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a 1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 @ 산천(山川)
1화. 프롤로그
너무나도 지루한 시간이었다.
마법 학과 교수 이학범이 떠들어대는 말들은, 1학년에 불과한 강민혁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다.
‘대체 뭐라는 거야.’
인간 수면제.
이학범의 별명이다.
상대가 1학년이면 1학년 다운 수업을 하면 되는데, 그는 항상 과했다.
“너희들은 더블 캐스팅(double casting)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보통 사람들은 인간이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하는 것은 특별한 천재들에게만 허락된 능력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일반인들도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마법의 캐스팅은 정해진 패턴이 있잖아? 만약 이것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낸다면··················.”
‘하암.’
하품을 크게 내뱉었다.
졸렸다.
귀를 간질이는 이학범 교수의 설명에, 강민혁은 결국 졸음에 굴복하고 말았다.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는 강민혁.
아마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 지루한 수업은 모두 끝나 있으리라.
강민혁은 그렇게 확신했다.
* * *
빡!
“일어나!”
아팠다.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는 통증에, 강민혁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런 씨·········.”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수업 도중에 잠을 청한 것에 화가 나서, 이학범 교수가 직접 체벌을 가한 걸까.
아니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강민혁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내는, 기억에 전혀 없는 너무나도 낯선 얼굴이었다.
“클리스만(Klinsmann). 내 수업이 만만해?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 따위는 보여주지 않았겠지. 내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징벌위원회를 소집하고 싶지만, 이번 한 번은 봐주도록 하지. 그러니 당장 일어나서 교과서에 나온 이론을 설명해봐.”
“예, 예?!”
“얼른!”
벌떡!
정신이 없었다.
상대가 누군지, 그리고 자신을 왜 클리스만이라고 부르는지는 감히 확인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상대방의 얼굴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았기에, 강민혁은 황급히 교과서로 시선을 옮겼다.
‘·········더블 캐스팅?’
더블 캐스팅.
이학범 교수가 지루하게 설명하던 그 이론이, 영어로 표시된 교과서에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목소리가 턱 막혔다.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교수라고 불리던 사람들도 아직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강민혁이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자,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체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1학년에 불과한 자신에게 더블 캐스팅을 설명해보라고 할 리가 없다.
예상이 빗나가지 않은 모양인지, 체벌을 작정한 것으로 보이는 사내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내 수업에 잠을 잔 것으로도 모자라, 뭐? 원숭이도 알만한 초등 과정의 이론을 모르겠다고? 오냐. 웬만해서는 그냥 넘어가 주려고 했지만, 네가 작정하고 내게 항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구나.”
잠깐.
‘뭐라고?’
더블 캐스팅이 무엇인가.
마법의 정수라고 불리는, 고난이도의 스킬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초등 과정의 이론이라니!
아무래도 이건 개꿈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강한 충격이 다시 한번 뒤통수를 때렸다.
빠악-!
“교무실로 따라와!”
그제야 알았다.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2화. 1. 1교시
교수1.
일단 그렇게 칭하기로 한 사내의 뒤를 따라 도착한 교무실은, 강민혁을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라?’
교무실.
보통은 책 냄새를 풀풀 풍기는 딱딱한 공간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건 마치 해리X터의 한 장면이라도 연출해놓은 것처럼 ‘마법사들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한편에 정리된 마법 도구들과 로브를 질질 끌고 다니는 교수들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 드르륵.
교수1의 손짓 한 방에, 멀리 떨어져 있던 의자가 단번에 딸려 왔다.
‘히익.’
당황스러웠다.
물체를 움직이는 마법?
그건 분명히 염동력(念動力)을 말하는 것일 텐데, 강민혁의 세상에는 저런 고난이도의 마법을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막말로 강민혁이 알고 있는 마법이란 한 번의 마법에 엄청난 마나와 체력을 소모하는 것인데, 몇 걸음 걷기 귀찮다고 염동력을 사용할 미친놈은 없다.
그런데.
“클리스만.”
교수1의 반응은 덤덤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의자에 앉은 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며 강민혁을 올려다보았다.
“난 아직도 네가 어떤 방법으로 ‘왕실 마법 아카데미’에 입학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더블 캐스팅과 같은 기본적인 이론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얼빠진 녀석이라면, 나는 어떻게든 너를 이 아카데미에서 내보낼 수밖에 없다는 거야. 그건 네 출신에서 비롯된 부당한 대우가 아니라, 네가 이 아카데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합리적인 결론에 의한 선택이야.”
논리정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강민혁은, 교수1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더블 캐스팅이 기본적인 이론이라고?’
‘왕실 아카데미는 또 뭐야?’
‘나를 왜 계속 클리스만이라고 부르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교수1은 경고성의 발언을 계속 내뱉었고, 강민혁은 한참 시달리고 나서야 교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분명히 이학범 교수의 수업을 듣고 있던 자신이, 대체 어디에 떨어졌던 말인가.
지금 필요한 건 정보다.
강민혁은 서둘러, 자신이 처음 깨어났던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 * *
이름 클리스만.
나이 14세.
나이도 교수1의 말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지, 사실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의 잔재는 전혀 없었다.
결국 강민혁은 동급생으로 추정되는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물어야 했고, 그들은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이면서도 몇 가지 정보를 던져주었다.
“여기가 어디냐고? 너 정신 나갔냐? 영국에 위치한 가장 권위 있는 교육기관인 왕실 마법 아카데미잖아.”
“한국? 설마 몬스터 랜드(Monster Land)를 말하는 건가? 한국은 아주 오래전에 멸망한 국가야. 네가 왜 한국에 대해서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을 비롯해서 러시아로 이어지는 땅덩어리는 모두 몬스터들의 땅으로 변했어. 그러니 잠꼬대는 그만하고 수업 준비나 하시지? 또 혼날라.”
“강화 문명? 무슨 헛소리야. 이 세상에 ‘기사’는 없어. 가끔 마검사라면서 설치고 다니는 녀석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기간트(Gigant)와 강력한 마법이 있는데 굳이 직접 싸울 필요가 없잖아.”
충격의 연속이었다.
동급생들의 입을 통해서, 강민혁은 이 세상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은 지구가 분명해. 국가의 명칭과 언어가 그를 증명하지만, 이곳은 내가 살던 세계와는 전혀 달라.’
평행우주(平行宇宙).
어쩌면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구와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문명을 갖추고 있는 이 세계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내가 살던 지구는 몬스터들의 침공으로 강화 문명이 발달되었어. 몬스터들에게서 추출한 마정석으로 인간의 육체를 강화하고, 몬스터들과 직접 싸우면서 자신의 영토를 지켰지. 그런데 여기는 강화 문명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어. 아니, 애초에 문명의 체계가 달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평행우주의 한 세계인 이곳은, 강민혁이 살던 곳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문명이 꽃을 피웠다.
궁금한 것은 많았다.
그런데, 일단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교수님이 염동력을 사용하시던데. 혹시 영국을 대표하는 대마법사, 뭐 그런 건가?”
조심스러운 질문.
그러나 되돌아오는 대답은 황당했다.
동급생은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리더니, 귀찮은 벌레를 쫓아내듯이 말을 툭 내뱉었다.
“대체 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염동 마법은 대중화된 마법이잖아. 그게 뭐 특별한 마법이라고 대마법사라고 표현해? 대마법사는 신성한 칭호야. 적어도 8서클 이상의 경지에 올라야, 대마법사라는 칭호가 허락된다고. 그런데 어떻게 5서클 마법사인 앨버트(Albert) 교수를 대마법사라고 부를 수 있어?”
쿵!
머리를 강하게 맞은 것만 같았다.
엄동력이 대중화 된 마법이고, 5서클 마법사인 앨버트는 마치 ‘하위 클래스’를 칭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건, 강민혁의 세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 5서클 마법사면 충분히 대마법사라고 부를 수 있는 엄청난 경지인데.’
확실했다.
강민혁은 강화 문명에서 살았다.
하지만 평행우주의 한 세계인 이곳은.
‘마법 문명이 꽃을 피운 세계구나.’
마법 문명.
전혀 생소한 단어가, 강민혁의 가슴에 콱 박혔다.
* * *
자리에 앉은 강민혁은, 앨버트의 수업에 사용하던 책의 표지를 내려다보았다.
[초등 마법]
앨버트는 5서클 마법사.
마법사로서는 실패한 사람이며, 그는 아카데미에서 마법사들의 기본기를 다지는 역할을 맡는다고 했다.
고로.
‘이게 마법 문명에서는 엄청 낮은 난이도의 이론이라는 거지.’
사락.
책장을 넘겼다.
시작부터 임팩트 있게, 강민혁을 당황에 빠트린 ‘더블 캐스팅’에 대해 있었다.
[더블 캐스팅은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행위를 뜻한다. 처음 마법이 탄생한 시기만 하더라도 더블 캐스팅은 미지의 세계였으나, ‘오토 캐스팅’이 발명된 이후로는 캐스팅은 사실상 인간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멀티 캐스팅(Multi casting)으로 한 번에 얼마나 많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느냐가, 마법사의 정신력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었다.]
‘·········오토 캐스팅이라고?’
오토 캐스팅.
멀티 캐스팅.
모두 낯선 단어다.
강민혁은 책장을 넘겨 보다 자세한 내용을 살폈다.
[오토 캐스팅은 마법의 체계를 마나에 기록해두는 형태다. 메모라이즈(Memorize) 마법의 변형된 형태이며, 마나를 일정한 형태로 분배해서 반복적으로 같은 마법을 사용하면, 해당 형태의 마나를 사용할 경우 자동으로 마법이 발휘된다. 이는 마나의 ‘기억력’을 이용한, 이 세계가 괴물들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해준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다.]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으나, 교과서의 내용만으로 강민혁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했다.
‘이학범 교수는 더블 캐스팅이 천재적인 두뇌를 타고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영역이라고 했어. 동시에 같은 마법의 수식을 계산하면, 더블 캐스팅이 실제로 가능했으니까. 그런데 만약 마법의 형태를 기억하는 오토 시스템의 이론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엄청난 혁명이야.’
몸이 덜덜 떨렸다.
야만인이 신세계를 접했을 때의 기분이 이러할까.
눈을 팽팽 돌게 만드는 엄청난 지식에, 강민혁은 두툼하게 남아있는 페이지를 넘길 엄두가 나질 않았다.
저 뒤에는 어떤 지식이 있을까.
더블 캐스팅이 초등 과정의 이론이라면, 분명히 남은 페이지에도 엄청난 지식이 숨겨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핑-
‘·········?!’
현기증이 일었다.
갑자기 빙글빙글 도는 세상에, 강민혁은 그대로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쿵!
그리고.
“강민혁. 수업 도중에 자는 것까지는 용서하겠지만, 그래도 코를 고는 것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
이학범 교수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강민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3화. 1. 1교시(2)
살짝 휑한 정수리에 도수 높은 동그란 안경.
한눈에 보아도 깐깐해 보이는 인상의 이학범이, 살짝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강민혁.”
“예.”
“네가 마법 학과에 입학한지 얼마나 됐지?”
“·········일주일 됐습니다.”
“그럼 다시 묻겠다.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마법을 전공한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너는 17살에 이르는 지금까지 마법에 대해서 공부한 경력이 있나? 헌터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것을 제외한, 단 하루라도 말이야.”
말문이 막혔다.
17살.
몬스터의 침공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강민혁의 나이면 이미 조기 교육을 끝내고 헌터 아카데미에 정식으로 입소한다. 지금의 상황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는 동급생들의 경우에는,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이미 마법의 기초를 다진 부류들. 그에 반해 강민혁의 사정은 달랐다.
꽉.
주먹을 움켜쥐었다.
오돌토돌하게 박힌 손바닥의 굳은살이, 강민혁의 신경을 간질였다.
“없습니다.”
“그래, 없지. 네가 마법에 입문해서 한 것이라고는 서클을 형성하고, 겨우 몇 가지의 원소 마법을 배운 게 전부야. 그런데 대체 무슨 배짱이지? 진로를 마법으로 택했다면, 벌써 2서클 마법을 터득하고 있는 동급생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더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옳은 말이다.
강민혁의 시작은 늦었다.
그렇다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이학범의 말이 맞지만, 강민혁은 사실 마법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어차피 마법은·········.’
“설마 검술 명가인 수호문(守護門)의 장남이라서 이따위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 나도 네 심정은 이해하겠어. 수호문에서 보고 자란 것이 있으니, 비주류 학문인 마법은 성에 차지 않겠지. 하지만 그런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마법 학과를 택했다면 당장 자퇴하는 게 좋을 거야. 마법이라는 학문이 비록 효율이 떨어진다고는 하나, 그런 안일한 마음가짐으로는 배울 수 없어.”
이학범.
마법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현실에서 마법은 비주류 학문이다.
위력도 약하고, 딜레이도 오래 걸리며, 마나 소모가 커서 지속성도 매우 떨어진다.
그래서 등급이 낮은 몬스터를 토벌하는 경우가 아니면, 마법사는 서포터의 역할 정도만을 맡는다.
그래서 이학범은 강민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호문의 독자(獨子).
사실상 무력이 권력으로 직결되는 이 세상에서, 강민혁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금수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이 떨어져서 낙오되고 말았고, 그 도피처로 마법 학과의 입학을 택했다.
‘마법이 도피처라니.’
이학범의 신경을 건드린 부분이었다.
만약 다른 학생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사건이었지만, 상대가 강민혁이라 유독 까다롭게 굴었다.
“죄송합니다.”
곧바로 사죄했다.
수업이 지루했고, 옆에서 자고 있는 다른 동급생들은 건드리지 않았다고는 하나, 강민혁은 본인이 잘못한 상황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을 만큼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스타일은 아니다. 이학범의 말처럼 명백히 본인이 잘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강민혁은 괜히 토를 달아 분노를 돋구지 않았다.
하지만.
“죄송하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지. 만약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한다면, 그래도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었음을 인정해서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너에게 벌점 3점을 부여하겠다. 잘 알고 있지? 벌점 10점은, 곧 마법 학과에서의 퇴학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학범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반박할 여지도 없이 쏘아붙이는 이학범의 모습에, 강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처벌을 받아들였다.
이윽고.
“내가 수업 도중에 말했던 더블 캐스팅. 그것에 대해 설명해봐.”
공교롭게도, 이학범은 강민혁에게 너무 쉬운 문제를 제시했다.
* * *
불과 몇 시간 전.
아니,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을 것을 보면 몇 분 전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상한 세상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강민혁은 이학범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블 캐스팅이라면·········.’
초등 교과서.
그것을 통해 더블 캐스팅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읽었다.
그래서 당장에라도 대답할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그 정보의 진위성이었다.
‘어차피 나는 더블 캐스팅에 대해 아예 몰라. 일단 말하고, 틀린 정보라면 처벌을 받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학범의 시선에, 강민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더블 캐스팅은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보통 일반 마법사들은 두 개의 작업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가끔 두뇌 능력이 빠른 마법사들의 경우에는 더블 캐스팅을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밝혀진 정보에 따르면 후천(後天)이 아닌, 전적으로 선천(先天)의 능력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교과서적인 대답.
여기까지는 주워들은 지식과, 초등 교과서의 내용을 적절하게 혼합한 것이다.
이학범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지만, 강민혁은 보다 확실하게 정보의 진위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교수님은 후천적으로 ‘더블 캐스팅’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말했습니다. 마법이라는 것은 결국 정형화된 체계를 형성함에 따라, 마나를 마법으로 바꾸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이론에 저 또한 동의하는 바입니다. 마법사들이 더블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동시에 두 개의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고난이도의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간략하게 생략하는 ‘또 다른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더블 캐스팅은 선천의 영역으로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명이 끝났다.
그런데 이학범의 표정이 이상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더블 캐스팅.
선천적인 재능에게만 허락된 능력을 후천적인 노력으로 가능케 만드는 것이, 이학범의 숙원(宿願)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건 허황에 찬 꿈이라고.
그런데 강민혁이, 그것도 마법이라고는 쥐뿔도 모를 것 같은 그가 해박한 지식으로 자신의 이론을 지지해주자 이학범으로서는 감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강민혁은 마법을 우습게 보는 재수 없는 녀석이었다면, 지금의 대답으로 그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예.”
“통과.”
이학범이 웃었다.
하나의 학문을 연구하는 학사로서, 같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호감을 가지기엔 충분했다.
“네 설명은 매우 훌륭했다. 더블 캐스팅에 대해 사전에 조사하지 않았다면 방금과 같은 대답은 할 수 없었겠지. 내가 널 잘못 본 모양이로군. 넌, 적어도 내게 마법을 배울 자격이 있어.”
그렇게 해프닝은 끝났다.
이학범은 언제 소란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수업을 진행했지만, 강민혁은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초등 교과서의 지식이 통했어.’
쿵쿵 뛰는 심장.
강민혁의 심장은, 수업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진정되지 않았다.
* * *
수업이 끝난 직후.
강민혁은 더블 캐스팅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더블 캐스팅은 소수의 마법사들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능력이다. 상위 1%만이 더블 캐스팅을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흔히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5서클 마법사들은 모두 더블 캐스팅 능력자에 해당한다. 더블 캐스팅의 능력 여부에 따라 마법사의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더블 캐스팅으로 인해 마법의 위력을 대폭 상승시키는 융합(融合)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마법사의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불리는 딜레이 또한 어느 정도 보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간략하게 정리한 정보였다.
더블 캐스팅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결코 ‘초등 과정’으로 평가받을 이론이 아님을 알았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강민혁은 마법의 문외한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만 보더라도, 더블 캐스팅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클리스만이라는 사람의 세상에서 더블 캐스팅은 정말 길바닥에 뒹구는 돌멩이처럼 하찮은 취급을 받았고, 초등 교과서에서 나온 내용 또한 너무나도 손쉬운 방법으로 구현할 수 있음을 말해주었다.
과연 가능할까.
더블 캐스팅에 대한 생각에, 강민혁은 수업이 모두 끝날 때까지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평소에도 집중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독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애꿎은 책상만 계속 두드렸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확인해보자.’
이세계의 지식.
이학범 교수를 상대로 설명이 통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실제하는 지식이라는 확신은 없다.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결국 자식이 직접 지식이 가르치는 대로 해서 결과를 얻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궁금했다.
무료하기만 했던 일상에, 이세계의 지식은 파문을 일으켰다.
‘교과서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자.’
강민혁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마법으로의 전향을 택한 이후 무료하게 살아가던 강민혁이, 방과 후에는 항상 훈련에 몰두했다.
교과서에 나온 지식.
그것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정석적인 훈련 방법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뒤.
화르르륵!
물컹!
허공에 형성된 불꽃과 물방울.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강민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진짜 되네?”
클리스만의 세상.
그곳의 지식은 정말 ‘살아있는 지식’이었다.
4화. 1. 1교시(3)
한쪽에는 파이어.
또 다른 한쪽에는 아쿠아.
1서클 마법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기본적인 원소 마법이지만, 두 마법은 분명히 동시에 발현되었다.
“후욱, 후욱.”
강민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으나, 실제로 발현되니 심장이 뛰었다.
‘이건 혁명이야.’
더블 캐스팅.
재앙의 날로부터 무려 수십여 년이 지난 지금, 더블 캐스팅은 천재들에게만 허락되는 고등 스킬이다. 그런데 강민혁은 매우 손쉽게 더블 캐스팅의 영역에 들어섰다. 훈련 과정은 단순하게 파이어와 아쿠아의 체계를 반복하는 행위였는데, 여기에 이세계만의 팁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나의 자율성을 허락하는 것.’
강민혁이 사는 세상에서는, 캐스팅 당시 철저하게 마나를 통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서클을 인위적으로 생성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면 마나가 제멋대로 날뛸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반쯤은 옳은 말이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마나를 통제하지 못하면 마나 폭주로 이어지지만, 사실 그건 잘만 활용한다면 ‘오토 캐스팅’의 이론으로 직결된다. 체내에 축적된 마나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반복되는 마나의 흐름을 기억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성향이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을 폭주로 받아들이지 말고 적절한 자율성을 허락하면 자연스럽게 계산 없이 마법의 체계를 완성한다.
참 간단한 방법이다.
하지만 겨우 원소를 생성하는 마법을 기억시키는 것만으로도 1주일의 시간이 걸리는 것을 생각한다면, 클리스만의 문명에서는 이러한 이론을 ‘확인된 사실’로 만들기까지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왜 내게 이런 특권이 생겼지?’
세상에는 마법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소수이기는 하나, 이학범과 같은 사람들은 평생의 삶을 마법에 바쳤다.
그런데 마법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자신에게, 왜 이러한 신문명의 기술이 전달되었단 말인가.
끼익.
의자에 몸을 기댔다.
천장을 바라보며,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했다.
‘클리스만의 세상은 고차원(高次元)의 마법 문명을 형성했어.’
현실과는 완전히 다르다.
강민혁이 사는 강화 문명에서는, 마법이라는 학문은 절대 주류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마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캐스팅이라는 길고 지루한 과정이 필요한데, 이런 시간적인 소모에도 불구하고 파괴력이 그렇게 대단하지가 않다. 그래도 자잘한 몬스터들을 학살할 때는 육체적인 전투보다는 좋다는 평가를 받지만, 마법은 분명히 절대 넘어서지 못하는 선 같은 것이 있다.
예를 들자면.
‘A급의 몬스터. 그들의 단단한 외피는 마법이 통하지 않지.’
엄청난 재앙(災殃)으로 분류되는 A급 이상의 몬스터가, 마법의 가치를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그러나 클리스만의 세상은 다르다.
그들은 마법만 있다면, 다른 육체적인 기술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 나는 그들의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아.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그들의 마법은 매우 강력하다는 거야. 이 세상에는 마법은 일정 이상의 경지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편견이 있지만, 그들은 미지(未知)의 6서클 이상의 영역을 개척했어.’
6서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마법.
학자들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지만, 그간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5서클 마법 몇 가지뿐.
만약 더 많은 이세계의 지식을 현실로 가져올 수 있다면, 그것은 마법의 대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이번 경험이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심장이 계속 뛰었다.
강민혁이 마법에 흥미가 없었던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한계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상황이 다르다.
‘내게도 내 가치를 증명할 새로운 길이 열릴지도 몰라.’
가능성.
그 단어가, 계속해서 강민혁의 심장을 두드렸다.
* * *
강민혁의 일상이 바뀌었다.
마법 학과에 입학할 때만 할지라도 학업에 의욕을 보이지 않던 그가, 충실하게 수업에 임했다.
확실히 배움의 의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달랐다.
강민혁은 차근차근 기본적인 마법 지식을 쌓아갔지만, 클리스만의 세상을 경험했던 날로부터 무려 보름이 지났음에도 일상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어쩌면 단발성의 경험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을 무렵, 학업을 마치고 귀가한 강민혁을 크나큰 현판이 맞이했다.
[수호문]
대한민국 서울에 위치한 검문(劍門).
수천 평이 넘어가는 거대한 땅덩어리에 자리 잡은 그 건물로 들어서자, 일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하나!”
훅!
“둘!”
훅!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가장 앞에서 소리치고 있는 한 사내의 지시에 따라 검을 휘둘렀다. 저들은 모두 수호문의 제자들이다. 수호문의 강력함에 반해, 먼저 검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사람들. 강민혁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풍경에, 강민혁은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런데.
“혁아.”
이동하는 길에 한 사내를 맞닥트렸다.
거대한 체격에 일급(一級) 제자를 뜻하는 문양(방패를 가로지르는 한 자루의 칼)을 가슴에 새긴 그가, 강민혁을 바라보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마법 학과는 다닐만 해?”
“그럭저럭.”
“요새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열심히 학업에 임한다며? 그런데 그게 의미가 있긴 하겠어? 어차피 마법은 백날 훈련해서 절정의 경지에 올라봤자, A급 몬스터를 상대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사내의 이름은 정판수.
의도는 뻔했다.
일부러 속을 박박 긁어대는 발언에, 강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명색이 수호문의 장남인데, 비전투 자원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거잖아.”
“·········뭐, 맞는 말이기는 하네. 그래도 네가 마법을 익히는 모습이 영 낯설어서. 지금이라도 다시 검술에 정진하는 것이 어때? 나름 열심히 노력하면, 마법보다는 밥값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비아냥은 계속되었다.
더 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판단에, 강민혁은 말을 짧게 끊고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런 강민혁의 뒤통수로, 뒷담화라 표현하기에도 애매한 선명한 음성들이 박혔다.
“쟤도 어쩌다 저런 신세가 됐냐.”
“웃기지 않냐? 수호문의 장남이라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던 녀석이, 17살이라는 나이에 뒤늦게 마법을 익히는 모습이. 참 불쌍하기도 해. 수호문의 유일한 후계자가 검술에 재능이 없다니.”
“좀 안쓰럽기까지 하네. 아무리 그래도, 검을 버리고 마법에 매달리는 건 좀 아니지 않냐?”
현실을 직시시키는 말들.
강민혁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지만,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담담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발끈하는 것은, 오히려 추하기만 할 테니까.
* * *
수호문.
강민혁의 집은 검술의 명가다.
그렇기에 당연히 어렸을 때부터 검술을 익혔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강민혁은 수호문의 후계자라는 명예로운 자리를 포기했다. 후계자의 신분으로 있을 때만 하더라도 정판수는 강민혁을 조심스럽게 대했지만, 마법 학과에 입학한 직후부터는 방금처럼 비아냥거리는 일이 많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강민혁은 하늘이 버린 재능이다.”
“수호문의 독자로 태어나는 축복을 누렸지만, 검술에 재능이 없어 그의 삶은 비극이 되어버렸다.”
“수호문의 문주가, 강민혁이 아닌 가신(家臣)의 아들을 후계자로 택했다.”
수호문과 관련된 말들.
자신을 더욱 초리하게 만드는 말들을 떠올린 강민혁은, 의자에 앉아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씨발.”
미운 오리 새끼가 이러할까.
검술을 버린 강민혁은 수호문에서 낙오자 취급을 받았고, 마법 아카데미에서는 주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수호문의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학범만 해도 그렇다. 더블 캐스팅을 설명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분명히 강민혁을 싫어했다.
화가 났다.
강민혁도 당연히 이러한 현실이 싫었다.
‘내게 아버지를 충족시킬 만한 재능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의미 없는 후회다.
자신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분명히 자신에게 실망했다.
후계자의 재능이라고는 매우 떨어지는, 볼품없는 자신의 재능에 말이다.
“비참하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오랜만에 올라오는 울렁이는 기분에, 잠시 속을 진정시키던 강민혁은 클리스만의 세상을 떠올렸다.
‘그들의 마법은 특별해.’
클리스만의 동급생이 했었던 말이 있다.
“8서클 이상의 마법이 어떤 경지냐고? 마법 아카데미에 입학한 녀석이 왜 그딴 거를 물어봐? 그냥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8서클 이상의 마법은 자연재해라고 할 수 있어. 하늘에서 벼락 다발이 내리치고, 땅을 뒤집으며,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수천 명의 사람을 학살할 수 있지.”
강민혁이 아는 마법과는 다르다.
만약 마법이 저런 위력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히 이 세상에서도 마법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마법을 배우고 싶어.’
검술로는 길이 없다.
강민혁은 자의로 검을 놓았지만, 사실상 그건 타의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마법에 모든 것을 걸기엔, 강민혁에게는 확신이 필요했다.
‘클리스만의 세상. 그곳의 지식이 내게 필요해.’
간절했다.
정판수 때문인지, 오늘따라 마음이 들끓었다.
그런데 그러한 바람을 하늘이 들어주기라도 한 걸까.
그날 저녁.
‘아.’
강민혁은 눈을 떴다.
강민혁이 아니라, 바로 클리스만의 몸으로.
5화. 2. 클리스만의 일기
처음 눈에 보인 광경은 굉장히 허름한 실내 인테리어였다.
한 명만 간신히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싱글 사이즈 침대와 책상 하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휑한 공간에, 강민혁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낯설었다.
처음도 그랬지만, 머릿속은 새하얀 백지처럼 현재 상황에 대한 조금의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분명히 수업 도중에 쓰러졌는데.’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앨버트 교수에게 끌려가서 한바탕 혼난 뒤에, 강민혁은 초등 교과서를 확인하다가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은 여관방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일어났으니, 클리스만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현실 세계로 돌아가 있는 동안 건강하게 살아서 움직였다는 가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일시적인 빙의(憑依)였을까.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는 의문에, 강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찬찬히 방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일기인가?’
책상 위.
그곳에 일기로 추정되는 노트가 덩그러니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일기를 확인해야만 했고, 강민혁은 책상에 앉아 일기장을 펼쳤다.
사락.
[2030년 12월 25일, 내가 살던 괴를리츠(Gorlitzer)에 의문의 현상이 발생했다. 몬스터 랜드에서 서식하던 몬스터들이 ‘게이트’라고 명명한 공간을 통해서 나타났고, 전혀 대비하지 못한 재앙은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내 가족. 나의 아버지는 나를 지키려다가 몬스터의 날카로운 발톱에 갈기갈기 찢겨나갔으며, 어머니는 동생과 같이 몬스터의 거대한 발에 흐물흐물하게 익어버린 복숭아처럼 터져버렸다. 나는 그때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크리스마스라는 축제에 사람들이 기쁨을 나누는 동안, 내 인생은 25일을 기점으로 모두 파괴되었다. 그래서 일기를 쓴다. 그때의 기억을, 그때의 아픔을 평생 두고두고 기억하기 위해서.]
“·········이 세상도 똑같구나.”
몬스터에 의한 재앙.
강민혁도 겪었던 일이다.
클리스만도 그러한 일을 똑같이 겪었다는 사실에, 강민혁은 먹먹한 기분을 억누르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2031년 8월 2일, 재앙을 겪은 이후로 나는 완전히 폐인이 되었다. 도저히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몬스터들이 건재하게 살아있는데, 나 혼자 몰락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이왕 이렇게 나락으로 빠질 인생이라면, 가족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몬스터를 한 마리라도 죽이고 죽는 게 옳은 일이지 않을까?]
익숙했다.
강민혁이 살아가는 세상에도 클리스만과 같은 사람들이 많다.
몬스터들에게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오로지 복수만이 남은 괴물로서 사지(死地)에 몸을 맡겼다.
[2031년 12월 25일. 그때로부터 정확히 1주년.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마법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만, 저주받은 내 몸뚱이는 마법을 구현해낼 만한 힘이 없다. 이대로는 가족의 복수를 하지 못한다. 방법이 필요하다, 방법이.]
그리고 다음 페이지.
클리스만의 일대기를 확인하던 강민혁이, 순간 경직되었다.
[2033년 3월 10일, 지금 일기를 읽고 있는 너에게 제안한다. 내 육신을 대가로 한, 아주 특별한 거래를.]
‘·········?!’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클리스만의 일기.
이것은 본인의 행적을 기록한 일임과 동시에, 바로 자신에게 보내는 클리스만의 메시지였다.
* * *
심장이 뛰었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빙의(憑依)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는 기이한 현상이나, 빙의의 대상이 자신을 정확하게 지목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거야?’
평행세계로의 빙의.
난생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강민혁은 이것이 누군가 의도한 상황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클리스만은 거래를 제안했다.
일단,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의 제안을 확인해야만 했다.
[내 몸을 차지한 너는 분명히 내가 바라는 조건에 가장 최적화된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목숨을 담보로 한 링크(link)가 연결되지 않았을 테니까. 너도 알겠지만 이곳은 네가 사는 세상의 평행세계다. 세상이 창조되는 그 시작점은 같았으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문명이 형성되었겠지. 두 세상은 모두 평화로웠다. 차원의 균열이라는 대재앙(大災殃)이 닥칠 때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몬스터의 출몰.
그건 정말 재앙이었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느닷없이 세상의 상식을 무너트리는 그들이 나타나 모든 체계를 바꾸었다.
강화 문명은 그렇게 형성되었다.
몬스터의 위협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구의 문명은 어떻게든 몬스터에 대항할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몬스터의 등장 이유는 몰랐다.
그리고 그 이유가, 클리스만의 설명에 포함되어 있었다.
[차원의 균열은 내가 사는 세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네가 살고 있는 차원으로 넘어가서 우리가 겪었던 혼란을 일으키고 있지. 현재도 재앙은 더욱 몸을 부풀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언제고 인류는 몬스터들에게 완전히 함락되고 말겠지. 그래서 너의 힘이 필요하다. 몬스터들을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양쪽에서 동시에 몬스터들을 무너트려야 한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공의 적.
그들을 처리하는 것에는 동의하나, 클리스만과 자신은 사실 그런 대업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클리스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은 수호문의 낙오자로 취급받는 사람이지 않은가. 그를 도와줄 힘도, 그럴 자격도 없다. 이러한 의문을 클리스만은 예상했던 것일까?
[난 네가 필요하다.]
명확히 강민혁을 지목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네게 원하는 것은 그쪽 세상의 몬스터들을 말살(抹殺)하는 것. 그리고 딱 한 번, 재앙의 뿌리를 뽑을 때 너의 힘이 필요하다. 이곳은 평행세계이지만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 나는 너를 이 세상에 소환할 방법을 알고 있다.]
손이 떨렸다.
예상치도 못한 전개에, 강민혁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아마 너는 자신이 아직 그러한 자격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 세상의 지식을 경험해보았기에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겠지. 한 달에 한 번, 너의 영혼을 나의 몸에 빙의시켜서 새로운 지식을 단계별로 전수하겠다. 그것이 네게 제시하는 거래의 대가다. 만약 응할 생각이라면, 책상의 서랍을 열어라.]
“·········.”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클리스만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에, 강민혁은 한동안 가만히 일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의문은 많았다.
왜 자신인지.
대마법사가 무수히도 많은 세상에서, 자신에게 그들의 지식을 전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클리스만의 정체는 무엇인지.
하지만 길고 길었던 고민의 끝에, 강민혁은 결국 처음부터 정해졌을지도 모르는 선택을 내렸다.
드르륵.
서랍을 열었다.
지금 있는 방처럼 휑한 그 공간에, 딱 한 권의 책이 있었다.
그 겉표지에는.
[108가지의 1클래스 마법]
지난번에 확인하지 못했던, 초등 교과서의 다음 파트가 있었다.
* * *
강민혁이 눈을 떴다.
‘현실인가.’
창밖에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밤새 1서클 교과서를 붙잡고 있었던 강민혁은, 그쪽 세상에서 해가 뜰 즈음에 다시 잠에 들었다.
지식은 완벽하게 터득했다.
강민혁의 머리가 좋은 것도 있었지만, 교과서에는 친절하게 주석(註釋)이 포함되어 있었다.
‘클리스만은 천재야. 마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어.’
108가지의 마법.
클리스만은 그 마법들의 원리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겨우 1서클 마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클리스만의 설명을 통해서 그 마법들은 달라졌다.
이게 과연 내가 알던 마법이 맞는 것일까.
1서클은 정말 기본적이고 파괴력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는 마법으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마법 문명이 발달한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는 다른 방식으로의 사용이 가능했다. 강민혁의 세상이 강화 문명에 매달렸던 것처럼, 그들은 마법으로 몬스터들을 쓰러트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후우.”
숨을 크게 내뱉었다.
클리스만과의 거래.
너무도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지만, 후회스러운 감정은 들지 않았다.
‘몬스터들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이 세상은 사연이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클리스만과 마찬가지로 강민혁 또한 자신만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조했다.
클라스만의 아픔이, 강민혁의 마음을 이끌었다.
문제는.
‘나는 너무 늦은 나이에 마법을 시작했어. 저쪽 세상의 도움을 받는다고는 하나,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쪽 세상에서도 기반이 필요해.’
가문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
검을 버린 낙오자를 도울 리도 없을뿐더러, 그들은 마법 자체가 매우 질 떨어지는 학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강민혁에게는 마법이 동아줄이다.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일단 이 세상에서 마법의 진전을 도와줄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활용할 필요성이 있어.’
더블 캐스팅과 1서클 마법.
현실에서는 그게 대단한 지식처럼 보이겠지만, 앞으로 얻을 지식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지식을 계속 공급받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가치를 살릴 차례다.
다음 날.
이학범 교수를 찾아간 강민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더블 캐스팅 연구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이학범.
수면 유도제라고 불리며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없지만, 마법계에서는 엄청난 권위자.
그와의 관계가 바로, 훗날 마법의 신이라고 불리게 될 강민혁이 표면 위로 드러나는 최초의 시작점이었다.
6화. 2. 클리스만의 일기(2)
처음에 이학범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
지난 수업으로 강민혁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연구에 참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더블 캐스팅 연구에 참여하고 싶다고?”
“예.”
“왜지? 그때 훌륭한 답변이라고 해서, 갑자기 내 연구에 관심이라도 생겼나?”
이학범의 눈빛이 변했다.
콧대 높은 학자에게, 본인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행위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처음부터 관심이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면, 당시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을 겁니다.”
타당한 말.
이학범의 표정이 누그러지자, 강민혁이 말을 덧붙였다.
“사실 사람들의 소문과는 다르게 저는 예전부터 마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수호문에 소속되어 있는 입장이라 직접 마법을 터득할 수는 없었으나, 이론적으로는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더블 캐스팅’에 눈길이 가더군요. 이학범 교수님이 발표하신 논문에 따르면, 더블 캐스팅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론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법에 대한 낮은 관심도만큼이나 연구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적고, 그동안 이학범 교수님이 홀로 고군분투하면서 연구가 빠르게 진척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괜찮으시다면 저라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말에 살을 붙였다.
애초에 마법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나, 강민혁은 있는 그대로 말할 만큼 계산이 느린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은 나를 수호문의 낙오자라고 생각한다.’
낙오자.
검술에 재능이 없어, 마법 학과로 도망친 얼간이.
하지만 그 이전에 마법에 관심이 있었다는 스토리를 붙이면, 그러한 소문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배경 때문에 억지로 검술을 익혔던 수호문의 후계자. 이제는 낙오자가 아니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마법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동료로 보이겠지. 이학범 교수와 같은 학자 스타일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방법이 먹힌다.’
예상대로였다.
이학범이 관심을 보였다.
“말이라도 고맙군. 네 말대로 연구가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아직 2서클도 되지 못한 너의 도움을 만큼 절박하지는 않아. 그러니 딱 10분을 주지. 그 안에 설득하지 못한다면, 이번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
그는 고고했다.
비주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러나 강민혁은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학범을 만나러 가기 직전까지, 강민혁은 이상적인 결과를 위해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이건 거래입니다. 교수님과 저와의 거래.”
“거래?”
“예.”
“그게 무슨 뜻이지? 연구에 참여하겠다는 너의 요청이 거래라니?”
연구.
하나의 결실을 맺기 위하여 협력해서 달려나가는 행위는, 사실 강민혁에게 큰 의미가 없다.
왜냐고?
이미 정답을 알고 있지 않은가.
당장 지금이라도, 강민혁은 자신의 선례를 통해서 더블 캐스팅이 가능한 이론임을 밝힐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이학범과 거래하는 이유는 본인이 얻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연구에 참여하는 대가로 교수님에게 원하는 바가 있습니다. 일단 저의 연구 참여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연구 성과에 크게 기여를 한다면, 이 결과에 교수님뿐만 아니라 저의 업적도 있었음을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강민혁은 이학범을 믿지 않는다.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다.
당장 연구 성과를 뱉어낼 생각은 아니나, 날름 결과물을 낚아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재하진 않았다.
그리고.
“저는 뒤늦게 마법을 시작한 만큼 경지가 낮습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저를 직접적으로 가르치셔도 좋고, 마법과 관련된 서적들을 구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 당돌한 발언이었다.
학생이 연구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파격적일 정도로 본인에게 유리한 조건들을 말했다.
그렇다면 나오는 반응은 두 가지 중 하나다.
화를 내거나.
아니면.
“네가 그 정도 자신감을 보일 정도라면, 내가 너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어디 한번 보여줘 봐. 시간은 이제 8분 남았다.”
판이 깔렸다.
강민혁은 이학범이 보이는 의문에, 간략하게 정리한 자료를 건넸다.
“이 안에 제 가치가 있습니다.”
자료는 완벽한 결과가 아니다.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얻은 지식과 현실의 지식을 섞어서 애매하게 풀어낸 결과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학범의 반응은 정해졌다.
더블 캐스팅에 대한 높은 이해도는, 이학범이 생각하기에도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터.
“·········좋아. 네 거래를 받아들이도록 하지. 내일부터는 매일 방과 후에 내 연구실로 찾아오도록.”
퍼펙트.
강민혁이 조력자를 얻는 순간이었다.
* * *
밤새 마법 문명의 지식을 공부하면서, 강민혁은 매우 강한 확신이 생겼다.
‘이건 겨우 시작일 뿐이야.’
더블 캐스팅.
108가지 1서클 마법.
사실 더블 캐스팅만으로도 강민혁이 사는 세상에서 엄청난 파급력을 일으킬 수 있지만,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그것들은 매우 기초적인 지식에 불과하다. 검을 처음 휘두르는 사람이 단순히 베기 동작을 반복하는 것처럼, 앞에서 배운 두 가지 지식의 가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고로.
‘더블 캐스팅을 대가로 많은 것을 얻는다.’
클리스만은 말했다.
마법사로서 성장해서 이쪽 세상의 몬스터를 토벌하라고.
그렇다면 강민혁은 스스로 강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세력을 형성할 만큼의 힘과 명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연구를 택했다.
이학범과 같은 학자들이 있는 한, 언제고 더블 캐스팅의 이론은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아직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가치가 높을 때, 강민혁은 연구에 합류해서 자신의 값어치를 높일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학범에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은 확실하게 얻고, 나중에 더블 캐스팅의 이론을 세상에 공개한다면 수호문의 낙오자라 불리던 자신이 마법적인 기반을 갖추게 된다.
기간은 약 석 달 정도.
클리스만의 세상을 세 번 더 다녀오면, 그때는 미련 없이 더블 캐스팅의 이론을 공개할 생각이었다.
거래가 성사된 날.
강민혁은 곧바로 연구에 합류하였다.
처음에는 잡무의 처리를 도와주는 정도였으나, 중간중간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발언들을 내뱉었다.
“단순히 계산을 빠르게 하는 행위로는 힘들 것 같습니다. 더블 캐스팅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직접 캐스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캐스팅을 대체할 수단이 필요합니다.”
“음, 마법의 체계를 도구에 저장하는 행위는 아티팩트(artefact)와 별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저희는 쉬운 길을 가려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마법사가 아무런 도움도 없이 홀로 더블 캐스팅을 사용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툭툭 던지는 말들.
그럴 때마다, 이학범 교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조수 정도의 역할로 생각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동등한 위치로 생각하고 있었다.
“너의 역할을 인정하마.”
생각보다 이학범은 수긍이 빠른 사람이었다.
고지식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이학범은 곧바로 마법 학회에 강민혁을 공동 연구자로 등록하였다. 단순히 조수가 아니라, 이학범과 같은 지분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 동등한 입장이라고 말이다.
덕분에 강민혁이 얻는 것들이 있었다.
이학범의 가르침을 통해 마법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였고, 이학범의 지위를 이용해서 자신의 힘으로는 구하기 어려웠던 마법 서적들을 얻었다. 마법 문명의 지식이 있다고는 하나, 강민혁은 마법의 기초가 다져지지 않은 문외한에 불과하다. 클리스만에게서 얻은 지식을 보다 가치 있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마법에 대한 이해도와 마법의 경지가 지금보다 더욱 높아질 필요성이 있었다.
이학범과의 거래.
그것을 통해, 강민혁은 그렇게 착실하게 마법사로서 성장해나갔다.
* * *
연구에 합류한지 보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실전 마법의 교수인 백동석이 말했다.
“지난번에 예고했다시피 오늘을 실제 사냥을 진행할 예정이다. 마법은 결국 몬스터를 쓰러트리기 위한 수단이고, 그간의 노력이 방구석 지식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실전 능력을 길러야만 한다. 15분 뒤에 훈련장으로 이동할 생각이니, 지금부터 4명씩 한 조를 형성하도록.”
실전.
그 단어에, 아직 초보 마법사에 불과한 학생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어렸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조를 형성하였고, 되도록 뛰어난 동료를 얻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동수야, 우리 조에 들어와.”
“이 정도면 아무런 문제 없겠는데?”
“긴장된다, 진짜.”
조는 빠르게 형성되었다.
미리 주고 받은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인지, 학생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금세 4명의 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특이점이 있었다.
바로 강민혁.
그 누구도, 강민혁에게 먼저 말을 건네지 않았다.
‘실전 사냥은 인명 피해도 종종 발생하는 위험한 과제야. 그러니, 강민혁은 무조건 걸러야 해.’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다.
강민혁이 누구인가?
17살의 나이에 마법에 처음 입문한,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1서클 마법사다.
다른 학생들의 경우에는 이미 2서클 마법을 어느 정도 터득하고 있기 때문에, 조별 사냥에서 강민혁은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들 강민혁은 애초에 배제하고 조를 형성하였다. 괜히 강민혁을 조에 포함 시켰다가는, 1인분도 하지 못하는 강민혁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김창수도 대세와 다르지 않았다.
강민혁은 애초에 배제하고 조를 구성하던 그는, 한 명이 모자란 상황에 안절부절못했다.
“우리 조로 와라.”
“아니, 저번에 우리랑 하기로 했었잖아. 그런데 이렇게 다른 조로 가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해?”
“벌써 조가 있다고?”
1명.
딱 1명만 구하면 되는데, 미리 언질을 주고받았던 학생들이 다들 고개를 저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말을 거는 족족 조가 있다고 말하는 상황에, 결국 김창수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현실을 맞닥트렸다.
유일한 선택지.
강민혁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에, 김창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씨발, 좆됐다.’
모두가 기피하던 폭탄.
강민혁을 바라보며, 김창수는 도저히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7화. 2. 클리스만의 일기(3)
옛날에는 서울숲이라 불리던 땅.
A급 몬스터 샐러맨더(salamander)에 의해 숲이 모두 불타버린 뒤에, 사람들은 폐허가 된 땅에 헌터 아카데미를 건설하였다. 인근 부지도 포함해서 무려 수만 평이 넘어가는 땅에 인류의 희망이 시작되었고, 매년 교육 과정을 이수한 젊은 전사들이 몬스터들로부터 한국을 수호한다.
아카데미 마법 훈련장.
전체 부지에서 겨우 몇백 평 되지 않는 그곳에, 백동석을 포함한 마법 학과의 학생들이 도착했다.
마법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전사 학과의 경우에는 훈련장 부지만 해도 수천 평이 넘어가는데, 마법 학과는 그에 절반도 되지 않는 땅덩어리에서 모든 교육 과정을 이수한다. 실제로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학생 중 90% 이상이 전사 학과의 소속이다 보니, 이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초라한 현실이었다.
마법 학과 1반 학생은 약 50명 정도.
모두 모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백동석 교수는, 간략하게 지금부터 진행될 훈련에 대해 설명했다.
“오늘 너희들이 상대하게 될 몬스터는 바로 고블린(Goblin)이다. 몬스터 백과사전 내용에 의하면, 고블린은 겨우 100cm도 되지 않는 작은 몬스터로서 특별한 능력은 없다. 공격력과 방어력도 매우 약한 편이라, F등급으로 분류되는 최하위 몬스터지.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다.”
F급.
백동석의 말대로 정말 약한 몬스터다.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일반인들도 제압이 가능한 수준.
하지만 마법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근접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그렇게 만만히 볼 문제가 아니다.
“한 조에 4명씩, 너희들은 동시에 세 마리의 고블린을 상대한다. 처음에 50M의 간격을 떨어트려서 전투가 시작되며, 고블린 세 마리를 모두 전멸시켜야만 훈련이 종료된다. 너희들도 실전 훈련의 악명은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마법으로만 고블린을 쓰러트려야만 하는 이 훈련에서, 작년에 무려 2개 조나 출혈이 발생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웅성웅성.
학생들이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출혈.
어쩌면 다칠지도 모른다는 말에,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선이 백동석을 향했다.
이것은 엄연히 훈련이기 때문에, 그들은 백동석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설치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기억해라. 유소년 아카데미에서는 헌터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 과정을 가르친다면, 이곳 헌터 아카데미는 본격적으로 실재하는 적에 대항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헌터는 몬스터들의 위험으로부터 이 땅을 지켜내는 수호자다. 그러니 위험을 받아들여라. 헌터의 길을 걷는 이상, 몬스터와 목숨이 걸린 싸움은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관문이다.”
이곳은 놀이터가 아니다.
현실.
어린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뒹구는 학교가 아니라, 언제고 죽어 나갈 수 있는 전사 훈련소.
“지금부터 30분의 전술 회의 시간을 부여하겠다. 이 훈련에서 아무런 출혈 없이 살아남고 싶다면, 그간 너희들이 배웠던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아, 만약 포기할 학생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말해라. 제 역할도 못 하는 얼빠진 녀석이 있다면, 괜히 팀원들이 피해를 보게 될 테니까.”
실전 수업.
학생들로부터 악명(惡名) 높은 훈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강민혁의 조는 다섯 번째에 배치되었다.
전술 회의는 30분.
조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상황에, 조장인 김창수가 적극적으로 회의를 주도했다.
“작년에 출혈이 일어난 사건 기록을 확인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고블린의 재빠른 몸놀림 때문이더라고. 고블린은 강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빠른 발을 이용한 일격은 우리와 같은 마법사들에게 치명상을 입히기에 충분해. 고로 중요한 포인트는 적의 접근을 막아내는 거야.”
슥슥.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세 마리의 고블린과 네 명의 인간.
김창수가 조원들을 보았다.
“2서클 마법의 캐스팅은 3분 정도가 걸려. 그러니 일단 민호가 2서클 마법을 캐스팅하는 사이에, 나와 정민이가 1서클 마법으로 고블린을 일차적으로 타격할게. 이때 나와 정민이는 시간차로 1서클 마법을 사용해야 해. 그래야 효율적으로 고블린의 전진을 막아낼 수 있어.”
이민호와 김정민.
조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김창수는, 힐끗 강민혁을 보았다.
‘그나저나 이 녀석을 어떻게 하지?’
암담했다.
강민혁은 이제 막 마법에 입문했기 때문에, 그가 아는 마법은 거의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당히 골치가 아팠다.
강민혁은 기본도 모르는 녀석이다. 아마 1서클 마법 중에서 원소 생성이나 겨우 할 수 있는 수준일 테니, 강민혁의 역할을 바라고 계획을 구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만약 1서클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강민혁 같은 초짜는 1서클 마법의 캐스팅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국 쓸모없는 자원.
이래서 동급생들이 강민혁을 기피한 것이다.
남들과는 다르게 기본기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강민혁.”
“어.”
“1서클 공격 마법 사용할 수 있는 거 있어?”
“많지.”
김창수가 피식, 웃었다.
‘허세 부리긴.’
많아봤자 1서클이다.
현재 알려진 1서클 마법이라고는 10개 정도. 이제 겨우 1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주제에, 2서클 마법사인 자신 앞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많다고 말하는 것이 참 같잖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너는 알아서 고블린들을 견제해줘. 만약 전투 도중에 틈이 생기면, 그때 네가 나서는 걸로.”
“알겠어.”
김창수는 계획을 되새겼다.
자신은 어떤 마법을 사용해야 할까.
빠르면서도 최대한 강한 일격을 먹이기 위해서는, 1서클 중에서 파이어 볼트가 가장 적절해 보였다.
“내가 선공으로 파이어 볼트(Fire Bolt)를 사용하고, 정민이는 내 마법을 맞고도 근처로 접근해오는 고블린에게 한 방을 먹여 그리고 민호는 최대한 빨리 파이어 볼(Fire Ball)의 캐스팅을 마무리하고. 절대 무섭다고 덜덜 떨어서는 안 돼. 마법사는 평정심을 잃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렇게 할게.”
“나도 최대한 빨리 캐스팅을 끝낼게.”
김창수는 제법 괜찮은 리더였다.
조원들을 다독이면서, 그래도 고블린을 쓰러트릴 그럴싸한 계획을 완성하였다.
문제는.
“아악!”
“·········제길!”
“의료팀! 의료팀!”
그로부터 30분 뒤.
세 번째 조가 훈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결국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 * *
그건 사고였다.
고블린을 모두 처리했다고 방심하던 3조의 학생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고블린에게 공격을 당했다.
“아악! 으아악!”
학생이 땅바닥을 뒹굴었다.
다행히도 팔이 긁히는 수준에서 끝난 공격이었지만, 피가 철철 흐르는 상황에 3조 학생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너무나도 생소한 고통. 의료팀이 달라붙어서 황급히 진통 효과가 있는 포션을 부을 때까지, 3조 학생의 비명 소리는 훈련장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사고를 목격하자, 단순히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공포가 학생들을 덮쳤다.
“·········씨발.”
“우리도 저렇게 되는 거 아니야?”
“아, 불안한데.”
공포가 전염되었다.
실전 경험이 없는 그들로서는, 땅바닥을 뒹굴던 3조 학생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박혔다.
혹시 이로 인해 훈련이 종료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지만, 백동석은 오히려 화를 냈다.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이건 훈련이자, 실전이다. 언제 어떻게 공격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블린이 제대로 죽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다니. 멍청한 녀석. 사고가 벌어졌다고 해서 훈련은 끝나지 않는다. 너희들은 3조의 멍청함을 똑똑히 머리에 새겨넣고,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도록.”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이어서 4조의 훈련이 진행되는 상황에, 방금까지만 해도 리더십이 넘치던 김창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아.’
몸이 벌벌 떨렸다.
피가 허공에 흩뿌려지는 장면이, 김창수의 눈에 아른거렸다.
‘씨발, 진짜라니. 이건 진짜로 몬스터에게 죽을 수도 있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헌터가 어떤 직업인지는 알고 있었으나, 아직 그 사명감을 받아들이기에 김창수는 너무 어렸다.
이제 겨우 17살이다.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쌓은 지식들은 방구석 지식에 불과하고, 김창수는 헌터라고 불리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어린티가 보이는 소년이었다. 나름 5조를 잘 이끌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리더십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막상 현실을 확인하자 덜덜 떨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다.
코를 간질이는 피비린내가, 현기증을 일으키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화악.
“·········?!”
등에서 뜨거운 기운이 일어났다.
황급히 옆을 돌아보니, 강민혁이 김창수의 등에 손을 대고 있었다.
“천천히 숨을 골라.”
“뭐, 뭐라고?”
“공포에 잠식되지 말라고. 아까 너도 말했잖아. 마법사는 평정심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러니 숨을 고르면서 평정심을 되찾아. 4조가 끝나면, 곧바로 우리가 나설 차례잖아.”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김창수는 일단 강민혁이 하라는 대로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3조의 사고는 실수였어. 여유롭게 고블린들을 제압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블린이 죽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바람에 사고를 당한 거야. 그러니 그런 실수를 범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그리고 알다시피 고블린은 집단을 이룰수록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몬스터지, 겨우 3마리로는 우리에게 해를 입힐 수 없어.”
강민혁의 음성은 침착했다.
안정된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해주는 모습에, 김창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가 옅어짐을 느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강민혁 덕분에, 자신이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넌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 있는 거야? 방금 3조 애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너도 봤잖아.”
궁금했다.
말이 헌터지, 마법 학과의 학생들은 아직 어린애다.
그런데 전력 외라고 생각했던 강민혁이 보여주는 모습에, 김창수는 강민혁이라는 사람이 달리 보였다.
“글쎄.”
강민혁이 쓰게 웃었다.
김창수를 비롯한 학생들은 이게 낯선 광경이겠지만, 강민혁은 아니다.
“마법에 늦게 입문했다고 해서, 헌터로서 경험이 없다는 것은 아니야.”
이들은 모른다.
겨우 8살.
남들은 아직 부모님에게 어리광을 피울 나이에, 강민혁은 검을 쥐고 고블린의 목을 쑤셨었다.
굳이 밝힐 필요 없는 과거.
강민혁이 입을 다물자, 김창수는 한동안 묘한 눈빛으로 강민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몇 분 뒤.
“4조 훈련 종료. 5조 앞으로.”
5조.
드디어 강민혁이 나설 차례가 되었다.
8화. 2. 클리스만의 일기(4)
훈련을 준비하는 5조 학생들의 모습에, 백동석 교수가 프로필을 확인했다.
‘이름 김창수. 5조의 조장이고, 마법 컨트롤과 캐스팅 능력이 뛰어난 편. 간혹 긴장하는 상황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경향이 있지만, 단순히 마법적인 능력만 따지자면 마법 학과에서 상위권에 속해.’
“흐음.”
기억이 난다.
항상 수업을 진행하면, 김창수는 맨 앞자리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이며 수업에 참여했다.
나쁘지 않은 실력자다.
만약 김창수가 조장이 아니라 조원이었다면, 백동석은 5조의 테스트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나머지야.’
일단 이민호.
‘광범위한 공격 마법에 특화된 재능. 하지만 캐스팅 속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느린 편이라, 고블린과 같은 재빠른 몬스터를 상대할 때 이민호의 강점은 오히려 단점이 되지. 짧게는 3분에서 길게는 5분까지도 걸리는 캐스팅 동안, 다른 사람들이 버텨줄지가 미지수야.’
다음은 김정민.
‘김창수보다 더한 새가슴의 보유자. 전체적으로 능력이 준수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마법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것. 앞에서 단단하게 방어 라인이 형성된 상황에서야 마법이 몇 번 빗나가는 것은 크나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마법사들의 근접전에서 헛방은 곧 죽음으로 직결되지.’
암담했다.
구성원이 참, 어떻게 이렇게 모았나 싶었다.
하지만 백동석의 표정을 일그러트린 가장 큰 이유는, 앞선 세 명이 아니라 마지막 조원 때문이었다.
‘이 녀석이 가장 큰 문제야. 서클을 형성한지 겨우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초보 마법사. 할 줄 아는 마법이라고는 1서클 마법이 전부인 데다, 그 1서클 마법도 몇 가지 터득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해. 마법은 서클이 상승할수록, 이전 경지의 마법 캐스팅 시간이 짧아지면서 위력은 상승해. 그러한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빠르게 진행되는 전투에서 강민혁은 아무런 쓸모가 없을 확률이 높아.’
머리가 아팠다.
그림이 딱 그려졌다.
다른 조원들이 고군분투하는 사이에, 강민혁은 고생고생해서 1서클 마법 하나를 겨우 완성할 터.
그럼 상황 종료다.
3조와 같은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백동석 교수를 강하게 자극했다.
“·········조교.”
“예.”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옆에 서 있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모양인지, 백동석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
“3서클 공격 마법을 미리 캐스팅해둬. 그리고 내가 신호를 보내면 곧바로 마법을 사용해. 이번에 나설 5조 녀석들은, 단순히 팔이 다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짜 죽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백동석 교수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는 사이, 마침내 5조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 * *
삐이익-
호각이 울렸다.
철컹 소리와 함께 케이지의 문이 열리더니, 안에 있었던 고블린 세 마리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끼룩.
끼룩끼룩.
고블린들이 주변을 살폈다.
아직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한 모습에, 김창수를 포함한 5조의 조원들은 빠르게 캐스팅을 시도했다.
화악.
파랗게 일어나는 마나.
김창수는 사방으로 복잡하게 흐트러진 마나를 ‘파이어 볼트’의 마법 체계로 만들어갔다. 동시에 고블린의 위치를 계산했다. 마법은 완성된 이후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 위치에 적중하지만,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좌표 계산도 필수다. 어느 위치에 떨어트릴 것인지를 미리 계산해야만,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오차 범위를 의지의 발현만으로 커버할 수가 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침착한 표정으로 캐스팅을 절반 정도 진행했을 즈음, 고블린들의 적의 어린 시선이 5조를 향했다.
캬악!
캬아악!
상황이 변했다.
고블린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더니,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50m는 먼 거리가 아니다.
양쪽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고, 고블린이 10m 지점에 도착했을 때 김창수의 마법이 발현되었다.
“파이어 볼트!”
화르륵.
콰앙!
끼에에에에엑!
화끈한 불길이 일었다.
1서클 마법이라 위력이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2서클 마법사가 사용하는 파이어 볼트는 고블린들에게 데미지를 주기에 충분했다. 외피를 태우는 불길에 당황한 고블린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고블린들을 쓰러트릴 수 없었다. 잠시 추춤하나 싶더니, 그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정민아!”
“알겠어!”
화악!
이정민의 손에서 마나가 일어났다.
시간차 공격.
고블린들의 발을 묶기 위해서, 김창수가 제시한 전략이었다.
그런데.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찌지직.
마법의 선택은 좋았다.
문제는 이정민이 긴장하는 바람에 마법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했고, 라이트닝 볼트는 두 마리의 고블린에게만 적중되었다.
그 말인즉.
키에엑!
마지막 한 마리.
다른 두 마리가 고통에 신음하는 사이에, 마법을 맞지 않은 고블린이 그대로 이정민을 덮쳤다.
‘이런!’
김창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건 사고다.
예상과는 다른 상황에, 그는 황급히 마법을 캐스팅했다.
하지만.
‘씨발, 씨발, 씨발.’
덜덜덜.
손이 떨렸다.
철렁 내려앉은 가슴은,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적인 상상에 발목이 붙잡혔다.
그건 이정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이정민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그때, 고블린이 마침내 지척에 도달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사고가 벌어졌다고 확신하는 그 순간.
“록(Rock)!”
빠악!
강력한 타격음과 함께, 고블린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박혔다.
* * *
훈련 전.
강민혁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만 벌면 우리가 이기는 싸움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간결하고 효율적인 마법을 사용할 필요성이 있어.’
이민호.
그가 사용하는 2서클 마법이 작렬하면, 고블린 정도는 곧바로 정리된다.
김창수와 이정민은 시간을 벌기 위해 1서클 공격 마법을 사용했지만, 강민혁의 생각은 달랐다.
‘발을 묶는 데 공격 마법만 필요한 건 아니야.’
생각의 전환.
강민혁은 전투 시작과 동시에 캐스팅에 들어갔다. 일부러 더블 캐스팅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중에 연구의 성과로 증명할 생각이라, 지금 공개하기에는 무대가 너무 작다고 판단했다.
캐스팅은 빨랐다.
사람들은 강민혁을 과소평가하지만, 강민혁의 캐스팅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그리고.
‘이건 근접전이야. 그러니 최대한 캐스팅 시간이 짧은 마법을 사용해야 해.’
순식간에 캐스팅이 끝났다.
그러나 먼저 나서진 않았다.
일단 다른 마법을 하나 더 준비하면서,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때 사고가 벌어졌다.
이정민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드는 고블린의 모습에, 강민혁은 계산대로 마법을 발현시켰다.
“록!”
록.
땅의 기본 원소 마법.
돌멩이를 소환하는 아주 기본적인 마법이지만, 강민혁의 손에서 펼쳐지자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빠악!
끼에엑!
바위는 땅에서 5m 떨어진 지점에서 소환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낙하.
그 밑에는 마침 달려들던 고블린이 있었고, 바위가 고블린의 머리에 작렬하며 달려드는 것을 막았다.
“와.”
“저게 뭐지?”
“저 정도로 완벽하게 좌표 설정을 한다고?”
웅성웅성.
강민혁의 마법에 지켜보던 학생들이 시끌벅적해졌다.
하지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달려드는 두 마리의 고블린에, 강민혁은 준비했던 마법을 차례로 사용했다.
“록.”
툭!
콰당!
땅바닥에서 튀어나온 돌에 넘어지는 고블린.
“아이스(Ice).”
미끌!
콰당!
순간적으로 땅바닥을 얼려, 마지막 한 마리의 고블린도 땅바닥을 나뒹굴게 만들었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강민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하나의 마법을 끝낼 때마다 곧바로 다음 상황을 대비했다.
‘108가지의 1서클 마법.’
그건 단순히 다양한 종류의 마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서클 마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단순히 원소를 생성하는 간단한 마법이라도, 수십 가지의 갈래가 있음을 설명해주는 내용이 있었다.
덕분에 머리가 열렸다.
클리스만의 주석을 확인하면서, 강민혁은 마법의 가능성을 보았다.
‘마법은 사용하기에 따라 전혀 다른 위력을 발휘하는 학문이다.’
단순히 지식으로만 얻은 성과는 아니다.
처음에 머리 위로 바위를 떨어트린 것은, 상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한 강민혁의 계산이 있었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겨우 원소 마법이지만, 1서클 마법을 세 번 연달아 사용하니 입이 바짝 말랐다.
여기까지는 예상한 범위.
하지만 불행하게도 상황은 희망적이지 않았다.
새가슴인 김창수와 이정민은, 강민혁이 시간을 벌어주었음에도 캐스팅을 끝내지 못한 것이다.
끼에엑!
‘빌어먹을.’
고블린 한 마리가 벌떡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김창수와 이정민은 나름 열심히 캐스팅을 끝내려고 했지만, 마법사라는 직업은 평정심을 잃은 순간 끝이다. 마나는 제멋대로 흐트러져서 길을 잃어버리고, 마법의 체계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긴장하지 말라고 김창수를 다독였던 것인데, 결국 사고는 벌어지고 말았다.
캬악!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고블린 한 마리.
힐끗 옆을 살펴보니, 이민호의 마법은 어느 정도 ‘완성된 모습’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녀석만 처리하면 된다 이건가.’
딱 한 마리.
계산을 바꾸었다.
단순히 발을 묶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이 녀석을 직접 처리하는 것으로.
고블린이 그대로 강민혁을 덮치는 모습에, 캐스팅을 이어가던 김창수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위험해!”
일촉즉발의 상황.
순간 조교가 백동석을 쳐다보았지만, 백동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강민혁.
고블린을 마주하는 그의 눈빛에는, 한 치의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9화. 2. 클리스만의 일기(5)
캬악!
고블린의 괴성.
위험하다고 외치는 김창수의 목소리.
그리고 또 다시 벌어질지도 모르는 사고에, 웅성거리기 시작한 사람들.
귓가를 어지럽히는 소음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민혁은 차분하게 고블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보인다.’
고블린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몇 초 뒤에 자신을 덮칠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공격할지.
미세하게 움직이는 근육의 모양만으로, 강민혁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게 무조건 옳은 답은 아니다. 하지만 강민혁이 경험한 바로는, 그 상상은 오차 범위가 크지 않다.
강민혁의 어린 시절.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강민혁은 옥타곤 케이지 같은 곳에서 몬스터와 1대1로 싸우는 경우가 많았다. 절대 어린아이의 싸움이라고는 볼 수 없는 혈전(血戰)이었다. 당시 마나를 사용할 수 없었던 강민혁으로서는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피가 튀는 싸움을 케이지 밖에서 수많은 어른들이 차가운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현재.
겁에 질린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강민혁에게 고블린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짙은 피내음.
익숙한 향기에 오히려 몸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고, 강민혁은 찰나의 순간에 상대의 움직임을 읽었다.
‘오른쪽.’
훅!
고블린의 손톱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주변에서 위험한 광경에 비명을 질러댔지만, 강민혁은 끝까지 고블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곧바로 이빨을 들이미는 고블린의 머리를 왼손으로 막더니, 오른팔을 쭉 뻗어 마나를 활성화시켰다.
“파이어(fire).”
화르륵!
1서클 원소 마법.
단순히 원소를 생성하기만 하는, 위력은 매우 떨어지는 기초 중에 기초.
하지만 강민혁이 생성한 파이어는 조금 달랐다.
[마법은 형태와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위력을 보인다. 108가지의 1서클 마법은 그로부터 비롯된 이론이다. 단순히 돌멩이를 소환하는 마법이라도, 바위의 크기로 허공에서 소환하면 아래에 있는 몬스터는 중력으로 인해 강한 충격을 받는다. 그러한 것처럼········· 파이어의 사용법은 다양하다. 특히 불의 원소는 모든 원소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속성인데, 형태의 변형만으로 파이어의 위력을 상승시키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마법의 압축. 마법은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는데, 파이어의 체계와는 다르게 형성된 마나는 불안정한 형태에 폭발을 일으킨다. 이러한 방법을 잘만 이용한다면 적은 마나로도 높은 화력을 낼 수 있다.]
형태의 변형.
교과서에 나온 내용대로, 마법의 체계를 거의 완성하는 단계에서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정석은 횃불처럼 불길을 일으키는 정도라면, 강민혁이 사용한 파이어는 작은 구슬처럼 보였다.
화륵, 화르륵.
불의 구슬은 불안정했다.
폭발을 일으켜도 파이어 볼트와 엇비슷한 수준이지만, 기본 원소 마법인 만큼 캐스팅은 빨랐다.
문제는.
“저게 뭐지?”
“너무 위험한데?”
고블린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것.
이러한 상황에서 불의 마법을 사용할 경우, 상대뿐만 아니라 시전자도 피해를 입는다.
더구나 마법의 형태도 불안정한 상황.
그래서 마법사들의 교본에는, 근거리에서 화염 마법을 자제하라는 매뉴얼이 포함되어 있다.
그 순간.
캬악!
고블린이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이번에는 강민혁을 집어삼킬 것처럼 저돌적으로 들이미는 얼굴에, 강민혁이 곧바로 손을 뻗었다.
화악!
불의 구슬.
그것이 정확히 고블린의 아가리에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강민혁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고, 형태의 불안정으로 인해 불의 구슬이 폭발했다.
퍼엉!
화륵, 화르르르륵!
끼에에엑!
고블린이 비명을 질렀다.
식도를 태워버리는 강한 열기에, 고블린은 몸부림을 치다가 이내 쓰러지고 말았다.
파이어 볼트와 라이트닝 볼트.
그 이전에 쌓인 데미지도 상당했지만, 내부를 공격한 강민혁의 방식은 상상 이상의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파이어 볼!”
화르륵!
콰앙!
마침내 발휘된 이민호의 마법이 전장을 휩쓸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두 마리의 고블린은 불길에 잡아먹혔고, 그들도 몸부림을 치다 이내 쓰러졌다.
상황 종료.
그런데 이번 훈련의 주인공은 이민호가 아니었다.
결국 상황을 정리한 것은 이민호였지만, 훈련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강민혁을 향했다.
“·········쟤 대체 뭘 한거야?”
충격과 공포.
사람들은 한동안, 강민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후욱, 후욱.”
숨소리가 거칠었다.
급박했던 상황에, 김창수는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강민혁의 모습을 보았다.
‘·········이게 강민혁이라고?’
충격적이었다.
강민혁이 어떤 녀석인가.
유소년 아카데미에서부터 착실하게 마법사로서 훈련한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강민혁은 수호문의 낙오자로 찍혀 마법 학과로 진학한 케이스다. 마법은 쥐뿔도 모르는 녀석이라 당연히 쓸모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훈련에서는 그가 없었다면 큰 사고가 일어날 뻔했다.
아직도 몸이 떨렸다.
동시에 뜨문뜨문, 강민혁의 활약상이 떠올랐다.
‘정말 대단했어.’
마법의 활용법이 기가 막혔다.
겨우 1서클 원소 생성 마법이지만, 그것을 시기적절하게 사용함에 따라 고블린의 발을 묶었다.
특히 첫 공격.
하늘에서 바위를 소환해서 고블린의 머리에 떨어트린 것은, 정말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절대 쉬운 마법이 아니다.
고블린이 이동하는 경로에 마법을 생성하는 좌표 계산만으로도 정말 어려운 작업인데, 강민혁은 고블린이 이동하는 속도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바위를 떨어트렸다. 사실 눈으로 보고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조금이라도 오차가 생겼다면 실패로 돌아갔을 텐데, 강민혁의 모습에서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용한 마법은 뭐지?’
처음에는 파이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슬의 형태로 강한 폭발을 일으키는 모습에, 자신이 알던 상식의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확실한 사실은 강민혁은 정말 대단했다는 것이다.
고블린이 자신을 덮치는 상황에서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고, 공격을 피한 뒤에 정확하게 반격을 가했다. 원리는 이해할 수 없으나, 강민혁이 처리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 덕분에 이민호는 캐스팅을 마칠 시간을 벌었고, 2서클 마법의 발현으로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강민혁.
이제 그의 이름이 달리 보였다.
처음에는 강민혁의 합류에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그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강민혁을 보며 감탄하는 사람들.
그러나 본인의 생각은 달랐다.
새카맣게 타버린 고블린의 신체를 바라보며, 강민혁은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검을 사용하면 쉬웠을 텐데.’
고블린.
F등급의 몬스터.
강민혁이 아주 어렸을 때도, 고블린 정도는 손쉽게 처리했었다.
그런데 마법사로서는 이렇게 고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마법사의 현실이 느껴졌다.
‘보호받지 못하는 마법사는 정말 약하구나.’
사람들은 말한다.
마법사는 온실 속의 화초라고.
지켜주는 사람이 없다면, 마법사는 캐스팅은커녕 고블린과 같은 약한 몬스터에게도 당할 수 있다.
만약 클리스만의 지식을 얻지 못했다면.
강민혁은 이러한 현실에 자괴감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보았기에, 강민혁은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5조 끝. 6조 앞으로.”
계속되는 훈련.
그렇게 한참을 진행하고서야, 마침내 마지막 조까지 훈련을 끝낼 수 있었다.
* * *
훈련 종료.
백동석 교수가 결과를 발표하였다.
“1조의 점수는 B+다. 순간적인 화력으로 고블린을 제압한 것은 좋았으나, 4명이라는 인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만약 변수가 발생했다면, 너희들의 선택은 양날의 검이 되어 크나큰 위험으로 직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의 위력이나 캐스팅 속도, 정확도 면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차례로 결과를 말했다.
이윽고 5조의 차례.
백동석 교수가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5조의 점수는 D다. 시간차 공격을 이용해서 고블린의 발을 묶는 전략은 좋았으나, 마법사로서 상대를 놓치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실수다. 마법사에게 실수란 용납되지 않는다. 마법을 준비하는 캐스팅 시간도 마법사의 약점이 되는 상황에서, 마법마저 빗나가버린다면 사실상 마법사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나마 끝까지 고블린을 모두 정리한 점을 감안해서, D를 부여하도록 하겠다.”
D.
참담한 점수다.
마치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에, 조장인 김창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데 백동석 교수는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은 모양인지, 강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민혁.”
“예.”
“네가 실전에서 보여준 마법들은 아직 마법 학과에서 가르치지 않은 영역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할 생각을 했지? 특히 마지막에 파이어 마법을 다르게 사용한 것은, 교수인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방식이었다.”
강민혁의 마법에 감탄한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백동석 교수도 강민혁을 달리 보게 되었고, 특히 마법의 활용은 1학년의 능력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파이어의 형태 변형은, 교수인 백동석에게조차 미지(未知)의 영역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사람들은 강민혁이 살았던 삶에 대해 안다.
마법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으며, 오로지 검에 매달려서 살았음을.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편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의문을 드러내는 백동석의 모습에, 강민혁은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예상했었다.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많이 찾아올 텐데, 그때마다 어떻게 대답할지에 대해서는 계산을 끝냈다.
방법은 간단하다.
강민혁은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했을 뿐입니다.”
일명 전교 1등 컨셉.
납득하기 싫지만, 납득해야만 하는 그런 대답이었다.
10화. 3. 알고 보니 마법 천재?!
마법 학과에서 2학년 심화 과정을 맡고 있는 강필두 교수는, 학생들로부터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1반 실전 수업 소문 들었어? 강민혁이 하드 캐리했다던데.”
“그게 말이 되나? 강민혁은 1서클 마법사잖아. 1반 애들 말로는 1서클 마법을 기가 막히게 활용해서 고블린의 발을 묶었다는데, 사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 특히 마지막에 파이어 마법으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는 건, 그냥 소문이 와전된 것 같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어?”
“하긴 그렇겠지?”
강민혁의 활약상은 빠르게 퍼졌다.
문제는 강민혁에 대한 인식 때문에 소문이 와전되었고, 그 소문이 강필두 교수의 귀까지 들어왔다.
‘파이어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고?’
파이어.
1서클 기본 원소 마법.
단순히 화(火) 속성의 마나를 생성하는 아주 기본적인 마법으로, 사실상 공격 용도의 마법이 아니다. 그래서 보통 파이어를 사용하는 상황은 장작에 불을 붙일 때나, 아니면 어두운 공간에서 적은 마나로 주변을 밝힐 때다. 솔직히 후자의 상황은 웬만해서 빛 속성의 라이트(light) 마법을 사용하다 보니, 전자의 상황이 아니라면 파이어를 사용할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파이어로 폭발을 일으켰다니.
이건 상식을 파괴하는, 교수의 지식으로도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침 강필두가 가르치는 심화 과정이 이와 관련된 영역이다 보니, 그는 백동석 교수를 찾아갔다.
“백동석 교수님.”
“예, 무슨 일이시죠.”
“이번에 1반 실전 수업에서, 강민혁이 파이어 마법으로 폭발을 일으켰다면서요? 그게 사실이에요?”
“아, 그거요?”
백동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시원하게 대답해주고 싶지만, 사실 이번 일은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파이어 마법을 사용한 건 맞는데, 어떤 원리로 그런 폭발을 일으켰는지는 모르겠어요. 아, 강필두 교수님이라면 잘 아시겠네요. 당시 수업을 촬영한 영상이 있는데, 한번 확인해보시겠어요?”
“예.”
실전 수업에서 현장 촬영은 필수다.
사고가 벌어질 경우 해명이 필요하기에, 백동석은 항상 수업의 영상을 촬영해두었다.
이윽고 영상이 재생되었다.
노트북 화면에 떠오른 당시의 상황에, 강필두는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오호.’
제법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5조가 위험에 빠졌는데, 순간적으로 1서클 마법을 활용하는 강민혁의 능력은 상당히 대단했다.
‘2학년에도 이 정도의 능력자는 거의 없는데.’
강민혁이 달리 보였다.
처음 그가 입학할 당시에, 유소년 아카데미도 이수하지 않은 수호문의 낙오자가 부당한 방법으로 마법 학과에 입학한다고 논란이 많았었다. 아무리 마법 학과가 비주류 학문이라지만, 마법에 ‘마’자도 모르는 사람을 입학시키는 것은 학과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웬걸?
영상 속의 강민혁은 완벽한 마법사였다.
마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그 어떤 학생보다 마법사다운 훌륭한 전투 능력을 보여주었다.
영상은 어느새 끝을 향했다.
고블린의 공격을 피해서 파이어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에, 강필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순간 눈을 의심했다.
강민혁이 사용한 마법은 파이어가 맞다.
처음에 불길이 일렁이는 모습이 정확히 일치했지만, 이후에 마법의 형태가 알던 것과 전혀 달랐다.
붉은 구슬의 형태.
이것은 분명히.
“설마 마법의 형태 변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황급히 영상을 다시 뒤로 돌려보았지만, 몇 번이고 다시 봐도 이건 마법의 형태 변화가 분명했다.
백동석이 말했다.
“예, 제 생각에도 마법의 형태 변화가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체 어떻게········· 가, 강필두 교수님?”
강필두는 백동석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흥분으로 잔뜩 달아오른 강필두의 얼굴은, 지금 백동석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1학년 1반이라고 했지.’
강민혁.
당장 그를 만나야만 했다.
* * *
강민혁을 찾아간 강필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체 어떻게 형태 변화를 한 마법이 곧바로 터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거지?”
형태 변화.
그것은 마법사들이 그간 도전하지 않았던 과제가 아니다.
캐스팅이라는 것은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마나를, 일정한 체계에 따라 마법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필요한 마나의 양과 체계에 따라 마법의 종류와 위력은 완전히 달라지는데, 그렇게 발명한 마법을 선구자(先驅者)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서클을 정하고 마법의 이름을 붙였다.
그 과정 중에 하나.
형태를 정하는 체계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길을 따라 마나를 움직였을 경우 폭발을 일으킨다.
연구자들이 애를 먹었던 부분이다.
다양한 형태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형태 변화에 도전해야 하는데, 불안정한 마나 때문에 곧바로 폭발을 일으키면서 많은 마법사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마법의 종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5서클을 통틀어 채 50개도 되지 않는 수준이고, 그렇게 발명한 마법들의 경우에도 몇몇 선구자들의 희생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민혁은 파이어로 형태 변화를 사용하였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강민혁이 사용한 형태 변화의 경우에는 3초 이상 구슬의 상태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 안전한 형태 변화.
비록 파이어는 1서클 마법에 불과하지만, 강민혁은 파이어의 새로운 형태 변화 방법을 찾아냈다.
“형태 변화요?”
“그래. 네가 고블린을 처리한 방법을 우리는 ‘형태 변화’라고 불러. 모든 마법들은 각자의 마법 형태가 있는데, 보통은 그 형태를 벗어날 경우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지. 그런데 네가 사용한 형태 변화는, 그래도 3초 이상 형태를 유지하면서 오히려 공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어.”
강필두의 얼굴은 잔뜩 달아올랐다.
학자로서, 강민혁의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너무나도 흥분이 되었다.
‘형태 변화라.’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것이 형태 변화라는 사실을.
하지만 강필두가 이렇게 반응할 정도로, 그것이 이 세상에서 대단한 지식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는 형태를 변화시키는 수많은 방법을 찾아냈어. 내가 사용하는 형태 변화는 그중에 하나고, 형태 변화를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야. 안정적으로 파이어의 새로운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불안정하게 자극해서 폭발을 일으키는 새로운 활용법이지.’
이것을 그쪽 세상에서는 ‘마나 폭발’이라고 한다.
108가지의 1서클 마법에서 나온 하나의 활용법이고, 이것 말고도 여러 활용법들이 있었다.
약 3초.
그 정도의 시간 동안 파이어를 유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강필두는 잔뜩 흥분하는 기색을 보였다.
뭐라고 해야할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줄줄이 설명할 수 없었기에, 결국 강민혁은 간단한 방법을 택했다.
“그냥 교과서에 나온 내용대로 했어요.”
“·········뭐라고?”
“얼마 전에 형태 변화와 관련된 교과서를 읽었어요. 마법의 형태를 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체계를 입력하면 불안정한 상태가 되는데, 저는 이 상태가 오히려 공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완전히 안정적으로 만들 방법은 생각나지 않아서, 실험 끝에 3초 정도는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게 다예요.”
교과서.
만능의 답에, 강필두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이야? 교과서에서 배운 것만으로, 네가 파이어의 새로운 형태 체계를 찾아냈다는 것이?”
“예.”
당돌한 대답.
뻔뻔함을 두른 강민혁의 표정에, 강필두가 경악했다.
“너 천재구나?!”
천재.
그 단어 외에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 * *
그날 오후, 강필두는 곧바로 마법 학과 학과장인 최병호를 찾아갔다.
“··················그러니까, 강민혁의 천재성이라면 ‘형태 변화’의 연구를 완성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예. 강민혁의 재능은 진짜입니다. 겨우 교과서에 적힌 형태 변화의 이론만을 가지고, 직접 파이어의 형태 변화를 이루어냈습니다. 학과장님. 이는 정말 엄청난 사건입니다. 강민혁의 재능을 잘만 살려서 연구를 진행한다면, 전 세계 마법 학회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될 겁니다.”
“허어.”
최병호의 표정에 불신이 떠올랐다.
강민혁.
잘 알고 있는 학생이다.
애초에 마법 학과에 입학하기에는 자격 미달인 학생. 만약 수호문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학과장의 재량으로 떨어트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녀석이었는데, 그런 강민혁이 형태 변화를 성공시켰다니.
선뜻 믿기지 않았다.
이건, 상식을 벗어나는 상황이었다.
‘만약 강필두 교수의 말대로 우리 학과생이 형태 변화를 증명해낸다면·········.’
대박이다.
세상이 마법 학과를 주목할 것이고, 학과장인 자신의 위상 또한 덩달아 상승할 것이다.
‘헌터 아카데미에서 마법 학과는 항상 찬밥 대우야. 검술 학과의 교수들은, 학과장인 나를 보고도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을 정도지. 하지만 이번 일로 마법 학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결과물을 제시한다면, 아카데미 내에서의 평판도 달라질 터. 이건 매우 좋은 기회야.’
최병호.
그는 야심가다.
항상 높은 자리를 바라지만, 마법이 비주류 학문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까이고 다니기 일쑤였다.
계산기를 두드렸다.
성공한다는 전제면, 얼마를 투자해도 이득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성공할 자신은 있는 거지?”
“예. 정 믿기지 않으시다면, 지금 당장 백동석 교수를 불러서 실전 수업 영상을 확인해보셔도 됩니다. 강민혁은 파이어의 형태 변화를 성공시켰습니다. 단 하나의 사례일 뿐이지만, 모두 추측으로만 말하던 이론이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될 겁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지원을 해줘야지. 하지만 문제가 있어.”
“어떤 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뒤늦게 생각났다.
최병호에게, 예전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강민혁은 이미 이학범 교수의 ‘더블 캐스팅’ 연구에 참여하고 있어. 그리고 원칙적으로 두 가지의 연구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 그러니 강민혁을 ‘형태 변화’ 연구에 참여시킬 생각이라면, 이학범 교수의 동의가 필요해.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당장 이학범 교수를 부르시죠. 더블 캐스팅이야 사실상 실현 가망이 없는 이론이지만, 형태 변화는 당장 한 달 안에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습니까? 이학범 교수가 아무리 꽉 막힌 학자 스타일의 사람이라지만, 알아 듣게 잘 말한다면 청을 거절하진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최병호가 씨익, 웃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강필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이때만 하더라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1시간 뒤.
“거절하겠습니다. ‘우리 혁이’를 데려가겠다니요. 그건 제 눈에 흙이 들어가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이학범.
이건 논의할 가치도 없었다.
지난 보름의 시간.
강민혁은 이미, 그에게 평범한 학생 이상의 존재감을 차지하고 있었다.
11화. 3. 알고 보니 마법 천재?!(2)
이학범은 연구를 진행하며 알았다.
수호문의 독자인 강민혁이, 사실은 마법의 천재라는 사실을.
‘내가 더블 캐스팅의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도 벌써 2년. 그동안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연구가, 강민혁이 합류하자마자 급속도로 물살을 타고 있어. 처음에는 강민혁의 조언이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민혁이 내게 옳은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실제로 연구가 소기의 성과를 거둘 때는, 모두 강민혁의 조언으로부터 비롯되었어.’
강민혁이 ‘우리 혁이’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수호문의 독자면서 마법 학과를 우습게 보는 건방진 녀석이었다면, 지금은 강민혁이 너무나도 예쁘게만 보였다. 수호문에서 마법을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주변의 압박에도 끝까지 마법을 공부했을 강민혁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다짐했다.
이번 연구와는 별개로, 강민혁을 물심양면 도와주겠다고.
이대로 썩히기엔 강민혁의 재능은 특별했고, 강민혁의 스토리가 고지식한 이학범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런데 강민혁을 빼가겠다니.
그것은 이학범을 분노케 하는, 아주 예민한 발언이었다.
“혁이는 더블 캐스팅 연구에 아주아주 중요한 자원입니다. 그런데 혁이를 강필두 교수의 연구에 합류시키겠다니요. 마법 학과에는 규칙과 예의가 있습니다. 학과 규칙으로 엄연히 학과생은 하나의 연구에만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먼저 연구를 진행하는 제가 있는 이상 강필두 교수는 제 연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예의입니다. 고로, 학과장님의 요청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학범 교수!”
최병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학범이 고지식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대쪽같은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그때, 강필두가 말했다.
“교수님의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더블 캐스팅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연구이지 않습니까? 그에 반해, 형태 변화는 강민혁이 명확한 성과를 보여준 케이스가 있습니다. 그러니 딱 한 달, 한 달만 양보해주시면 강민혁을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서로 윈윈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상당히 타당한 논리였으나, 이학범의 생각은 달랐다.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연구라니요! 혁이가 합류한 이후로 연구는 빠르게 성과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혁이를 데려가는 한 달 동안 더블 캐스팅 연구는 정체될 텐데, 그런 부탁을 받아들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혁이는 더블 캐스팅 연구의 핵심입니다. 제가 그간 연구에 바친 2년보다도, 혁이가 도와준 지난 보름의 시간이 더 가치가 있을 정도로 혁이는 없어서는 안 됩니다.”
단호했다.
이학범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최병호와 강필두는 당황해서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학범이라는 사람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한번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태도를 바꾸는 경우가 없다.
‘대체 강민혁이 무슨 짓을 한 거야?’
최병호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민혁.
분명히 마법 학과에 입학하지도 못할 스펙의 보유자가, 어떻게 연구의 핵심 자원이 되었단 말인가.
형태 변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더블 캐스팅은 형태 변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가치 있는 연구다. 그런데 그러한 연구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니. 그간의 상식이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상황에, 결국 최병호로서는 선택지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강민혁 학생을 불러서 결정하게 합시다. 본인이 어떤 연구를 진행하길 바라는지 말입니다.”
특단의 대책.
이학범이 상당한 불만을 표출했지만, 최병호는 그것을 무시하고 강민혁을 불러들였다.
* * *
강민혁이 자리에 앉자마자 교수들의 유혹은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이학범.
“혁아. 너는 이미 더블 캐스팅 연구의 일원이야. 우리가 했었던 대화를 기억하지? 나는 너를 아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에 네가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해줄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니 이 예의범절도 없는 인간이 하는 제안은 승낙하지 마라. 우리는 이미 더블 캐스팅 연구의 파트너로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지금 네가 떠나면 연구는 중단될 확률이 높아.”
구구절절했다.
동시에 경쟁자를 깎아내리는 발언에, 강필두의 눈썹이 홱 올라갔다.
“예의범절도 없는 인간이라니요. 이건 학자로서 당연한 제안입니다. 강민혁 학생. 앞으로 한 달 뒤에 전 세계 마법사를 대상으로 마법 학술 대회가 열려. 더블 캐스팅 연구는 당장 성과를 거둘 수 없겠지만, 우리는 마법의 형태 변화만 증명하면 마법 학술 대회에서 충분히 우승을 넘볼 수 있어. 마법 학술 대회가 어떤 자리인지는 알지? 예전에 노벨상(Nobel Prize)이 있었다면, 마법 학계에서는 바로 마법 학술 대회가 있어. 그만큼 권위 있는 자리라는 뜻이지. 만약 네가 이 대회에서 성과를 거둔다면, 너는 마법사로서 상당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어. 내가 장담하지.”
마법 학술 대회.
매력적인 단어였다.
마법이 비주류 학문으로 취급을 받는다지만, 그래도 마법 학술 대회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자리다.
그걸 알기 때문일까.
이학범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사람이 진짜!”
“말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이학범 교수님도 제 입장이었다면, 이럴 수밖에 없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강민혁은 가만히 얘기를 들었다.
아직 뜨거운 열기가 모락모락 일어나는 차를 음미하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어떻게 할까.’
강민혁이 이학범 교수의 연구에 참여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현실에서는 마법적인 기반이 없기 때문에, 이학범 교수의 배경을 빌려서 성장하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중에 연구 성과를 발표할 때 이학범의 이름값은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원래 연구 바닥이라는 것이 그렇다. 아직 17살의 학과생이 하는 발언은 힘이 실릴 수 없기에, 중간에 연구 성과를 가로채기 당하는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이학범의 이름값을 이용했다.
이학범의 공동 연구자 강민혁.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강민혁을 달리 보게 될 테고, 이후에 발표하는 성과는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
‘원래는 석 달 뒤에나 발표할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느꼈다.
더블 캐스팅이나 형태 변화.
이것이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두 지식의 가치가 절정에 달한 지금, 최대한 활용해서 현실에서 많은 것을 얻어내고 싶었다.
강민혁의 아버지가 그랬었다.
수호문을 거대 문파로 만들어낸 것은, 단순히 무력뿐만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의 힘이 컸다.
강민혁이 말했다.
“두 교수님의 제안을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한 달 뒤에 저는 강필두 교수님과 학술 대회에 참여할 것이고, 그동안 두 연구에 모두 공평하게 시간을 할애하겠습니다. 만약 이게 싫으시거나, 학과생이 하나의 연구에만 참여할 수 있다는 규칙을 운운할 생각이면 그냥 연구에서 빠지겠습니다.”
“아, 아니.”
“·········크흠.”
두 교수가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그래도 하나에 집중해서 성과를 보였으면 하는데, 강민혁의 입장이 확고해서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강민혁을 놓치긴 싫었다.
그만큼, 강민혁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학과장님.”
“그래.”
“사실 제가 학과생으로서 연구에서 성과를 내면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학과장님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대가로 제게 ‘마법 도서관 최상부 출입증’을 지급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가 연구에 참여하는 조건입니다.”
“·········?!”
마법 도서관.
아래층은 모든 학과생들이 출입할 수 있지만, 최상부는 다르다.
마법 학과가 보유한 모든 마법서들.
그게 최상부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최병호로서도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입을 달싹였다.
망설이는 그의 모습에, 양쪽에서 교수들의 시선이 꽂혔다.
‘어서 승낙하세요!’
‘연구만 성공하면, 그게 대숩니까?’
이글거리는 눈빛.
그들의 압박에, 결국 최병호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연구가 성공하기만 한다면, 사실 강민혁에게 무엇을 주든 간에 최병호의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알겠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거래 성사.
결국 세 사람의 야망으로 인해, 강민혁이 제일 큰 이득을 얻으면서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 * *
강민혁은 클리스만의 제안에 생각한 것이 있다.
‘몬스터의 토벌은 혼자만 강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결국, 나도 세력을 형성해야만 해.’
강화 문명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렇게 강해진 사람들이 몬스터를 완전히 토벌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수많은 전투 끝에 불가능한 일임을 알았기에, 사람들은 공존을 택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그래서 연구에 참여했다.
강민혁은, 연구 발표가 마법의 선구자(先驅者)가 되는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고차원의 마법 문명을 얻은 것은 엄청난 특권이야. 일단 선점한 지식으로 내가 먼저 성장한 이후에, 차례로 마법 지식을 발표한다면 나는 마법사로서 상당한 위치에 오를 수 있어. 그게 바로 시작이야. 내 세력을 이루는 것. 혼자만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힘이 필요해.’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수호문의 선조가 맨주먹으로 수호문을 세운 것처럼, 강민혁도 자신만의 세력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연구 합류를 대가로 마법 도서관 최상부에 출입한 강민혁은, 매일 방과 후에 들려서 마법서를 살폈다.
‘클리스만의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쪽의 지식이 필요해. 그래야 비교를 할 수 있어.’
마법 도서관 최상부.
그곳에는 현재 발견된 모든 마법서들이 있다.
1서클부터 5서클까지.
5서클의 경우에는 상당한 값어치를 자랑하지만, 최병호는 기꺼이 강민혁의 최상부 출입을 허락했다.
강민혁은 마법들을 살폈다.
현재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수준이 얼마인지, 그리고 마법은 어디까지 개발했는지.
이것들을 모두 알고 나면, 클리스만의 세상을 경험했을 때 두 세계의 격차가 얼만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내가 세상에 공개할 지식의 선을 정할 수 있어.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내가 그 세력을 강하게 움켜쥘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 항상 공개되는 지식은 많은 사람들이 그 지식을 알게 되더라도, 내게 아무런 영향이 없을 때나 공개할 거야.’
강민혁은 성인(聖人)이 아니다.
자신이 얻은 특권을 아무런 생각 없이 퍼줄 만큼, 강민혁은 그간 호락호락한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다.
항상 7할의 힘을 숨긴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강민혁은 철저하게 따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보름 뒤.
“·········드디어 한달이 지났나.”
강민혁은 클리스만으로서 눈을 떴다.
12화. 3. 알고 보니 마법 천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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