감이었다.
강민혁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지만, 비주류 학문을 익히는 김무열은 괜히 심술을 부렸다.
“너는 재미 삼아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것 같지만, 나는 마법 학술 대회에 사활을 걸었어. 우리가 연구하는 주제가 뭔지 알아? 바로 윈드 붐(wind Bomb)과 인페르노(Inferno)의 융합이야. 3서클 마법과 4서클 마법의 융합으로, 우리는 5서클 마법의 위력을 내는 방법을 찾았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김무열은 그런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업적을 찬양하는 데 열을 올렸다.
“사실 마법을 개발하기까지 정말 어려웠어. 마법은 각자만의 체계가 있는데, 그게 서로 문제가 생기지 않게 잘 융합시키는 것은 웬만한 마법사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작업이지. 그러나 난 달라. 이미혜 교수님과 2년 전부터 이번 연구에 매달렸고, 마침내 성과를 거두었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난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수상해서, 마법사로서 부와 명예를 얻을 거란 뜻이지.”
김무열이 히죽 웃었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만약 이번 대회를 성공리에 마무리한다면, 학과생에 불과한 자신의 입지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때였다.
탁.
강민혁이 책을 덮었다.
그리고, 김무열을 보며 말했다.
“선배님.”
“응?”
“수호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입으로 상대를 쓰러트릴 시간에, 검을 몇 번 더 휘둘러서 땀으로서 노력을 증명하라. 선배님의 망상을 계속 떠들 생각이라면, 결과를 낸 이후에 말씀해주십시오.”
김무열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강민혁은 시선을 돌리더니, 더 이상의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듯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부터 대화는 단절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력 버스는 마법 학술 대회가 진행될 경기도 남양주의 한 장소에 도착했다.
* * *
마법 학술 대회.
마법 학계의 축제라는 명성을 증명하듯, 전 세계 유명 마법 단체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프랑스 마법 협회다!”
“블러드 문(BloodMoon) 마탑에서도 나왔는데?”
“역시 마법 학술 대회답네. 알만한 마법 단체들에서 다 나왔어.”
평소에는 접할 수 없는 대단한 단체들의 등장에, 김무열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사실 이 자리는 마법 아카데미에서 출전할 만한 자리는 아니다. 보통 한 나라를 대표하는 학회나 유명 마탑들이 출전하는데, 간혹 아카데미에서 출전하기도 한다. 그것도 정말 확실한 연구 성과를 얻은 한 팀 정도만 출전시키는데, 3팀을 출전시킨 최병호의 선택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김무열의 반응.
그건 괜히 그런 것이 아니다.
본인은 2년을 공들여 소중한 출전 기회를 얻었는데, 강민혁이 갑자기 나간다니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대회는 대강당에서 진행되었다.
대회의 참가자들과 심사위원으로 초대된 유명한 명사(名士)들이 자리하자, 사회자가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82회차 마법 학술 대회의 사회를 맡게 된 도날드 버틀러(Donald Butler)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익숙한 얼굴들을 보니 기분이 상당히 좋네요.”
도날드 버틀러.
미국 마법 협회의 일원이며, 세계 마법 연합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
이미 10년도 전에 5서클을 형성한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인정하는 대마법사다.
그가 뿜어내는 강력한 전격 계열의 마법은, 강화 전사들조차도 그 위력을 인정한다고 들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래도 처음 참가하시는 분들을 위해 마법 학술 대회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마법 학술 대회는 마법의 발전을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마법은 상당한 연구와 투자가 필요한 학문이니만큼, 서로의 학술을 공유하는 자리가 없다면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연구한 결과물을 공공재(公共財)로 발표하는 대가로, 전 세계 마법 단체들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습니다.”
수상작들.
그것은 심사위원의 평가에 따라, 합당한 가격이 책정된다.
3년 전에 미국 마법 협회에서 개발한 5서클 마법 썬더 캐논(Thunder Cannon)의 경우에는, 무려 85억을 대가로 받았다.
보상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수상자들에게는 B급 이상의 신분증을 지급합니다. B급의 신분증을 소유한 사람은 세계 마법 협회의 자료를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으며, 어느 나라든 귀빈의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A급의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는 마탑을 이끌 자격이 부여됩니다. 아주 이례적이긴 하지만, 5서클 마법을 최초로 발견하셨던 벤 라이언스(Ben Lyons)님이 마법 학술 대회에서 A급 신분증을 받은 선례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보이지 않는 보상들이 있다.
마법 학술 대회에서 증명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가치는 상승하고, 여러 단체에서 스카웃하려고 혈안이 된다. 마법사들에게는 그런 말이 있다. 마법은 지식의 학문이기 때문에, 대단한 대마법사를 보유하는 것만큼이나 대단한 학자가 있는 것이 그 단체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강필두의 말은 옳았다.
이곳은 수상만 한다면, 마법사에게 부와 명예가 부여되는 자리였다.
도날드 버틀러가 말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제 82회차 마법 학술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마법사들의 축제.
마법 학술 대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6화. 4. 마법 학술 대회(3)
시작은 프랑스 마법 협회였다.
회색의 머리를 멋스럽게 넘긴 중년의 사내가 앞으로 나서는 모습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프랑스 마법 협회라니.”
“알랭 코르노(Alain Corneau)가 발표할 모양인데?”
“와, 이번에 작정을 했나 보네.”
프랑스 마법 협회.
현재 미국, 영국과 더불어 세계 마법 연합의 중심이라 불리는 단체.
알랭 코르노는 그런 프랑스 마법 협회를 대표하는 5서클 대마법사다. 이미 마법 학술 대회에 여러 번 참여했으며, 그때마다 성공적인 결과물로 마법사들의 찬사를 받았다.
알랭 코르노가 말했다.
“오랜만에 이 무대에 다시 서게 되었네요. 저는 프랑스 마법 협회의 소속인 알랭 코르노라고 합니다. 사실 5년 전에 마법 학술 대회에 참가한 이후, 그간 새로운 마법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마법 학계는 정체기를 맞이했습니다. 3년 전에 발표되었던 썬더 캐논 이후에 이렇다 할 성과물이 없고, 6서클 마법의 단서는커녕 새로운 5서클 마법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얘기가 진행될수록, 소음이 잦아들며 알랭 코르노의 목소리가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6서클 마법의 단서가 없다면, 기존에 발견한 5서클 마법의 위력을 상승시키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연구는 결국 하나의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공개하겠습니다. 6번째 5서클 마법이자, 다른 마법들의 위력을 증폭시켜주는 새로운 형태의 마법! 그 이름은 바로 앨리먼트 필드(element field)입니다.”
“와.”
“새로운 5서클 마법이라고?”
알랭 코르노 뒤에 홀로그램 영상이 떠올랐다.
한 마법사가 캐스팅을 하는 상황이었는데, 앨리먼트 필드라는 시동어를 외치자 주변이 붉게 변했다.
“앨리먼트 필드는 일정 범위 안에서 원소 마법의 파괴력을 높이는 마법입니다. 영상에서는 화염 마법의 증폭 효과를 적용하였고, 그 결과는·········.”
[파이어 볼!]
[화르르르륵!]
영상에서 엄청난 불길이 타올랐다.
그것은 파이어 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1.5배는 더 커 보이는 형태였다.
위력은 대박이었다.
엄청난 폭발력에, 사람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저게 파이어 볼이라고?”
“이건 혁명이야!”
크기만큼이나 파이어 볼의 위력은 확실히 강해졌다. 그것이 2서클 마법이 3서클 마법의 위력을 넘어설 정도로 극적인 효과는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버프 효과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주변에 사용되는 특정 원소의 공격력을 상승시킨다면, 마법의 효율은 더욱 상승한다.
대강당이 발칵 뒤집혔다.
시끄럽게 퍼져나가는 웅성거림에, 알랭 코르노는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앨리먼트 필드의 범위는 넓지 않습니다. 약 10명 정도의 마법사를 범위 안에 포함시킬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5서클 마법사가 포함된 파티가 50의 효율을 냈다면, 앨리먼트 필드를 익힌 5서클 마법사 한 명으로 인해 100 이상의 효율을 낼 수 있습니다. 실험 결과 버프 효과로도 A급 몬스터에게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습니다만, 이번 발견이 마의 벽을 넘어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법 강화.
그건 마법사들이 갈구하는 주제다.
고로.
“·········이상입니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찬사를 보냈다.
짝짝짝!
“대박이다!”
“역시 프랑스 마법 학회야!”
“이번 학술 대회는 너희들이 우승이야! 이걸 넘어설 수 있는 연구는 최근 10년간 하나도 없었어!”
난리가 난 대강당.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알랭 코르노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 * *
시작부터 임팩트가 너무 강했다.
다음 차례들도 제법 괜찮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만, 앨리먼트 필드에 대적할 만한 것은 없었다.
“이대로 알랭 코르노가 우승하려나.”
“무조건이지. 최근 10년간 이것보다 대단했던 결과물은 없었잖아.”
점점 결과가 굳어지고 있을 즈음, 마침내 마법 학과의 차례가 되었다.
“다음 차례는 한국 헌터 아카데미 마법 학과의 소속인 이미혜 교수와 김무열 학생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호명되는 이름.
이미혜 교수 뒤에 서 있던 김무열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너무 떨려.’
쿵쿵.
심장이 뛰었다.
대회장으로 이동하는 길만 하더라도 자신감이 넘쳤던 김무열이지만, 앞선 차례들의 발표를 보고서 기가 확 죽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알랭 코르노. 좌중을 압도하며 ‘앨리먼트 필드’의 연구를 발표하는 그의 모습에, 김무열은 이곳이 왜 마법사들의 축제이자 미래라고 불리는지 알았다.
그때부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이 자리에 서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지고 말았고, 김무열은 최대한 떨림을 가라앉히며 이미혜 교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저희가 발표할 주제는 3서클 마법 윈드 붐과 4서클 마법 인페르노의 융합입니다. 아시다시피 바람 마법과 화염 마법의 조합은, 원소 마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주는 조합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두 마법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살린 윈드 인페르노(wind inferno)의 개발에 들어갔고, 마나가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발표는 이미혜 교수가 맡았다.
김무열의 포지션은 조수일 뿐이다.
이미혜의 발표가 진행될수록 김무열의 표정은 안정을 되찾았고, 점점 수상에 대한 가능성이 보였다.
‘우리는 무조건 수상할 수 있어.’
윈드 인페르노.
마법의 위력은 5서클에 버금가는 수준.
융합 마법은 서클 분류에서 논외로 치지만, 마법의 파괴력은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처음에는 긴장되었지만, 지금은 발표가 끝났을 때 사람들이 보일 찬사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실제로 관중들이 홀로그램 영상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고, 분위기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어라?’
마법의 체계를 설명할 때부터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특히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영국 마법 협회의 대마법사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상당히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발표가 끝나자마자, 존 웨슬리가 마이크를 잡았다.
“혹시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어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예, 말씀하세요.”
“지금으로부터 8년 전에, 영국 마법 협회에서 이와 똑같은 연구를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바람 마법과 화염 마법의 융합은 누구나 파괴력을 기대할 수 있는 조합이기 때문에, 방금 발표한 마법의 형태와 동일한 체계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윈드 인페르노’를 세상에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왜인 줄 아십니까?”
“·········.”
이미혜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건 김무열도 마찬가지였다.
최초의 발견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무려 8년 전에 개발되었던 것이라니.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서로 답변을 미루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존 웨슬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공식을 완성하고, 마법 실험을 몇 번이나 하셨습니까?”
“백 번 정도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윈드 인페르노는 단 한 번의 문제도·········.”
쾅!
존 웨슬리가 책상을 내리쳤다.
살짝 달아오른 얼굴은, 그의 분노를 비추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마법은 매우 위험한 학문입니다. 조금이라도 형태가 벗어나면, 언제 마나 폭발이 일어날지 모르죠. 그런데 겨우 백번의 실험을 해놓고서, 대단한 결과물인 것마냥 발표할 생각을 하다니. 저희는 8년 전에 무려 만 번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대부분의 시도는 모두 성공하였지만, 딱 한 번. 마지막 실험에서 윈드 인페르노는 마나의 불안정으로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이미혜와 김무열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이제야 문제점을 알았다.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한 적이 있는 마법의 체계는, 대단한 결과물이 아니라 위험한 폭발물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신 모양이군요. 마법 연구는 단 하나의 완벽한 답을 찾기 위해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작업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마법은 엄청난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당장 이 무대에서 내려가세요. 두 분은 지금, 이 대회장을 더럽히는 아주 멍청한 실수를 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미혜와 김무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답할 말도, 대답할 지식도 없었으니까.
잔뜩 붉어진 얼굴로 황급히 내려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 존 웨슬리는 짜증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병신 새끼들.”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다시는, 이 무대에 설 수 없도록 조치하기 위해서 말이다.
* * *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존 웨슬리 옆에 앉은 독일 마법 협회 소속 마르코 도슨(Marco Dawson)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아니, 대체 언제부터 마법 학술 대회가 아카데미 출신들의 놀이터가 됐습니까? 이래서 지원자들의 자격을 평가해서 입구에서부터 거르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덜떨어진 녀석들. 겨우 백번의 실험에서 이상이 없었다고,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신나서 마법 학술 대회에 참석하다니.”
“옳습니다. 이 자리는 검증된 사람들만 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동조했다.
사실 이와 같은 문제는 예전부터 제기되었었다.
그러나 새로운 발명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격만 충족하면 된다는 원칙에, 못마땅하지만 마법 학과의 참여를 허락했다. 마법 학과 또한 ‘세계 마법 연합’에서 정식으로 인정하는 단체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고 말았다. 가뜩이나 3팀이나 참가시켰다는 사실에 불만이 상당했었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첫 번째 타자인 이미혜의 팀이 제대로 일을 망쳤다.
험악해진 분위기.
다음 차례 또한 마법 학과라는 사실에, 한 심사위원이 말했다.
“그냥 마법 학과의 발표는 취소시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들의 발표가 대회의 격을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차라리 그러시죠. 애초에 그들을 참가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마법 학술 대회는 학자들이 자신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인데, 겨우 학과생들을 데리고 진행한 연구가 이 대회와 어울릴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걸 보시죠. 강필두 교수와 강민혁 학생의 발표 주제가 바로 마법의 형태 변화랍니다. 겨우 1학년 학과생을 데리고, 이 위험한 연구를 성공시켰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불만이 팽배해졌다.
당장에라도 실격 처리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존 웨슬리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도 발표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그러니 이번 대회까지는 그냥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약 마법 학과의 출신들이 앞선 차례와 비슷한 실수를 범한다면, 다음부터는 마법 학과에 한해서는 참가를 제한하겠습니다. 그 정도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됩니다.”
심사위원들도 급이 있다.
영국 마법 협회 소속인 존 웨슬리의 말에, 불만을 제기하던 심사위원들이 누그러진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하시죠.”
“일단 들어보기라도 합시다. 또 어떤 황당한 말을 할지.”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었다.
존 웨슬리는 일단 다음 차례에게 기회를 부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표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형태 변화는 매우 어려운 연구야. 성공할 리는 없겠지만, 최소한 기회는 주어야겠지.’
팔짱을 꼈다.
못마땅하지만, 앞선 차례가 문제라고 해서 기껏 대회에 참석한 이들의 자격을 박탈할 수는 없다.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조금의 문제라도 있다면, 이번만큼은 잔인할 정도로 발표를 난도질할 것이다.
그런 그들의 적의 어린 시선에, 마침내 무대 위로 걸음을 옮기는 강필두와 강민혁의 모습이 보였다.
17화. 4. 마법 학술 대회(4)
강필두의 발걸음은 당당했다.
앞에서 이미혜가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았지만, 자신은 그와 다른 결과를 만들 거라고 확신했다.
‘괜히 긴장할 필요 없어.’
마법 학술 대회.
처음에는 순수하게 학술을 발표하는 무대였다면, 최근 10년 전부터는 경연의 성향이 매우 강해졌다.
대회의 수상 기록은 마법 단체의 수준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잣대다. 그래서 보통 출전 권한을 부여받은 단체들은 신중하게 참가팀을 선정하는데, 많은 수상팀을 배출하는 단체는 마법 학계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현재 세계 마법 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영국, 미국, 프랑스가 바로 이러한 경우에 속했다. 그들은 대회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수상자를 배출하는 단체였고, 그들은 그간의 연구 자료와 명성을 기반으로 세계 최고의 마법 단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듣기로는 현역 아카데미 출신의 수상은 거의 없다고 했다.
보통은 망신을 당하기 싫어서 출전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강필두의 출전은 그 의미가 컸다.
‘우리의 연구는 완벽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수많은 관중들 앞에 선 강필두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저희가 연구한 주제는 바로 ‘마법의 형태 변화’입니다. 세상에 알려진 모든 마법에는 일정한 체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마법사들의 희생으로 얻어낸 값진 결과이며, 형태의 체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마나 폭발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형태 변화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마법의 형태는 다양한데, 왜 하나의 마법에는 하나의 형태만이 고정으로 적용되는 것일까. 어쩌면 같은 마나와 체계로 다른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발표는 강필두가 맡았다.
강민혁 덕분에 연구를 성공할 수 있었지만, 강필두는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뒤에 홀로그램을 보십시오.”
영상이 떠올랐다.
형태 변화의 체계를 설명함과 동시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영상이 재생되었다.
“마법의 형태를 변형하기 위해서는, 형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기존과는 다른 형태 체계를 입력하면 됩니다. 이때, 마법은 폭발을 일으킵니다. 이게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저희는 마나의 폭주를 안정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방법은 간단했다.
캐스팅.
허공에 흩뿌려진 마나를 일정 체계로 형성하는 과정에서, 마법사는 마나를 안정화시키는 새로운 체계를 동시에 형성하였다. 더블 캐스팅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다. 더블 캐스팅은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이라면, 이건 하나의 마법에서 두 개의 체계를 입력했다.
하나는 마법 형성, 하나는 마나의 안정화.
그런 과정 끝에 캐스팅을 마치자, 놀랍게도 마법사의 손에서 구슬 형태의 파이어가 형성되었다.
“허!”
“어떻게 이런 일이.”
관중석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불신 어린 시선을 보이던 사람들이, 강필두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발표는 계속되었다.
강필두의 설명에 따라 영상은 각기 다른 장면을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점차 발표에 빠져들었다.
“이렇듯 동시에 마나를 안정만 시킨다면 형태 변화는 불가능한 영역이 아닙니다. 아직 연구가 완벽한 것이 아니라 형태 변화를 유지하는 것은 5초가 한계지만, 마법의 형태를 변화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연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법은 형태만으로 어떤 종류의 마법인지가 노출이 되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형태 변화를 통해서 속임수를 섞을 수도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완벽했다.
심사위원들마저도 발표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에, 강필두는 벅차오르는 기쁨을 애써 억눌렀다.
이제 잘 마무리만 하면 된다.
이번 발표가 끝나면, 강필두는 아카데미라는 환경에서도 엄청난 연구를 성공시킨 인재로 보일 터. 최병호가 크게 포상하는 것은 물론이며, 어쩌면 세계적인 마법 단체들에서 영입 제의를 할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이상적인 상황.
그렇게 사람들의 찬사를 기대하며 발표를 끝낸 강필두에게,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탁.
“질문이 있습니다.”
존 웨슬리.
그가, 흥분에 젖지 않은 표정으로 강필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매우 흥미로운 발표였다.
마나를 안정화시키는 새로운 체계는 정말 대단한 발견이지만, 존 웨슬리는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일단 좋은 발표를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마법의 형태 변화를 하기 위해서는, 캐스팅과 동시에 마나를 안정화시키는 체계를 입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체계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조금의 오차가 생길 경우, 형태 변화가 진행된 마법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예민한 문제였다.
만에 하나.
마법사는 그 하나를 대비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오차가 발생할 경우, 그것은 곧바로 마법사의 생명으로 직결된다.
강필두가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마나가 불안정해지는 순간 형태 변화가 진행된 마법은 곧바로 폭발을 일으킵니다. 그렇기에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충분한 숙달이 필요합니다. 저는 수없이 많이 형태 변화를 시도하였고, 숙련되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었습니다. 저희가 발견해낸 공식대로만 체계를 입력한다면,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할 일은 절대 없다고 확신합니다.”
연구 자료가 첨부되었다.
얼마나 많은 연구를 반복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강필두는 자신의 말에 힘을 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정말 위험천만한 생각입니다. 마법사는 항상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흩트려졌다간, 마법이 취소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전투가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에서, 마나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생긴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사고로 직결될 확률이 높습니다. 강필두 교수님의 발표는 매우 훌륭합니다. 새로운 발견을 해낸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최소한의 안전망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마법의 형태 변화’는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혹시 생각해두신 안전망은 없으십니까?”
존 웨슬리는 침착했다.
새로운 발견에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침착하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학술 대회는 검증된 발표만 하는 자리가 아니다.
세계적인 마법사들의 힘을 빌려 문제점을 파악하는 자리기도 한만큼, 존 웨슬리는 본인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 그게········· 음·········.”
강필두가 당황했다.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의 발표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존 웨슬리의 질문이 정곡을 찔렀다.
옳은 말이다.
위험한 기술은 사용할 가치가 없다.
더욱이 형태 변화는 대단한 위력으로 직결되는 기술도 아니기에, 위험성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다.
강필두가 쩔쩔매는 모습에, 존 웨슬리는 이만 발표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발표였어.’
새로운 발견.
그 자체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미혜를 신랄하게 깎아내렸던 것과는 달리, 강필두를 상대로는 예의를 지켰다.
그때였다.
“혹시 제가 답변해도 되겠습니까?”
강필두의 바로 뒤.
홀로그램 영상을 조작하며 보조를 맡던 강민혁이 앞으로 나섰다.
* * *
이번 발표.
강필두가 주도적으로 연구를 이끈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그 소스는 모두 강민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강민혁은 애초에 완벽한 이론을 말해주지 않았다. 5초 정도 형태 변화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발견이기 때문에, 강필두에게 말해준 것은 정말 일부의 지식이었다. 108가지 1서클 마법에서 나온 내용처럼, 형태 변화를 매우 변칙적으로 사용하는 하나의 방법.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마법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존 웨슬리의 모습에, 강민혁이 나섰다.
‘미완성의 이론만으로는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건가.’
이번 대회.
강민혁은 출전에 의의를 두지 않았다.
반드시 수상하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는 만큼,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완벽하게 만족시키고 싶었다.
“직접 설명하겠다고요?”
“예.”
존 웨슬리의 눈빛에 의구심이 떠올랐다.
누가 봐도 조수의 역할로 보이는 강민혁이 나서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다.
연구 책임자는 강필두다.
그런데 책임자조차 대답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수가 무슨 설명을 한단 말인가.
웃긴 것은 강필두가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강민혁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는 것 같은 모습에, 존 웨슬리의 눈빛이 변했다.
‘이것 봐라.’
흥미가 돌았다.
이런 상황이 되니, 설명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설명해보시죠.”
판이 깔렸다.
수많은 시선들이 강민혁에게 향했지만, 강민혁은 전혀 떨지 않았다.
다수의 관심.
그건, 수호문의 독자였던 강민혁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사실 형태 변화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은 아직 연구 중에 있습니다. 실험을 충분히 진행하지 못한 상태라서 이번 발표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저희는 이미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해둔 상태입니다. 그것은 바로 마법을 캐스팅하는 과정을 역순으로 진행하는 겁니다.”
“역순으로요?”
“예. 현재 개발된 마법들은 모두 각자의 원소를 가지고 있고, 처음에 원소를 부여하는 것에서부터 마법의 캐스팅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원소가 바로 마나 폭발의 원인입니다. 순수한 마나가 인위적으로 특정 원소를 받아들임으로써 폭발력이 생기고, 우리 마법사들은 이 폭발력을 이용해서 몬스터를 처리합니다. 그런데 만약 원소를 생성하는 과정을 맨 뒤로 배치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확히는 역순이 아니라 원소 생성만 뒤에 배치하는 것이지만, 이 간단한 변화가 형태 변화의 불안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들은 많은 연구를 했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민혁이 말하는 바를 바로 머릿속에 떠올렸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계산했다.
나쁘지 않았다.
만약 오차가 생긴다 할지라도, 마법은 곧바로 폭발하지 않을 것이다.
“곧바로 폭발하는 것과 조금의 여유가 있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원소를 제일 마지막에 생성함으로써 마나에 적은 자극을 부여한다면, 마나를 안정화시키는 체계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곧바로 폭발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처음과는 다르게 큰 위험부담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안전망을 가지고도 실수를 저지를 마법사라면, 사실 전투에 큰 쓸모가 없는 새가슴일 테니까요.”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이론이었다.
심사위원들도 모두 납득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상황에, 강필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발표를 망칠뻔했다.
물론 존 웨슬리의 반응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완벽한 발표를 바랐다.
그런데.
“강민혁 학생.”
존 웨슬리는 아직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감탄한 마음을 표정에 드러내면서, 마음 깊숙이부터 올라오는 궁금증을 말했다.
“설마 그 안전망을 본인이 생각하신 겁니까?”
강필두의 반응.
강민혁의 자신감.
종합적으로 상황을 따져보았을 때, 존 웨슬리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18화. 4. 마법 학술 대회(5)
그건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만약 강필두가 안전망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면, 존 웨슬리의 질문에 당황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완벽한 답변은 가산점이 되었을 텐데, 강필두는 분명히 길을 잃은 사람의 눈빛을 보였다.
“·········.”
강필두가 심사위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강민혁 덕분에 연구의 가치를 높인 것은 좋은 일이었으나, 이로써 자신이 받을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기게 생겼다. 하지만 그가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지고 말았고, 여기에서 현명한 대처법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강민혁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강필두의 신호를 기다리던 강민혁이 속으로 웃었다.
‘역시.’
예상했다.
강필두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그가 명예욕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명예에 눈이 멀어서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할 만큼 멍청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일부러 기다렸던 것이다. 존 웨슬리의 기습적인 질문에 답변한 것은 위기를 넘기기 위한 강민혁의 대처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본인의 생각이라고 곧바로 답변했다면 강필두는 좋지 않은 시선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신호를 기다리는 인위적인 제츠처를 보여줌으로써, 강필두는 그래도 강민혁으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문에서 배운 처세술.
강민혁은 기쁨을 안에 숨기며 말했다.
“예, 교수님의 연구를 도와주면서 생각하게 된 방법입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올해 17살입니다.”
“허.”
감탄으로 물드는 존 웨슬리의 표정처럼, 다른 심사위원들과 관중들도 감탄사를 터트렸다.
17살.
이제 막 마법에 걸음마를 뗄 나이다. 아직은 마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대로 학습할 나이일 텐데, 강민혁은 벌써 연구에 참여해서 결과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것도 보통 주제가 아니다. 마법의 형태 변화의 경우에는, 위험성이 대단해서 노련한 마법사들도 기피하는 주제다. 그런데 그런 주제를 가지고,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있는 17살의 학생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웅성웅성.
대강당이 시끄러워졌다.
강민혁에 대한 말들로, 사람들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제가 17살의 나이일 때는 2서클 마법을 배우기 바빴던 것 같은데, 강민혁 학생은 벌써 그 정도의 마법 지식을 쌓으시다니. 마법 학과가 정말 대단한 인재를 키웠습니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존 웨슬리의 말에, 강필두가 얼른 나섰다.
“강민혁 학생은 정말 뛰어난 인재입니다. 사실 17살 학생을 연구에 포함시키는 결정으로 인해 학과 내에서도 말이 많았지만, 저는 강민혁 학생의 재능을 믿었습니다. 연구에는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숟가락이라도 얹어보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존 웨슬리는 강필두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발표를 마무리했다.
“마법 학술 대회는 세계 마법 연합에서 인정한 단체의 일원이라면 참가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각 단체가 자체적으로 선별해서, 마법 학술 대회의 출전 의사를 밝히게 되어있죠. 사실 이로 인해서 그간 말이 많았습니다. 무분별한 출전은 마법 학술 대회의 질을 떨어트리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요. 하지만 강민혁 학생이 저희가 전통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10년에 한 번이라도 강민혁 학생과 같은 인재가 나타난다면, 저희는 얼마든지 인고의 시간을 기다릴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발표는 끝났다.
처음에는 적의 어린 시선을 받으며 무대 위에 올라갔지만, 무대에서 내려갈 때는 반응이 달랐다.
짝짝짝!
짝짝짝!
격하게 터져나오는 박수 소리.
첫 번째 발표는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 * *
다음 차례.
이름을 호명하려던 도날드 버틀러의 표정이 움찔거렸다.
“··················이거 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방금 마법 형태 변화로 훌륭한 발표를 보여주었던 강민혁 학생이, 이번 조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학범 교수와 강민혁 학생,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뭐라고?”
“강민혁이 또 나와?”
난리가 났다.
강민혁.
방금 발표로 엄청난 임팩트를 보인 강민혁이 또다시 발표한다니.
서로 강민혁에 대한 칭찬을 하던 심사위원들은, 화들짝 놀라서 참가 명단을 황급히 확인하였다.
“정말인데요? 강민혁이 명단에 있어요.”
“대체 얘 뭐야?”
보통 참가 명단은 연구 대표자의 이름 정도만 확인한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의 머릿속에는 강필두와 이학범의 이름은 있어도, 강민혁은 기억할 가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당혹스러웠다. 이제는 강민혁이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를 알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어라?!”
“뭐야?”
“왜 강민혁이 마이크를 잡아?”
분위기가 묘했다.
당연히 조수의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생각되던 강민혁이,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표를 준비했다.
그러자 도날드 버틀러가 물었다.
“혹시 강민혁 학생이 발표할 생각이십니까?”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발표자는 연구의 대표자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민혁이 발표하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대단하다.
의문에 찬 시선들.
이학범이 앞으로 나섰다.
“예. 이번에 발표할 더블 캐스팅 연구는 제가 대표자로서 진행했지만, 사실 90퍼센트 이상 강민혁 학생에 의해 연구가 완성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발표자는 연구에 해박한 사람이 맡아야 하지 않습니까? 비록 교수와 학생의 입장이지만, 이번 발표는 제가 보조를 맡을 생각입니다.”
강민혁과 대화를 나누었던 그 날.
이학범은 강민혁에게 특별한 제안을 받았다.
“··················나중에 저는 마탑을 건설할 생각입니다.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처럼 아직 사람들이 풀지 못한 난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세계의 마법을 만들어내는 마탑. 저는 이학범 교수님이 마탑의 일원으로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미래에는 마법의 발전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그리고 제가 마탑을 운영함에 있어 도움을 줄 조력자가 필요합니다.”
말뿐인 제안이 아니다.
강민혁은 하나의 자료를 건넸고, 그 자료 안에 담긴 ‘마나 동화’라는 기술에 이학범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때 확신했다.
강민혁은 천재라고.
수호문의 독자인 강민혁이, 어쩌면 마법의 선구자가 될 재능일지도 모른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자료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학범은 몸이 부르르 떨렸고, 강민혁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학자로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다니. 그런 일이라면, 내 남은 삶을 네게 바칠 것을 약속하지.”
그렇게 거래는 성사되었고, 이학범은 발표자의 권한을 넘겼다.
강민혁의 요구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이번 연구는 강민혁의 것이라 생각했고, 이게 미래를 위해서라도 옳은 일이었다.
상황이 정리되었다.
이학범이 한 발 뒤로 물러서자,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은 발표를 앞둔 강민혁에게 집중되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지금부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 * *
대회 전날.
심사위원들이 가장 의구심을 가지던 주제가 있었다.
“이번 발표에 더블 캐스팅도 있는데요?”
“으흠, 그냥 비슷한 주제의 다른 내용이지 않을까요? 진짜 더블 캐스팅을 성공했을 리는 없잖아요.”
더블 캐스팅.
그건 보통의 난제가 아니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갈구했지만, 수십 년 동안 실패만 거듭했던 주제.
만약 프랑스 마법 협회 같은 이름 있는 단체에서 발표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어디 이름도 모를 마법 학과 출신 교수의 발표가 성공하리라고는 보지 않았다. 그리고 연구팀 구성도 매우 초라하지 않은가. 17살의 학생이 포함된, 이건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런 조합이었다.
그리고 현재.
심사위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 이전 발표의 임팩트가 가라앉지 않은 지금, 그들로서는 강민혁이 단순히 17살 학생으로 보이지 않았다.
강민혁이 말했다.
“더블 캐스팅 연구를 진행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블 캐스팅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물건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두 가지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다면 해결책은 마법사 본인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연구 사례에 의하면, 마법의 체계를 간소화하고 최대한 비슷한 형태의 체계를 만들어서, 다소 복잡하더라도 동시에 캐스팅 작업을 수행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하지만 이건 더블 캐스팅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건 그냥, 우리가 바라는 염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동시에 두 가지의 마법을 계산하는 단순노동 작업일 뿐이니까요.”
강민혁이 무대 위를 걸었다.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얼굴이었지만, 그는 마치 알랭 코르노처럼 좌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수호문의 독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익숙한 자리다.
그런 그에게, 무대의 압박감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메모라이즈(Memorize) 마법과 같이 간단한 방법으로 동시에 두 가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오랜 고민 끝에, 저는 한 가지의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팟.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더블 캐스팅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주제이니만큼, 사람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마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마나의 기억력’이라고 부르는데, 약물 주사를 통해서 체내에 흡수된 마나는 해당 마법사의 몸을 본인의 보금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나를 모두 소모하더라도, 다시 소모한 만큼의 마나가 서클에서 회복되지요. 그런데 이 마나의 기억력이라는 것은 단순히 마나 회복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영상이 재생되었다.
홀로그램의 마법사가, 한 가지의 마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였다.
“마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행위. 이 과정에서 마나는 마법의 형태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마나를 모두 소모하고 나면, 마나의 기억력으로 인해 서클에는 동일한 성질의 마나가 회복됩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서클에 쌓인 마나는 이제껏 형성한 마법의 형태를 기억할까요, 기억하지 못할까요?”
답변을 바란 건 아니다.
깊게 내려앉은 침묵을 바라보며, 강민혁은 웃었다.
“마나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그리고 마법의 형태를 기억합니다. 이것이 바로 더블 캐스팅의 시작입니다.”
확!
화면이 커졌다.
그 화면은 오랜 과정을 담았다.
한 마법사가 반복적으로 마법을 사용하였고, 이윽고 캐스팅을 하지 않더라도 마나가 저절로 마법의 형태를 이루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에 사람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홀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광경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경악.
대강당이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침묵에 휩쌓인 그 공간에서, 강민혁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지금부터 보여드린 것은 더블 캐스팅의 성공 사례입니다.”
명확한 증거.
어떤 체계로 마법을 사용했으며, 어떤 마법들을 성공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더블 캐스팅을 사용할 경우 마법의 캐스팅이 평균보다 느려지지만, 그래도 2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더블 캐스팅의 이론을 부정하던 사람들도, 강민혁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느새 끝에 달한 설명.
강민혁이 마침내 발표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것으로 더블 캐스팅의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발표가 끝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
‘더블 캐스팅이 정말로 실현되다니.’
연구가 성공했다.
난제가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이건 기적이었다.
그것도 마법 학계에 한 획을 그을 기적.
심사위원을 포함해서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경악 어린 눈빛으로 강민혁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19화. 4. 마법 학술 대회(6)
짝짝짝.
처음에는 박수 소리가 작았다.
충격에 빠진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멍하니 무대 위에 있는 강민혁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이윽고 전염되듯 퍼져나가는 박수 소리.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경악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짝짝짝!
짝짝짝!
“정말 엄청난 발표였어!”
“진짜로 더블 캐스팅 연구에 성공하다니!”
“강민혁! 너는 지금 마법 학계에 한 획을 그었어!”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열광했다.
그들은 대부분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다. 마법사이거나, 아니면 마법 학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번 발표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다. 마법 학술 대회의 발표 자료는 공공재로 공개되기 때문에, 꿈에만 그리던 더블 캐스팅의 대중화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대강당이 광기에 물든 것처럼, 귀가 먹먹할 정도로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뒤덮었다.
그런데 그런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존 웨슬리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블 캐스팅을 발표했다는 것 자체에 열광하고 있었지만, 심사위원들로서는 강민혁의 논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았다. 마나의 기억력을 활용하는 방법. 그리고 복잡한 체계 속에서 정확히 안전한 공식을 찾았다는 것에, 말을 잃고 말았다.
더블 캐스팅.
웬만한 마법 협회는 모두 도전했던 주제다.
많은 인적 자원과 자금을 투자했음에도 실패했던 것을, 겨우 17살의 학생이 성공시켰다.
문득 이학범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번에 발표할 더블 캐스팅 연구는 제가 대표자로서 진행했지만, 사실 90퍼센트 이상 강민혁 학생에 의해 연구가 완성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발표자는 연구에 해박한 사람이 맡아야 하지 않습니까?”
교수.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강민혁의 보조를 맞추는 것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연구는 강민혁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지만, 눈앞의 현실은 상식을 뛰어넘었다.
“·········괴물이 나타났구나.”
존 웨슬리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독설가의 포지션이고, 그렇기 때문에 연구에 문제가 있다면 거침없이 지적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 지적도 할 수 없었다. 강민혁의 연구는 존 웨슬리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심사위원으로서 강민혁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1이 되어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수업료를 지불할 테니, 강민혁의 발표를 한 번 더 듣고 싶었다. 그간 불가능하다고만 생각되었던 더블 캐스팅이 성공하는 과정은, 존 웨슬리와 같은 인물조차도 충격에 빠트릴 정도로 대단했다.
이로써 우승 후보는 정해졌다.
알랭 코르노의 앨리먼트 필드냐, 아니면 강민혁의 더블 캐스팅이냐.
알랭 코르노의 6번째 5서클 마법은 충분히 대단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후자에 마음이 기울었다.
‘알랭 코르노의 발표는 마법을 더욱 강하게 해줄 수단이라면, 강민혁의 연구는 마법 학계 전체의 퀄리티를 상승시킬 수 있는 엄청난 발견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차이가 엄청날 테니, 사실상 우승자는 정해졌어.’
5서클.
대마법사라 불리는 경지에 올라선 사람들은 많지 않다.
반면, 마법사를 희망하는 모든 사람들은 강민혁이 발표한 ‘더블 캐스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이번 학술 대회가 시작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17살의 강민혁. 그의 재능은 감히 가늠이 되질 않았다. 남들은 이제 막 마법의 걸음마를 떼고 있을 시기에, 강민혁은 더블 캐스팅뿐만 아니라 마법의 형태 변화를 완성했다. 강필두의 반응을 보면, 그것 또한 더블 캐스팅과 마찬가지로 강민혁이 90퍼센트 이상 한 것 같았다.
하나의 문명.
그런 것들이 급작스러운 발전을 이룰 때는, 보통 선구자라고 불리는 천재가 있다.
강민혁이 어쩌면 그런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존 웨슬리는 평가는커녕 번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강민혁을 반드시 영국 마법 협회로 영입해야 한다!’
심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강민혁의 재능이 검증된 이상, 그를 중심으로 치열한 영입 전쟁이 벌어질 것은 너무 뻔하다.
아니나 다를까.
“크흠.”
“어허.”
괜히 어색한 기색을 보이는 심사위원들.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그들 또한, 존 웨슬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 * *
발표 직후.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강민혁을 반긴 것은 바로 강필두 교수였다.
“더블 캐스팅 연구에 성공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연구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거야?”
강필두는 경악했다.
강민혁을 곁에 두면서 그의 재능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더블 캐스팅의 성공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마법 형태 변화가 일반 커피라면 더블 캐스팅은 TOP. 연구의 체급이 다르다. 강필두는 강민혁의 옆에 착 달라붙어서, 입에서 침이 튀길 정도로 열심히 떠들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민혁이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마법사로서 성공할 재능이라는 것을 확신했어. 그래서 곧바로 학과장님을 찾아간 거야. 너와 함께라면 연구가 성공할 것 같았거든. 그런데 민혁아. 다음부터는 더블 캐스팅과 같은 대단한 연구를 진행할 생각이라면, 나에게 미리 언질을 해주는 건 어때? 나 강필두야. 네 연구라면, 무엇이든지 지원해줄 의향이 있어.”
태도가 돌변했다.
처음에는 분명히 더블 캐스팅 연구의 실패를 확신하던 사람이, 마치 예상을 했었던 것처럼 말했다.
그건 철저히 계산적인 행동이었다.
더블 캐스팅.
이번 발표로 인해, 강민혁은 학과생의 신분과는 별개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을 것이다. 강민혁이 겨우 1서클 마법사라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뛰어난 연구자는 어느 마법 협회나 반길만한 인재고, 그렇기에 아카데미로 복귀하자마자 덜컥 자퇴서를 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미리 친한 척 달라붙었다.
학과에 남는다면 앞으로 강민혁과 계속 연구를 진행하기 위함이고, 혹시 떠난다 할지라도 연락처는 어떻게든 받아낼 속셈이었다. 그만큼 강민혁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다. 적어도 마법을 배운 사람들은, 앞으로 더블 캐스팅의 대중화를 성공시킨 강민혁의 이름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미혜.
그녀도 쪼르르 달려와서 강민혁에게 친한 척 말을 붙였지만, 김무열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멍청한 새끼!’
대회장으로 이동하는 길.
김무열은 너무 많은 업보를 쌓았다.
설마 강민혁의 연구가 성공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연구가 더 대단한 것처럼 열심히 떠들었다.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도 후회되었다. 만약 같이 대회를 참가한다는 명분으로 강민혁과 친해졌다면, 김무열은 정말 엄청난 인맥을 얻을뻔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손가락 몇 개 잘라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면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본인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알았기에, 김무열은 어둠이 드리우는 구석 한편에서 그저 강민혁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무대 아래는 떠들썩했다.
강필두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단언하지. 마법의 형태 변화와 더블 캐스팅. 이 두 개를 동시에 성공시킨 이상, 민혁이 너의 우승은 무조건 확정이야. 알랭 코르노의 앨리먼트 필드? 그것 또한 대단한 발견이지만, 민혁이의 업적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이거 학과장님이 정말 좋아하겠는 걸? 수상만 해도 잔치를 벌일 것 같으셨던 분이, 우승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들고가면 아주 까무러치시겠어.”
그의 예상은 옳았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발표가 끝나고 시상식을 진행하는 도날드 버틀러의 입에서, 모두가 예상했던 결과가 발표되었다.
“제 82회차 마법 학술 대회의 우승팀은·················· 바로 이학범 교수와 강민혁 학생의 더블 캐스팅입니다! 마법 학계에 한 획을 그을 연구를 성공시킨 두 분을 위해, 모두 열렬한 환호를 보내주십시오!”
짝짝짝!
짝짝짝!
열광하는 사람들.
그들의 환호를 받으며, 강민혁과 이학범은 우승자의 자격으로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갔다.
* * *
도날드 버틀러가 말했다.
“사실 우승자 선정에 관해서는 심사위원들끼리 의견 충돌이 전혀 없었습니다. 만장일치로 더블 캐스팅의 우승이 확정되었지만, 문제는 더블 캐스팅의 값어치로 얼마나 책정해야 되는가였습니다. 더블 캐스팅 연구는 상징성이 대단합니다. 이로 인해 더블 캐스팅의 대중화가 성공할 테고, 마법사들의 전체적인 퀄리티 상승은 마법 학계에 엄청난 호재입니다. 고로 기나긴 상의 끝에, 더블 캐스팅의 값어치로 3억 달러(3,392억)를 책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3억 달러.
정말 엄청난 금액이었다.
최초의 5서클 마법이 1억 달러(1,130억)가 책정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려 3배나 높았다.
원래 마법의 발견이라는 것은 최초의 상징성이 크다. 5서클 마법도 처음에는 대단한 값어치가 책정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떨어졌다.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더블 캐스팅은 모두가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였고, 그렇기에 3억 달러라는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이 책정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로 수많은 마법사들이 받을 혜택을 생각하면, 오히려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이학범 교수와 강민혁 학생에게 세계 마법 연합이 보증하는 ‘A급 신분증’을 부여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은 이제 어느 나라에서든 귀빈의 대우를 받을 것이며, 원하신다면 마탑의 건설 또한 가능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트로피 증정식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의례적인 행사가 진행되었다.
우승자에게 트로피가 부여된 이후, 예상대로 2위로 선정된 사람은 프랑스 마법 협회의 알랭 코르노였다.
그렇게 대회는 끝났다.
그런데 강민혁이 대회장을 나서자마자, 여러 사람들이 헐레벌떡 따라나왔다.
“프랑스 마법 협회입니다. 혹시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블러드 문에서 강민혁 학생을 영입하고 싶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시다면 무엇이든지 편하게 말씀해주십시오.”
“미국 마법 협회에서·········.”
아주 난리가 났다.
그들 중에는 심사위원들도 있었다.
고고한 학처럼 굴었던 몇몇 심사위원들도, 경쟁자들을 뿌리치며 어떻게든 강민혁에게 말을 걸었다.
이게 바로 대회의 부수적인 효과다.
연구의 값어치로 부를 얻고, 연구의 성공으로 명성을 얻는다.
그리고 대회장 바깥을 나오면, 수많은 세력들이 더한 보상을 약속하는 것이 바로 마법 학술 대회다.
하지만 강민혁은 선뜻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어떤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일단 명함만 받겠습니다.”
단호한 거절.
강민혁은 자신의 가치가 아직 충분히 부각되지 않았을 때, 협상 테이블에 앉는 행동이 얼마나 멍청한 것인지를 안다. 강민혁의 아버지가 누누이 강조했던 부분이다. 본인이 칼자루를 쥐고 있을 때는, 본인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 강민혁이 오늘 거절하고 단호하게 학교로 복귀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킬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 이후에.
강민혁은 그때 원하는 바를 수확할 것이다.
마법 협회의 사람들이 끈질기게 달라붙었지만, 강민혁은 그들을 모두 뿌리치고 마력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도착한 아카데미.
그런데 마법 학과 정문에서부터, 수많은 학생들이 이열로 기나긴 길을 만들었다.
그들은 강민혁 일행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신호에 따라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짝짝짝!
일부는 귀찮은 기색을 보이고.
일부는 진심으로 감탄한 기색을 보이고.
일부는 못마땅한 듯 표정을 잔뜩 찌푸렸다.
하지만 마법 학과의 일원인 이상, 그들은 지금의 광경을 지시한 사람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가장 앞.
그곳에는 학과장 최병호가, 방긋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혁이 왔니? 정말 고생 많았지?”
마법 학술 대회 우승.
그것의 파급력은 정말 대단했다.
20화. 5. 인생의 변곡점
대회가 끝난 직후.
독일 마법 협회의 소속이자 심사위원이었던 마르코 도슨은, 협회로부터 특명을 받았다.
“이건 정말 엄청난 기회야. 겨우 17살의 나이에 마법의 형태 변화와 더블 캐스팅 연구를 성공시킬 정도라면, 강민혁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봐야해. 그러니 가만히 앉아서 강민혁의 연락이 오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떻게든 영입해.”
협회장의 명령이었다.
마법 학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한 명의 대마법사는 전장에서 일당백(一當百)의 위력을 발휘하지만, 한 명의 뛰어난 연구자는 수십 명의 대마법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마법의 경지와 학문의 발전은 비례하지 않는다. 어떤 마법사는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반면, 어떤 마법사는 전장에서의 존재감은 떨어질지라도 연구소에서 값진 발견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고로 마법 연합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뛰어난 연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마탑을 제외한, 세계 마법 연합의 3대 세력.
미국, 영국, 프랑스.
그들이 바로 뛰어난 학자를 기반으로 성장한 케이스였다.
마법 학술 대회에서 꾸준히 수상함으로써 단단하게 기반을 갖추었고, 그런 명성과 연구 자료에 이끌린 마법사들이 현재의 3대 세력을 형성하였다. 독일을 비롯한 다른 후발주자들도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부던히도 노력했지만, 선점한 세력과의 차이를 좁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강민혁을 반드시 확보해야 해.’
꽉.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번에 마법 학술 대회를 진행하면서, 마르코 도슨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신 또한 모두가 인정하는 대마법사인데, 같은 심사위원임에도 불구하고 급이 나누어진 것 같은 분위기가 정말 싫었다.
특히 존 웨슬리.
아직도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발표자들을 열심히 평가하다가도, 그가 말하면 마르코 도슨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영국보다는 빨리 움직여야 해. 그래도 영국은 나름 체면을 차리는 녀석들이니까, 강민혁이 직접 연락하기 전까지는 상황을 주시하겠지. 그러니 아직 우리에게 기회는 있어. 특히 상대가 17살의 어린 아이라면 더더욱.’
17살.
재능은 어떨지 몰라도, 아직 세상 물정은 모를 나이다.
그래서 마르코 도슨은 강민혁이 아니라, 강민혁의 부모님을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다.
만국 공통이겠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부모님의 입김이 심하다고 하지 않던가.
빠르게 서울로 이동했다.
강민혁이 아카데미로 복귀하던 그 시각, 마르코 도슨은 강민혁의 주소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
순간 당황했다.
주소지의 현판.
한국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수호문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수호문이라고?”
눈을 비볐다.
참가서에 기록되어 있는 주소지를 확인하고, 다시 한번 현판을 확인했다.
맞다.
분명히 강민혁의 주소지는 바로 수호문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당혹스러웠다.
강민혁이 어째서 수호문에서 거주한단 말인가.
수호문은 한국에서만 명성을 떨치는 세력이 아니다. 한국의 4대 세력으로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렸고, 다른 세력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해외 파병을 나가기도 한다. 특히 가주인 수호검의 명성은 워낙 대단하다 보니, 수호문의 이름을 모를 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법 협회를 발칵 뒤집은 마법 천재가, 수호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선뜻 납득이 되질 않았다.
강화 전사.
그들은 마법을 하찮게 보지 않던가.
사실 이는 마법 학술 대회 원칙으로 인한 해프닝이었다. 대회 참가서에는, 간단한 신상 정보만 기록한다. 수호문의 독자와 같은 구구절절한 얘기들은 심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발표자가 어느 소속의 누구인지 정도만 알고 심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
수호문 앞까지 와서, 마르코 도슨은 뒤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일단 부딪치자.’
마법 학술 대회 우승.
무려 3억 달러의 상금 소식을 전한다면, 아무리 수호문 소속의 부모님이라도 말이 통할 터.
그렇게 한참의 고민 끝에 수호문으로 들어간 마르코 도슨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대답을 들었다.
수호문의 이급(二級) 제자가,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에요? 마법 학술 대회는 그래도 마법 학계에서는 엄청난 대회라면서요. 그런데 마법을 배운지 겨우 3개월도 되지 않은 강민혁이 마법 학술 대회에서 우승했다니. 설마 요새 유행하는 신종 사기법인가?”
“·········예?”
마르코 도슨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강민혁이 17살의 천재라는 사실을 떠나, 애초에 마법에 입문한지 겨우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니.
“그, 그게 사실입니까?!!!”
수호문에서 알게 된 진실은, 평생 마법을 익힌 마르코 도슨을 충격와 공포에 빠트렸다.
* * *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강민혁의 영입을 준비하던 마법 협회들은, 강민혁의 신분에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강민혁이 수호문의 독자라니.”
그것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강민혁이 마법을 배운 기간이었다.
겨우 3개월이란다.
사실상 아직 마법의 기초를 배울 단계인데, 강민혁은 마법 학술 대회에 참가해서 우승을 차지하는 엄청난 업적을 달성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서 17살의 천재가 더블 캐스팅의 연구를 성공한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3개월이라는 시간은 정도를 넘어섰다.
하지만 결국 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수호문의 독자라는 위치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라온 환경이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
[수호검, 득남하다!]
[수호문의 후계자 강민혁, 12세 이하 검술 대회에서 우승!]
[수호문의 미래는 밝다!]
수많은 기사들.
강민혁의 삶이 그 안에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강화 전사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강민혁은,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검사로서 명성을 떨쳤다. 실제로 그때만 하더라도 강민혁은 후계자로서의 입지가 단단했다. 어떠한 이유로 후계자의 자리를 포기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사의 내용만 보더라도 강민혁이 마법에 뒤늦게 입문했다는 사실은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강민혁이 우승했던 대회들.
기라성(綺羅星) 같은 천재들이 참여하는 무대에서 우승했다는 것은, 보통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결국 결론은 이랬다.
영국 마법 협회장과의 자리에서, 존 웨슬리는 정보팀이 알아낸 사실을 읽었다.
“··················강민혁이 17살 이전에는 마법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수호문 사람들의 증언도 이와 동일하며, 현재 그들은 마법 학술 대회 우승으로 상당히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그들의 말로는 강민혁의 마법 학과 입학은,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음으로써 도피처로 택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거 참, 제가 살아온 인생이 너무 허무해지는데요? 이 정보대로라면, 강민혁은 17살에 마법에 입문하고 겨우 몇 개월 만에 더블 캐스팅의 연구를 성공시킨 겁니다.”
황당했다.
존 웨슬리.
마법 학계가 인정하는 대마법사인 그도, 더블 캐스팅에 관해서는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었다.
강민혁의 경악스러운 행보로 인해, 현재 마법 학계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영국 마법 협회장, 웨인 번즈(Wayne Burns)가 말했다.
“현재 모든 마법 협회가 적극적으로 강민혁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어. 17살이라는 나이만으로도 대단한데, 이번에 밝혀진 사실로 인해서 강민혁의 가치는 더욱 상승했지. 그러니 우리도 상황을 관망할 수만은 없겠어. 만약 강민혁의 재능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짜라면, 그 한 명으로 인해 마법 학계는 엄청난 변화를 맞이할 테니까.”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어째서 희대의 마법 천재가, 하필이면 수호문의 독자로 태어났을까.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수호문으로서는 강민혁의 성적을 그렇게 달갑게 여기지 않을 확률이 높다.
마법의 평판이 그렇다.
그들 또한 ‘힘’을 가진 세력이지만, 강화 전사들에 비해서는 차가운 대우를 받는다.
“그렇다면·········?”
“존 웨슬리, 네가 나서라. 강민혁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다. 이번 일은 체면을 차릴 일이 아니야. 다른 협회에서도 이름 있는 녀석들이 나설 테니, 우리는 그들과의 차이를 보여줄 필요성이 있지. 너의 이름값과 실력이라면, 그 방법으로 매우 적절할 테고.”
존 웨슬리가 씨익, 웃었다.
“저도 바라는 바입니다.”
궁금했다.
강민혁이 어떤 사람인지.
그렇기에, 영국 마법 협회의 거물급 인사인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울행 비행기를 택했다.
* * *
그 시각.
정판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문주인 강덕철에게 말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민혁이가 마법 학과에 입학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마법 학술 대회에서 우승을 하다니. 그래도 마법 학술 대회는 제법 명망 있는 대회지 않습니까? 마법 협회가 난리를 피우는 꼴을 보면 사실인 것 같기는 한데, 도통 믿기지가 않습니다.”
현재 수호문은 난리가 났다.
강민혁의 우승.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호문의 사람들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대단한 업적이기 때문에 가문의 경사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수호문은 마법을 익히는 문파가 아니다.
더구나 강민혁은 낙오된 후계자.
강민혁의 업적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
“하여튼 민혁이 그 녀석의 독기는 옛날부터 알아봤습니다. 어린 애가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더니, 본인이 생각한 목표가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냈지 않습니까? 어휴, 이를 어찌해야 하나. 마법 학과에 입학할 때도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이번 일로 언론이 또 난리를 피우겠네.”
걱정부터 앞섰다.
학술 대회 우승이 마법 학계에서는 대단한 일이라지만, 수호문으로서는 크게 체감이 되지 않는다.
한계가 있는 학문.
그곳에서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루든, 수호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강덕철은 정판호의 호들갑에도 조용히 차를 마시며, 예전에 강민혁과 있었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저는 수호문의 후계자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날.
강민혁은 손아귀에 피를 철철 흘리며 강덕철을 찾았다.
당시 강민혁에게 후계자의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록 강민혁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그는 후계자에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강민혁의 태도는 단호했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에 강민혁은 마법 학과의 입학을 택했다.
그래서 그를 외면했다.
자신의 인생을 택했기에, 더 이상은 참견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술 대회 우승이라니.
정판호는 마법의 문외한이라 그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지만, 강덕철은 잘 알고 있었다.
‘겨우 3개월 만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마법.
현재 세계에서 비주류 학문이다.
헌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90퍼센트가 강화 전사라면, 나머지 10퍼센트 정도가 마법사다.
10퍼센트는 전체에 비해 무척이나 낮은 수치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10퍼센트.
숫자로 따지면 수십, 수백만 명의 사람.
그들이 백년간 쌓아올린 마법이라는 문명은, 3개월의 지식 수준으로는 무너트릴 수 없다.
그리고 강덕철은 마법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효율이 매우 낮은 학문이지만, 그래도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위력은 확실히 쓸모가 있다.
그래서 궁금했다.
강민혁이 어떻게, 학술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는지를.
강덕철이 말했다.
“민혁이에게 연락해. 수업이 끝나거든, 나를 찾아오라고.”
21화. 5. 인생의 변곡점(2)
강덕철의 시선이 강민혁을 향했다.
오랜만에 둘이서 마주하는 자리이건만, 강덕철의 태도에서는 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소식은 들었다. 마법 학술 대회에서 우승했다면서?”
“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넌 내 아들이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17살에 이르는 지금까지, 너는 단 한 번도 마법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 네가 마법 학과에 입학하자마자 학술 대회에서 우승하다니. 나로서는 선뜻 납득이 되질 않아.”
순수한 의문이었다.
우승에 대한 기쁨이나, 아니면 우승 상금에 대한 탐욕과 같은 것이 일절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의문.
그냥 궁금했을 뿐이다.
아들의 발전이, 강덕철에게는 의외였으니까.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했을 뿐입니다.”
대답은 짧았다.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이 뒷말을 자르는 강민혁의 모습에, 강덕철은 묘한 눈빛을 보냈다.
“·········마법에는 재능이 있다는 말인가?”
대단한 일이다.
만약 강민혁이 평범한 검문의 출신이었다면, 마법이라는 사실을 떠나 진심으로 축복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수호문이다.
강민혁의 아버지는 수호검이라 불리는 강덕철이고, 사람들은 그 아들의 행보를 주목한다.
탁!
“이걸 봐라.”
강민혁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강덕철이 던진 신문에는, 이런 내용들이 있었다.
[수호문의 낙오자, 마법 학술 대회에서 우승하다!]
[강민혁이 마법을 택한 이유, 사실은 수호문 내부에 문제가 있다!]
[수호문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가문의 후계자였던 강민혁이, 마법을 택한 것이 그 증거다!]
온갖 유언비어(流言蜚語).
사실을 근거로 하지 않는 악의적인 소문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호문을 물어뜯고 있었다.
“아마 우리를 견제하려는 세력에서 퍼트린 소문이겠지. 이게 바로 네 위치다. 네가 수호문의 후계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하더라도, 네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수호문과 직결된다. 마법 학술 대회의 우승은 충분히 대단한 일이고, 이번 일로 인해 네가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알겠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만 해. 수호문에서 태어났다면, 환경과 어울리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
강민혁의 재능을 인정한다.
마법사로서 대성한다면, 충분히 쓸만한 헌터가 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미래에, 수호문의 낙오자라는 꼬리표가 끝까지 따라붙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마법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다. 나는 마법의 힘을 인정하는 부류이지만, 나 또한 마법이라는 힘을 우리와 비슷한 눈높이에 두지 않는다. 그저 쓸만한 수단 중 하나. 도구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마법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아무런 힘도 없다. 그게 바로 네가 가는 길이다. 그러니 포기해라. 지금에라도 다시 검을 잡겠다고 한다면, 후계자의 신분은 아닐지라도 밑에서부터 다시 너를 훈련 시켜주겠다. 그게, 후계자였던 네가 선택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강민혁은 참 매력적인 가십거리다.
모든 행동이 기사화되고, 그건 강민혁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수호문을 비난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강민혁도 안다.
그래서 마법 학술 대회에 참석한 것이고, 그렇기에 아버지의 부름을 허락했다.
이 자리.
이건 아버지와 대화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미래를 통보하기 위함이었다.
“저는 이제 마법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수호문에서는 보지 못했던 빛을, 이 마법에서 보았으니까요. 그래서 아버지를 찾아온 겁니다. 더 이상 제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시간부로 저는 수호문과 연을 끊을 것이고, 짐도 모두 챙겨서 나가겠습니다. 수호문에 누가 되는 수많은 사고를 저지를 제가 못마땅하시다면, 지금 당장 친한 기자들에게 연락해서 이렇게 기사를 쓰라고 전하십시오. 강민혁을 수호문에서 제명하며, 그는 이제부터 수호문의 일원이 아니라고.”
“·········.”
강덕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가 말할 시간은 주지 않았다.
이건 대화가 아니었으니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천륜(天倫)을 끊었다.
마지막으로, 강민혁이 말을 덧붙였다.
“어머니 기일에 진행될 토벌에는 참여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리고 수호문의 후계자로서 제 도리는 하지 못하겠지만,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게만큼은 불효자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망설임 없이 발길을 돌렸다.
이제 자의로, 아니 타의로도 이 방을 찾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 * *
학과장 최병호는 요새 기분이 좋았다.
“으흐흐흐, 애물단지인 줄 알았던 녀석이 이런 복덩이였을 줄이야.”
강민혁.
수호문이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그의 입학은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강민혁의 입학으로 주변 지인들이 우려스러운 반응을 보였었다. 수호문이라서 받아주는 것은 이해하지만, 혹시 그로 인해서 마법 학과가 부정적인 논란에 휩싸이지 않겠느냐고.
이해한다.
그래서 제발 사고만 치지 않기를 바랐는데, 이게 웬걸?
대형 사고를 쳐버렸다.
그것도 긍정적인 사고를 말이다.
‘참 대단한 녀석이기는 해. 수호문의 독자라는 애가, 마법 학술 대회에서 우승하다니. 보통 유전자는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나저나 민혁이를 어떻게 계속 학과에 붙잡고 있지? 우승자를 배출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기는 하지만, 이왕이면 민혁이가 오랫동안 학과에 남았으면 하는데·········.’
우승 직후.
여러 기업과 단체들에서 연락이 왔다.
마법 물품을 스폰해주겠다는 기업부터 시작해서, 강민혁과 다리를 놔달라는 마법 단체까지.
특히 한국 마법 연합의 경우에는, 앞으로 마법 학과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테니 강민혁을 연결시켜달라고 말했다.
전자는 수락했다.
스폰은 받겠다고 했으나, 후자는 단칼에 거절했다.
황금알 낳는 거위를 남에게 넘길 만큼, 최병호는 계산이 느린 사람이 아니다.
문제는.
“세계 마법 연합에서도 민혁이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거지.”
예상했던 상황이기는 하다.
우승이 아니라 일반상 하나를 수상했더라도, 강민혁은 여러 단체들의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강민혁의 우승으로 기분은 좋으나, 강민혁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동시에 들었다.
“민혁이를 어떻게 붙잡지?”
사실 답이 나오진 않았다.
강민혁은 부와 명예를 얻었다.
학과에서 제시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장학금과 교수직 정도인데, 사실 그건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강민혁으로 인해 얻은 명성으로 웃다가도, 곧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우울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정도껏 활약했으면 모르겠는데, 너무 과한 결과를 내는 바람에 강민혁이 마법 학과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커지고 말았다.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그때.
강민혁이 만남을 청했다.
“오, 우리 민혁이 왔어?”
“안녕하세요.”
강민혁의 방문.
최병호는 일부러 보여주려는 듯이 호들갑을 떨며 자리로 안내하더니, 상석이 아니라 맞은편에 앉았다.
강민혁을 바라보는 흐뭇한 눈빛.
최병호가 따뜻한 음성으로 말했다.
“마실 거라도 내줄까? 출출하면 밥 먹으러 나가도 되고.”
“곧 수업 있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 학과장이야. 내가 교수에게 잘 말할 테니까, 그런 문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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